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고 Hugo (2011)

2012.02.26 15:03

DJUNA 조회 수:13907


마틴 스콜세지가 브라이언 셀즈닉의 그림책 [위고 카브레의 발명품]을 각색한다는 뉴스가 떴을 때,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했습니다. 스콜세지가 만드는 가족 영화! 그것도 3D랍니다! 왜 로버트 제메키스가 해야 할 일을 스콜세지가 한다는 거죠?

하지만 이 계획은 보기만큼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논리적이었죠.

우선 내용을 보죠. 스콜세지는 언제나 영화라는 매체의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1930년대 파리를 무대로 한 이 영화는 바로 우리가 아는 영화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조르주 멜리에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스콜세지가 눈독을 들이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이야기죠.

3D도 이상한 선택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3D가 레트로 유행이라는 걸 잊고 있어요. 스콜세지처럼 옛날 영화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미 5,60년대 입체 영화에 대한 상세한 지식이 있을 게 분명합니다. 이를 다시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나왔다면 활용하는 게 스콜세지답고요.

스콜세지의 [휴고]는 파리의 철도역에 숨어 살면서 실종된 아저씨를 대신해 역의 시계들을 보수하며 살아가는 고아 소년 휴고의 이야기입니다. 휴고의 유일한 보물은 시계공이었던 아버지가 박물관에서 찾아낸 고장난 오토마톤으로, 휴고는 이를 완성해 여기에 숨은 미스터리를 밝힐 꿈을 갖고 있죠. 하지만 수리에 필요한 아버지의 수첩을 역에 있는 장난감 가게 주인 조르주 할아버지가 빼앗아 가고, 수첩을 되찾기 위해 손녀 이자벨을 만난 휴고는 조르주 할아버지의 비밀에 대해 알게 되지요.

셀즈닉의 책이나, 존 로건의 시나리오나, 다들 그렇게 치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휴고]는 액션보다는 공간과 역사에 대한 영화죠. 휴고의 모험담은 영화와 영화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한 일종의 가이드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마술로서의 영화'입니다. 영화의 장르 자체가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선택되었어요. 예고편만 보면 이 영화는 [해리 포터] 스타일의 판타지처럼 보입니다. 그렇죠? 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초자연현상은 단 하나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판타지의 소재처럼 보이는 것들은 대부분 정교한 기계거나 마술입니다. 그리고 영화의 오토마톤이 그런 기계적 마술을 영화의 마술과 연결할 때, 전직 마술사인 조르주 멜리에스가 정체를 드러내는 거죠.

여기서 3D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선 스콜세지는 관객들의 눈 피로를 걱정하는 다른 감독들과는 달리 3D 효과를 아주 세게 줍니다. 관객들이 3D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있는 장면은 거의 없어요. 이건 중요합니다. 영화의 내용상 관객들은 '현실세계'의 입체성을 꾸준히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야 2D 매체인 필름 영화의 마술이 어떤 의미인지 분명히 드러나거든요.

이게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 인용입니다. [열차의 도착] 상영은 영화 관객들이 처음으로 접했던 3D의 충격이었습니다. 그들이 보았던 건 2D 흑백 영상이었지만, 영화라는 걸 처음 접한 관객들은 기차가 스크린을 뚫고 관객석을 덮친다고 믿었죠. 그리고 스콜세지는 이 관객들을 3D로 보여줍니다. 3D의 관객들이 2D로 상영되는 영화를 보면서 3D의 환각을 느끼는 것이 어떤 현상이었는지 이처럼 분명하게 보여주는 설명은 지금껏 없었죠. 여기까지가 단순히 과거 역사의 재현이라면 영화 후반에서 스콜세지는 2D 세계와 3D 세계를 나누고 있던 벽을 깨고 마술을 마법으로 승격시킵니다.

3D효과가 예상되었던 것이라면, 이를 위해 그가 택한 동화적 세계는 낯설기만 합니다. 사실 스콜세지가 가족 영화의 장르에 완전히 적응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아직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없는 관객들 앞에서 지나치게 조심하거나 신경쓰는 부분들이 보여요. 근데 저에겐 이것 역시 재미있어 보입니다. 노련하다는 말만으로는 한참 설명이 부족한 한 세대의 거장이 수줍고 성실한 초보처럼 굴고 있으니까요. [휴고]는, 한 거장이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알고 사랑하는 매체에 대한 전문분야의 이야기를 새로 택한 낯선 세계를 탐사하며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이중의 흥분이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12/02/26) 

★★★☆

기타등등
1. 스콜세지의 카메오가 잠시 나옵니다.

2. 할리우드의 프랑스라는 곳이 원래 영국사람처럼 말하는 프랑스인들이 부글거리는 곳이긴 한데, 이 영화의 프랑스는 그 정도가 종종 조금 심한 거 같기도 합니다. 일단 전 휴고의 어머니를 영국인으로 만든 이유를 모르겠어요.

감독: Martin Scorsese, 출연: Asa Butterfield, Chloë Grace Moretz, Ben Kingsley, Sacha Baron Cohen, Ray Winstone, Emily Mortimer, Christopher Lee, Helen McCrory, Michael Stuhlbarg, Jude Law

IMDb http://www.imdb.com/title/tt0970179/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4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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