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위드 러브 To Rome with Love (2012)

2013.04.03 18:27

DJUNA 조회 수:16097


최근 몇 년 동안 우디 앨런은 마치 은퇴한 노인네가 크루즈 여행을 하는 것처럼 유럽 여러 도시를 떠돌며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번 영화 [로마 위드 러브]의 무대는 (당연히) 로마인데, 지금까지 나온 유럽 도시 영화들 중 가장 '관광지 영화'에 가깝습니다. [매치 포인트]처럼 거창한 무언가를 이야기를 할 생각도 없고,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자신의 개인적 판타지를 극대화하지도 않지요. 그냥 로마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며 작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네 편의 에피소드가 번갈아 진행되는 형식입니다. 에피소드가 옴니버스 영화처럼 분명히 구분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겹치는 부분이 전혀 없고, 심지어 시간의 흐름도 달라요. 어떤 이야기는 반 나절만에 끝나는데, 다른 이야기는 몇 개월에 걸쳐 진행되니까요. 따로 들려주어도 상관 없는 이야기들이지만, 앨런은 그냥 그렇게 들려주고 싶었나 보죠. 그건 이야기꾼의 자유.

첫 번째 이야기는 미국에서 온 관광객이 이탈리아인 인권변호사와 사랑에 빠지면서 시작합니다. 둘은 결혼을 약속하고 미국에서 관광객의 부모가 날아옵니다. 그런데 은퇴한 오페라 감독이었던 아빠는 장의사인 변호사의 아버지가 엄청난 성악적 재능을 갖고 있다는 걸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됩니다. 문제는 이 남자가 오로지 샤워를 할 때만 훌륭한 가수라는 것이죠. 공포스러운 [원 프로기 이브닝] 설정인데, 다행히도 아빠는 해결책을 찾아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로마에 온 미국의 저명한 건축가가 젊었을 때 살았던 집을 찾다가 젊은 미국인 건축학도를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유학생은 건축가를 자기 집에 초대하는데, 마침 그 날 건축학도의 여자친구는 막 남자친구와 헤어진 자기 친구를 집에 머물게 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여기서부터 상황은 조금 이상해져서, 건축가는 세 젊은이의 삼각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촌평하는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 역할을 맡게 됩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로마에 신혼여행을 온 시골 출신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아내는 미용실을 찾으러 호텔 밖으로 나갔다가 길을 잃고 심지어 휴대전화도 잃어버립니다. 길거리를 방황하던 아내는 우연히 영화촬영현장에서 유명배우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 중 한 명의 유혹에 빠져 호텔로 들어갑니다. 그러는 동안 방을 잘못 찾아온 고급 콜걸과 있는 현장을 친척들에게 들킨 남편은 그들에게 콜걸이 아내라고 속입니다.

네 번째 이야기는 평범한 로마의 회사원 이야기입니다. 그는 어느 날, 아무 이유도 없이 유명인사가 되고 사나운 이탈리아 매스컴의 표적이 됩니다. 이제 그는 아침 메뉴, 면도 방식, 속옷 입는 습관까지 기자들에게 알려주어야 하고,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상대와 스캔들을 일으키죠.

이야기의 성격과 성취도는 모두 제각각입니다. 우디 앨런과 주디 데이비스, 그리고 진짜 이탈리아 테너인 파비오 아르밀리아토가 나오는 첫 번째 에피소드가 가장 웃깁니다. 염치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짧은 소극이지요. 가장 우디 앨런스러운 이야기는 알렉 볼드윈, 제시 아이젠버그, 엘렌 페이지가 나오는 두 번째 에피소드입니다. 신경증 증세가 노골적인 로맨스로, 타임머신 없이 묘하게 시간여행의 분위기를 풍기는 판타지스러운 작품이죠. 알레산드로 티베리와 알레산드라 마스트로나르디가 나오는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우디 앨런은 이탈리아 코미디 영화를 자기 식으로 모사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로베르토 베니니가 나오는 마지막 에피소드는 이탈리아의 옐로 저널리즘에 대한 직설적인 풍자인데, 이 영화에서 가장 가벼운 작품이긴 하지만 다른 세 편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긴 시간을 차지하고 있지 않으니, 그 정도면 상관이 없죠.

아까 '관광지 영화'라고 말을 했는데, 이 영화에 비판적인 관객들도 그 기능만은 대단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내용이야 어떻건, 영화에 나오는 로마는 진짜로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편안하게 극장 의자에 몸을 묻고 우디 앨런 영감과 수많은 스타들을 가이드 삼아 2시간 동안 로마 여행을 하는 건 결코 나쁜 경험이 아닙니다. (13/04/03)

★★★

기타등등
[미드나잇 인 파리] 때도 그랬지만, 전 이 영화의 한국 제목이 싫습니다. 영어와 기타 외국어를 제대로 통제할 수 없다면 그냥 번역하는 게 낫죠.

감독: Woody Allen, 배우: Alec Baldwin, Jesse Eisenberg, Ellen Page, Alison Pill, Judy Davis, Woody Allen, Fabio Armiliato, Alessandro Tiberi, Alessandra Mastronardi, Penélope Cruz, Roberto Benigni

IMDb http://www.imdb.com/title/tt185965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4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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