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는 새가 참 많습니다.
일상생활을 영위할 때도 새를 참 많이 접하게 되지요.
서울에서 접하는 새라고 해야, 대부분 비둘기...간혹 까치나 까마귀 정도죠.(서울에서 참새는 거의 못 보게 된 것 같아요)
밴쿠버에서는 바다 옆이라 그런지 갈매기들이 정말 많고, 까마귀도 많고요, 역시 도시라서 비둘기도 많습니다. 근처 호수 같은 데로 가면 오리도 있고..간혹 하늘을 보면 거위들이 날아가는 걸 볼 때도 있어요.
(거위 날아가는 걸 보면 흠칫 놀라게 되더라고요. '뭔가 오리스러운 게 날아! 뭔가 어색해!' <- 이런 기분 이랄까요..)
예전에 제가
우리 집에 놀러 온 새라는 포스팅에도 썼듯이, 집 발코니에 갈매기가 날아와 앉곤 합니다.
갈매기만 오나요, 비둘기도 옵니다.
아무 이유 없이 갈매기가 놀러 올; 때도 있지만..발코니에서 삼겹살을 구웠다거나..기타 등등의 이유로 맛있는 고기 냄새가 풍기면 날아올 확률이 화아아악 올라가더군요.
하지만, 전 위에 링크된 포스트에서도 언급했듯이 '니모를 찾아서' 이후로는 갈매기들을 별로 안 좋아해서요;
아니, 새는 별로여요. 그래서 발코니에 앉아 창문 너머로 저희 쪽을 '내게 고기를 준다면 평화롭게 물러나겠다'는 뜻을 담은 듯한 의미심장한 눈길로 쳐다보면 그냥 무시해요.
일부러 쫓지는 않습니다.
싫을 뿐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니까, 그저 무시하고, 그놈들이 바라마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제공하지 않으면 알아서 떠나갈 것이라 생각하며 그저 무시를 해왔어요.
내게 피해를 주지 마! 네게 무엇이든 이익을 제공하지 않고, 피해를 제공하지 않을 테니, 우린 그저 모르는 사이로, 엮이지 않은 사이로 그렇게 남남으로 지내가자는 다짐이랄까요..
하지만, 오늘 뭔가 선을 살짝 넘는 일이 벌어졌어요.
어제까지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미친듯이 바람이 불던 밴쿠버는 오늘 언제 그랬냐는 듯, 햇빛이 쨍하게 나더라고요.
아침에 침대가 배송되어서, 방에 침대 놓고, 가구 재배치하고, 정리하고 잠시 숨을 돌리던 홍과 저는 날씨도 이렇게 좋고, 배도 살살 고프고, 커피도 생각나기에 밖으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블렌즈에서 홍은 밀크 모카를 사고,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산 저는 오늘 식사를 해결해줄 방안으로 피자를 선택하고는 피자집으로 발걸음을 향했습니다.
피자 한 판을 사고, 한 판으로는 양이 부족할새라, 핫윙 10조각도 추가했지요.
침대도 들여놓았고, 집안 정리도 대충 해놓았으며, 빨래도 다 했고, 커피도 맛있었고, 손엔 맛있은 음식이 들려 있었고, 무엇보다도 오랜만에 해가 쨍하니 났고, 멀리 노스밴쿠버 너머 산도 잘 보일 정도로 시야가 확 트이는 좋은 날씨에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이 피자를 집에 가서 먹는 게 아니라 바다를 바라보며 먹기로 했어요!
잉글리시 베이는 좀 먼 것 같고..콜 하버로 가기로 했지요.
피자 들고, 커피 홀짝홀짝 마셔가며 콜 하버로 가서, 바다와 요트들이 바라보이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중간에 피자를 놓고 먹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뭔가 갑자기 눈치가 이상합니다.
저 멀리 날던 갈매기가 방향을 바꿔 저희 근처로 날아오더니 착륙, 저희 근처를 서성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저희를 직접적으로 쳐다보진 않았기에..아직 홍은 위험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저는 직감했지요.
아, 올 것이 왔구나.
집이라면 창문이라는 경계 막이 저 새와 우리 사이를 가로막아 줄 테지만, 지금은 그러할 수 없잖아요.
전 살짝 맘은 불안하지만, 평소처럼 무시하기로 마음을 먹었지요.
