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모 기
역시 여름하면 모기입니다....
모기
clancy
‘짝!’
요란한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진다. 경화는 허벅지 위를 덮은 손을 조심스럽게 치운다. 손바닥으로 내려친 부분의 피부가 금세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하지만 조금 전부터 앵앵 거리며 신경을 거스르던 놈의 잔해는 보이지 않았다. 은근히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인상을 찌푸리며 방금 때렸던 허벅지를 살살 긁는다. 그러자 물먹은 벽지 마냥 볼록하니 살갗이 부어오른다. 6월 중순, 바야흐로 본격적인 모기와의 전쟁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엄마, 우리도 에어컨 좀 사자.”
경화의 말에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엄마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왜긴 모기 때문에 그러지. 덥다고 문이며 창문이며 죄다 열어 놓으니까 모기들이 기어 들어오잖아. 에어컨 사면 문 열어놓을 일도 없고, 방안 온도가 내려가면 모기들도 추워서 제대로 활동을 못한데.”
“대신에 너가 얼어 죽겠지.”
여전히 고저 없는 심심한 어조로 뚱하니 말하는 엄마에게 경화는 괜한 짜증을 부린다.
“엄만 딸한테 그게 할 소리냐?”
“말 같은 소리를 해야 제대로 대꾸를 하지.”
“뭐가 말 같지 않은데.”
“에어컨이 얼만 줄이나 알아 이것아. 너가 한 번 마트 가서 에어컨 하나주세요 하고 사 와봐라. 그리고 행여 사고 나면 그거 돌리는데 드는 전기 값은 누가 내는데.”
엄마의 타박에 경화는 입을 삐죽이며 거실 바닥에 드러눕는다. 아직 6월이었지만 날씨는 이미 한여름이었다. 밤에 자다가 더위에 이불이라도 걷어찰라 치면 여지없이 모기들이 달려들었다. 매년 겪는 일이라 익숙해 질만도 하건만 앵앵거리며 날아와 피를 빨아대는 모기만큼은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소리도 소리거니와 물리면 붓고 가렵고 성가시다, 게다가 혹시나 병이라도 옮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여름밤 모기만한 불청객도 없다. 아파트 같은 동, 같은 라인의 두 층 위에 사는 같은 반 친구 현아네는 그래서 이번에 에어컨을 장만했다. 그래봤자 찬바람 뿜어내는 기계일 뿐인데 뭐가 다를까 싶었지만 지난 주말 놀러갔던 현아네 집은 확실히 달랐다. 시원하다 못해 서늘한 기분이 들 정도의 공기도 공기지만 무엇보다 모기가 없었다. 아니, 물론 모기는 있었다. 다만 추위로 인해 벽에 가만히 달라붙거나 움직이더라도 워낙 행동이 굼떠 손으로도 쉽게 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날 이후 모기 소리만 들렸다 하면 경화의 머릿속은 에어컨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찼던 것이다.
“아, 결국 가난이 죈가요?”
바닥에 누운 채 몸을 비틀며 이죽거리는 경화의 엉덩이를 발로 걷어차며 엄마가 말했다.
“까불지 말고 밥 먹게 일어나.”
“알겠사옵니다.”
경화는 냉기가 올라와 그나마 시원한 바닥을 벗어나려니 아쉬워 빈둥빈둥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딘가 숨어있던 모기 한 마리가 함께 날아오른다.
‘똑, 똑, 똑’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여긴 어디지?’
사방이 캄캄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물소리만이 이어질 뿐이다. 춥다. 지독한 냉기가 전신을 감싸고 있다. 커다란 얼음덩어리 안에 갇혀버린 느낌이다. 경화는 도움을 청하려 입을 벌려보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심지어 입을 뗄 수조차 없었다. 시커먼 냉기가 몸을 얼려버리기라도 한 듯이. 대체 여긴 어디지. 왜 내가 여기 있는 거지. 어찌된 일인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쉬익, 순간 어디선가 바람 빠지는 소리 같은 게 들린 것 같았다. 어느 쪽이지, 어디서 난 소리야. 대체 뭐지. 온 신경을 청력에 집중시키려 애를 써본다.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사이로 분명 무슨 소리가 들린다.
‘스으읍, 하아.’
그건 누군가의 숨소리였다. 낮고 거친 숨소리. 칠흑 같은 어둠 속 어딘가 숨소리의 주인공이 숨어 있었다. 뒷골이 당기고 몸속의 장기들이 쪼그라드는 것만 같다. 두려움, 공포, 머리보다 먼저 몸이 위험을 알리고 있었다. 숨소리의 정체는 사악하고 위험한 것이라는 걸 본능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몸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은 채 손가락 하나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살려줘, 누구 없어요. 제발 나 좀 도와줘요. 엄마, 아빠!’
소리를 질러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사이 음험한 숨소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그러자 정체불명의 위험이 내뿜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시큼한 알콜향, 민트향과 머스크향, 그리고 연한 후추 냄새. 처음으로 그녀에게 익숙한 감각이 입력된다. 그건 분명 화장품 냄새였다. 화장품 중에서도 남자들이 사용하는 스킨로션 냄새. 비슷한 향을 면도를 마치고 나온 아빠에게서 맡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냄새를 풍기는 정체가 아빠는 아니었다. 로션의 냄새는 아빠가 쓰는 것과 달랐다. 그보단 좀 더 자극적이고 묵직한 느낌의 향이었다. 지금껏 그녀가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향기. 그때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덥석 움켜쥐며 속삭였다.
‘여기 숨어 있었구나!’
“꺄악!”
비명과 함께 경화는 잠에서 깼다. 눈을 뜨자 어둠은 사라지고 사방이 밝아진다. 익숙한 풍경들이 보인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있다는 것을 알았다. 방금 전의 일들이 모두 꿈이란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참으로 이상한 꿈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너무나 생생하고 실감나는 꿈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쓰다듬는다. 강하게 움켜쥐던 손의 감각이 남아있는 것 같다. 왜 그런 꿈을 꾼 것일까. 그냥 개꿈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강렬해서 아직도 세세한 것까지 기억이 난다. 물방울 소리, 기분 나쁜 숨소리, 그리고 익숙하면서도 낯선 남성용 로션 냄새. 대체 뭐였을까, 께름칙한 기분을 떨쳐내며 침대에서 일어나던 경화는 자신의 손등을 내려다보곤 인상을 찌푸린다. 잠이 든 새 손등을 세 방이나 모기에게 뜯겼던 것이다. 아까운 내 피! 경화는 신경질적으로 손등을 긁는다.
더위는 학교라고 다를 것 없었다. 남녀 합쳐 32명이 모인 샘물중학교 2학년 6반 교실 안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흐를 정도로 후텁지근했다. 천정엔 중앙냉방식이라는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뭐가 잘못 된 것인지 아무리 설정온도를 낮춰도 나오는 것이라곤 미적지근한 바람뿐이었다. 경화의 교실만이 아니라 학교 전체가 그랬다. 전기 절약에 동참한다며 만날 약하게 틀어놓더니 기계가 아예 그 온도에 고정되기라도 한 모양이다.
“아, 더워 뒈지겠어.”
현아가 공책을 부채처럼 부치며 말했다.
“그러게, 그래도 넌 좋겠다. 집에 가면 시원할 거 아냐.”
“야, 그래서 나오면 더 더워. 온도차. 온도차.”
말할 기운도 없는지 손을 양쪽으로 벌리며 헥헥 거리는 현아의 모습이 우습다.
