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을 벗겨낸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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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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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관심 끊었다가 (촛불정국 같은 비상사태는 예외였구요. 그리고 무관심 와중에도 투표는 꼬박꼬박 다 했답니다..) 슬슬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는데, 그러다보니 의아하게 생각되는 부분이 있어요.

'유시민은 노무현의 추종자들을 자신의 팬으로 물려받았다..' 이 부분이요. 톡 까놓고 말하면 노빠가 유빠됐다..뭐 이런거. 그리고 그 이유는 '유시민이 노무현에게 충성했기 때문에. 가장 힘들 때 노무현 곁에 있어준 이가 유시민이었기 때문에. 이게 암묵적으로 혹은 노골적으로 깔린 동의 같은데...

제 입장에서는 약간 이해가 안되는게, 저는 유시민을, 노무현을 철저하게 모신 사람이라 좋아한 적이 없어요. (그런 행동이 유시민 답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전 오히려 노무현보다 유시민을 먼저 좋아했어요. 노무현에 대해 '이야, 신선한 정치인이다!!' 하며 좋아하고 있을 때 노무현을 적극 밀게 된 것도 시사평론가 입장에서 관전평을 하던 유시민이 본격 플레이어로 등장하면서 노무현을 미친듯이 밀었기 때문이었거든요. 노무현과 유시민에 대한 애정 중 꼭 선택해야 한다면..급이 다른 정치인이니 애정(혹은 애증)의 종류도 다르긴 하지만 (더구나 한분은 이제 안계시고..) 오히려 전 유시민쪽에 더 기울어있었어요. 예전부터 말이죠.

그래서 사람들이 노무현의 아우라를 벗겨낸 유시민만의 무언가가 있냐? 하고 이야기 할 때 마다 늘 '왜 저런 말을 하지..' 갸우뚱해요.

물론,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해요. 유시민의 정치인으로 가지는 현실 파괴력은 노무현의 적자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것.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신 후 노무현을 사랑했던 그 모든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끌었던 사람은, 그들이 '복수합시다'라고 귓속말을 했던 대상은 유시민이었죠. 그러니 노무현을 빼고 나면 뭐가 남냐..는 이야기는 당연한거죠.

하지만..여기 듀게에서도 몇번 나온 질문 같은데, '왜 유시민이 좋냐?? 노무현을 벗겨내고 나면 그래도 유시민이 좋냐?'는 질문을 볼 때마다 '유시민 자체의 알맹이는 없다'는 전제를 깔고 가는 것 같아서 좀 신기해요.  제가 유시민을 좋아하는 이유는, 유시민이 제일 저랑 잘 맞는 편이기 때문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어요. 전 현 정치인중 유시민씨의 판단이 가장 합리적이고 나와 코드가 잘 맞는다고 생각한 경우가 참 많았어요. 같은 맥락에서, 노무현을 선택한 유시민이 나와 취향이 비슷한거고, 그래서 마음 놓고 유시민을 좋아하는거에요. 노무현을 계승해서 유시민을 좋아하는게 아니라.

더구나 유시민은 약간은 마키아벨리즘적 성향까지 가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더 마음에 들어요. 노무현은 너무 스트레이트했어요. 그래서 아주 신선했고, 인간적으로 참 좋은,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늘 생각했지만, 한명의 정치인으로는 좀 아쉬웠어요. 그 스트레이트함 때문에 노무현 특유의 어마어마한 파괴력이 생겼던거지만요. 하지만 전 좀 더 정치적인 전략 같은 것을 바랐던 것 같아요. 유시민은 노무현 보다는 좀 더 기술적(?)이죠.



그리고 유시민은 높이 올라가기엔 인간적으로 덕이 부족해보인다는 주위 어르신들의 평가에 대해서 말이죠.

어릴 때 저는 대통령 정도 될 사람은 거진 다 완성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정치판과 정치인들에 대해 아주 무지한 편이기에 이런 무식한 생각이 유지되는거긴 해요. 하지만, 상당히 안정적이고 완성된 사람들이 한동안 우리나라 대통령을 하지 않았나요. 김영삼 전 대통령도 '자기 나름의 성격 틀 안에서(-_-)' 충분히 완성되어 있었고,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케치프레이즈가 아주 적절한 케이스였죠. 요즘 분들 중에는 문재인씨나 한명숙 후보님도 어딘가 완성된 것 같은, 혹은 안정적인 느낌이 들어요. 큰 컴플렉스가 없어보인달까.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안정함과, 지금 이명박 대통령의 뒤틀림을 보면서 새삼 느낀건, 대통령의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들이라고 완벽한건 절대 아니라는 참으로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어요. 인간적으로 부족한 것은 당연하거니와, 커다란 컴플렉스와 모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거에요. 그런데 그걸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혹은 그것들과 투쟁하는 과정 속에서 결국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는 과정을 보면서, 또 그 컴플렉스와 성격들이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힘을 빌어 참으로 거창한 스케일로 펼쳐지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 느끼게 되더라고요. '저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도 저러는구나..'   상대적으로 젊은 대통령들이라 그랬을까요. 아니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특출난 개인들이라서 그런걸까요. 그러고보면 별로 젊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젊은 느낌일까요. 불안해서?

하여간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어른들이 흔히 하는 '유시민은 인간이 덜되어서 (덕이 없어서, 얍삽해서, 기타 등등 어르신들에게 들은대로 채워보시오 -_-) 안된다'는 말에 동의하기 힘들어져요. 결국 그런 인간적인 흠집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거든요. 그것마저 덮을 수 있는 매력과 (노무현의 바보스러움이나, 이명박의 불도저 같은 것 말이죠.) 상황적인 조건이 중요한거죠. 그 흠집이 한국인들이 특별히 싫어하는 흠집이라면 문제가 되겠지만요. 더구나 사람은 바뀌죠. 유시민은 '수치심의 정서'를 바탕에 깐 그의 코어한 부분은 여전한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부분은 참 많이 바뀐 것 같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어찌 바뀔지 여전히 궁금하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이 사람은 결국 승리하리라!!는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에요. 아직도 사람들의 뇌리속에는 유시민이 인간적인 덕성보다 합리적인 매서움이 강할 때의 잔영이 강하게 남아있죠. 이런 스타일은 한국의 어르신들이 유독 싫어하는 성격이죠. 더구나 정치판에 등단하신 후 저지른 각종 실패와, 이리저리 쌓아둔 업과 생성해놓은 적이 참 많은고로 정치적으로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긴 시간과, 특별한 상황들이 많이 필요하겠죠. 해결이 안 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유시민이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가늠은 잘 안되어요. 그런데, 사실 결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냥 흥미진진하지 않나요. 이 사람이 어디로, 어떻게, 어디까지 갈지 지켜보는거? 안티든 팬이든 중립이든, 지켜보는 맛을 주는 사람이라는 것은 확실하죠. 실패하든 성공하든 말이죠.



역시 저 같은 '정치 별로 흥미 없어..'취향의 사람은, 그나마 재미있는 사람이 등장해야 정치에 관심가지나봐요. 미국인들이 부러워요. 오바마라니... 프리드먼이 오바마의 성향을 zen-like calm이라고 했던데, 어떤 스타일이길래 그런가요. 정치라면 미국쪽에도 둔해서 잘 몰라요. 정치적으로는 어떻든 인간적으로는 매력이 쩔쩔 흐르나요. 아 부러워 으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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