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에이트 Super 8 (2011)

2011.06.15 10:14

DJUNA 조회 수:17448


[슈퍼 에이트]는 스필버그 영화입니다. 여기서 스필버그는 [E.T.]와 [미지와의 조우]를 만든 영화감독이 아니라 그 감독의 이름을 말하면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영화들 그러니까 하나의 장르입니다. 그리고 J.J. 에이브럼스는 1966년생. 이런 영화들을 보고 자라면서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던 세대죠. 그런 그가 7,80년대라면 딱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하거나 제작했을 법한 영화를 만들어 가지고 내놓은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는 그것만으로도 모자란지, 스필버그를 제작자로 삼고 영화 앞에 앰블린 로고까지 달았습니다. 이 정도면 팬의 승리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영화의 이야기는 [구니스], [E.T.], [미지와의 조우]를 하나로 묶어놓은 것 같습니다. 때는 1979년. 슈퍼 8 카메라로 좀비 영화를 찍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한밤중에 몰래 집에서 기어나와 텅빈 역에서 영화를 찍는데, 그들 앞에서 엄청난 열차 탈선 사고가 일어나고, 무언가 거대하고 무서운 존재가 화물칸에서 탈출합니다. 그리고 그 사고가 일어나는 동안 넘어진 카메라는 그 괴물의 모습을 찍습니다.


J.J. 에이브럼스는 끝없이 이어지는 떡밥으로 악명높은 인물이지만, [슈퍼 에이트]를 보면서 그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전히 떡밥들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머리를 썩힐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이미 무슨 이야기인지 뻔히 보이니까요. 주인공들이 찍은 필름이 드라마와 보다 밀접하게 연결되는 미스터리 영화로 만들어도 재미있었을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그건 영화의 의도가 아닙니다. 에이브럼스는 전혀 주저하지 않고 스필버그가 깔아놓은 보다 담백한 길을 따릅니다.


수많은 스필버그 재료들이 있습니다. 별이 가득 찬 밤하늘, 붕괴된 핵가족, 자전거를 타고 소도시 주택가를 질주하는 아이들, 그들 앞에 떨어진 무시무시하고 환상적인 존재, 컴컴한 음모를 꾸미는 어른들. 물론 또래 (남자) 아이들의 언어와 정서, 행동의 정교한 묘사 역시 스필버그를 닮았습니다. 찾으면 이런 게 계속 나옵니다.


하지만 [슈퍼 에이트]는 스필버그의 영화의 완벽한 모사가 아닙니다. 그런 걸 기대하지는 마세요. 이 영화에는 스필버그의 초기 영화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아, 영화구나, 영화네, 영화인 거야, 영화다!"의 느낌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입니다. 아이들의 묘사는 스필버그식이지만 그보다는 절제되어 있고, 하늘은 별로 가득하지만 정작 별똥별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결정적으로 [슈퍼 에이트]는 스필버그처럼 감정을 쥐어짜지는 않습니다. 그건 마이클 지아키노의 음악도 마찬가지죠. 영화는 여전히 오마주지만 지향성은 조금 다릅니다.


종종 초기 스필버그였다면 서툴렀거나 아예 다루지 않았을 부분들도 보입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인 조와 배우로 뒤늦게 팀에 가담한 홍일점 앨리스와의 관계는 스필버그나 기타 앰블린 영화에서보다 훨씬 섬세하고 정교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화 속 괴물도 초기 스필버그의 외계인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보다는 [클로버필드]의 괴물에 가깝죠. 전 괴물과 인간의 관계를 그리는 영화의 접근법이 좋았습니다. 이것도 전형적이라면 전형적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사실적이고 감상이 제거되어 있으며 주인공의 드라마와도 잘 어울립니다.


[슈퍼 에이트]는 어린 시절의 개인적 추억과 옛 우상에 대한 오마주, 미국 장르물에 대한 예찬과 재해석이 뒤섞여 있는 잡탕입니다. 모사한 남의 개성과 감독 자신의 개성이 충돌하고, 종종 엉뚱한 영화들에서 온 두 요소들이 예고없이 멋대로 만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결코 일관성 있는 영화는 아니죠. 하지만 그게 단점일까요? 아뇨. 이건 [슈퍼 에이트]라는 영화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모양입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영화였어요. (11/06/15)


★★★☆


기타등등

1. 오로지 J.J. 에이브럼스의 팬들만 관대할 법한 특정 습관들이 이 영화에도 계속 나옵니다. [스타 트렉] 때 한 번 깨진 뒤로는 좀 자제할 줄 알았는데요. 하긴 감독이 그렇게 좋아한다면 제가 굳이 말릴 이유가...


2.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마세요. 어차피 다시 앉게 됩니다.

 

감독: J.J. Abrams, 출연: Joel Courtney, Elle Fanning, Riley Griffiths, Ryan Lee, Zach Mills, Gabriel Basso, Kyle Chandler, Ron Eldard, Glynn Turman, Noah Emmerich


IMDb http://www.imdb.com/title/tt165006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7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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