“야, 근데 나 어저께 디따 이상한 꿈 꿨다.”
“뭐, 지용 오빠가 너 덮치는 꿈?”
“뭐야 미친년, 깔깔깔.”
경화는 빅뱅 멤버들 중 자기가 특히 좋아하는 리더의 모습을 떠올리며 살짝 얼굴을 붉힌다.
“그런 거 아니거든. 엄청 기분 나쁜 꿈이었어. 완전 악몽.”
그렇게 말하며 경화는 양손의 엄지를 들어 올렸다. 투 썸업! 그만큼이나 괴상한 꿈이었다.
“뭔데 말해줘.”
현아도 흥미가 생겼는지 엎드려있던 자세를 바로 세우고 동그란 눈을 크게 떠 더욱 동그랗게 만들며 그녀를 본다.
“그러니까 이게 아무것도 보이진 않는 꿈이거든. 눈을 감고 있거나, 어두운 방 안에 있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데 물소리가 들리는 거야. 똑, 똑, 똑. 엄청 깊은 동굴에 있는 것처럼 소리가 막 울려서 들리는데 그것만 해도 장난 아니잖아. 근데 또 몸을 움직일 수가 없는 거야. 엄청 추워서 몸이 꽝꽝 얼어 버린 것처럼...... 왜 그래 현아야?”
경화는 앞에 앉은 현아의 표정을 보곤 놀라서 물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덥다며 죽을상을 하던 애가 지금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얼굴까지 하얗게 질려 있었다. 현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야, 그거 내가 너한테...... 아니야. 나 얘기한 적 없는데.”
“뭐래는 거야 지지배가.”
뜻을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 친구를 보며 경화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가만 있어봐. 너 그 꿈, 진짜 꾼 거야?”
“그래, 어젯밤에 꿨다니까. 그래서 그 다음이 중요한데......”
막 말을 하려는데 현아가 그녀를 말린다.
“가만 있어봐. 그래서 그 캄캄한 곳에 꼼짝도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어?”
현아의 질문을 듣는 순간 경화의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그녀가 그걸 알고 있지. 꿈 얘기는 지금 처음 꺼내는 거였으니 다른 사람한테 전해 들었을 리도 없는데. 문득 방금 현아가 혼자 중얼거리던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너 설마 나랑 같은 꿈 꿨어?”
“계속 말해봐, 정말 같은지 보게.”
그러면서 현아는 들고 있던 공책을 펼쳐 무언가를 끄적이더니 덮어 버린다.
“어, 그러니까 너 말대로 사람 숨소리가 들리고 그게 점점 가까워졌거든 그리고 냄새가 났어. 아저씨들 바르는 스킨 냄새 같은 거. 무서워서 막 떨고 있는데 갑자기 그 숨소리가 다가와서 내 어깨를 잡고서 그러는 거야. 여기 숨어 있었구나라고.”
얼떨결에 꿈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은 경화는 심상치 않은 표정의 친구를 마주 본다. 현아는 조심스럽게 공책을 펼쳐 방금 자기가 쓴 것을 보여주었다. 거기엔 그녀의 글씨체로 익숙한 한 줄이 쓰여 있었다.
‘여기 숨어 있었구나.’
두 소녀는 아무 말도 못하고 서로를 바라만 보았다. 오싹한 기운이 그들 주위를 감쌌다. 더 이상 더위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경화와 현아 두 사람은 자신들의 기이한 꿈의 공유에 관해 친구들에게 얘기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반 아이는 물론이고 옆 반까지 소문이 퍼졌다. 두 교시가 지난 후에는 층 전체가 알게 되었고 수업이 끝날 무렵엔 샘물 중학교 학생이라면 모두가 아는 이야기가 되었다. 둘은 순식간에 유명인사가 된 것이다.
“현아야.”
하굣길에 경화와 함께 교문을 나서던 현아를 누군가 불러 세웠다. 돌아보니 역시 같은 아파트에 사는 3학년 새롬 언니였다.
“어. 안녕하세요, 언니?”
“너희들 둘이서 똑같은 꿈 꿨다며?”
“예.”
현아는 히죽 웃으며 답했다. 처음엔 정체를 모를 현상에 두려워하던 그녀였지만 소문이 퍼지고 신기해하는 아이들이 사실을 확인하려고 쉬는 시간마다 교실로 찾아오기 시작하자 두려움은 곧 사라지고 주목을 받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커졌던 것이다.
“너희들 꿈 이야기 들었는데. 그 꿈 나도 꿨거든.”
“예?”
“그러니까 나도 너희랑 같은 꿈을 꾸었다고.”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괴상하고 확률적으로 매우 희박한 일이지만 그래도 단짝인 경화와 현아가 같은 꿈을 꾸었다는 건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어릴 적부터 함께 어울린 베프인데다 지금도 같은 반에서 함께 수업을 듣고 있으니 공유하는 경험들도 많고 취향이나 생각도 비슷한 구석이 있을 것이다. 그런 요인들이 묘하게 작용해 우연히도 같은 꿈을 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롬 언니는 학년도 다르고 그들과는 그다지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공통점이라고 해봤자 초등학교 때 같은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는 것과 아파트 같은 동에 산다는 점 정도였다. 그런 그녀 역시 둘과 같은 꿈을 꾸었다고 했을 때엔 경화나 현아 모두 내심 언니가 뻥을 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꿈에 대한 세세한 부분들을 확인하면 할수록 그게 아니란 점이 분명해졌다. 그녀 역시 같은 꿈을 꾸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새롬 언니가 먼저 신기한 듯 물었다. 하지만 그들로서도 딱히 내어놓을 답은 없었다.
“어쩌면 더 있을지도 몰라.”
새롬이 조금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뭐가요?”
“꿈 말이야. 우리처럼 같은 꿈을 꾼 사람이 더 있을 지도 모른다고.”
“에이, 설마요. 지금만 해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인데.”
“그러니까 내 말이.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괴상한 일이지만. 우리 같은 애들이 더 있다면, 그러니까 사례가 더 늘어난다면 오히려 설명이 쉬워질 수 있단 말이야.”
새롬의 말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듯 현아는 자신의 목을 긁적이며 물었다.
“그러니까 같은 꿈을 꾼 사람이 늘어나면 덜 이상해진다는 말이에요?”
“그래, 그러니까 예를 들어 UFO 같은 것도 말이야. 지금은 목격자 수가 너무 적고. 증거도 부족하니까 미확인 비행물체라면서 미스터리한일로 생각하지만 수백, 수천, 아니 아예 매일같이 UFO가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생각해봐. 그렇게 되면 단순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만 생각하진 않을 거야. 그저 아직 파악이 안 된 어딘가에서 날아오는 물체구나 생각하겠지. 자주 목격되면 그만큼 정보량도 많아지니까 정체를 파악하기도 쉬워질 것이고.”
얘기를 듣던 경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새롬의 말은 그럴듯하면서도 어딘가 납득하기 힘든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 말대로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늘어나면 뭔가 새로운 정보나 아이디어가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럼 어떻게 하죠?”
질문을 던지면서도 현아는 연신 목을 긁적이고 있었다. 얘가 목욕을 안했나 싶은 생각에 곁눈질로 그녀의 목을 살피던 경화는 그제야 벌겋게 부어오른 모기물린 자국을 보았다. 에어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존한 모기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학교에서 물렸던지. 그러는 사이 새롬은 만화 속 영웅처럼 허리에 손을 얹고서 그들을 향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어떡하긴 찾아야지, 우리 같은 사람을.”
