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걸리신 분들, 얼렁 나읍시다..ㅜ

  • milk & Honey
  •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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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가 몸에 왔습니다.
제가 다 좋은데

음...

잘못 말했습니다. 제가 다 별로인데
더더욱 별로인 점은 몸의 고통에 대한 엄살이 상.당.히. 심하다는 겁니다.
이렇게 감기에 꾹 눌려 있으면, 눌린 건 몸인데 정신이 가속도로 추락합니다.
우울을 떠나, 제 주변의 모든 것이 다 헛되고
'저'란 존재는 더 헛되어 자존감이 제로에 한없이 수렴하죠.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이럭저럭 일을 나갔는데
열이 나서 입안이 버석거리고 안구가, 잇몸이, 뇌가, 핏줄이 욱신거리는 느낌.
그래도 어른이니까, 일하러 나온 사람이니까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고렇게 몇 시간 버티고 집으로 오는데 눈물이 나더군요.
우울의 눈물도 아니오, 아픔의 눈물도 아니오, 외로움의 눈물도 아닌
다 그만두자, 니까짓게, 문장을 이룬 글자의 자음과 모음이 눈에서 한껏 각을 세운 채
뚝.뚝.
그때 퍼뜩 생각난 것이 오렌지. 시원한 오렌지 한 조각이 있었으면.
그래서 근처 편의점으로 가서 오렌지 대체품으로 귤맛젤리랑,
또 사과쥬스, 그것도 냉장 유통된다는, 한 팩에 1200원 하는 비싼 거.
사서
집에 와서 침대에 걸터 앉아 먹었습니다. 채신머리 없이 젤리에서 뚝뚝 떨어지는 단물을
입고 있던 청바지로 대충 닦아가며.
또 냉장고에 오이 깎아 놓은 게 있길래 그것도 먹었습니다.
입맛이 날아가 정확한 맛은 모르겠지만 시원하고 말캉하고 사각거리는 촉감에
적잖은 위로를 받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 종일 물 말고 먹은 게 없더군요.

눈이 트입디다.
기분이 업되요.

그래요, 전 그저.
감각이, 좀더 자세하게 그냥 요 요 입이 뭔가 다실 것에 만족하면
그저 행복한 인생이었던 것입니다.
씻고, 전기요도 켜서 잠자리 따스하게 해 놓고
사과주스 머리맡에 대기시켜놓고
저 간만에 밤에 함 자볼랍니다.
그리고 아침에 병원 가서 독해도 좋으니까 딱 떨어지는 걸로 야무지게 약 지어달라고 그럴 겁니다.
감기 따위에 칭얼칭얼하기에, 제 나이는 징그럽게 많아졌으니까요.

감기로 고통받고 있는 듀게분들. 얼른 떨쳐버리자구요. 시원하고 부드러운 거 드십시오.
감기 열엔 푹 쉬고 영양을 떨어뜨려야 하는 것이 정석이겠으나 그래도 드시고 기운 차리십시오.

전 오이 반 개 더 분질러 먹고 잘 겁니다. 안녕히주무세요(라고 하면서 폰으로 트위터는 왜 켜니?)


*
사족:
감각의 충족은 중요합니다. 그러고 보니 김소진의 <신풍근 배커리 약사>를 보면 주인공 재덕은 투쟁 중 경찰에게 포위되고, 투신하는 것으로 마지막 저항을 하려 합니다. 그때 함께 있던 '형'이 재덕에게 뜬금없이 입맞춤의 종류에 대해 맛깔나게 썰을 풀다, 좋아하는 음식을 묻지요. 그때 재덕은 할아버지가 쪄내시던 탐스런 찐빵을 떠올리며 여기서 나가게 되면 그 빵 맛을 봐야겠다 마음 먹습니다.
"...그러고 나자 나는 형이 진짜 좋은 운동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형은 내가 절망적 몸짓을 감행하고픈 충동에 시달리는 걸 간파하고는 내게 삶과 연결된 끈을 슬며시 손에 쥐어준 거라구요."

그냥 생각이 나서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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