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 세상에 가롯 유다같은 사람들이 많아졌으면..(펌글)
출처 : 딴지일보..
어떤 분이 개신교 목사님의 진보적 성향의 딴지일보 기사를 반박하는 것을 작성해서
올렸는데 나름대로 참신한 시각에 쓴거라..한 번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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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타.
시리즈 끝낸다고 말해놓고 한 달도 안돼서 또 글을 끄적대고 있으니
나 스스로도 쪽팔려 하는 중이야.
그런데 딴지 대문에 실린 ‘한국 개신교의 우경화’라는 글을 읽고 있자니
이 수다스러운 입이 조잘거리고 싶은 걸 참을 수가 없더라. -.-
(씨바, 내 입이 이렇게 경망스러울 줄은 나도 몰랐어)
다시 말하지만 앞으로 내 시리즈를 계속해서 쓸 생각은 없어.
다만, 딴지 대문에 자신만의 성경 해석을 기반으로 한 미쉬파트님의
글이 연재될 경우엔 그 글에 대한 반박을 조목조목 써서 올릴 거야.
그러니까 이전에 썼던 시리즈랑 달리 앞으로 내가 독투에 시리즈를 쓰는 건
미쉬파트님이 쓴 글에 대한 스토킹이 될 거다.
난 종교인들을 바라볼 때 골수 근본주의자보다 사실 미쉬파트님과 같은
나름 진보적인 기독교 내부의 사람들에게 더 못마땅한 부분이 있어.
왜냐고?
그들로 인해서 종교가 생명연장의 꿈을 이뤄가고 있기 때문이지.
미쉬파트님이 어떤 성경 해석을 하든 사실 난 관심이 없어.
다만 그가 쓴 글이 딴지 대문에 올라가고 그걸 읽은 이들에게
‘맞아, 하나님의 뜻은 원래 그게 아닌데 인간들이 잘못 해석해서
정치 목사가 나오고 뉴라이트 또라이 목사들이 나오는 거지’라고
한국 개신교에게 면죄부를 발급하는 생각을 심어주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거야.
헬리코박터 유산균 요구르트도 아니고
신이 원치도 않았던 현대적인(?) 성경 해석을 통해
종교에 면죄부를 발급해주며 생명 연장을 꿈꾸는 사람들.
난 그들이 말하는 성경 해석을 조목조목 반박해서라도
기독교의 문제란 바로 성경 그 자체란 걸 이야기하겠단 말이야.
난 종교가 좌,우 어느 편에 치우쳐서 정치색을 띠면 안된다고 생각해.
미쉬파트님도 자신의 글 속에서 이 부분은 인정하고 계시지.
그런데 종교가 정치색을 띠면 안된다는 미쉬파트님의 글이
뒤로 가면서 묘하게 논조가 바뀌시두만.
종교가 정치색을 띠면 안되지만 신은 공의로움을 통해
이 땅에서 정의와 진실이 바로서길 원한다고 논조가 바뀌더란 말이야.
아래는 미쉬파트님의 글 말미에 실린 내용이야.
과연 하나님께서 지도자가 무슨 짓을 해도
덮어놓고 충성하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까?
온갖 불의와 불법으로 사람들을 괴롭히고
거기서 나오는 이익을 특정한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어도
그것이 옳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까?
기득권을 가진 자들에게 붙어서 그들에게 아첨하여 그것을 대대손손 누리고 살라고,
그것이 축복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까?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조용히 예배만 드리고
세상의 일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살았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가 해볼까?
Yes!!!!!!!!
단언하지만 신은 인간들의 현실 세계에 관심이 없어!
저 질문들의 내용처럼 신이 불의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진 않지만
적어도 신은 저런 불의에 대해 눈감은 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단 말이야.
그건 성경 역사 전체를 통해서 드러난 신의 성품이야.
구약부터 신약까지 야훼는, 예수는, 인간 세상에 관심이 없었다고!