새롬이 제안한 방법은 아파트 알림판에 사람을 찾는다는 게시물을 붙이는 것이었다. 세 사람의 공통점이 같은 동에 산다는 점이었기에 가장 가능성 높은 지역부터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학교에도 게시물을 붙이고 싶었지만 허락해줄리 없었기에 각자의 인적 네트워크(수다를 통한 입소문)를 이용해 수소문 해보기로 했다.
막연한 기대와 달리 별다른 소득 없는 일주일이 지났다. 게시물의 연락처는 개인정보 제공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이메일 계정을 사용했다. 핸드폰 번호는 장난전화나 전화사기 같은 방법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새롬 언니의 염려도 있었고 학교에선 연락이 와도 맘대로 통화를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메일함으로 온 것이라곤 외로운 언니들이 기다린다거나, 조건 없이 15분 만에 대출이 된다거나, 의자왕의 신비를 간직한 정력 증강제를 싼 값에 판다는 메일들뿐이었다. 그렇게 아무 성과도 없는 날들이 흐르는 사이 그들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도 빠르게 식어가고 있었다.
“역시 어쩌다 일어난 우연이었을까?”
운동장 옆 스탠드에 앉아 소시지를 까먹던 현아는 신경질적으로 목을 긁적대며 말했다.
“그게 우연가지고 될 일이냐. 그리고 그만 좀 긁어 그러다 덧나겠다.”
경화의 타박에 그녀는 또 목을 긁고 있다는 것을 알고 머쓱해하며 손을 내린다. 벌써 일주일도 더 전에 집에서 잠을 자다 모기에 물렸다는 목은 습관적으로 긁다보니 피부가 벗겨져 딱지가 앉았다. 하지만 그 후에도 현아는 무의식적으로 목을 긁적였다. 덕분에 상처는 좀처럼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에어컨 틀어 놓아도 밤에는 꼭 한두 방씩 물린다니까. 짜증나.”
팔뚝에 물린 자국을 내보이며 현아가 투정을 부린다.
“배부른 고민이오.”
경화는 장난스럽게 대꾸하며 옆에 까놓은 비스킷 하나를 집어 든다.
“그런데 말이야. 나 그 꿈에 대해서 계속 생각해 봤거든.”
그렇게 말하며 비스킷을 조금 베어 문다.
“근데?”
“그러니까 말이야. 그게 대체 무슨 상황이었는지 말이야. 아무리 꿈이라도 이렇게 셋이서 같이 꾸었다면 뭔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
“그런가.”
“안 그렇겠어. 너도 그랬지만 꿈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잖아. 아주 어두운 곳에 있거나 눈이 안 보이는 것처럼. 그리고 굉장히 추웠어. 그래서 움직여보려고 하면 전혀 움직일 수도 없고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전혀 움직임이 없었어. 숨조차 쉬지 않는 것처럼.”
그동안 셋이서 수도 없이 했던 이야기들을 경화가 반복하자 현아는 따분한 듯 하품을 한다.
“그래서 뭐.”
“그러니까 말이야. 그게 무슨 상황일 것 같냐고. 전혀 움직이지도 못하고 엄청나게 차갑고 보이지도 않는 상황 말이야.”
그녀의 질문에 눈을 굴리며 무언가 생각하던 현아가 기분이 나빠졌는지 인상을 찌푸린다.
“그거 설마.”
“그치, 그거 완전히 죽은 사람이잖아. 시체라면 움직일 수도 없고 눈도 뜰 수 없고 게다가 체온이 없으니까 엄청 차가울 것 아니야.”
“야, 그거 뭐야. 완전 기분 나빠. 그리고 죽었으면 왜 냄새를 맡거나 소리를 들을 순 있는 건데?”
“나도 그게 이상했는데. 만약에 귀신이라면 어때? 죽어서도 하늘나라 가지 못하고 시체에 들러 붙어있는 귀신 말이야.”
“그럼 왜 보지는 못하는데.”
“영화 같은 거 보면 그러잖아. 귀신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그만 해. 그럼 우리가 귀신 꿈 꿨다는 거잖아. 그게 우리가 같은 꿈 꾼 거 보다 훨씬 오싹하거든.”
소름이 돋는지 손으로 자신의 팔과 어깨를 쓰다듬으며 현아가 말했다.
“다시 그 꿈을 꾼다면 더 확실해질 텐데.”
경화는 아쉬운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난 빼주라. 난 그 꿈 다시는 꾸고 싶지 않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기분 나쁜 꿈인데 기집애 너 말 듣고 나니까 더 무서워졌잖아.”
그렇게 말하며 현아는 정말 짜증이 났는지 먹던 소시지를 저 멀리 던져버리곤 일어나 휑하니 교실로 가버렸다. 경화는 한동안 더 그 자리에 앉은 채 생각에 잠겼다. 만약 그 꿈이 정말 죽은 사람의 시선이라면 왜 그런 꿈을 세 사람이나 꾼 것인지 궁금했다. 분명 거기엔 어떤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것만 같았다.
‘똑, 똑, 똑’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그리고 온 몸을 휘감는 냉기. 그날과 같다. 다시 그 꿈이 시작되었다.
“흡, 흡”
아니다 이번엔 전과는 달랐다. 여전히 추웠지만 그만큼이나 뜨거운 체온이 느껴진다. 그리고 숨을 쉬고 있었다. 무언가 기도를 틀어막은 듯 힘겹게 내쉬고 있었지만 분명히 숨을 쉬고 있다.
‘똑, 똑, 똑’
여전히 물방울 소리가 들려오지만 지난번과는 다른 장소, 다른 시간이다. 오로지 그 물방울만이 이전 꿈의 시점에 머물러 있다. 마치 시간과 공간이 뒤죽박죽으로 뒤섞인 것만 같았다.
‘가만히 있어.’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독한 스킨 향이 코를 찌른다. 그 남자다. 지난번 꿈에서 어깨를 그러잡던 사람. 그가 귓전에 속삭이듯 말하고 있었다.
‘걱정할 것 없어.’
하지만 그의 말은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무섭게 만들 뿐이다. 무서움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꿈을 공유하고 있는 누군가의 감정이었다. 이 꿈의 진짜 주인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너 정말 예쁘구나.’
다시 남자가 속삭인다. 남자의 손이 허리를 휘어 감으며 아래로 내려온다. 치마 속으로 손이 들어온다. 동시에 남자의 다른 손은 목을 움켜쥔다. 다시 숨이 막혀온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은 다시 뒤섞인다. 갑자기 모든 것이 바뀐다. 남자의 손이 사라진다. 몸의 열기가 사라진다. 감각이 사라지고 공포가 사라진다. 그리고 무엇인가 다시 후각을 자극한다.
“우에엑!”
경화는 헛구역질과 함께 눈을 떴다. 자신이 부들부들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머리가 어지럽고 속은 메스꺼웠다. 꿈속에서 벌어진 사건을 자신이 직접 겪은 것만 같다. 꿈속에서 남자에게 졸렸던 목이 화끈 거린다. 침대에서 빠져나와 책상에 올려둔 메모지를 찾았다. 무언가 한참을 적어 내려간 후에야 경화는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현아의 번호가 저장된 단축 번호를 눌렀다.
그것은 새롬 언니의 제안이었다.
“다음번에 또 이런 꿈을 꾸게 되면 일단 서로에게 꿈의 내용에 대해 말하지 말고 먼저 글로 써서 남기자.”
