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사정으로 얼굴은 자주 보지 못하지만
서로 술만 마시면 보고 싶다고 전화를 해대는 친구가 한 명 있어요.
흔히 말하는 소도둑 같은 얼굴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친구죠.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면 보는 순간 웃음을 터뜨리거나 겁을 집어먹거나 둘 중의 한 가지 반응이 나올 만한 그런 외모지만
아직도 자기 방에 중학교 시절에 숙제로 쓴 시를 액자로 걸어놓을 만큼 감성적인 면도 있고 엉뚱한 면도 있는 친구죠.
언젠가 그 친구랑 전화 통화를 할 때였어요.
핸드폰이 생긴 이후로
사람들은 왜 전화를 하게 되면 항상 상대방이 어디 있는지부터 물어보는 걸까요?
아무튼 저도 그 친구가 지금 어디 있는지 물었죠.
응, 지금 대전에 있어.
응? 대전에는 왜?
그 녀석 집은 서울이거든요.
지금 극장에 영화 보러 왔어.
영화? 누구랑 갔는데?
그냥 나 혼자.
대전에 혼자 있고, 지금 영화를 보려고 한다? 이쯤되면 대전에는 무슨 일 때문에 갔는지 궁금해지잖아요?
그래서 물었죠.
대전에는 왜 갔는데?
영화 보러 왔다니까.
무슨 영환데 대전까지 가서 봐?
그냥 아무 거나.
아무 거나? 그런데 왜 대전에 갔어?
영화 보러 왔다니까?
무슨 말이야? 대전에 아는 사람 만나러 간 거 아냐?
내가 대전에 아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냥 영화만 보러 온 거야.
대전에서만 하는 영화야?
아니, 그냥 아무 영화나 보러 왔다니까?
그럼 서울에서 보면 되지, 왜 대전까지 가서 봐?
그냥 대전에서 보고 싶으니까.
헷갈리는 대화였죠.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정말 몇 분 동안 저런 말들만 했던 것 같아요.
왜 대전에 갔는지, 왜 혼자서 영화를 보는 건지,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친구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저는 잠시 상황을 정리해 봤어요.
그러니까, 친구의 말에 의하면...
이놈은 그냥 대전이라는 도시에서 영화가 보고 싶어서 혼자 서울에서 대전까지 내려간 다음 아무 영화나 보려고 극장에 왔다는 말이었죠.
임마, 그게 말이 돼? 너 뭐 나한테 숨기는 거 있지? 대전에 왜 갔어?
아, 정말 영화 보러 왔다니까? 가끔 대전에 와서 영화 봐.
정말이야?
그래, 그렇다니까.
다음에 만나서도 물어봤지만 정말이었어요.
그 녀석은 그냥 영화만 보러 대전에 갔다가 돌아오는 거였어요.
다른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 당시에는 참 엉뚱한 놈이라는 생각만 하고 말았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는 가끔 그 얘기가 생각났어요.
왠지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혼자 대전에 가서 영화 보고 오면 재미있을까...
다음에는 나도 꼭 한 번 그렇게 해봐야지...
하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그래 본 적은 없네요.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말이에요.
그리고 또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하루는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서,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낯선 도시로 떠나서,
택시를 붙잡고 기사한테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이 도시에서 제일 번화한 거리로 가자고.
그러면 기사는 요란한 불빛 속으로 저를 안내하겠죠.
택시에서 내린 뒤에는 한참 동안 거리의 술집을 기웃거리다
마침내 사람들로 북적이는 어느 술집을 골라 들어가는 거예요.
그렇게 혼자 술을 한잔 마시는 거죠.
그리고 잠들기 전에는
모텔 창가에서 괜히 도시의 불빛들만 한참 바라보는 거예요.
담배도 한 대 피우면서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