신이 관심을 두는 건 오직 하나, 자신이 사랑받는 것 뿐이야!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지지고 볶고 전쟁을 하고 양민을 학살하고
무자비하게 백성들을 착취해도 신은 인간들이 자기만 사랑해주면
만사 O.K라는 생각을 가진 존재야.
물론 아니라고 말할 기독교인도 많겠지만
누구 말이 맞는지 지금부터 성경 공부를 해보자.
유대인들은 수천 년의 역사를 살아오면서 현재까지 그 민족성을 지키고 있지만
사실 그들이 통일된 하나의 왕국을 유지한 건 고작 백여 년 동안뿐이야.
이스라엘은 B.C 1052년부터 932년까지 120년 동안 통일 왕국을 이뤘지만
그 이후엔 왕국이 남북으로 분열되고 말아.
그 후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고
남왕국 유다는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패망하게 되지.
그렇게 나라를 잃은 유대인들은 수천 년간 세계를 떠돌며
포로나 난민으로 살아가게 돼.
그러니까 성경 속에서 정치를 얘기하려면
120년 동안의 통일 왕국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는 거지.
이 통일 왕국을 통치한 왕은 딱 3명인데 사울, 다윗, 솔로몬이야.
그 전까지 이스라엘은 제정일치(祭政一致),
그러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통치자 노릇까지 했던 원시부족국가였었어.
이 제정일치 시대의 마지막 제사장이 사무엘이란 인물이었는데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인물이었지만 아쉽게도 자식 농사는 실패한 아비였어.
사무엘이 늙어서 자신의 직분을 다 소화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아들들을 사사(士師. 제정일치의 통치자)로 세웠는데
이 녀석들이 인간 말종들이었던 거야.
아비랑 달리 돈을 밝히고 뇌물을 받아가며 재판을 하는 등
사무엘과 신의 얼굴에 먹칠을 했던 거지.
그 꼴을 보다 못한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사무엘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어.
사무엘상 8장
5. .....보십시오. 이제 당신은 늙으셨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본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나라들과 같이 우리에게도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십시오.
6 사무엘은 왕을 세워 달라는 그들의 요구를 기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여호와께 기도하여 물어 보았다.
7 그러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백성들이 너에게 한 말을 다 들어주어라.
그들은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
더 이상 내가 그들의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
이 장면을 보면 삐지기 잘하는 하나님이 또 삐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미쉬파트님 이야기대로라면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니까
타락한 사무엘의 자식들을 죽여버려서(이런 짓 잘하는 분이잖아) 정의를 바로 잡으면 될 텐데
오히려 제사장들의 타락을 지적하는 백성들의 민심을 언짢게 여기고 있는 거야.
‘나(하나님)를 버려 더 이상 내가 그들의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고
소심하게 삐지면서 말이지.
신에게 있어서는 제사장들의 타락보다
자신이 세운 제사장들을 비판하는 백성들의 민심이 더 고깝게 들렸다는 건데
이래도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일까?
어쨌든 이렇게 잘 삐지고 애정결핍증에 걸린 하나님이 결국 왕을 세우도록 허락하는데
그래서 뽑힌 이스라엘 최초의 왕이 사울이야.
사실 사울은 인간의 시야에서 보면 썩 괜찮은 왕이었어.
허우대도 잘 생겼고 전쟁에도 능했으며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는 방법도 알고 있었거든.
그런데 그런 사울 왕이 신에게 버림을 받는 이유가 뭔지 알아?
사울 왕이 통치하던 시기에 이스라엘은 아말렉이란 민족과 전쟁 중이었는데
하나님은 사울에게 아말렉 민족을 죽이되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가축들까지
싸그리(!) 학살해 버리라는 명령을 내렸어.
뭐 이런 학살은 사랑의 하나님이 워낙 자주 내린 명령이라 새삼스럽지도 않지.