“글이요? 어떤 꿈이었는지 내용을 적으란 거예요?”
“그래.”
“왜요, 그냥 만나서 얘기하면 될 걸.”
“현상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야. 말이란 건 동시에 할 수 없잖아. 결국 셋 중에 누구든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걸 듣다보면 서로에게 무의식중에 영향을 줄 수도 있으니까.”
“우리가 거짓말을 했을 지도 모른다는 말이에요?”
경화는 살짝 성질을 냈다.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 속에서 그랬을 지도 모른다는 거지. 그러니까 일단 먼저 글로 남기자는 거야. 그러고 나서 다시 모여서......”
“서로 쓴 거 비교하면 되겠네. 그럼 동시에 확인할 수도 있고.”
현아가 놀랍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자신도 처음 경화와 꿈에 대한 얘기를 할 때 비슷한 방법으로 확인을 했던 기억이 있다. 종종 알 수 없는 소리를 늘어놓긴 하지만 새롬 언니는 확실히 똑똑한 구석이 있었다. 늘 생각조차 못한 부분에서 중요한 점을 짚어주곤 했던 것이다.
두 번째 꿈을 꾼 날은 놀토였다. 그래서 셋은 아파트 앞 상가의 아이스크림 가게에 모이기로 했다.
“다들 써 왔어?”
새롬이 먼저 자신의 다이어리를 꺼내 놓으며 물었다. 경화와 현아 모두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셋은 각자가 써온 꿈의 내용을 돌려가며 읽어보았다.
“똑같아.”
현아가 새삼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이 정도면 완전히 똑같다고 봐도 되겠네.”
새롬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턱을 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내용일까. 뭔가 의미가 있을 것 같지 않아?”
경화는 둘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오늘 꿈은 분명하지. 그 로션 냄새가 변태새끼야.”
꿈속에서 느낀 감각이 되살아나는지 현아는 몸서리를 쳤다.
“그래, 확실히 그건 성추행이나 강간을 당하는 것 같았어. 그렇다고 보면 첫 번째 꿈과도 연결이 되는 면이 있어. 남자에게서 도망치다가 어딘가 숨었던 것인지도 모르지.”
“숨다니 누가요?”
현아가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미간에 주름을 만들어 보인다.
“이 꿈의 주인공 말이야. 넌 못 느꼈니, 꿈에서 마치 다른 사람 몸속에 있는 거 같았잖아.”
“그랬던 것도 같은데, 그렇다고 그게 다른 사람 몸이었다는 거예요?”
“그게 제일 그럴듯하잖아. 우리 중 누구도 그런 경험을 해본 사람은 없어. 그렇다고 그저 꿈속의 일이라고 보기엔 너무 생생했잖아. 직접 경험하는 것처럼. 그런 꿈을 셋이서 똑같이 꾸었다고. 다른 곳에 있는 무언가를 우리 셋이서 공유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공유, 인터넷 파일 공유 하는 것 처럼요?”
현아의 질문에 새롬은 당황스러운지 잠시 머뭇거렸다.
“그래, 그거랑 비슷해. 같은 파일을 함께 공유했기 때문에 같은 꿈을 꾼 거지. 하지만 그렇게 본다면 진짜 그 파일, 그러니까 꿈속의 사건을 직접 체험한 누군가가 따로 있을 거라는 거야. 우린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의 꿈을 공유하게 된 것이고.”
“아니면 귀신인지도 몰라요.”
경화가 말했다.
“귀신?”
“어저께 현아랑 처음 꾸었던 꿈에 대해서 얘기했거든요. 꿈속의 내가 죽은 사람 같지 않느냐고. 어쩜 그건 귀신의 기억일지도 모른다고.”
“귀신, 기억이라고......”
새롬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현아의 질문에 이번엔 경화가 입을 열었다.
“내가 생각한 게 있는데.”
“뭔데?”
“꿈에서 두 번 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잖아. 처음엔 어두운 곳이거나 아니면 방금 말한 것처럼 죽은 사람이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새롬 언니 말대로 이게 다른 누군가의 경험이라면 어쩜......”
“어쩌면?”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새롬이 끼어들었다.
“원래 눈이 보이지 않는 게 아닐까요?”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럼 장님이란 거네.”
“예, 그렇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구나, 그런 생각은 못해봤는데. 그럼 꿈에서 유난히 청각이나 후각 정보가 강조 됐던 것도 설명이 돼. 그런 사람들은 다른 감각이 발달하기 마련이니까.”
“그럼 장님인 사람을 찾으면 되는 거네?”
현아는 둘이 주고받는 대화를 신기한 듯 듣다가 끼어들었다.
“그래, 만약 진짜로 이 꿈속의 주인공이 따로 있다면 그 사람에 대해서 그렇게 하나씩 그려보는 거야. 그럼 진짜로 그 사람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놀토 점심시간 아파트 앞 아이스크림 가게에 모인 여중생 셋은 어느 새 꿈속의 인물에 대한 프로파일링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럼 장님이고, 여자겠네요.”
경화가 먼저 얘기하자 새롬이 곧바로 덧붙였다.
“그래, 그리고 남자에게 나쁜 일을 당하고 쫓기던 사람이었어.”
“그리고 우리 아파트에 사는 사람일 것.”
마지막은 현아였다.
“그건 왜지?”
“꿈을 꾼 게 우리뿐이고 모두 같은 동에 살잖아요. 그 사람이 근처에 있어서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런 조건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찾느냐가 문제네.”
새롬의 말에 현아와 경화 둘은 금방 풀이 죽었다. 그들로선 더 이상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꿈의 정체에 대해 알아보려는 시도는 다시 막다른 벽에 부닥쳤다. 그 사이 핸드폰을 꺼내 뭔가를 확인하던 새롬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거 봐.”
그녀는 자신의 스마트폰의 터치스크린을 내밀어 보이며 말했다. 화면엔 이메일 확인을 위한 어플이 띄어져 있었다.
“드디어 나타났어. 네 번째 동지야.”
일행은 장소를 옮겼다. 이메일을 통해 같은 꿈을 꾼다며 연락해온 사람의 한적한 곳에서 만나고 싶다는 요청 때문이었다. 다시 정한 약속장소는 아파트 뒤편의 공원이었다. 더운 날씨 때문에 해가 있는 동안엔 머무르는 사람이 적은 곳이었다. 30분 정도 후에야 나타난 건 20대로 보이는 평범한 외모의 여자였다.
“너희들이니, 그 게시물을 붙인 게?”
그녀는 경화 일행을 처음 보곤 적잖이 실망한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예, 박새롬이라고 해요.”
새롬은 부러 더 의젓하고 격식을 차린 행동으로 악수를 청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래, 난 전효성이야. 그런데 그 게시물 왜 그런 꿈을 꾼 사람을 찾고 있는 거지?”
“우리도 같은 꿈을 꾸었거든요.”
현아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우리? 너희 모두 그 꿈을 꾸었다는 거야?”
“예, 모두 똑같은 꿈을 꾸었어요. 혹시 효성....... 언니도 어젯밤 또 꿈을 꾸지 않았어요?”
갑작스런 질문들에 많이 당황한 듯 얼른 대답을 못한 채 효성은 공원 벤치에 기대어 앉았다. 짧은 청반바지 아래로 뻗은 희고 긴 다리가 비스듬히 겹쳐진다. 얼굴은 평범한 편이었지만 다리는 모델 뺨치게 가늘고 길어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한 가지 흠이라면 왼쪽 종아리 옆에 붉은 반점처럼 자리 잡은 모기물린 자국이었다.
