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하니 떠오르는 사람

  • 소년
  •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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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방학 시즌에 과외를 받았어요.

서울대 출신의 윗집 오빠였는데

내심 기대를 했나 봅니다.

첫 대면에서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죠.

삐쩍 마른 몸에, 고배율의 안경을 쓴... 순간 '멸치'가 떠올랐어요.

첫 날 수학 정석 책을 2권 사와서

절 한 권 주고

자기가 한 권 보면서

혼자 책에 얼굴 파묻고 중얼중얼... 하면서 설명해줬어요.

한 70-80%만 알아들었나봐요.

한 달 과외하면서 눈을 마주친 기억이 한번도 없었죠.

가끔 모르는 거 물어보면,

역시나 각자의 연습장을 앞에 두고 코를 받고...

뾰족한 연필로 뒷면 2-3장에 기스날만큼 팍팍 써가며 설명해줬어요.

속으로 저 연필에 찔리면 죽음이겠다.. 뭐 이런 망상을 했어요.

같은 질문 두 번 정도 반복할 때도 있잖아요. 전에 나왔던 문제인데 까먹고...

그럴 땐 속으로 한숨을 한번 들이쉬고 그 뾰족한 연필을 들고 다시 설명을 해주셨죠.

지금 생각하면 대인기피증 같은 증세가 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구요.

엄마한테 말했더니 IQ가 높고 머리 똑똑한 사람들은 다 그렇다는...;; (응?)

중반 쯤엔 서울대엔 가지 말아야겠다는 희한한 생각을 하기까지 이릅니다.

(공부 못하는 핑계를 이상한 곳에 접목시켜 합리화하는 가당찬...;;)

과외 마지막 날, 책 선물을 받았어요.

앤 타일러의 '종이시계'

당시 퓰리처 수상작이었는데 희한하게 5-6번 정도 시도했는데 계속 실패했어요.

몇 년에 걸쳐 읽으려 했지만 절대 안 읽히는 마법과도 같은 책.

아직도... 책장 속에 있습니다.

또 버리지는 못하겠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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