그런데 사울은 전쟁에서 승리한 뒤 아말렉 백성들을 다 학살하긴 했지만
어린 양과 송아지 같은 것들은 죽이지 않고 전리품으로 획득해 왔어.
시리즈를 쓸 때 계속 날 비판했던 사람들이 한 말이 그거잖아.
성경은 그 시대 역사와 가치관을 염두에 두고 해석해야 한다고 말이야.
역사를 통틀어 어느 나라에서든 전쟁에 참여한 병사의 입장에서 전리품이란
바로 전쟁에 참가하는 가장 큰 이유야.
삼국지만 읽어봐도 알겠지만 전쟁에서 이기고 난 뒤 병사들에게 전리품을
챙길 기회를 주지 않으면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장군들은 통솔력을 잃게 돼.
사울과 부하들은 그래서 신의 명령을 어기고 전리품을 챙겼던 거야.
갓난 아기까지 싸그리 죽여버리라고 말씀하신 사랑의 하나님이
사울에게 발끈한 이유는 딱 하나야.
자기 말을 따르지 않았다는 거.
내가 지난 번에 성경 속의 죄란 개념에 대해 설명했을 때도 말했지만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선이라는 건 법을 잘 지키고 선행을 베풀고, 이런 게 아니야.
사기를 치든 사람을 죽이든 대통령이 돼서 4대강이랍시고 지 잇속만 챙겨도
하나님 말씀만 잘 들으면 착한 놈이 되는 거야.
그래서 성경 속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란 사람들은 대부분 찌질하고 못된 짓을 일삼지만
회개 기도 한 방이면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받게 되지.
반대로 법 없어도 살 것 같은 착한 사람이라도
신의 명령을 어기면 죄인이고 죽일 놈이 되는 거야.
사울은 그렇게 신의 명령을 어긴 죄로 하나님의 눈 밖에 나게 돼.
신은 사울에게 삐져서 이렇게 말하지.
사무엘상 15장
11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시공을 초월한 전지전능한 신이란 양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운 걸 후회한다......?
결국 신은 사울이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을 거란 것도 몰랐단 말이잖아?
뭐 이런 말도 안되는 신의 한계에 대한 비판은
시리즈 앞에서도 여러 번 얘기했으니 넘어가자.
중요한 건 결코 신은 현실 세계의 인간들의 삶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는 거야.
그의 관심은 오직 인간들이 자기 말을 듣는지 안 듣는지,
자기를 사랑하는지 미워하는지에만 관심을 쏟을 뿐이란 거지.
그래서 결국 사울은 신의 눈 밖에 나게 됐고
하나님은 다윗을 2번 타자로 내세워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게 되지.
사울은 신의 마음이 자기에게서 떠났다는 것을 알고
다윗을 죽이려고 안간힘을 쏟게 돼.
그래서 다윗은 몇 번이고 사울에게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도망다니다가
어느 날 아비새라는 부하와 함께 단 둘이 사울의 군대 진지 안으로 잠입해
그가 잠든 머리맡까지 침투했어.
사무엘하 26장
8 아비새가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당신의 원수를 물리쳐 이기게 해 주셨습니다.
내가 이 창으로 사울을 땅에 꽂아 버리고 말겠습니다.
두 번 찌를 것도 없이 단번에 해치우겠습니다.”
9 다윗이 아비새에게 말했습니다.
“사울을 죽이지 마시오.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사람을 해치고도 죄를 면제받을 사람은 없소.”
성경 속에서 기름 부음이란 건 선지자나 제사장, 왕에게 행해지는 의식으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라는 증표야.
그러니까 다윗은 하나님이 세운 왕인 사울을 감히(?) 자기 손으로 해칠 수 없다고
말하는 거지.
그래서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의 머리맡까지 잠입하고서도 그를 죽이지 않아.
다만 자신이 삼엄한 군사를 뚫고 사울의 머리맡까지 왔다간 사실만 증명하려고
사울의 창과 물병을 갖고 진지를 나오지.