하지만, 새는 끈질깁니다. 새는 떠나지 않아요. 저희를 직접적으로 쳐다보진 않지만, 시야 어딘가엔 저희 손놀림을 빤히 지켜보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왜냐하면 저희의 손놀림이 급격히 변할 때(eg. 피자를 반쯤 먹다가, 음료를 마시기 위해 피자를 내려놓는다거나)마다 흠칫 거리며 고개 놀림이 변하는 모습이 보였으니까요.
전 살짝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이 날씨 좋은 날 왜! 새 눈치 보면서 맛있는 피자를 먹어야 하냐고요!
전 새의 시선을 돌리겠다는 생각으로 다 먹고 남은 피자의 가장자리 빵 조각을 멀리 던졌습니다.
역시! 새는 그 빵조각을 향해 몸을 날리더군요. 말 그대로 몸을 날렸지요.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갔으니까요.
하지만, 맘에 안 들었던 걸까요, 한입에 꿀꺽한 걸까요.
새는 금세 돌아왔고, 이 새가 우리를, 아니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홍도 눈치채기 시작했지요.
아, 제가 빵조각을 던져준 게 실수인 걸까요? 계속 무시했어야 했을까요?
그건 이제 와서는 알 수 없지요. 갈매기는 우리 주변을 여전히 서성이고 있었고...여전히 우리를 자기의 시야에 두고 있었지요.
우리는 계속 피자를 먹고, 새는 우리를 보고, 우리는 핫윙을 먹고, 새는 우리 앞을 서성이고, 우리는 음료를 마시고, 여전히 새는 우리를 쳐다보고..
음식을 먹고 있지만, 어딘가 새를 신경 쓸 수밖에 없기에 피자에 집중할 수 없는 저는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해, 먹다 남은 핫윙의 뼈다귀를 힘껏 바다로 던져버렸습니다.
새는 역시 몸을 날렸고..
금세 다시 돌아왔습니다;
아, 소문이 퍼진 걸까요; 멀리 갈매기 한 마리가 배 돛대 위에서 저희를 자신의 시야에 담기 시작하더군요.
아니, 그뿐이 아닙니다. 어느새 까마귀 한 마리도 저희 앞에 착륙하여 저희 앞을 서성이기 시작했지요.
우리 앞을 서성이는 새 두 마리와, 저 멀리서 동향을 살피는 또 다른 한 마리.
두 명이 음식을 먹고 있고, 세 마리가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거지요.
저는 더 이상 빵 조각이나마, 내 입에 들어가는 걸 희생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무언가 행동을 취하지 않기엔 그 상황의 분위기를 견딜 수 없기에, 핫윙을 먹고 남은 뼈다귀는 던져버렸습니다!
가까이 있는 두 마리는 몸을 날렸고, 멀리 있는 한 마리는 근처로 날아오려다가 가까이 있는 두 마리 중 무언가가 먼저 제가 던진 뼈를 쟁취한 걸 본 건지 날아오다 말더군요.
그렇게 우린 계속 먹고, 그들은 우릴 보고, 우리 주변을 서성이고, 멀리서 우리를 살폈지요.
새의 눈치를 보면서 그렇게 피자를 먹다가..배도 슬슬 부르기도 하고, 도저히 그 분위기를 견딜 수 없기에 저는 홍에게 어서 이 자리를 뜨자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홍도 주변을 서성이는 까마귀와 갈매기가 신경쓰이지 않을 리가 없었기에 흔쾌히 제 말에 수긍하더군요. 재빨리 서로의 손에 남은 피자를 해치우고, 남은 핫윙과 피자는 잘 모아 담아 피자 뚜껑을 닫고, 어서 자리를 뜨기 시작했지요.
벤치에서 멀어지며 살짝 뒤를 돌아본 제 눈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광경은 , 우리가 벤치에서 남기고 간 것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벤치로 날아드는 까마귀와 갈매기의 모습이었지요.
저는 그 후의 광경을 차분히 지켜보기엔 맘이 불안하고, 살짝 기분도 상해있었고, 더 이상 그들과 얽히고 싶지 않은 마음밖에 없었기에 그저 발걸음을 바삐 놀려 그 벤치에서, 콜 하버에서 멀어질 뿐이었습니다.
군대에서 고참 눈칫밥도 먹어보고, 직장에서 상사 눈칫밥도 먹어보았지만..
네, 처음이었어요. 새 눈칫밥은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