“난 그냥 너무 신기해서 호기심에 메일을 보낸 거였어. 정말 그 게시물에 적힌 것과 똑같은 꿈을 꾸었거든.”
“미안하지만 언니 말이 사실인지 저희도 확인을 해야 해서요. 사실 거기에 적지 않은 내용이 하나 있거든요. 첫 번째 꿈에서 어떤 냄새가 기억에 남았을 거예요. 그게 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새롬의 당돌한 질문에 그녀는 기가 막힌 듯 코웃음을 쳤다.
“이거 무슨 간첩 접선하는 거 같네. 너희들 학생이지, 고딩, 아니 중딩인가?”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제 질문에 답해주세요.”
“로션, 남자 로션 냄새야. 좀 독한 거. 올드스파이스 같긴 한데 요즘도 그런 거 쓰는 남자 있나?”
셋은 긍정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동안의 일들과 셋이서 주고받은 의견들에 대해 새롬이 차근히 설명하는 동안 효성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도저히 믿기 힘든 정보들을 갑자기 다량 받아들이려면 그게 가장 속편한 대응일 것이다. 새롬의 얘기가 끝난 후에야 그녀는 손을 모아 미간에 가져다 댄 채 물었다.
“그러니까 우리 아파트에 사는 시각장애인이자 성폭력 피해자인 여성을 찾아야 한다는 거니?”
“예, 이 꿈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려면 그 사람을 찾는 방법밖엔 없으니까요.”
“아, 이게 뭐야. 노는 날 하도 심심해서 나온 건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에 엮이다니.”
그녀는 투덜거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태도에 심기가 불편한지 입을 쑥 내민 채 경화가 물었다.
“언니도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 꿈이 무슨 의미인지?”
“글쎄, 너무 기분 나쁜 꿈이니 더 이상 안 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지.”
“그러니까요, 그 사람을 찾으면 이 현상도 끝나지 않겠어요.”
새롬은 그녀를 설득이라도 하듯 말했다.
“알겠어, 너희들 정말 열심이구나.”
“이런 현상은 흔한 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그 꿈 아무래도 수상하지 않아요. 꿈대로라면 진짜 우리가 찾는 사람이 있더라도 상황이 좋지는 못할 지도 몰라요.”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너희들 중학생이라고 했나. 그래서 모르는구나.”
“뭘요?”
“얼마 전에 우리 동네에서 실종사건이 있었어. 우리 단지는 아니고 길 건너 아파트에 살던 여잔데 갑자기 사라져서 경찰도 출동하고 수색도 벌이고 그랬거든.”
“실종사건이라고요?”
새롬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벌떡 일어서며 물었다.
“그래, 한 열흘 됐나. 혹시나 흉한 소문이라도 돌까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일이야. 게다가 실종된 사람에 대해 좀 들은 게 있거든. 엄마랑 둘이 사는 젊은 여자였는데 장애가 있었어, 시각장애. 시력을 완전히 상실해서 동행이나 사전 연락 없이 늦게 귀가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는 거야. 그래서 실종신고도 금방 접수되었고.”
효성의 말에 세 사람은 말없이 서로 눈빛만 주고받을 뿐이었다. 그녀들의 추리를 들은 효성이 그렇게 과민한 반응을 보이며 투덜거린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하늘 높이 뜬 태양이 그들 위로 내리쬐고 있었다. 후끈 달아오른 바닥이 뿜어내는 열기에 이마엔 송골송골 땀이 맺혔지만 누구 하나 덥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어느 새 해는 서쪽 하늘 근처로 내려와 그림자는 길어지고 주위는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넷으로 늘어난 일행은 커피 전문점의 2층 구석자리에 모여 앉아 한 시간이 넘게 꿈에 대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이야기를 주도하는 건 역시나 연장자인 효성과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새롬이었다. 경화와 현아는 옆에서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생각나는 것이 있거나 의문이 생길 때마다 끼어드는 수준이었다.
“두 번째 꿈 마지막에 말이야, 뭔가 독한 냄새가 났어.”
효성이 새롬의 메모 마지막을 손으로 짚어보였다.
“그래요, 로션 냄새가 아니라 뭐가 썩는 냄새 같은 거.”
꿈에서 맡았던 냄새가 떠오르는지 현아는 인상을 찌푸렸다.
“맞아, 나도 그 냄새 때문에 깨자마자 토할 뻔 했다니까. 쓰레기 냄새 같기도 하고 청소 안한 화장실 냄새 같기도 하고.”
“시궁창, 시궁창 냄새도 그거랑 비슷해.”
새롬이 마치 선생님처럼 검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경화는 이 언니가 언제 시궁창 냄새까지 섭렵했을까 궁금했지만 굳이 물어보진 않기로 했다.
“그래, 하수구나 시궁창에서 나는 냄새 같기도 하다. 어쩌면 그게 단서인지도 몰라.”
“단서요?”
경화가 효성에게 물었다.
“그래, 안타깝지만 지금 상황에선 실종된 여자가 이미 죽었을 가능성이 높아. 아마도 꿈에 나온 남자가 범인일 거야.”
“그럼, 살인사건이라는 거예요?”
현아가 무서운지 어깨를 움츠리며 효성을 봤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본다면 시체를 유기했을 가능성이 높아. 뉴스 같은 거 보면 범인들이 늘 그러잖아. 발견을 늦추고 증거를 훼손시키려고 야산이나 강 같은데 버리거나 마당에 묻기도 하고. 아이고, 내가 어린애들 앞에서 뭐라는 거니. 입이 방정이네.”
딱딱하게 굳다 못해 몇은 하얗게 질린 아이들의 표정을 보곤 효성은 당황하며 자신의 입을 톡톡 때렸다.
“아니에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그래서 꿈을 꾸는 건지도 몰라요.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자기를 찾아 달라고 메시지를 보내는 거죠. 영화 같은 데 보면 그런 경우들이 많잖아요.”
“그래, 괜히 그런 꿈을 꾸게 하진 않았을 거야.”
“그럼 어딜까요? 전 아무래도 아파트 근처라고 생각해요. 그 여자 분이 있는 곳 말이에요.”
새롬은 팔짱을 끼며 그렇게 말했다.
“왜요 언니?”
경화가 물었다.
“일단 이게 어떤 원리로 벌어진 건지는 몰라도 분명히 에너지가 소모될 거야. 예를 들어 이 꿈이 일종의 구조신호를 쏘아 보내는 거라면 멀어질수록 신호의 세기가 약해지지 않겠어. 그러니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을 표적으로 하지 않았을까? 물론 발견될 가능성을 생각해도 주변 지리에 익숙한 사람이어야 할 것이고 말이야.”
새롬의 설명에 효성이 희미하게 웃었다.
“맞는 말이긴 한데 너무 논리적이다. 귀신이 그렇게 계산적으로 행동하려나.”
“전 이게 귀신이라기 보단 일종의 에너지 파동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귀신이나 빙의라고 이름 붙이면 그렇게 되는 거죠.”
“너 진짜 똑똑하다. 정말 중3?”
효성은 새삼 놀랍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럼 장소에 대한 단서는 지독한 냄새,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와 차가운 감각 정도네?”
경화가 메모된 내용들을 짚어가며 그동안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그래, 귀신인지 아니면 에너지의 파동인지가 있다는 가설하의 이야기지만.”