이 장면은 목사들이 통치자에 대한 충성을 얘기할 때 자주 써먹는 성경 구절이야.
그러니까 왕은 하나님이 세운 존재니까 함부로 비판하거나 거역하면 안된다고
신자들에게 세뇌를 시키거든.
실제로 구약도 아닌 신약 속에 이런 구절이 있어.
1 누구든지 정부 당국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력이 다 하나님에게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2 그러므로 그 권력을 거역하면 하나님이 세우신 권력을 거역하는 것이 되고
그런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로마서 13장
이게 바로 기독교라는 종교가 기득권층을 위한 종교라는 반증인 구절이야.
이번에 대문에 걸린 미쉬파트님의 글을 보면
불의에 항거하는 게 올바른 성경 해석인양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 성경에선 그 반대로 통치자의 권력에 거역하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고
심판을 받을 거라고 협박하고 있단 말이야.
저 구절을 적은 사도 바울은 유대인이었지만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어.
식민지 백성이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사도 바울이 일반적인 유대인과 달리
기득권층의 엘리트였다는 말이야.
그 당시에도 유대인들 중엔 로마의 압제를 벗어나려고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사도 바울은 그 와중에 로마 시민권을 획득한, 우리나라의 역사로 따지면 친일파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단 말이지.
그런 바울이 현세의 권력에 복종하라는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모든 권력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니까 로마 황제에게도 복종하는 게 당연하고
행여나 로마 황제에게 거역이라도 하면 그건 하나님을 거역하는 거라고 가르치고 있는 거지.
.....뭔가 욱하고 치밀어 오르지 않냐?
매국노 이완용이 일본 천황에게 복종하는 게 신의 섭리라고 조선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거잖아?
저게 바로 신약 성경을 절반 가까이 저술한 사도 바울이란 인물이 갖고 있는 정치관이고
현실 세계를 향한 기독교인의 자세인 거야.
그래서 독재자 박정희를 우리 민족을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고귀한 대통령이라고
교인들에게 설교하는 목사들이 있고 광주에서 학살을 저지른 전두환을 위해서
축복 기도해주는 목사들이 있는 거야.
(우습게도 그런 목사들일 수록 고 김대중, 고 노무현 대통령은 빨갱이라고 비판하더라)
앞서 사무엘의 경우에서도 봤지만
하나님에게 있어선 적어도 정의와 공의로움이 이 땅에 서는 것보다는
부정부패한 독재자라도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라면 그에게 충성하는 게
옳다는 거야.
그러니 독재자의 횡포에 절대로 반기를 들어서도 안되고
나라잃은 백성들이 독립운동을 해서도 안되며
권력에 순응해 그저 신의 말씀만 따르라고 말하고 있는 거지.
그럼 그 다음 3번 타자 솔로몬.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솔로몬의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거야.
솔로몬의 선택이란 TV 프로도 있을 정도로 솔로몬이라고 하면
지혜의 왕이란 타이틀이 붙어있는 사람이지.
그런데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마지막 왕인 솔로몬에 대해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착각하는 게 있어.
솔로몬은 하나님의 축복을 엄청 받아서 부와 권세와 지혜까지 얻은 왕으로 알고 있는데
진짜 솔로몬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인물일까?
정답은 NO야.
솔로몬은 자신의 인생 말기에 이방인 여자들을 왕궁에 들이기 시작했는데
아내만 7백 명, 첩은 3백 명에 이르렀어.
(다시 성경 속 빠굴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지만 지면 관계상......-.-)
이방 여자를 아내로 들이지 말라는 신의 명령을 어긴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첩들이 믿고 있는 이방의 신들을 솔로몬이 섬기기 시작했다는 거였지.
