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킥, 결말유감

  • 뒹돌
  •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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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언 일년 반 동안 거의 눈팅만 하던 회원입니다만;
지붕킥 관련해서 쓴 뒷북글에 대한 듀게 여러분들의 의견이 궁금해서 글을 올립니다.


제가 좀 뉴비라, 논리에 대단히 취약하고
제가 좀 막눈이라, 인용구 혹은 세부 내용이 정확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여러 가지로 질정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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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9일 본방에서 지붕킥의 충격적인 결말이 공개된 후 많은 시청자들이 김병욱 PD의 '감독주의'에 반발하며 '이럴거면 시트콤을 찍지 말고 드라마를 찍어라'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은 아주 흥미로운 지점이다. 이런 반응은 결국 시청자들이 시트콤이라는 장르 관습에 대한 기대를 토대로 지붕킥을 수용해왔다는 점을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반응은 뒤늦은 감이 없지 않은데, 지붕킥은 장장 125회에 걸쳐 '현실도피로서의 코미디'라는 통념적인 시트콤의 기능을 꾸준히 배반해왔기 때문이다. 지붕킥이 기본 설정부터 에피소드 구성에 이르기까지 '웃자고 보기'엔 지나치게 심각한 요소들을 계속해서 삽입해왔다는 사실은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정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별다른 불만을 표시하지 않던 시청자들이 결말에 이르러 갑자기 '시트콤이기 때문에'라는 말을 꺼내들게 되었다는 사실은 꽤나 의미심장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필자의 공부가 얕아 베르크손의 <웃음> 같은 글은 읽어본 적도 없고, 웃음의 발생과 기원에 대해 근본적인 고찰을 제시할 만한 능력도 없지만 기본적으로 웃음이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된 상황으로부터 발생한다는 것쯤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누가 봐도 정상적인 것에는 해학의 요소가 없다. 거꾸로 말하자면 웃음을 발생시키는 모든 상황에는 언제나 '비정상인 것'과 그것을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정상적인 것' 사이의 긴장이 가로놓여 있게 마련이다. '이순재'와 '김자옥'을 젊은 청춘남녀로 바꿔놓는다면, '정해리'와 '신신애'를 같은 부르주아 가정의 영애로 바꿔놓는다면 도대체 이들이 벌이는 에피소드에 무슨 재미가 있을까? '이순재가 김자옥을 열렬히 사랑한다'나 '정해리가 신신애를 괴롭힌다'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웃음의 배후에는 보통 우리에게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관계, 익숙한 관계, 사회 전반에 가시화되어 있기에 보편적이다라고 말하는 관계에 대한 규정이 깔려 있다. 이밖에도 지붕킥이 우리 사회에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관계들을 가시화하고 그 낮선 관계로부터 나오는 긴장을 이용하여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한 사례는 무수하게 많다. 식모인 '신세경'과 주인집 아들 '정준혁'의 관계, 낮은 학벌 출신의 무직자 '황정음'과 부르주아 출신의 전문직 의사 '이지훈의 관계, 한옥집 주인 '김자옥'과 그 집에 월세 들어 사는 세입자들의 관계 등등 지붕킥이 작정하고 에피소드로 표면화시킨 관계들만 나열하더라도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인데, 메인 에피소드 안에서 슬쩍 스쳐지나간 관계들까지 일일이 따져보면 아마 머리가 아파올 것이다.        

다른 시트콤들이나 개그콘서트 류의 코미디 역시 시청자들을 웃기기 위해 이런 메커니즘을 빈번하게 사용하는 만큼 어떻게 보면 이것이 그렇게 특별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겠다. 동성애 코드가 얼마나 진부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개그의 소재인지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여기에서 지붕킥의 미덕, 혹은 이 시트콤을 진두 지휘한 김병욱 PD의 미덕을 명확하게 할 필요성을 느낀다. 다른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별다른 철학 없이 시청자들을 웃기자는 목적을 위해 정치적인 차원의 문제를 '가져다 썼던' 것과는 달리 지붕킥은 웃음 속에 부유하고 있는 정치적인 요소들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웃음을 소통의 매개로 삼으면서도, 애초에 그 웃음이 발생한 기원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가리키는 지붕킥만의 윤리적 태도이다.
  