효성은 재밌다는 듯 다시 미소를 짓는다. 사춘기 소녀들과 달리 어른인 그녀로선 아무래도 진지하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그때 현아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나 생각났다.”
“놀래라, 뭐가?”
경화는 가슴을 쓸어내리는 시늉을 해보이며 친구를 쏘아보았다.
“어, 미안. 놀랐어. 아니 그보다 나 생각났어요. 방금 말한 내용에 들어맞는 장소!”
그녀의 말에 모두들 놀란 눈을 둥그렇게 뜨며 현아를 보았다.
“전에 경비아저씨하고 어떤 남자하고 아파트 앞에서 이야기하는 걸 어쩌다 들은 적이 있거든. 우리 동에 모기가 많잖아. 그거 때문에 뭐라고 말하고 있더라고.”
“갑자기 모기가 왜 나오냐?”
뜬금없는 이야기에 경화가 면박을 줬지만 현아는 괘념치 않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들어봐, 우리 아파트 밑에 무슨 지하실 같은 게 있나봐. 그런데 거기에 물이 자꾸 찬데. 하수관이 센다던가, 지하수가 올라오는 거라던가 그런 건데, 여하튼 그 고인 물 때문에 모기가 꼬이는 거래 그래서 물을 퍼내고 공사를 해야 한다고 막 그러더라고.”
지하, 조금씩 차오르는 물, 고여서 썩어가는 물. 조건이 들어맞는다.
“그런데 어떻게 확인하지?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잖아.”
현아는 자기가 말해놓고도 다음이 막막한지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 안으며 한쪽 입 꼬리를 찡그려 보였다. 거기에 대한 답은 효성의 시원스런 한 마디였다.
“어쩌긴 경비실에 물어보면 되지.”
새롬은 새삼 어른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었다. 효성은 그대로 거침없이 아이들과 함께 경비실로 향했다. 그리곤 경비실 의자에 늘어져 부채질을 하며 야구중계를 시청하던 경비아저씨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아저씨, 우리 아파트 지하에 물세요?”
난데없는 그녀의 등장에 깜짝 놀란 경비는 허우적거리며 간신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1006호 아가씨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지하에 물이 세느냐고요? 지난번에 어떤 아저씨가 그런 소리 하는 걸 얘가 들었다던데요. 혹시 이 아저씨였니?”
경비를 가리켜 보이는 효성에게 현아는 역시나 당황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저어보였다.
“애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물이 세는 건 아니고......”
경비는 얼굴까지 붉히며 뭐라 해명을 하려고 했지만 효성은 말을 자르며 빠르게 쏘아 붙였다.
“뭐가 아니에요, 지하실이 물바다라고 하던데. 그거 그대로 방치하면 큰일 나는 거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도 아파트에 자꾸 금이 간다고 난리던데 게다가 그거 때문에 우리 동만 유별나게 모기가 꼬이는 거라면서요.”
“어허, 아니라니까 젊은 아가씨가 그렇게 막말을 해.”
“뭐에요, 지금 저 어리다고 얕보시는 거예요. 아니면 여자라서? 반상회에 안건 올릴까요, 아니면 이대로 동장 아줌마한테 가던가.”
효성의 구강 파이팅은 현란했다. 말의 내용이나 속도나 타이밍까지 상대를 완벽하게 제압하고 있었다. 덕분에 경비 아저씨는 뭐라 제대로 된 반박도 하지 못하고 갑갑한 표정으로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에헤, 진정하고 얘기부터 합시다. 어떻게 하면 내 말을 믿겠어.”
이번엔 효성을 구슬러 보려는지 비굴한 표정으로 눈치를 살피는 경비에게 효성이 진짜 목적을 말하는 순간엔 새롬은 박수라도 쳐주고 싶을 정도였다.
“대체 어느 정도인지 내 눈으로 확인부터 해볼래요. 물이 찼다는 곳 좀 보여주세요.”
“거기 들어가 보진 못할 텐데. 입구도 좁고 냄새도 심하고.”
“어쨌든 어딘지 보여나 주세요.”
양보할 기미를 보이지 않으려 당당하게 선 효성의 기세에 결국 경비는 장탄식을 내뱉으며 주섬주섬 랜턴과 열쇠 꾸러미를 챙겨 들었다.
“알았으니까 따라와요. 거기 애들도 같이 갈 건가?”
“위험한 곳만 아니면요.”
“뭐 안에 들어가지만 않으면 위험할 건 없으니까. 그런데 옷 더러워질지도 모르는데 괜찮겠니?”
경비의 질문에 세 명의 여중생은 합이라도 맞춘 듯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경비를 따라간 곳은 아파트 뒤편 수풀 가운데 불쑥 솟은 대피호 같은 입구였다.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가자 긴 통로가 나왔다. 녹색 우레탄 바닥에 벽은 켜켜이 쌓은 콘크리트 블록의 이음새가 그대로 드러난 위로 연청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지하 통로는 어둡고 습했지만 지상과 달리 선선했다. 통로를 따라 한동안 걸어가자 다시 넓은 공간이 나왔다. 아파트 지하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큰 규모의 지하층엔 커다란 기계설비들이 들어차 있었다.
“중앙냉방이랑 난방 장치들이야. 저쪽은 음식물 쓰레기 처리하는 기계고.”
신기한 듯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일행에게 경비는 여기저기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대강 설명을 해주었다. 기계들 사이로 조금 더 걸어 들어가자 회색 철문이 나타났다.
“여기는 단지 반대편 설비실하고 이어지는 통로 같은 건데 여기 바로 위가 우리 동이거든.”
경비는 열쇠로 잠긴 철문을 열면서 투덜거렸다. 문을 열자 차가운 기운과 함께 역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지독하지?”
저마다 코를 막거나 고개를 돌리는 일행을 보며 경비가 히죽거린다.
“이게 무슨 냄새에요?”
“물이 썩어서 그래. 바로 여기니까 들어와 봐요 발조심하고.”
그의 말에 아래를 내려다보니 문 안쪽은 시멘트 바닥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데다 축축하니 젖어 있었고 여기저기 물이 고여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천정엔 색색의 테이프로 감긴 파이프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정면으로 길게 이어진 통로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작은 쪽문이 하나 더 있었다. 쪽문을 열자 악취가 한층 더 심해진다. 게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날벌레들이 우르르 모여드는 바람에 경화와 현아는 비명을 지르며 팔을 내저어야 했다.
“저 안쪽 보이지. 저기에 물이 찼다는 얘기였을 거야.”
쪽문 안쪽은 한층 더 어두웠다. 조명이라곤 천정에 달린 작은 절전형 백열등이 전부였고 사방을 막은 시멘트벽이 그마저도 흡수해버린다. 역시나 천정엔 바깥으로 이어지는 파이프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었다. 안쪽을 가리키는 경비원의 손을 따라가자 마치 작은 창문처럼 맞은편 벽에 직사각형으로 구멍이 뚫려있는 것이 보였다. 벽은 효성의 허리정도 높이에서 천정까지 뚫려있었는데 그 안쪽으로 건너편 방이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진 조명이 제대로 비추지 못해 벽 반대편은 컴컴하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으스스한 어둠 속에서 효성은 순간 익숙한 소리를 들었다.
‘똑, 똑, 똑’
규칙적으로 이어지는 물방울 소리. 효성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아이들도 그제야 그 소리를 들었는지 긴장한 표정으로 서로의 손을 마주 잡았다.