열왕기상 11장
7 그는 또 모압 사람의 더러운 신 그모스와 암몬 사람의 더러운 신 몰렉을 위해
예루살렘 동쪽 감람산에 산당을 지었으며
8 외국에서 데려온 자기 아내들이
그들의 신들에게 분향하고 제사 드릴 신전까지 지어 주었다.
9-10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두 번씩이나 나타나셔서
그에게 이방 신들을 섬기지 말라고 경고하셨으나
그는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솔로몬의 마음이 자기에게서 떠난 것을 보시고 분노하시며
11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와 맺은 계약을 어기고 내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
그러므로 내가 반드시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겠다.
솔로몬은 다윗에게서 물려받은 이스라엘 왕국을 더욱 부강하게 만든 왕이야.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은 것 뿐,
나라의 통치자란 측면에서 본다면 그는 위대한 왕이라고 할 수도 있단 말이지.
(씨바, 궁전에 천 명의 여자를 두고 빠굴을 뜬 건 부러운 일이지
그 당시 왕들치고는 잘못이 아니잖아. -.-)
결국 솔로몬은 살아 생전엔 그의 통치력으로 인해 통일 왕국을 유지하지만
그가 죽은 후엔 그 아들 대에서 이스라엘 왕국이 남북으로 분열하게 돼.
하나님은 왕으로서 솔로몬이 가진 능력이 미흡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로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켜 버렸단 말이야.
그런 신에게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 개개인의 삶은 중요하지 않아.
자기를 따랐던 솔로몬 왕이 배신했다는 이유만으로 이스라엘 전체를 저주해 버렸단 말이지.
앞서 얘기했지만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을 마지막으로 통일 왕국이 와해되어
유대인들은 수천 년 동안이나 타민족의 포로나 난민으로 살아가게 된다고.
그 이유가 단지 솔로몬이 신을 배신했기 때문이라면.....
이 편협하고 옹졸한 신을 어떻게 바라봐야해?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통일 왕국을 다스렸던 사울, 다윗, 솔로몬의 이야기를 했는데
이 이야기 어디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느낄 수 있지?
애정결핍 증상을 가진 신의 편협한 질투 말고
미쉬파트님이 말하는 현실 세계에서의 정의와 공의로움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느냔 말이야.
좋아, 또 이렇게 구약 이야기만 하면
신약에서 예수의 가르침은 다르다고 말하겠지?
그럼 내가 물을게.
예수의 가르침 중에 그 당시 로마의 식민지로 세금을 삥 뜯기고 있었던 유대인들을 위한
현실 속의 정의를 세우라는 말씀이 한 마디라도 있던가?
예수가 식민지 이스라엘을 위해 한 말은 이 한 마디 뿐이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가이사=로마 황제 카이사르)
이 말은 예수를 곤란에 빠뜨리려던 바리새인들이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가 물은 것에 대한 예수의 답변이었어.
만약 예수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게 옳지 않다고 대답하면
반역죄로 로마에 신고하려 했고
세금을 내는 게 옳다고 말한다면 식민지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에게
로마의 권위에 굴복하라고 말한 셈이 되니 백성들의 반감을 사게 될 거였지.
그러자 예수는 세금 낼 동전에 새겨진 로마 황제의 형상을 가리키며
20 .....이 초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21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 하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2장
그러니까 예수가 말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은
사실 바리새인들의 함정을 피하기 위한 훌륭한 답변이었던 거지.
문제는, 그 답변 속에 예수의 진심이 담겨있었다는 거야.
단순히 말의 함정을 언어 유희로 빠져나간 게 아니란 말이지.
예수는 식민지 이스라엘의 독립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어.
그의 관심은 오직 인간의 영혼에 있었지.
죽음 이후의 구원과 영생을 생각한다면 예수의 가치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그러니 예수에겐 인간의 구원만 관심이 있을 뿐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로 억압당하든 유대인들이 세금을 착취당하든
그건 관심사가 아니었단 거야.
지나친 해석이라고?
천만에.
