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얼마 전에 인기를 끌었던 호소다 마모루의 동명 애니메이션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실사판이 아닙니다. 자매편 정도가 맞겠군요. 보다 정확히 말하면 사촌편.  


교통정리를 하면 이렇게 됩니다. 우선 츠츠이 야스타카의 원작 소설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있었어요. 이 작품은 여러 차례 각색되었는데, 그 중 [하우스]의 오바야시 노부히코가 각색한 83년도 영화가 가장 유명했지요. 2006년에 나온 [시간을 달리는 소녀] 애니메이션판은 일종의 속편으로 원작 이후 20년 뒤를 다루고 있고 주인공은 원작 주인공의 조카죠. 2010년도 실사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애니메이션과 전혀 상관 없는 내용으로 주인공은 원작 주인공의 딸이고요. 그렇다면 2006년도 영화와 2010년 영화는 같은 세계를 공유하고 있느냐...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세요. 이걸 꼼꼼하게 정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하여간 이 영화에서 원작의 주인공 카즈코는 약대 대학교수입니다(애니메이션에서는 박물관 큐레이터였던가요) 영화가 시작될 무렵엔 막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신비의 물질을 만들어냈지만 교통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카즈코의 딸인 아카리는 엄마를 대신해 엄마의 첫사랑인 카즈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1972년 4월로 시간여행을 하려고 하는데, 그만 실수로 1974년 2월에 떨어지지요. 거기서 아카리는 영화 감독 지망생인 료타의 도움을 받아 엄마와 카즈오를 찾아 다닙니다. 


속편으로 넘어가서 개념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타임 리프의 설정은 사라졌어요. 주인공 아카리는 몇십 년의 시간을 건너뛰지만 무슨 능력이 생겼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죠. 그냥 남이 만든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제가 보기엔 아이디어가 다운그레이드된 것 같습니다. 전작들의 아이디어가 좋다고 그걸 무한반복할 필요는 없겠지만.  


영화의 이야기는 논리가 빈약합니다. 카즈코는 아무 사정도 모르는 아카리를 과거로 보낼 이유가 없습니다. 시간여행이 가능한 약을 만들었다는 건 시간을 통제할 수 있다는 말이니까요. 자기가 사고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겁을 먹었다고 해도 간신히 동물실험을 마친 약을 딸에게 먹여 시간여행이라는 엄청난 모험을 하게 하다니, 그건 좀 괴상하지 않나요?  

영화는 그 뒤로 아카리와 료타의 로맨스로 이어지는데, 음, 이것도 저에겐 그렇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발랄하고 귀여운 고등학생과 어리버리한 영화감독 지망생은 어울리는 커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SF 설정과 운명적 사랑이 개입되지 않을 경우나 그렇죠. 영화는 이들의 이야기에 불필요한 과장을 넣는데, 그럴 때마다 그럭저럭 쌓아올린 관계 묘사가 날아가 버립니다. 결과는 맥빠진 신파. 


영화에서 가장 힘센 건 아카리를 연기한 니카 리이사의 존재감입니다. 애니메이션판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도 목소리 연기를 했다고요. 하여간 이 사람은 참 귀여워요. 동글동글 통통거리며 영화 내내 즐겁게 뛰어다닌다는 인상. [시간을 달리는 소녀]라는 영화가, 에너지가 조금 더 풍부하고 소란스러운 코미디였다면 딱 맞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최종결과물에서는 주연배우의 매력과 영화가 따로 놀아요. (11/03/22)


★★☆


기타등등

저에게 있어서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료타가 만든 [빛의 행성]이라는 영화가 한심할 정도로 의미없고 지루한 작품이었다는 겁니다.


감독: Masaaki Taniguchi, 주연: Riisa Naka, Akinobu Nakao, Narumi Yasuda, Masanobu Katsumura, Kanji Ishimaru, Munetaka Aoki, 다른 제목: Time Traveller


IMDb http://www.imdb.com/title/tt161440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2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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