“어디서 새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위에서 자꾸 물이 스며들어서 저 안에 고이는 거야. 보면 알겠지만 냄새가 고약해서 그렇지 심각한 수준은 아닌데 말이지.”
손전등으로 비추자 허벅지 높이까지 찰랑찰랑 차오른 수면이 보였다. 악취를 내뿜는 검녹색의 탁한 물속에 수많은 황색 점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점들은 수면 아래로 가느다란 실처럼 늘어져 꼬물거리는 작은 벌레였다.
“으윽, 저게 뭐야?”
현아가 간지러운 듯 몸을 긁어대며 얼굴을 찌푸린다.
“장구벌레야, 저것들이 번데기 까면 모기가 되거든. 그래서 문제가 되는 거고.”
경비원의 말에 경화도 몸을 긁적인다. 물 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저 누런 점들 하나하나가 모기가 된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몸이 근질거렸던 것이다.
“저것들이 모기가 돼서 우리 집까지 기어 올라온다는 거네요.”
“그래, 하수구나 환기구로 올라가는 거지. 아파트에선 층이 나누어져 있으니까 중간에 쉬어갈 수 있으니까 꼭대기까지 모기들이 극성을 부리는 거야.”
그 사이 효성과 새롬은 손전등으로 수면 위를 더듬으며 샅샅이 살펴보고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보이는 거라곤 잔잔한 수면과 그 위를 가득 덮은 장구벌레뿐이었다.
“아무것도 안 보이네요.”
새롬은 실망한 목소리였다.
“오히려 다행이지. 우리 추측이 틀렸다는 거니까. 살인도 없고 시체도 없고 그냥 악몽일 뿐이었어.”
“둘이서 뭘 그렇게 수근 거려요. 이제 다 봤으니까 됐지. 그만 올라갑시다. 나도 너무 오래 자리 비우면 안 되니까.”
경비원의 재촉에 일행은 밖으로 나가야 했다. 하지만 새롬은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어 벽 안쪽으로 몸을 내밀고 다시 한 번 수면 위를 손전등으로 훑어보았다. 순간 물에 젖어 미끄러운 시멘트 바닥에 그녀의 발이 미끄러졌다.
‘풍덩!’
경비원을 따라 쪽문 밖으로 나가려던 일행은 갑작스런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트인 벽 너머 하늘을 향해 거꾸로 치켜든 새롬의 다리가 허우적대고 있었다. 미끄러지면서 거꾸로 물속에 처박힌 것이다. 놀란 효성과 경비원이 꺼내주러 가기도 전에 무언가에 끌려들어가듯 새롬의 다리마저도 물속으로 쑥 잠기고 말았다.
“새롬아!”
“학생!”
저마다 놀라서 그녀를 불렀다. 차오른 물웅덩이의 깊이는 1m도 채 되지 않았지만 너무나 탁해 손전등 불빛을 비춰 보아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들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사이 경화가 앞으로 나오더니 물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어 휘젓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느다란 팔이 손에 잡히자 단단히 그러잡고 수면으로 끌어올렸다. 구정물을 흩뿌리며 수면위로 올라온 것은 그러나 새롬이 아니었다.
“꺄악!”
효성이 비명을 질렀다. 현아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뒤늦게 몸을 일으켜 세우며 물 밖으로 나온 새롬도 경화가 부여잡고 있는 것을 손전등으로 비춰보는 순간 그대로 돌처럼 굳어 버렸다.
실종된 시각장애인 여성, 네 사람이 함께 꾼 기이한 꿈 속 주인공은 물에 퉁퉁 불어 썩어가는 모습으로 경화의 손을 맞잡고 있었다.
아파트 지하에서 시신이 발견된 지 2주가 지났다. 경찰 조사결과 실종된 시각장애 여성으로 신원이 확인되었다. 사인은 과다출혈에 의한 쇼크, 날카로운 흉기에 목이 잘렸다. 사망 시기는 정확히 추정할 수 없지만 대략 실종 시점으로부터 이틀 이내일 것이라고 추정되었다. 시기적으론 경화를 비롯한 네 사람이 첫 번째 꿈을 꾸기 사흘 전의 일이다. 그때 이미 그녀는 죽은 후였다.
시신을 처음 발견한 데다 상황에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기에 네 사람은 각자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아야만 했다. 효성이 지하로 내려가기 위해 경비원에게 꾸며댄 거짓말대로 모두가 입을 맞춘 덕에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었다. 경비원이 신고로 허둥대는 사이 미리 이야기를 맞춰두자는 제안을 한 것은 역시나 새롬이었다. 확실히 그녀는 비상한 구석이 있는 선배라는 생각과 함께 경화는 저 언니가 나쁜 쪽으로 빠진다면 엄청난 악당이 될지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도 해보았다. 아파트와 학교에선 시신 발견에 대한 소문이 퍼지며 경화와 현아 그리고 새롬 세 사람은 다시 한동안 유명세를 치러야 했다. 이번엔 신문사나 방송사에서 찾아온 기자들의 취재에 인터뷰까지 했다. 그러나 그 사이 경찰의 수사는 전혀 진전이 없었다. 효성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시신의 부패가 많이 진행되어 이렇다 할 증거가 나오지 않은 데다 실종 당일의 행적이 불분명하고 목격자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의심이 가는 용의자도 없어서 인근지역 전과자를 대상으로 실종일과 사망추정일 사이의 행적을 확인하는 중이라고 했지만 별다른 소식은 없었다.
꿈은 당연하다는 듯 더 이상 꾸지 않았다. 지하실에서의 충격적인 경험 때문인지 어린 현아나 경화는 한동안 악몽을 꾸긴 했지만 이전과는 다른 보통의 나쁜 꿈일 뿐이었다. 꿈의 공유를 통한 묘한 동질감은 희미해졌지만 네 사람은 오히려 더욱 친해졌다. 효성을 제외한 셋은 학교나 밖에서 자주 몰려다니게 되었고 주말엔 효성까지 합세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이게 되면 죽은 피해자와 그녀의 꿈에 관한 얘기는 빠질 수 없었다.
“우리 꿈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하면 수사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다시 돌아온 놀토를 맞아 모인 자리에서 경화가 안타까운 듯 얘기를 꺼냈다. 여전히 사건에 대한 수사는 진척이 없었다. 어떻게 시신이 거기에 유기되었는지에 대해서 간신히 밝혀진 정도였다. 반대편 설비실과의 연결통로 중간에 지상과 연결된 수직통로가 있었는데 그곳의 입구 자물쇠가 부서진 것이 확인되었던 것이다. 범인은 통로를 통해 시신을 아래로 내려 보내고 자신도 따라 들어갔던 것이다. 그렇다는 건 침수된 구역이 지하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란 얘기였다. 하지만 그런 사실도 수사 진척에 큰 도움은 안 되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털어놓아도 경찰들이 진지하게 들어주기나 하겠니. 헛소리 하는 거라고 생각할걸. 그리고 꿈에서도 범인을 찾을 단서는 별로 없어. 목소리나 로션 냄새 정도잖아. 그걸로 범인을 찾아낸다는 건 불가능해.”
효성이 설명에 현아가 갑갑한 듯 말했다.
“그래도 그 언니 너무 불쌍해요. 나쁜 사람에게 살해된 것도 억울했을 텐데 그런 지저분한 곳에서 혼자 있었다니.”
“아마도 그래서 우리가 그런 꿈을 꾼 게 아닐까?”
경화가 물었다.
“그렇게 춥고 어두운 곳에 버려졌다는 것을 어떻게든 알리고 싶어서 말이야.”
