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외계 우주선들이 지구로 날아와 전세계 모든 도시의 하늘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무대인 마드리드에도 하나 왔어요. 겁에 질린 사람들은 달아나고 난리가 났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인 훌리오에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날 밤 이름도 모른 채 화끈한 밤을 보냈던 훌리아가 더 중요하지요. 하지만 훌리아에게는 이미 카를로스라는 남자친구가 있고, 아파트 옆집에는 훌리아를 짝사랑하는 앙헬이라는 남자가 그들을 엿보고 있습니다...

하하하.

[지구 멸망의 날, 사랑하다]의 코미디는 대부분 우선 순위의 혼란에서 옵니다.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공했으니 이건 인류 역사상 가장 엄청난 일입니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이 엄청난 날에 사사로운 연애에나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이 상황에 대해 가장 진지하게 반응하는 사람은 카를로스뿐인데, 영화는 그를 살짝 맛이 간 멍청이로 취급하지요. 하긴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구 최후의 날이 왔을지도 모르는데, 연애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은 정상이란 말입니까.

[지구 멸망의 날, 사랑하다]라는 제목은 영화의 내용을 로맨틱하게 과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보다 현실적인 불륜 이야기입니다. 원나인 스탠드를 보낸 남자가 여자의 아파트에 머물게 되는데, 옆집 남자가 그걸 알게 되었고, 남자와 여자는 옆집 남자가 여자의 남자친구에게 그걸 폭로하지 않게 막아야 한다는 거죠. 그러는 동안 온갖 음모와 사기가 동원되는데, 솔직히 전 그들의 그런 행동에 조금 정나미가 떨어졌습니다.

장편보다는 단편에 더 어울리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우선순위 농담은 몇 분 동안은 재미있지만 곧 밑천이 닳습니다. 그 뒤로는 왜 저 인간들이 저런 상황에서 저런 짓이나 하고 있나, 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지요. 영화는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여러 술수들을 동원하는데, 그리 믿음이 가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커피잔 모양의 자동차를 보고 외계인의 탈것이라 믿는 바보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런 시도를 하는 동안 코미디의 밀도는 떨어져 가고요.

배우들은 좋습니다. 캐릭터들의 잔인한 행동들에도 불구하고 제가 여전히 그들에 대한 관심을 끊지 않았던 건 이들 때문이겠죠. 하지만 전 이 이야기가 외계인 없이 진행되었다면 더 그럴싸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12/07/25) 

★★☆

기타등등
전 영화 내내 앙헬의 편이었습니다.


감독: Nacho Vigalondo, 출연: Michelle Jenner, Julián Villagrán, Carlos Areces, Raúl Cimas, Miguel Noguera,  다른 제목: Extraterrestrial

IMDb http://www.imdb.com/title/tt1680133/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7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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