김병욱 PD가 자신이 감독한 시트콤들에서 이러한 윤리적 태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온 이유는 결국 수많은 감상자들에게 의해 지적되어온 '바로 그 이유'로 연결될 것이다. 내 시트콤이 이 팍팍한 현실의 고통을 상쇄, 보상해주는 판타지로 기능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것. 시트콤 또한 현실의 안쪽에 위치해야 한다는 것. 따라서 지붕킥은 일정한 플롯을 유지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는 시트콤의 기본적인 장르성- 유희성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자칫 그것이 무화시킬 수도 있는 정치성을 침착하게 되살려내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지붕킥은 후반부까지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 해당된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특유의 균형감각을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 그 균형감각이야말로 지붕킥이 시청률을 유지하면서도 비평가들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다시 결말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제 와서 스포일러에 대한 우려를 한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니 지붕킥 문제의 결말 부분을 요약해보겠다. '신세경'은 타히티행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가던 도중에 '이지훈'을 잠깐 만나기 위해 그의 병원에 들르고, '이지훈'은 그녀에게 공항까지 차로 태워주겠다고 제안한다. 차속에서 '신세경'과 대화를 나누던 '이지훈'은 그동안 자각하지 못했던 그녀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다. '이지훈'이 옆좌석의 '신세경'에게 고개를 돌리는 순간 화면은 스틸되고 '그동안 지붕킥을 사랑해주신 여러분…'이라는 자막이 뜬다. 그래서 그들이 어찌되었냐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중간에 나온 교통사고 사망 뉴스가 둘의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나왔던 김병욱 PD에 대한 의혹들보다 훨씬 더 커다란 의혹을 감당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와서 장장 126회에 이르는 연속물을 훌륭하게 연출해낸 PD에게 정신병자라는 판정을 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필자는 두 남녀가 빗길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결론에 대해 확신을 지니고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바로 이 결론, '신세경과 이지훈의 죽음'이 상당히 충격적이기에 보통 지붕킥은 새드 엔딩이라고 이야기되지만, 지붕킥에 등장한 주요 인물들 전체가 맞이한 결말로 시야를 확대해보면 별로 새드 엔딩이라고 말할 것도 없다. '이순재'와 '김자옥'은 무난하게 결합한 상태이고, '이현경'의 뱃속에 있는 태아는 아직 안전하고, '정보석'은 사장 취임의 꿈을 꿀 수 있게 되었고, '황정음'은 취직해서 팀장 자리에 올랐고, '정준혁'은 바라던 곳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학에 입학해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유인나'는 걸그룹 멤버로 당당하게 활동 중이다. 해피 엔딩을 맞은 사람들도 제법 되는 데다 별다른 새드 엔딩을 맞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또한 지붕킥 자체가 만남과 이별, 기쁨과 슬픔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성장해나가는 인물들을 그려내는 데 주력한다는 사실에 입각해서 볼 때 지붕킥의 인물들이 결말 시점에 머무르게 된 위치는 그들이 지금 '통과하고' 있는 위치로 읽히지, 그들이 '도달하게 된' 위치로 읽히지는 않는다(이런 관점에서라면 얼마 전 종영된 <추노>와 대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지붕킥은 해피 엔딩이나 새드 엔딩이라는 잣대로 평가하기엔 '그런 엔딩 따위 없이' 무심하게 흘러가는 현실 자체를 보여주려는 의지가 너무 강하다. 딱 한 군데만 빼놓으면 그렇다. 빗길 사고로 '죽어버린', 그래서 시트콤이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없게 된 두 남녀의 운명 말이다.
  
다시 말해 지붕킥은 해피 엔딩으로도, 새드 엔딩으로도 요약될 수 없는 구조로 진행해온 다음 마지막에 이르러 강력한 새드 엔딩의 요소를 집어넣은 셈이다. 김병욱 PD가 백 마디 말로 자신의 연출의도를 강조한다 하더라도 이 미학적 구조의 모순성은 해결될 수 없다. 심각한 이야기로 경도될 만하면 웃음으로 가볍게 털어내고, 코미디로 경도될 만하면 그 웃음의 어두운 이면을 들춰보이면서 완전히 비극적이지도 않고 완전히 희극적이지도 않은 우리네 삶의 리얼리티 속에 드라마를 위치시켜온 지붕킥 특유의 균형감각 스스로가 주요 인물의 '갑작스런'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결말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붕킥의 결말은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전체 드라마의 구조와 섞이지 못하고, '결합 불가능한 두 사람의 진심이 영원 속에 남는다'는 비극적 낭만성만을 얻은 채 겉돌게 된 것이다.

("죽음은 이유 없이 찾아오는 것'이라는 김병욱 PD의 대답 역시 적절치 못하다. 현실 세계에서 찾아오는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유나 개연성을 요구할 수 없지만, 미적 구성물인 드라마에서 누군가를 우연한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면 그것은 그 인물에게 걸려 있는 수용자들의 기대가 단번에 중지되는 것이 어떤 효과를 낳게 되는지에 대한 신중한 고려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인물의 사후 처리가 궁색해지면 그 인물을 죽이거나 플롯 밖으로 퇴장시키는 드라마들이 비판받는 맥락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붕킥이 '단순한 시트콤이 아니었다'라는 말은 곧 지붕킥이 시트콤으로서의 장르 관습을 유지하면서도 그 관습적 요인들을 내부로부터 해체해나갔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 해체 작업이 미온하지도, 엉성하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진심어린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야기해온 것처럼 필자는 지붕킥이 무리한 결말 선택을 통해 '시트콤을 넘어선 시트콤'이라는 참신한 시도를 스스로 훼손했다고 본다. 사실, 이 마지막 실책이 지붕킥이 해낸 모든 것들을 무위로 돌릴 수는 없는 것이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눈 딱 감고 '그 둘은 안 죽었어!'라고 생각하면 마지막 시퀀스 또한 감히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지붕킥이 남긴 메시지('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계층 간의 장벽은 넘기 어렵다')의 정치성에 대한 긍정으로 그 미학적 구조의 결함을 덮는 듯한 논의가 계속 생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본다. 조금 오버해서 이야기하자면 필자 생각에 그런 것은 '지붕킥 정신'의 반대편에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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