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에는 곤충채집도 있었죠.
아래 오전반 오후반 얘기가 나오는 김에 슬쩍 편승해서 써봅니다.
그런데 저는 전교 12학급짜리 시골학교에 다녔는지라 오전반 오후반 자체를 경험해보진 못했고
다만 나중에 도시로 통근하시는 어머니께서 오후반을 맡았다며 투덜거리는 걸 들은 적은 있었죠.
엄니한테
"도시 애들은 좋겠다, 아침에 변소에서 후다닥 일기 안 써도 되니까"
했다가
"니 오늘 일기 안 썼나! 내가 뭐라크드노, 숙제 일기 밀가낳지(미뤄두지) 마라 캤지! 매차리(회초리) 들고 와!"
(.... 아놔 입이 보살이지 진짜...)
어쨌거나 그 시절 떠오르는 거라면 오전반 오후반도 있지만 전 곤충채집이 떠오르네요.
방학 숙제로 곤충채집이란 게 있었던 시절도 있었더랬죠. 메리야스 내복 빈 껍데기 상자에다가
스티로폴 하나 깔고 거기에 나비라든가 벌이라든가 잠자리 같은 걸 잡아서, 메틸알콜 같은 걸로
처리를 한 후 박제를 만들어 핀으로 꽂아두는.....
이게 대도시 학교는 잘 모르겠지만 중소도시에도 80년대 후반까지는 있긴 있었던 걸로
기억은 합니다. (국민학생 주제에 플라나리아를 잡아온 한 놈이 떠오르네요.)
그리고 시골 학교에서는 이 곤충채집이란 게 뭘 잡아오느냐로 묘한 경쟁이 붙기에 별별 걸 다 잡아왔죠.
지금은 하도 오래 전이라 그 얼굴이 거뭇거뭇 잘 기억나지 않지만, 1학년 때 친하기는 친한데
묘하게 라이벌 의식 불태우던 놈이 있었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
롯데 자이언츠 선수 이름이랑 같은 황 뭐시기란 녀석인데 지금은 어디서 뭘 하나 모르겠네요.
군대 가면 그런 사람 꼭 있죠.
군번은 저 놈이 빠른데, 그 놈은 어디 사고치고 갔다와서 나보다 늦게 배치되어서 후임이고.
출신지랑 학교도 비슷하고 같은 동네인데 나이는 또 내가 두 살 위고. 그리고 중학교는 내가 선배고.
이렇게 되면 뭐 사사건건 아옹다옹 아옹다옹 하게 마련. (근데 또 결정적으로 틀어지지도 않아요.)
얘도 저한테는 딱 그런 놈이었습니다.
학급위원은 내가 세 표 차로 이기고 (둘 다 뽑히긴 뽑혔지만 순서가 달라집니다. 사실 별 차이없지만),
받아쓰기는 내가 이길 자신 있었지만 산수 셈하는 거는 걔가 저보다 더 잘하고.
달리기랑 수영은 당최 내가 쟤한테 이기질 못했는데 주먹야구(소프트볼)는 내가 더 자신있고.
집도 정 반대편이라 "학교에서 놀 사람 요 요 다 붙으라" "장터 갈 사람 요 요 다 붙으리"
..... 그러고나니까 왠지 이녀석한텐 지기가 싫어지더군요-_-;
88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있던 무더운 여름 방학.
"서울 아덜은 올림픽때 방학 한다메?"
"우와 사기다"
"아이다, 울 아빠가 글카는데 갸들 올림픽때 방학하모 겨울에 방학이 그만큼 쭈아뿐다카드라."
"그거는 좀 불쌍하다."
동네 애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읍내 태권도도장에서 친-_-목을 다지고 있는데
저어기서 걸어오던 황 군이 우리들보고 말을 겁니다.
"나 이번에 곤충 채집 하는거 직이는(죽여주는)거 갖고 갈끼다!"
"믄데, 비얌(뱀)이라도 잡았드나?"
"에나 문둥아. 뱀이 곤충가?"
"뭐 ㅆㅂ아"
"마 참아라."
"(씩씩)그라모 뭔데."
"벌집."
"우와."
"울집 뒤에 말벌이 집 지갖고(지어서) 있는 거 울 아부지가 어제 에프킬라 약 치갖고 다 잡았거덩."
"우와, 지기네!"
"이따만하다." (라면서 자는 애기 머리통을 가리킴)
"와... 지기네!"
졸지에 스타로 등극한 황 군. 저는 그 소리 듣고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서 당장 학교 숙직실에서
샘들하고 같이 훌라 치는 아버지를 찾아갔습니다.
(항상 어울려 다니는 선생 4인방. 훌라 및 고도리 정족순. 읍내 용당구장 레귤러 멤버, 300이하 맛세이 금지.)
"아빠! 과학실 열쇠 주이소!"
"니 이번에는 또 므할라꼬. 느 엄마 알면 해작질 진다고 뭐라캐살낀데..."
