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슬러 The Counselor (2013)

2013.11.22 15:28

DJUNA 조회 수:10502


[카운슬러]의 주인공은 마이클 파스벤더가 연기하는 변호사입니다. ([버틀러]에서 집사를 그냥 버틀러라고 쓴 것처럼, 이 영화의 자막도 변호사를 그냥 카운슬러라고 쓰고 있죠.) 하여간 그는 암흑가의 컴컴한 사람들이 벌이는 다소 수상쩍은 일들에 대한 법률 조언을 해주는 사람으로, 그럭저럭 인생이 잘 풀리는 중입니다. 돈도 꽤 잘 버는 편인 것 같고, 여자친구 로라와 결혼도 앞두고 있죠.

하지만 중간부터 일이 틀어집니다. 그가 국선변호인을 맡고 있는 의뢰인이, 아들이 현금을 잔뜩 짊어지고 오토바이를 타다가 과속으로 체포되었으니 나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해서 그냥 벌금을 대신 내 줬죠. 하지만 그 청년은 며칠 뒤 목이 잘린 시체로 발견되고 그가 운반하던 물건은 사라져버렸습니다. 변호사는 벌금을 대신 내 준 것밖에 죄가 없지만 그 물건과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정도면 정통적인 하드보일드 영화의 재료가 모두 갖추어졌습니다. 기성품 캐릭터들도 다 있고, 해결할 문제도 생겼어요. 이제 관객들은 주인공 변호사가 어떻게 이 난관을 극복하고 사건을 해결할 것인지를 궁금해하며 다음 챕터를 기다릴 겁니다.

어쩌나. 이 영화에는 그 다음 챕터가 없습니다. 모든 재료는 갖추어졌는데, 영화는 얄밉게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아요. 등장인물 대부분은 다가오는 위기에 제대로 맞서지 못하고, 이야기는 해결 없이 최악의 방향으로 흐르며, 기대했던 카타르시스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극장 안이 관객들의 원성으로 시끄러웠던 것도 당연하죠.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 며칠 전에 배달된 [카운슬러]의 시나리오를 읽었습니다. 국내 개봉이 되기도 전에 영화의 시나리오가 민음사 모던 클래식의 한 권으로 출판된 건 이 영화의 각본가가 코맥 매카시이기 때문이죠. 다시 말해 시나리오가 영화로 가는 중간단계가 아닌 독립적인 문학작품으로 대접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럴 법도 하지요.

사실 이 난장판은 작가가 매카시라는 걸 알고 보면 당연합니다. 그는 이것보다 더 끔찍한 파국을 당연한 듯이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죠. 하지만 작가가 누구인지 알고 보더라도 왠지 모르게 미진한 부분이 있었는데, 시나리오를 보니까 어느 정도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시나리오를 읽는 게 영화를 보는 것보다 더 재미있었어요. 몇몇 장면들은 대사를 읽으면서 소설 읽듯 상상하는 것이 더 좋았고 잘린 대사들은 아쉬웠습니다. 브루노 간츠나 브래드 피트의 대사는 잘려나간 부분이 훨씬 좋았어요.

리들리 스콧은 영화를 만들면서 애를 좀 먹었을 것 같습니다. 코맥 매카시의 시나리오는 자기충족적입니다. 완성되기 위해 굳이 영화가 필요하지는 않아요. 그의 소설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시나리오로 옮기면서 감독이 재해석할 여지를 찾아낼 수는 있죠. 하지만 처음부터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책을 어떻게 옮긴다? 그것도 만들어놓으면 도저히 주류 영화처럼 나올 수 없는 작품인데? 스콧은 일단 매카시의 시나리오에 나오는 장면과 대사들을 모두 살려 영화를 찍고 그것을 극장용 대중영화 모양이 나게 편집을 한 것 같은데, 그 때문인지 모양이 온전하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 종종 동어반복적이기도 하고요. 하비에르 바르뎀이 연기하는 라이너가 변호사에게 카메론 디아스가 연기하는 여자친구 말키나의 이상한 성적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굳이 관객들이 볼 필요가 없습니다. 이 장면은 구체적인 장면 없이 상상할 때 가장 강렬해요. 심지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시나리오를 읽어도 그렇습니다.

리들리 스콧이 주어진 소스에 대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차라리 작정하고 저예산으로 아트하우스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랬다면 관객들이 감독 이름과 출연하는 스타들에 맞추어 기대감을 높이는 일은 없었을 거고, 영화 속의 파탄을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겠지요. 극중 인물들에게 주어진 장황한 대사들도 더 잘 살렸을 거고. 물론 그 가상의 영화에는 이런 일급 스타들이 이상한 스토리 속에서 작살나는 걸 보는 걸 구경하는 재미는 없겠죠. (13/11/22)

★★☆

기타등등
스콧이 매카시의 시나리오에 나오는 장면들을 거의 다 찍었기 때문에 이것들을 다 살린 '작가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감독: Ridley Scott, 배우: Michael Fassbender, Penélope Cruz, Cameron Diaz, Javier Bardem, Bruno Ganz, Brad Pitt, Rosie Perez

IMDb http://www.imdb.com/title/tt2193215/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4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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