앞에서 권력에 순종하는 게 신의 뜻이라고 열변을 토한 사도 바울의 이야기를 봐도 그렇고
예수를 배반한 가룟 유다의 경우를 봐도 그렇고, 내 말은 조금도 지나친 해석이 아니야.
가룟 유다는 왜 예수를 배신했을까?
가룟 유다가 예수를 배신한 이유는 은전 30냥에 눈이 멀어서 그랬던 거라고 교회에서 가르치지만
그건 터무니없는 해석이야.
은전 30냥은 그 당시 이스라엘 화폐 가치로 밀가루 열 포대를 살 수 있는 돈이야.
3년 동안 자기 생계를 버리고 따른 스승을 겨우 밀가루 열 포대 값에 팔아넘겼다면
그거야말로 말이 안되는 얘기잖아.
성경의 또다른 해석은 이래.
가룟 유다는 로마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의 독립을 꿈꾸던 독립운동가였고
그런 그는 메시아가 나타났다는 소문에 멀리 이스라엘 남부에서 예수를 찾아와
스스로 예수의 제자가 되기를 간청한 사람이란 거지.
실제로 가룟 유다가 독립운동가였을 것이란 연구 결과는 꽤 많이 나와있어.
전에도 내가 참고하라고 말한 글이지만 가룟 유다에 대한 해석에 관련해서는
푸른노을님의 글을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좌표는 http://www.ddanzi.com/ddanzi/section/club.php?slid=board&bno=10378
푸른노을님의 글을 인용하자면,
독립운동까지 뒤로 미뤄두고 멀리 북쪽 지방에 나타난 메시아 예수를 찾아온 가룟 유다.
그가 꿈꾸던 메시아는 아마도 로마의 압제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킬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메시아였을 거야.
그는 멀리 북쪽 지역에 나타난 예수가 메시아란 소문에 가슴이 뛰었을 것이며
예수에게 자신의 삶을 내던지기로 마음 먹었겠지.
그리고 3년.....
예수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가룟 유다는
로마에 대항하고 이스라엘을 독립시킬 메시아가 아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고 말하는 스승의 모습에 실망하기 시작해.
예수는 인간의 영혼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이스라엘의 독립엔 관심이 없었으니까.
결국 유다는 예수가 자신이 꿈꾸던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메시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게 옳다고 말하는 예수의 발언들을 들으며
그는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선 예수를 제거하는 것이 옳다는 결심을 굳힌 거야.
그래서 유다는 결국 예수를 대제사장들에게 넘기고 말았지.
자신의 신념을 위해 뜨겁게 살다가
자신의 이상과 다른 스승의 모습에 실망해 예수를 배반했고
그것이 괴로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사내에 대한 이야기.....
이것이 이스카리옷 유다에 대한 또다른 해석이야.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그런 유다의 현실 세계에 정의를 세우기 위한 뜨거운 열정을
폄하하고 무시하고 있지.
유다는 단지 돈에 눈이 멀어 스승을 판 용서받지 못할 죄인으로 낙인찍혀 버렸단 말이야.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에겐 조국의 독립보다 죽음 이후의 구원이 훨씬 중요한 일이니까.
도대체 신의 공의로움과 정의, 진실이 이 세상에서 단 한 번이라도 구현된 적이 있나?
그런데 왜 미쉬파트님은 마치 성경 해석을 잘못해서
이 땅의 목사들이 전두환 머리에 축복 기도 하고
뉴라이트 목사들이 활개치고
4대강 삽질을 응원하는 목사들이 나오는 거라고 단언하는 걸까?
내가 여러 번 말하지만 기독교 문제의 핵심은 성경 그 자체야.
신의 성품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거라고.
신은 인간 세상에 관심이 없어.
구약은 물론이고 예수 이후로 2천 년 동안에도 수많은 독재자가 나타났고
민초들은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인류 역사를 통해 수십억 명이 학살당했고
신의 이름으로 착취를 당해왔지만 신은 단 한 번도 인간 세상의 정의를 위해
일어나 일한 적이 없단 말이야.
