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앤 프랭크 Robot & Frank (2012)

2013.01.04 22:25

DJUNA 조회 수:10581


프랭크는 은퇴한 금고털이입니다. 숲 속 외딴 집에 홀로 살면서 조금씩 심해지는 치매증상 때문에 위태로운 말년을 보내고 있죠. 참다 못한 아들 헌터는 프랭크에게 VGC-60L라는 기종의 도우미 로봇을 보냅니다. 처음에는 로봇에 질색하던 프랭크는 서서히 로봇과 함께 하는 삶에 적응해갑니다. 그러다 우연히 로봇에게 놀라운 금고털이 실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프랭크는 로봇을 이용해 마지막 한 탕을 할 계획을 세웁니다.

시놉시스만 읽었을 때, [로봇 앤 프랭크]는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이 정도만 보면 감상주의와 신비주의로 범벅이 된, 흔해 빠진 할리우드 로봇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놀랍게도 아닙니다. 감독이자 각본가인 제이크 슈라이어는 정말 제대로 된 로봇을 만들었어요.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영화의 유물론적 접근법입니다. 영화는 VGC-60L라는 로봇을 설정할 때 어떤 종류의 신비주의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로봇은 간병인 겸 도우미로 만들어졌고, 딱 거기에 맞는 역할만 합니다. 우연히 벼락을 맞아 영혼을 가지게 되었다는 넌센스도 없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로봇은 같은 공장에서 나온 다른 로봇들과 똑같이 행동하는 기계입니다. 그렇지 않아 보이는 특별한 행동도 사실은 다 그 기능에 맞는 이유가 있습니다. 심지어 로봇은 자기 입으로 자신이 의식이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의식을 흉내내는 시뮬레이션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도 영화는 프랭크와 로봇의 이야기를 특별한 종류의 우정 이야기로 만드는 데에 성공합니다. 일단 생각할 거리가 더 늘었지요. 우선 우리는 튜링 테스트로 돌아갈 것입니다. 만약 어떤 존재가 자아와 의식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정말 자아와 의식이 있다고 믿어야 할까? 아니면 여기엔 다른 기준이 존재하는 걸까? 만약 로봇과 프랭크의 우정이, 프랭크가 자신의 생각을 로봇에게 투영한 것이라면 그 관계는 여전히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놀랍게도, 이런 추상적인 질문들 속에서 둘의 우정 이야기는 여전히 효과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영화는 치매라는 소재를 다루는 데에도 냉정하기 짝이 없습니다. 제 생각엔 VGC-60L 정도의 로봇을 만들어낼 수 있는 미래라면 치매치료에도 어느 정도 발전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겠죠. 영화 속에서 치매는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고 프랭크에게는 맨정신으로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로봇과 그가 나누는 며칠간은 그 때문에 더 가치가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관계가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닙니다.

특수효과는 극도로 제한된 영화입니다. 거의 없다고 봐도 돼요. 로봇만 해도 지금 존재하는 로봇공학기술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지요. 아마 그 현실성 때문에 로봇과 노인의 우정이라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가 이물감 없이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것이겠죠. 일반적인 할리우드 SF 영화였다면 프랭크 란젤라로부터 그 정도로 절절한 감정을 끄집어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13/01/04)

★★★

기타등등
이 영화에서 가장 나쁜 건 자막입니다. 제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이 영화의 자막 번역가는 로봇의 대사를 한 5년 정도 묵은 인터넷 슬랭으로 채워놨어요. "나님은 로봇임. 너님은 안녕하삼?" 정도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감독: Jake Schreier, 배우: Frank Langella, James Marsden, Liv Tyler, Susan Sarandon, Peter Sarsgaard, Jeremy Strong, Ana Gasteyer, Jeremy Sisto

IMDb http://www.imdb.com/title/tt199031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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