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진영아 (2013)

2013.11.01 13:51

DJUNA 조회 수:7547


이성은 감독의 대표작은 엄마의 여자 룸메이트를 짝사랑하는 소녀의 이야기였던 단편 [진영이]입니다. 그는 어느 강좌에서 그 영화를 틀어준 뒤 질문을 받은 적 있는데, 수강생 중한 명이 “진영이는 얼마나 컸나요?”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질문은 진영이를 연기한 아역배우가 얼마나 컸느냐는 뜻이었지만 감독은 ‘극중 인물 진영이가 얼마나 자랐을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 [진영이]의 장편영화를 구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제목이 [서툴러도 괜찮아]를 거쳐 [사랑해! 진영아]가 되었고요.

이 영화의 진영은 단편영화의 진영이와 동일인물이 아닙니다. 자라난 환경이 전혀 달라요. [사랑해! 진영이]의 주인공은 서른 살의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으로, 아빠가 죽은 뒤로 계모 철순과 계모가 데려온 여동생 자영과 함께 살았습니다. 철순은 노인성 치매 때문에 지금 요양원에 있고, 진영은 학습지 선생 일을 하면서 동생 자영의 집에 기생해 살고 있지요. 남는 시간에 좀비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면서요. 그 무렵, 진영의 각본을 학교 선배이자 세계적인 감독인 황태일이 영화화겠다고 나서는데, 알고 보니 그는 진영을 짝사랑하고 있었죠. 한편 자영은 친구라면서 어렸을 때 미국으로 입양 갔다가 돌아온 타투이스트 제이미를 데려오는데, 진영은 제이미가 자기 영화 속 좀비 헌터의 이미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목이나 포스터만 본다면 로맨틱 코미디처럼 보이는 영화지만 영화가 다루는 주제와 소재는 그보다 넓습니다. 홍보방향으로 잡고 있는 ‘이성애 로맨스’는 이 영화에서 가장 작은 부분으로, 진짜 있기는 한 건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대신 영화는 30살이라는 아슬아슬한 나이에 있으면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고 자리도 잡지 못한 주인공 진영의 뒤늦은 성장통을 그리기 위해 진영이 그 시기에 겪는 온갖 일들을 하나씩 다 건드립니다. 진영의 가족사 이야기도 있고, 진영이 쓰는 좀비 이야기도 있고, 진영이 사회에서 겪는 온갖 수난 이야기도 있고, 제이미에 대한 진영의 혼란스러운 감정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중반에 나오는 제이미 이야기는 가족 관계만 바뀌었을 뿐, [진영이]와 스토리가 똑같아요. 이 정도면 스포일러라고 해야겠죠.

단편 [진영이]도 그랬지만, [사랑해! 진영아]도 진영의 월터 미티 증상에 이야기를 많이 의존하고 있습니다. 진영은 현실을 그대로 보는 대신 현실을 재료로 끊임없이 허구를 만들어냅니다. 직업적으로는 자기 인생을 반영한 좀비 영화의 각본을 쓰고 남는 시간에는 자기 삶의 재료에서 파생된 판타지에 빠지죠. 그것만으로 모자라 학습지 과외를 하는 무속인 소녀의 꾸중을 듣기도 합니다. 진영의 이런 태도는 많이 오글거립니다. [진영이]의 경우, 주인공이 어른스러운 척 하는 어린 소녀라는 알리바이가 있었지만, [사랑해! 진영아]는 그게 없죠. 몇몇 판타지는 지나치게 경직된 구석이 있고 감독 자신이 느끼는 민망함을 완전히 돌파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특히 진영이 첫 키스를 하고 버스 안에서 겪는 판타지는요.

진영의 로맨스도 비슷한 민망함의 영향을 받습니다. 이 영화는 진영의 성적 지향을 분명히 밝히고 있지 않아요. 어떻게든 해석할 수 있는데, 제 생각에 감독은 진영이 이성애자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단지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민망함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어요. 소재와 주제에 대한 확신도 부족하고요. 그 때문에 진영과 제이미의 이야기에는 이런 부류의 영화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경직된 무언가가 남아 있습니다. 긍정적이지만 만족스럽지 못하죠.

나머지 이야기도 비슷한 문제점을 겪습니다. 이야기와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지나치게 노력해서 뻣뻣해 보이는 것이죠. 초반에 주로 나오는 김규리의 코미디 연기는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있으며, 진영이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넣은 몇 가지 장치들은 기반과 디테일이 부족합니다. 예를 들어 연필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드물지만 분명 있죠. 하지만 그런 사람들 주변엔 늘 지저분한 몽당연필과 지우개 찌꺼기가 굴러다니기 마련입니다. 진영처럼 새 연필로만 작업하지는 않아요. 후반부의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넣은 가족사 이야기도 반전이 너무 인위적이라 내레이터로서 진영이의 가치가 확 떨어집니다. 처음부터 ‘믿을 수 없는 화자’로 설정했다면 괜찮았을 텐데 그것도 아닌 거 같고요.

“대신 이런 영화를 만들지 그랬냐”라고 트집 잡는 건 리뷰어의 역할이 아닙니다. 하지만 단편 [진영이]의 제대로 된 속편을 만들었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었을 거라는 생각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랬다면 캐릭터의 이어지는 성장 과정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탈 수 있었겠죠. 지금도 좋은 부분도 있고 많이 귀엽지만 재료와 이야기의 연결이 너무 뻑뻑하고 어색해요. (13/11/01)

★★☆

기타등등
[진영이]의 클립이 영화 중간에 잠깐 나옵니다.


감독: 이성은, 배우: 김규리, 윤소정, 최유화, 전수진, 박원상, 다른 제목: I Love You, Jin-yeong!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I_Love_You_v__Jin-yeong_e_.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9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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