지진이나 쓰나미로 수십만 명씩 죽이는 그런 사랑(?)말고
언제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공의로움과 정의감을 신이 드러내 보인 적이 있냔 말이야.
그럼 또 이런 말을 하겠지.
예수의 죽음 이후로 이 세상은 공중 권세 잡은 사탄의 세력 아래에 놓여있다고.
씨바, 그럼 사탄에게 인간 세상을 내주고 멋대로 죽이고 학살하라고 내맡겨둔
신의 모습에서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 공의로운 하나님을 찾고 있는 거냐?
내가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많은 횽아들이 종교도 좋은 점이 있는데
너무 비판만 하지 말라는 댓들들을 달았었어.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주기도문에 적혀있는 저런 말씀들 참 좋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죄를 용서해달라는 말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종교는 항상 기득권층을 위한 통치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는 걸 생각해 본다면
저 용서라는 항목을 그렇게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걸 알게 돼.
전두환도 용서해줘야 하고 이명박도 용서해 줘야 신에게 용서를 빌 수 있다는 말이거든.
난 광주에서 국민들을 학살한 전두환을 용서할 생각이 없어.
자기 스스로 잘못했다고 인정하지도 않는 그 짐승을 왜 내가 용서해 줘야 하는데?
왜 이 땅에 정의가 올바로 서지 않는줄 알아?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국민들은 용서해주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면죄부를 줘버렸기 때문이야.
일제 시대 때 나라를 팔아먹고 같은 동족을 착취하고
독립운동가들을 색출해 죽이던 친일파 매국노 새끼들이
해방 후에도 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 버젓이 떵떵거리고 살아온 이유도
그놈의 화해와 용서라는 거창한 가치 때문이었어.
난 죄지은 놈은 죄의 대가를 치르는 게 정의라고 생각해.
기독교의 신은 적어도 이 땅에서 그런 정의를 실현한 적이 없어.
죽은 뒤 지옥에 보내는지는 몰라도 그건 무신론자인 내가 알 바 아니야.
성경 얘기하다가 매국노 용서하라는 얘기가 나오는 건 너무 삼천포로 빠진 거라고?
천만에.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바치라는 예수의 말을 기록한 마태는
식민지 유대인들에게서 세금을 걷어 로마에 바치던 매국노였어.
실제로 신약 성경 속에서 마태의 직업인 세리라는 건 같은 유대인들에게
더러운 배신자라는 손가락질을 받던 일이었다고.
그런 마태를 예수는 제자로 삼았던 거야.
매국노까지 사랑한 예수.
얼핏 들으면 멋지지?
그런데 잘 생각해 봐.
매국노 마태는 예수를 만난 뒤 새사람이 됐는지 몰라도
그건 신의 입장에서일뿐, 현실 사회의 눈에선 전혀 그렇지 않아.
마태는 세리 일을 그만 둔 뒤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독립운동가가 된 게 아니야.
그의 관심사가 돈에서 인간의 구원으로 옮겨갔을 뿐,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민족의 독립에 힘을 쏟아 갚을 생각따윈 하지 않았다고.
그게 바로 기독교인들의 한계이자 무서운 점이야.
자신들의 잘못을 현실 사회에 되갚으려고 하지 않아.
지난 번에 내가 쓴 글에서처럼
마치 다윗이 자기 부하를 죽여버리고 그 아내를 빼앗은 다음
‘내가 하나님께만 죄를 지었다’라고 뻔뻔하게 고백하는 것처럼
기독교인들의 관심사는 하나님 눈에 드는 거지
현실 세계에서 정의를 세우는 게 아니란 말이야.
