더 브레이브 True Grit (2010)

2011.02.19 21:39

DJUNA 조회 수:13581


[트루 그릿]은 1968년에 발표된 찰스 포티스의 장편소설로, 당시 상당한 인기를 끌어서 다음 해에 존 웨인이 루스터 코그번으로 나온 헨리 해서웨이의 영화로 만들어졌죠. 그 영화로 존 웨인은 드디어 아카데미상을 탔고,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 [진정한 용기]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0년, 코엔 형제는 포티스의 소설을 다시 각색해 영화로 만들었는데, 그 영화가 우리나라에는 [더 브레이브]라는 이상한 제목으로 소개되는 바로 이 작품이죠. 얼마 전에 번역 출판된 소설은 그냥 [트루 그릿]이라는 제목을 쓰고 있습니다. 읽어보세요. 영화가 담지 못하는 그만의 재미가 있습니다. 


영화는 고전적인 서부극 복수담의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악당의 총에 아버지를 잃은 어린 주인공이 연방 보안관을 고용해 인디언 보호지역으로 달아난 원수를 찾아나서지요. 하지만 포티스는 이 익숙한 이야기에 몇 가지 변형을 가하고 있습니다. 우선 주인공은 14살 짜리 어린 소녀예요. 게다가 기본 공식을 모두 충실하게 따르는 구조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태도는 거기에서 벗어나 있어요. 장르가 주는 대리 충족의 카타르시스를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고 할까요. 예를 들어 이 영화의 악당인 톰 채니는 보통 서부극에서는 메인 악당으로 삼고 싶지 않은 인물입니다. 척 봐도 시시한 루저거든요. 복수를 하고 이야기를 끝맺는 과정 역시 일반적인 호흡을 따르지 않습니다. 서부극 세계의 이야기보다는 현실 세계에서 기어코 서부극의 공식을 따르겠다고 나선 사람들을 보는 것 같다고 할까요. 포티스가 소설을 쓴 60년대 말이라면 이런 태도는 당연했을지도 모릅니다. 읽어본 서부소설이 몇 편 없어서 비교는 어렵지만요.


이 이야기에서 가장 재미있는 건 캐릭터 묘사입니다. 우선 소설에서 화자이기도 한 주인공 소녀 매티 로스가 그렇습니다. 엄격한 장로교 신자이고 종교가 사전 주입한 세계관에서 벗어날 생각이 전혀 없는 편협하기 짝이 없는 아이지만, 영리하고 용감하며 선입견이나 고정관념 따위엔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좋아할 생각이 들지는 않을지 몰라도, 보다보면 늘 감탄하게 되지요. 매티가 고용한 연방 보안관 루스터 코그번은 그 아이와 정반대의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뚱뚱한 주정뱅이 애꾸눈인 외모부터 시선을 끌고, 그 안에 담긴 성격은 한마디로 '컬러풀'하지요. 소설에서는 매티 로스의 깐깐하고 냉정한 나레이션 때문에 그의 화려한 성격이 더 도드라집니다. 그들을 돕는 텍사스 레인저 라 비프나 톰 채니, 열차 강도 네드 페퍼 일당들 역시 우리에게 익숙한 전형성에서 완전히 벗어난 인물들입니다. 


포티스의 소설은 비교적 단순하다고 할 수 있는 이 이야기에 몇 겹의 레이어를 씌웁니다. 우선 이야기 자체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든 매티 로스의 관점에서 전개돼요. 19세기 말의 서부에서 벌어진 이야기가, 매티 로스가 이야기를 하는 20세기 초반의 관점을 거치는데, 그것이 다시 찰스 포티스가 소설을 쓴 60년대 말의 관점을 통과하는 것이죠. 이 겹겹의 과정을 통하는 동안, 매티 로스가 겪은 단순한 사건과 그를 회상하는 명쾌한 나레이션은 계속 수정되고 보완됩니다. 제 생각엔 코엔 형제가 이 소설을 다시 각색한 것도 헨리 해서웨이의 영화가 이 과정을 거꾸로 돌렸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해서웨이의 영화는 재미있는 편이었지만 그가 택한 다소 감상적인 할리우드적 접근법은 포티스 소설이 가진 레이어들을 망쳐놓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코엔 형제는 여기에 그들이 속해있는 21세기 초의 관점을 다시 씌웠어요. 당시 현재 시점에서 책을 읽고 영화를 봤던 독자/관객들보다 한 겹 더 나아갔던 겁니다. 


그 때문에 그들의 영화는 해서웨이 버전보다 훨씬 논리적으로 보입니다. 더 냉정하기도 하며, 유머도 늘었습니다. 포티스의 소설보다 더 유머스럽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설에서 유머의 상당수는 거의 허클베리 핀스러운 매티 로스의 나레이션에서 나오는데, 이건 대부분 날아갈 수밖에 없죠) 적어도 코엔 형제스럽게 웃깁니다. 원작에 충실하지만 종종 원작보다 더 나아가기도 하고요. 그들은 당연히 타협도 안 합니다. 해서웨이가 포기했던, 원작소설의 좀 심하다 싶은 결말도 그대로 담고 있죠. 물론 속편이 나올 여지도 없고.


그 결과 만들어진 영화는 예상 외로 정통적입니다. 물론 해서웨이 버전이 더 할리우드 고전 서부극의 전통에 가깝겠지요. 하지만 포티스를 따르고 21세기의 관점을 유지하자, 영화는 다루고 있는 세계에 더 정직해졌습니다. 전통적이지는 않지만 정통적인 영화가 나온 거죠. 코엔 형제의 영화는 '수정적'이지 않습니다. 전통을 교정하거나 비판할 이유가 없는 거죠. 그들은 아무런 숨은 의도 없이 최선의 서부극을 만든 겁니다. 여기에 코엔 형제식 유머가 들어간 것 역시 개조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유머는 포티스의 유머와 썩 잘 어울리고, 원작을 읽지 않고 보면 구분하기도 어려워요.


배우들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코엔 형제의 캐스팅이 해서웨이의 캐스팅보다 더 정확할 뿐만 아니라 화려하다고 해야겠습니다. 물론 해서웨이에게 존 웨인 이외의 캐스팅은 불가능했을 거고, 웨인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독자들이 상상했던 루스터 코그번은 존 웨인보다는 제프 브리지스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지저분하고 걸걸하고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퇴물요. 결정적인 우위는 매티 로스를 연기한 헤일리 스타인펠드에 있습니다. 우선 나이가 맞아요. 그리고 해서웨이 버전에서 킴 다비가 포기하지 못했던 할리우드식 달콤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죠. 스타인펠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의 매티입니다. 다른 표현을 추가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해요. (11/02/19)


★★★☆


기타등등

존 웨인과 제프 브리지스 모두 소설 속의 코그번보다 나이가 많지만, 할리우드의 60대는 서부극 주인공의 40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걸요.


감독: Ethan Coen, Joel Coen, 출연: Hailee Steinfeld, Jeff Bridges, Matt Damon, Josh Brolin, Barry Pepper, Dakin Matthews, Jarlath Conroy, Paul Rae, Domhnall Gleeson, Elizabeth Marvel


IMDb http://www.imdb.com/title/tt1403865/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5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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