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 milk & Honey
  •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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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상대와 의견이 맞지 않을 때, 단순한 견해차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상대가 옳지 않은, 분명히 본인에게 피해가 갈 선택을 하고 있는 경우 진심전력으로 설득했습니다, 한번, 두번, 세번, 몇 번이든. 그러다 결국 상대의 뜻대로 일이 진행되어 가게 되면 저는 상처입구요, 결국 파국을 맞이할 때 함께 침몰하며 또 한 번 다쳤지요. 요즘 이런 게 편해져 부상을 덜 입습니다. 그는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자신의 견해가 옳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견해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옳다고 생각한 것이므로 이딴 설득에 제 영혼을 잘라주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렇습니다. 견해차가 납니다. 잘못된 선택이란 확신이 듭니다. 일차 설득을 합니다. 씨알도 안 먹힙니다. 포기합니다. 상대의 뜻대로 예이예이 넙죽넙죽 맞춰줍니다. 개판 납니다. ‘모든 건 당신의 선택’이었음을 은연중에 상대에게 일깨워줍니다. 나도 손해 보면서 한 발 뒤로 빠집니다. 내 자신에게 미안한 감이 들지만 나도 그만큼의 양으로 비겁하기에 이건 쌤쌤이란 생각이 들면서 안 미안해집니다. 두 손으로 양 뺨을 ‘짝’ 소리나게 갈깁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습니다, 다음 일상을 살아갑니다. 시간이 순해져서 좋긴 한데 살짝씩 우울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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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의 소설을 읽고 있습니다. ‘쐬주’와 ‘신풍근 배커리 略史’를 필사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성석제의 ‘첫사랑’, 헤세의 단편동화 몇 편, 이 후로 세 번째와 네 번째 필사를 차지할 작품들입니다. 췌장암으로 유명을 달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뒤에 연표를 보니 3월 11일 진단을 받아 4월 22일에 세상을 떠났군요. 겨우 한 달. 1997년의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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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엔 선배언니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몇 년만에 처음으로 일요일을 개인적인 용도로 쓸 수 있어 아주 기뻤지요. 전국 여기저기 흩어져 살아 오랜만에 만난 선후배들이 카페의 스터디룸에 모여 수다를 실컷 떨었습니다. 학교 근처라 음료 값이 얼마나 싼지. 세 단어 이상의 이름을 가진 음료들, 그러니까 평소엔 제일 저렴한 메뉴인 아메리카노 혹은 오백 원만큼의 허세를 부려 카페 라떼를 지명하며, 이건 분명 경제사정 때문이 아닌 그저 ‘취향’임을 강조하던 저도 모카 뭐시기 저시기를 호기롭게 불러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셋 혹은 넷 당 한 그릇씩 돌아가게 팥빙수도 몇 개 시켰는데 철모만한 사발에 야구공만한 아이스크림 볼을 달고 등장합디다. 그래놓고 고작 삼천 원! 조용하던 카페는 우리 팀으로 인해 ‘여고 앞 분식점 분위기’가 되고(‘동네 오픈 돼지갈비집 아줌마s 계모임’으로 보이는 건 읽으시는 분의 환시입니다, 네-_-) 저는 제가 앉은 자리 근처에서 어쩐지 이전 손님 것으로 보이는 가슴뽕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즐거웠습니다. 스터디룸에서 스터디 안 하고 뭔 일이 있었던 것인지...
이야기의 소재는 아이들 교육으로 옮아 갑니다. 한 친구가 초등학교 일학년 부모 아무나 하는 것 아니라는 걸 역설합니다. 준비물을 준비하는 데 이건 아이 준비물이 아니라 엄마 준비물입니다.
- 전문가용 수채물감을 검정 철제 팔레트에 짜서, 말려서, 전문가용 몇호 몇호 붓과 함께 준비할 것, 검정 바둑알 30개, 하얀 바둑알 30개를 가로 세로 13, 15센티 락앤락 통에 담아 준비할 것, 이 정도 미션은 초급이야.
- 그럼 최종보스는 어떤 거야, 도대체가.
- 아니 뭐가 그래? 우리 때는 전부 우리가 준비했잖아, 그만큼 쉬웠구. 그런 거 소박하게 준비하는 과정이 다 교육 아니야?
이런 저런 이야길 들으면서 ‘나도 초등학교 일학년 학부모이니 뭔가 발언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만으로 지쳐버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화제가 다른 곳으로 돌다 각자가 지고 있는 삶의 짐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 갑니다. 억대의 전세금을 사기꾼에게 떼인, 억지쓰는 시댁어택으로 고생하는, 자폐아 아이의 학교 적응문제에 관한, 봐도봐도 네모진 아파트의 물결이 끝없이 펼쳐진 환경에 답답한, 우리집이 다른 집보다 가난함을 제대로 인지한 아이를 둔 한부모의(이건 접니다), 얼른 태내에 들어서주지 않는 아기에 대한... 서로 아무 해결도 내려주지 못하지만 헤어진 다음, 서로 오늘 행복했다는 문자를 주고받았습니다.
말만 하는 수다는 피곤하지만 서로 들어주는 대화는 충만합니다. 저는 이 사적인 모임에 대한 프라이드가 큽니다. 히키코모리 대인기피증녀로서의 제가 가진 유일한 사교장소이기도 하고 남편이 없는 제 앞에서 남편자랑, 결손가정 한부모인 제 앞에서 결손가정 아이들에 대한 험담을 해도 전 정말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요. 그런 화제가 객관적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아니라 그만큼 신뢰와 함께 한 시간이 두터워 아무렇지도 않은 것입니다. 음.. 여기에 대해선 글로 설명을 다 못하겠습니다. 표현이 달려요. 그냥 단지 하나. 이 사람들이 제 눈치를 봐서 화제를 이것저것 조심하기 시작하면 이들과의 인연도 여기서 끝이로구나, 하고 저는 침잠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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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필통 속에 매일매일 스티커나 조그만 주전부리 등과 함께 쪽지편지를 써서 넣어주고 있습니다. 내용이래봤자 별 것 없지만, 아이는 요즘 엄마편지에 1호, 2호 이름을 붙여가며 그것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10호 모으면 상품 달랍니다.
얼마 전 씽크빅 숙제를 하는데 네 칸 만화 마지막에 말풍선 채워 넣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산신령과 조선시대 한 선량한 시민이 그 작품의 등장인물들로 '조,선,시'는 목소리가 작고 먼저 말 걸지 못해 친구를 못사귀는 것에 대해 산신령에게 하소연 하며 이 문제의 해결을 소원으로 빌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해결해야 하는 것은 산신령의 대답으로 달린 마지막 말풍선. 대부분의 아이들이 '목소리를 크게 해봐' '니가 먼저 친구들에게 이야기 해봐' 등을 적는다지요. 우리 딸은 이렇게 적었습디다.

"그 소원이 이루어질리 없다"

하아... 네. 자기 일은 자기가 해결해야죠.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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