“그래, 아마도 그래서 그런 꿈을 꾸었던 거야. 우리 넷 모두 여자란 공통점도 그 때문이고.”
효성의 얘기에 모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또 공통점이 있다는 거 알아요?”
새롬이 습관대로 검지를 들어 올리며 묻는다.
“어떤 거?”
“모기요.”
“모기?”
현아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새롬을 본다.
“그래, 모기. 왜 우리가 같은 꿈을 꾸었는지. 그러니까 어떻게 죽은 사람의 기억을 공유하게 되었는지 생각해봤거든. 당연히 그런 현상을 일으키게 한 변수, 우리 네 사람이 함께 가지는 공통점을 생각해 봐야지. 효성 언니 말처럼 모두 여자란 점, 그리고 같은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산다는 점. 또 하나, 꿈을 꾸기 전에 모두 모기에 물렸다는 점.”
경화는 그랬나 싶은 생각에 기억을 더듬는다. 분명 자신은 처음 꿈을 꾸었던 날 모기에 물렸다. 그러고 보니 현아도 그 즈음 목을 물렸다. 처음 효성 언니를 만났던 날 다리에 있던 모기물린 자국은 물린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의 것이었다.
“너 말은 그게 원인이란 거니? 우리가 같은 꿈을 꾼 것이 모기에 물려서라고?”
“네, 정확히 말하자면 같은 조건의 모기에게 물렸기 때문이죠.”
“같은 조건의 모기?”
“그래, 어쩌면 모두 같은 모기에게 물렸을 지도 모르고.”
이번엔 경화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언니?”
“그날 지하실에서 봤잖아. 물속에 있던 장구벌레들.”
“으으.”
현아가 몸서리를 친다. 물속에서 꿈틀거리던 징그러운 벌레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 번 상상해봐. 그 물속에 있던 벌레들이 번데기가 되고 모기가 됐어. 그리고 배를 채워야 했겠지. 아마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먹이를 구했을 거야.”
경화의 머릿속에서 영상이 그려진다. 구정물에서 껍질을 까고 나온 모기가 수면 위로 날아오른다. 옆에는 살해된 채 유기된 여자의 시신이 떠있다. 잘린 목에서 흘러나온 피는 아직 채 굳지 않은 상태다. 그 피에 모기가 달라붙는다. 피를 빨아 들인다. 그렇게 배를 채운 모기는 다시 날아오른다. 그리고 어딘가 구멍을 타고 아파트 위로 올라온다. 한 층, 한 층 올라가면서 다시 먹잇감을 찾는다. 그리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운 그녀에게 다가온다. 이불 밖으로 나온 손등위에 내려앉아 다시 날카로운 주둥이를 박는다. 모기는 피를 빨면서 혈액이 굳지 않도록 하기 위한 물질을 내뿜는다는 걸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 물질에 섞여 모기에게 들러붙어있던 죽은 여자의 작은 조각이 따라 몸속으로 들어온다. 소량의 피일수도 있고 아니면 눈에는 보이지 않는 원령의 기운일 수도 있다. 그렇게 그녀의 기억은 자신의 꿈속으로 스며들어왔던 것이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무섭기도 했다. 손에 든 과일 스무디를 마시며 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7월, 방학을 앞둔 여름의 하늘은 쨍쨍한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 상가지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공원엔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휴일을 즐기고 있었다. 아무 걱정 없이 즐겁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끔찍한 살인의 그림자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리 잔인하고 충격적인 일들이라도 결국은 시간이 흐르면 일상에 묻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범죄를 저지른 범인 역시 아무도 모르게 그 일상 속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서인지 몸이 더욱 서늘해진다. 어쩌면 차가운 스무디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개를 돌리자 나머지 셋 역시 굳은 표정이다. 다들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인가 의아해하는데 역한 냄새가 코를 쏜다.
“이거!”
깜짝 놀라 소리치려는 경화의 어깨에 새롬이 손을 얹어 말린다.
“그래 맞아.”
알코올과 민트, 머스크와 후추향 그리고 그보다 독한 기운이 서린 냄새. 그것은 분명 꿈에서 맡았던 범인이 사용하던 로션의 향이었다. 어째서 갑자기 그 냄새가 나는 것인가. 경화는 새롬이 조심스럽게 눈짓을 보내는 쪽을 보았다. 한 남자가 휴대폰을 들고 통화를 하며 그들이 앉아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후줄근한 반판 남방에 반바지, 신발 대신 조리를 신은 남자는 30대 정도로 보인다. 중키에 적당히 살이 오른 체형, 머리는 짧게 깎았고 얼굴은 딱히 도드라지지 않는 개성 없는 인상이다. 그저 휴일을 즐기러 나온 평범한 남자의 모습. 하지만 그들은 알 수 있었다. 그의 향기에서 사악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다음 주는 좀 곤란하고요. 그 다음 주에야 될 거 같은데......’
그들이 앉은 앞을 지나치는 짧은 순간 여덟 개의 귀는 모두 남자의 목소리를 향하고 있었다. 귀에 익은 목소리,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그 목소리.
‘여기 숨어 있었구나.’
꿈속에서 속삭이던 그 목소리다.
네 사람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건 자신들의 의지에 의한 게 아니었다. 마치 무언가가 조종하는 것처럼 몸이 멋대로 움직인 것이다. 하지만 왠지 거기에 저항할 맘은 생기지 않는다. 그저 거기에 몸을 맡긴 채 따라 움직여야만 할 것 같았다. 남자는 그 사이 공원을 지나 큰길 쪽으로 향한다. 횡단보도 앞에 멈추어선 남자는 여전히 통화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네 사람은 소리도 없이 그의 곁으로 다가선다. 효성이 그의 옆에 가서 선다. 그녀가 미니스커트 아래로 뻗은 길고 예쁜 다리를 드러나 보이게 포즈를 잡자 남자의 시선이 그 쪽으로 향한다. 효성의 다리를 훑어보던 남자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머쓱한 표정으로 씩 웃는다. 효성 역시 눈웃음을 지어 보인다. 순간 차량 신호등 불빛이 황색으로 바뀐다. 신호를 놓치지 않으려 가속을 붙인 차량 하나가 횡단보도 쪽으로 쏜살같이 달려온다. 뒤에 선 현아가 한눈을 팔고 있던 남자의 등을 거칠게 떠밀었다. 경화는 다리를 뻗어 남자의 다리를 건다. 균형을 잃고 휘청대며 남자가 허우적댄다. 새롬이 온 힘을 다해 다시 한 번 남자를 밀친다.
‘끼이익, 쾅!’
도로로 튕기듯이 뛰쳐나간 남자를 달려오던 차가 그대로 받아 버린다. 남자의 몸은 이상한 각도로 뒤틀린 채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네 사람은 멍하니 그런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들이 공유한 것은 사자의 기억만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모기의 몸에 묻어 옮겨진 것은 그녀의 강렬한 의지였다. 자신을 죽인 살인범에 대한 원한을 담은 복수에의 의지. 남자의 몸이 한여름 태양빛에 달아오른 아스팔트 위로 떨어졌다. 시뻘건 피가 추상화를 그리듯 도로에 흩뿌려진다. 그리고 어디선가 모기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끝-
등장인물 이름 문제를 어찌해야 할까요.. 아리영이니 노숙자 같은 이름 지을 센스는 안되고
그냥 만든 이름들은 하나같이 평범해서 나 자신도 종종 헛갈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