물론 문규현 신부님처럼 온몸으로 이 땅의 부정부패에 저항하며
민초들과 함께 눈물을 쏟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건 그분 개인의 신앙관일뿐
성경 전체를 꿰뚫는 정의란 건 이 땅에서의 정의가 아니라
잔혹하고 질투많은 하나님 눈에 드는 것을 의미하는 거라고.
그러니 딴지 대문에 실린 미쉬파트님 글처럼
성경 해석을 제대로(?) 하는 기독교인들이 늘어난다면
이 땅에 정의와 진실의 가치가 설 거라고 나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단 말씀이지.
난 차라리 유다같은 사람들이 세상에 많아지는 게
이 땅에 정의를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해.
용서란 건 잘못을 저지른 대상에게 무릎꿇고 사죄하고 돈으로 배상하고
그것으로 모자란다면 자신의 자유를 내놓고 감옥에서 형벌을 살거나
심지어는 목숨을 내놓는 형태로까지 죗값을 치러야만 간신히 얻을 수 있는 거야.
신에게 달랑 회개 기도한다고 해서 용서를 받을 수 있다면
이 나라는 또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어도 매국노를 용서해 줘야 하고
독립운동가들은 그런 매국노들한테 붙잡혀 죽어나가야 하며
전두환 같은 독재 살인마가 빳빳이 고개 쳐들고 다니는 꼴을 봐야 하고
전과 14범 장로님이 나라의 재산인 인천공항 팔아먹고
4대강으로 이 나라 국토를 뒤집어놓는 꼴을 보면서도
허허 웃으면서 용서해줘야 한단 말이야.
독재정권의 개로 살면서 민주투사들을 붙잡아 고문했던 고문기술자 이근안이가
회개 기도 한 방으로 하나님한테 용서받고 목사가 된 거 알고 있어?
이근안이 자신이 고문한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다 찾아가서 무릎꿇고 사죄하고
스스로 자신의 몸에 매일 물고문, 전기고문 다섯 시간씩 하면서 평생 용서를 구했다면
그의 진정성에 대해 조금은 인정해 줄 수 있겠지.
하지만 이근안이 자기 몸에 매일 물고문을 하고 있다는 얘긴 들은 적이 없어.
그래놓고 기름기 좔좔 흐르는 얼굴로 하나님한테 회개 기도를 했겠지?
씨바, 죄는 사람한테 저질러놓고 회개는 하나님한테 해?
고문당한 사람들은 아직도 그 후유증이 남은 몸으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데
자기가 고문당한 것도 아닌 하나님이 뭘 용서해준다는 거야?
씨바, 그 인간이 부흥회랍시고 여기저기 교회 돌아다니면서
신앙간증 집회하면 강사비로 얼마나 벌어들일지 상상이 되냐?
그런게 기독교의 사랑이고 정의라면 난 그 더러운 사랑과 정의를 거부하겠어.
내가 왜 기독교를 비판하는지 이제 알겠어?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과 평화, 정의와 공의로움은
편협하고 애정결핍에 걸린 신의 마음에 들기위한 몸부림일 뿐
이 땅을 살아가는 민초들의 정의를 세우는 일엔 오히려 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아무리 기독교 내부 개혁을 외치고 대형 교회나 헌금, 목사 임명 과정에 대한
개혁이 이뤄진다고 해도 기독교라는 종교의 교리와 그들이 섬기는 신의 성품은
이 땅에 정의를 세우는 일에 도움은 커녕 정의를 말살하게 된단 말이야.
P.S 내 시리즈는 서두에 밝혔듯이 잠정 중단이야.
하지만 딴지가 계속해서 기독교에게 면죄부를 주는 내용을 대문에 싣는다면
그 때마다 내 알량한 지식과 시간을 동원해서라도 그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할 거야.
나도 개인적인 일로 바빠 죽겠는데 독투에 이런 장문의 글 쓰는 일 좀
없었음 좋겠다.
출처 : http://www.ddanzi.com/ddanzi/section/club.php?slid=board&bno=14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