..... 사실 이미 그 몇 개월 전에 저는 이미 전과가 있었죠. (....)
6학년 자연 교과서에 나오던 '화산 폭발 실험'이 신기해 보였던지, 과학실에 몰래 열쇠 갖고 들어가서
중크롬산암모늄 한 통을 선반에서 꺼내다가 모래밭에 묻어놓은 뒤에 석유 붓고 몽땅 터뜨린 전력이 있음..-_-;;
실험은 완벽하게 성공했지만, 그 날 저녁에 어무이한테 빗자루 부러질 때까지 두들겨맞았죠(.....)
(공공기물 절도 및 손괴죄! 단, 시효가 지났음. 쿨럭.)
"곤충채집!"
"니 고마 당산 올라가가 나비하고 잠자리하고 대강 ㅁㅔㅊ개 잡아가믄 안되나?"
"으은다(싫어). 나는 잘해야 돼요."
"니 또 아덜하고 이상한 내기했제?"
"박선생, 알라 할라카는 노력이 가상네. 함 주 보이소."
(왠지 ㅋ 연타가 생략된거같은 말투)
"아 고마 귀찮그로...."
그렇게, 모 국민학교의 전영록-_-이라는 별명이 있던 모 선생님의 도움 덕에
저는 일반 학생들이 갖지 못한 전문가용-_- 도구를 빌려갖고 나왔습니다.
도구래봐야 포충망과 바늘달린 주사기, 메틸알콜이 다였지만.....
근데 포충망 이게, 낙하산지로 만들기라도 했는지 엄청 결이 고우면서도 질겨서 좋았습니다.
물론 혼자 쓰진 않았습니다. 애 하나가 쑤욱 들어갈 만한 포충망이랑 읍내 의원에서 주워갖고 온
바늘달린 주사기는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동네의 필승 아이템이었죠. (.....)
장터 쪽 애들은 문방구에서 파는 - 모기장 대충 잘라만든 포충망 들고 다녔으니까요....;;
(세상에 그걸 그 시절에 300원씩이나 받았는지 원. 그거면 팥만치 아이스크림이 세 개다...)
여튼 시간이 지나 개학식이 다가오고.
저는 그 전날 그림숙제 하느라 밤을 새서 학교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황 군이 뭔가 엄청 큰 상자를 들고 왔습니다.
나비 잠자리 나방 메뚜기 여치.... 벼라별게 다 있는 건 당연지사(?)고
상자 맨 끝에는 문제의 그 벌집이 두둥(...)하고 자리해 있습니다. 꼭 로얄제리 같습니다.
반 아이들의 탄성이 여기저기 들려옵니다.
"우와, 니 이거 므꼬, 지기네!"
애초에 저는 녀석한테 물량에서 안 되니까-_- 양보다는 질로 승부한다는 전략이었기에
상자 크기는 별로 크지 않았습니다. 대신 곤충도감을 뒤져 가며 비교적 희귀하다는 것들로
채집을 했습니다. 길앞잡이나 풍뎅이, 사슴벌레 같은 거부터 시작해서
나비도 배추흰나비부터 호랑나비까지 크기별로 늘어놓고, 잠자리도 고추잠자리, 왕잠자리,
된장잠자리까지 구분한 뒤에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밑에 이름표에다가 학명까지 찾아서 적어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걸론 부족한데... 싶어서 몇 가지 희귀한 곤충도 더 잡아다가 예쁘게 배열해 놨습니다.
"오옷! 일마 이것도 곤충채집 지기네!"
"아이다, 절마가 더 잘했다."
서로 의견이 분분합니다. 결국 선생님이 숙제검사 하는 걸로 쇼부치기로 암묵적 합의가 됐습니다.
결과는
- 며칠 뒤
학교 뒤집어지고
저는 교무실로 불려갔습니다.
..... 아버지에게 안 보여 주고 마지막에 추가했던
그 희귀한 곤충이라는 게 하필이면 하늘소(..........)
선생님한테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줄이 나면서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으리.
그나마 천연기념물인 장수하늘소가 아니라고 판명나서 다행이었습니다.-_-;
자초지종. 군 교육청에서 과학 전시회인가 뭔가 한다고 우수작을 뽑는데
울 학교 우리 학년에서는 표본이 황가 놈 거랑 같이 올라갔고, 그랬는데
군 교육청 높은 사람이 하늘소 보고 이거 천연기념물 아니냐고 기겁을 하는 바람에
그 길로 학교로 전화가 왔더군요.
(검은색 전화기 딸딸딸딸 돌려서, 예 수고하십니다 거 ㅇㅇ학교 쫌 대주이소...)
.... 이상 곤충채집 얘기가 아니라 어린 시절에 사고 친 얘기였습니다. [...]
P.S.
결단코 저 아직은 이십대 맞습니다. 오해하시는 분이 있는데, 진짜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