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빈 인 더 우즈], 그러니까 [숲 속의 오두막]이죠. 제목만 들어도 익숙한 미국 슬래셔 영화의 공식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십중팔구 대학생인 젊은이들이 방학을 맞아 숲 속에 있는 오두막에 놀러갑니다. 하지만 숲으로 들어갈수록 분위기는 이상해지고, 십중팔구 주유소에서 만난 동네 아저씨는 그들의 운명에 대해 불길한 헛소리를 늘어놓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오두막에서 막 놀려고 할 때, 학살이 시작되지요. 가해자는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레드넥 기형인일 수도 있지만, 좀비나 늑대인간 아니면 다른 말도 안 되는 괴물일 수도 있는데...

장르 영화가 이렇게 뻔한 제목을 당당하게 걸고 있다면, 그건 선언입니다. 지독하게 뻔한 장르 공식을 하나 줘 봐. 그걸 가지고 너네들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 보여주겠어. 하긴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드루 고다드와 조스 위든. [버피] 시리즈 때부터 장르 공식의 비틀기와 재활용에 도가 튼 사람들이죠.

[캐빈 인 더 우즈]에서 그 새로운 건 무엇일까요. 이미 하나는 예고편에도 나옵니다. 우리의 주인공인 대학생들이 간 오두막은 평범해보이지만, 알고 보면 최첨단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정부의 실험실 비슷한 곳입니다. 정부에서 이런 괴상한 실험을 하는 이유는? 이것도 좀 뒤에 나옵니다. 역시 알아맞히기 어렵지는 않아요. [버피] 4시즌을 기억하세요? 이니셔티브인가 하는 국가기관이 러브크래프트 스타일의 괴물들을 연구하며 난리치던? 아주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세계관을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하여간 영화는 이 세계관을 그렇게 감출 생각은 안 합니다. 레이어를 깔면서 반전을 만드는 것으로 영리한 척을 하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죠. 하긴 그건 너무 손쉽습니다. 미리 눈치 챈 관객들은 맥빠져 할 가능성이 크고.

실험실/오두막은 호러 비디오 게임과 같은 곳입니다. 갑자기 문이 열린 지하실 안에 들어가보면 온갖 괴상한 물건들이 있는데, 그들이 그 중 하나를 선택하면 괴물들이 선정됩니다. 그건 핀헤드스러운 괴물일 수도 있고, 인어괴물일 수도 있고 다른 무언가일 수도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레드넥 좀비 가족이지요. 일단 괴물들이 선정되면 학살이 시작되는데, 여기서부터는 또 순서가 있습니다. 장르에 익숙한 관객들은 적어도 첫 번째 희생자가 누군지 눈치채실 수 있을 거예요. 이 영화에 나오는 다섯 명은 운동선수, 금발 미녀, 학구파, 바보, '처녀'로, 척 봐도 타이프캐스팅된 인물들입니다.

영화는 이들에게 조금 친절한 편입니다. 적어도 이들이 장르가 말하는 것처럼 단순한 인물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지요. 알고 보면, 운동선수 청년은 전액장학금을 받는 우등생이고, '금발 미녀'도 멍청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실 '처녀'도 진짜 처녀는 아니지요. 이들이 영화 속에서 장르 규칙에 맞는 행동을 하는 건, 오두막 지하에 있는 정부 전문가들이 상황을 조작해 그들을 그런 쪽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입니다.

관객들은 이 상황을 일종의 은유로 읽을 것입니다. 정부기관이 왜 이런 뻘짓을 하는지는 몰라도, 그 뻘짓이 호러 장르에 대한 은유라는 건 눈치채지 못할 수 없지요. 정부 기관의 관리자들은 호러 작가이고, 감독이고, 심지어 관객이기도 합니다. 오두막에서 젊은이들이 온갖 고생을 하는 동안, 그들은 장르 규칙에 맞는 진부한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죠. 물론 이런 상황은 결코 끝까지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후반엔 피란델로식 반란이 일어납니다. 이것도 다시 생각해보면 공식인 것 같아요. 주인공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휘두르지 않고 끝나는 이야기는 재미가 없지 않습니까.

중반까지 [캐빈 인 더 우즈]는 평범한 편입니다. 드러난 클리셰보다는 복잡하지만, 그래도 영화의 구조를 알아차리긴 어렵지 않죠. 그리고 전 사실 위든과 고다드가 넣은 농담들에 좀 실망을 했습니다. 웃음이 나오긴 하는데, 그래도 너무 장치가 뻔해 맥이 풀리더군요. 제가 [버피] 농담에 익숙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일반적인 [버피] 농담의 기준과 비교해도, 전반부의 농담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닙니다. 지나치게 단순하고 속이 보이죠.

영화는 억지로 코미디가 되려는 노력을 버리는 순간부터 재미있어집니다. 이러다가 피란델로 반란이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부터 폭발하기 시작하죠. 온갖 호러 영화 괴물들이 총동원되고, 장르 인용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집니다. 그러다보니 코미디로도 더 재미있어져요. 물론 그건 사방에 피에 절은 신체 조각들이 날아다니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악몽들이 총동원되는 코미디지요. 네, 단발성 장편영화로 만들어진 R등급 [버피]인 것입니다. (12/06/20) 

★★★

기타등등
캐나다에서 찍었고요. 당연히 조델 펄랜드가 나옵니다. [버피]와 [앤젤] 배우들이 여기저기 나오기도 하고요...

감독: Drew Goddard, 출연: Kristen Connolly, Chris Hemsworth, Anna Hutchison, Fran Kranz, Jesse Williams, Richard Jenkins, Bradley Whitford, Brian White, Amy Acker, Tim De Zarn, Tom Lenk, Dan Payne, Jodelle Ferland, Dan Shea, Maya Massar, Matt Drake

IMDb http://www.imdb.com/title/tt1259521/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8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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