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2013)

2013.09.24 10:45

DJUNA 조회 수:14291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라면 영화를 보면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입니다. 학교에 가던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납치되어 구타당하고 성폭행당했습니다. 아이는 죽을 때까지 치료되지 못할 수도 있는 장애를 얻었습니다. 범인은 체포되었지만 과연 그에게 정당한 처벌이 내려질까요. 아이와 가족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이준익의 [소원]은 의무감에서 시작하는 영화입니다. 영화 밖 현실 세계에서 무언가 끔찍한 일이 일어났고, 아니, 일어나고 있고, 이 영화를 만들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밝히고 희생자들에게 치유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목표인 거죠.

하지만 목표만으로는 영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 목표를 위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풀어갈 것인지가 더 중요하지요. [소원]처럼 소재 자체가 관객들을 강하게 자극하는 영화라면 이 부분이 더 중요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이준익은 가장 평범한 길을 택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뉴스에서 접한 평균 수준의 한국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이야기를 모으고 거기에 이들이 보일만한 가장 일반적인 반응을 더해서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소원]은 지금까지 이준익이 만든 작품 중 가장 통속적인 영화입니다.

분명 영화는 관객들을 자극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몸과 마음이 아파요. 하지만 이 영화가 소재에 어울리는 깊이를 가지고 있는가는 다른 문제입니다. 영화가 주제를 위해 택한 길은 지나치게 손쉽고 짧고 단순합니다.

가해자 묘사를 보죠. 이 인물은 척 봐도 관객들의 분노를 일으키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실제 사건의 가해자들은 영화 속의 인물보다 더 끔찍하고 혐오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해자는 실제로 존재하는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인간보다는 이런 뉴스를 접하고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허구처럼 보입니다. 거의 같은 재료를 쓴 것처럼 보이지만 이 사이의 갭은 상당히 큽니다. 이창동의 [밀양]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갭을 보다 쉽게 눈치챌 수 있겠죠.

재판 장면도 비슷합니다. 누가 봐도 형량은 지나치게 가볍고 가족들은 울분을 터트릴만 하죠. 하지만 이 장면을 묘사하는 방식은 인터넷 댓글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즉시적이고 효과는 크지만 이준익이 정말로 피해자 가족의 치유와 회복 과정을 그리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면 조금 다른 방식을 취했어야죠. 무엇보다 이를 클라이맥스에 두는 건 영화의 주제와는 안 맞아 보입니다.

주인공 소원이가 겪는 고난과 이후의 치유 과정도 의도와는 어긋나 보입니다. 피해자 가족의 진심이 드러나기엔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반복적이죠. 특히 코코몽 분장을 한 아버지의 이야기는 불필요하게 작위적이고 간접광고처럼 보여서 몰입하기 쉽지 않습니다.

두 시간을 꽉 채운 영화임에도 영화는 지나치게 짧아 보입니다. '재미'와는 상관없이 이야기가 중도에서 끊겼기 때문이죠. 소원이와 가족에겐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걸어야 할 길이 아직 많이 남아있고, 바로 그 여정이야 말로 본론일 텐데, 영화는 울분과 감상주의를 쏟아내느라 그 길을 가기도 전에 러닝타임을 다 날려버립니다. 그 때문에 영화의 결말은 그냥 편리하다는 생각만 들어요. 어떻게 봐도 보다 깊은 생각과 배려가 필요했던 소재였습니다. (13/09/24)

★★☆

기타등등
소원 역의 이레는 연기를 잘 하더군요. 다음 작품에서는 보다 밝은 캐릭터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감독: 이준익, 배우: 설경구, 엄지원, 이레, 김해숙, 김상호, 라미란, 김도엽, 양진성, 다른 제목: WIsh

IMDb http://www.imdb.com/title/tt315363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3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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