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게시판에서 김모씨가 ‘OOO에 관한 단상’이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글의 내용인즉, 최근에 논란이 된 OOO의 어떤 행동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짧게 정리한 것입니다. 이를 본 (OOO를 옹호하는) 이모씨가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OOO를 단상에 올리느냐, 내가 마찬가지로 XXX에 대한 단상을 만들면 기분 좋겠냐?”라고 이를 비판했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분명합니다. 김모씨는 OOO에 관한 단상(斷想)을 적어 올렸지만, 이모씨는 이를 OOO에 관해 공개적으로 왈가왈부하는 단상(壇上)을 만들자는 걸로 오해한 것입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한자표현을 달리하는 단상이 몇 가지 있습니다.
단상(單相) 물리, 생물 용어의 하나, 복상의 반대.
단상(檀像) 박달나무 조각상
단ː상(短喪) 1년만 상복을 입는 것
단상(壇上) 교단, 강단 등의 단 위
단ː상(斷想) 단편적인 생각
저 중 한국어 언중이 가장 자주 쓰는 것은 단상(斷想)이고, 그다음은 단상(壇上)이겠습니다. 단상(斷想)의 ‘단’은 장음이고, 단상(壇上)의 ‘단’은 단음이라는 것까지 알면 더 좋겠지요. 그러나 한글맞춤법은 공식적으로 장단음 표기를 하지 않으므로 한자를 함께 적지 않는 이상, 해당 단어가 斷想인지 壇上인지는 맥락에 맞추어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동의할 법한 이야기입니다만, 그다음에 어찌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생각이 달라집니다.
한자혼용/병용론자들은 이러한 예를 한국에서 여전히 한자교육과 한자 사용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사례의 한가지로 간주합니다. 그냥 한자로 ‘斷想’이라 써놓고 단상(단편적인 생각)이라 읽어내는 능력도 필요하지만, 한글로 ‘단상’이라고만 쓰여 있어도 원래 한자표기를 추측하여 해석을 달리하는 능력 또한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국가의 언어정책상 한자를 실제 표기하지 않더라도,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한자 교육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저런 혼란이 발생하는 것은 다른 한자어를 같은 한글로 표기되기 때문이죠. 이에 대한 올바른 해결책은 ‘한자교육강화’가 아니라 ‘다른 한글 표기’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단상(斷想)과 단상(壇上)에 대하여 각자 새로운 한글표기를 마련하든지, 아니면 어느 한 쪽에 대해서만 새로운 표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언중의 어휘 쓰임새를 볼 때 단상(壇上)을 뜻하는 새로운 표기가 만들어지는 것이 좋겠습니다. 공식적으로 추진하지 않더라도 그로 말미암은 혼란이 일정 정도를 넘으면 언중 내에서 자연히 새로운 표기에 대한 압박이 생겨나고, 뭔가 결과물이 나올 것입니다. 그것은 순 한글 어휘일 수도 있고 한자에 근거한 어휘일 수도 있습니다. 해괴한 인터넷 신조어일지도 모르지요.
한글전용으로 말미암은 혼란은 과도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의 세대까지는 ‘단상’이라 써놓고 맥락에 따라 단상(斷想)과 단상(壇上)으로 구분하여 해석하는 능력을 갖춰야 할 것입니다만, 다음 세대부터는 그에 해당하는 서로 다른 한글 어휘를 배워야 하고, 그런 식으로 한국어에서 한자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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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임 // 이렇게 적었지만, 개인적으로 한자를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한자는 흥미롭고 독특하고 풍부한 문자체계입니다. 서예-캘리그라피-타이포그래피의 차원에서도 한자는 무궁무진한 상상력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밥벌이를 위해서도 여전히 한자는 필요합니다.
저는 다행스럽게도 중학교 한문수업 이전에 가정에서 자연스런 한자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한자를 배운 방법은 ‘국한문혼용성경 읽기’(그리고 세로쓰기 무협지…)였습니다만, 그 방법을 자식에게 권할 엄두는 내지 못하겠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가르쳐야겠죠. 아무리 한글전용이 자리 잡는다 하더라도 한자를 배울 필요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젊은이들은 여전히 한자를 사용하는 주변국의 언어를 배우려면 (혹은 일본만화를 읽으려면) 먼저 한자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외국어로서 배우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