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와이어 Haywire (2011)

2012.07.09 23:04

DJUNA 조회 수:11636


전직 해병인 말로리 케인은 지금 케네스라는 인물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들어보니 그 회사는 CIA와 같은 정보기관의 하청을 받아 수상쩍은 일을 대신해 주는 곳 같더군요. 말로리는 동료 애런과 함께 바르셀로나에 감금되어 있는 중국 반체제 인사 지앙을 구출하러 가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뒤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다 말로리를 죽이려 하는 것 같습니다. 말로리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스페인, 아일랜드, 미국으로 날아다니며 사람들을 구타하고 다닙니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액션 영화 [헤이와이어]의 스토리는 6,70년대 냉전시대 에스피오나지 스릴러의 공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여러 나라를 오가며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주인공 주변에서 별별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데,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배배 꼬인 음모는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면, 소더버그가 이 스토리를 전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헤이와이어]에서 스토리나 사건의 진상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여기서 말로리로 나오는 이종격투기 선수 겸 배우인 지나 카라노의 액션이지요. 카라노가 영화 내내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면, 영화의 내용은 뭐여도 상관 없습니다. 실제로 저도 영화 보는 내내 진상은 전혀 궁금하지 않았고, 심지어 영화 끝날 때까지 그런 게 나오긴 할 지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무지 악동스러운 영화입니다. 여기 마이클 파스벤더, 채닝 테이텀, 유안 맥그리거,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같은 쟁쟁한 일급 스타들이 나오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그들의 역할은 격투기 선수 출신의 신인 배우에게 죽어라 얻어맞는 것입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일회성 소모성 소품이며 밥입니다. 만들면서 다들 재미있어 했을 겁니다.

액션 자체도 괴상한 구석이 있습니다. 보통 이런 영화에서는 액션의 자극을 극대화하기 위해 별별 수법을 다 쓰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헤이와이어]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현대 할리우드 액션의 스타일의 대척점에 있습니다. 롱 숏과 롱 테이크가 주를 이루고, 카메라는 프레드 아스테어를 바라보는 것처럼 배우들로부터 일정거리 떨어져 있습니다. 액션도 그냥 개싸움으로, 몇몇 짧은 예외를 제외하면, 이 싸움을 근사하게 보여줄 생각 따위는 없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액션 분량도 각본이 요구하는 딱 그 정도만 나옵니다.

그 때문에 영화는 무지 날 것입니다. 싱싱하고 진짜처럼 보이지만 요리가 거의 되어 있지 않죠. 영화의 디지털 화면 역시 비디오 티가 팍팍 나서, 종종 텔레비전 영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주연배우 지나 카라노가 더 잘 살아납니다. 한마디로 카라노는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굳이 감독이 필요가 없는 사람입니다. 주먹질, 발길질 하나하나가 다 진짜 같아요. 와이어 타는 하늘하늘한 할리우드 여자배우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리고 전 카라노가 배우로서 썩 좋은 피사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주변 반응을 들어 보면, 일반적인 한국 남성 관객들이 매력적이라 생각하는 외모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헤이와이어]는 정확한 기대가 필수인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일급 감독이 일급 배우들을 잔뜩 기용해서 아트하우스 스타일로 잽싸게 만든 B급 첩보 격투기 비디오입니다. 과연 포스터와 예고편만 보고 이런 영화를 기대할 관객들이 몇이나 될까요? 그들이 실망하거나 싫어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그 중에서도 대충 영화랑 궁합이 맞아서 러닝타임 내내 킥킥거리는 저 같은 관객들도 몇 명 있겠죠. (12/07/09) 

★★★

기타등등
빌 팩스턴이 벌써 지나 카라노의 아빠로 나올 나이가 되었나요.

감독: Steven Soderbergh, 출연: Gina Carano, Michael Angarano, Channing Tatum, Michael Douglas, Antonio Banderas, Ewan McGregor, Michael Fassbender, Mathieu Kassovitz, Bill Paxton

IMDb http://www.imdb.com/title/tt1506999/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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