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적으로 우울증을 환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급격히 기울어질 때면, 그 즈음 해서 갑자기 행동이나 성격이 밝아지는 경향이 있다고들 하지요. 요새야 그런 단편적인 정보들이야 구글에서 '우울증'만 타이핑하면 주르륵 나옵니다만, 예전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정보에 무지했습니다. 또 설령 그런 것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막상 환자가 밝은 모습을 보이면 그게 생에 대한 희망을 다시 되찾은 거라고 믿고 싶어서 위기인 줄 모르는 경우도 많고요. (안타깝게도 저희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만.) 환자가 괴로워하다가 어느 순간 이미 마음 속에서 강을 건넜다는 것도 모르고, 점점 밝게 웃고 떠들고 앞날에 대한 계획들을 차근차근 세우는 것만 같은 모습을 보면서 기뻐할 따름이지요.
제가 망자의 속내까지 어떻게 알겠습니까만, 아마 생의 마지막 얼마 간 보여줬던 재기를 위한 노력은 어쩌면 그런 모습이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보신 분들도 계시겠습니다만, 故 최진영씨의 마지막 몇 시간에 대한 기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고인의 모친께서 마지막으로 건냈던 몇 마디가 나와 있었는데 그게 못내 제 가슴을 찌르더군요.
'내려와서 밥 먹자'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
모르겠습니다. 고인의 모친께서 불안한 예감에 자꾸 재차 올라가셔서 함께 식사하자 말한 건지, 아니면 진심으로 날씨가 너무 좋기에 3월 봄 햇살을 쬐며 아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싶어서 그러신 건지 그것까지 제가 헤아릴 수는 없겠지요. 다만 그건 알고 있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아마 고인의 모친께서도 아들과 나눴던 마지막 대화의 순간을 아주 오랫동안 잊기 어려우실테고, 그 마지막 순간에 조금만 더 신경써서 아들의 얼굴을 봐 둘 것을, 그랬더라면 어쩌면 서려있는 슬픔과 절망을 읽어내고 한 발자국 더 다가가서 좀 더 오래 이야기를 나눴을 것을, 그랬더라면 어쩌면 그런 돌이킬 수 없는 결과는 없었을 것을 하고 후회하시리라는 것을요.
학교 후배랬다가 어쩌면 여자친구일지도 모른다는 둥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도 못 했을 사람한테 못 하는 추측이 없는 기자들의 설레발 속에서, 고인의 모친을 밖으로 불러내어 이야기를 나눈 정모씨의 마음도 생각해 봤습니다. 저 역시나 그 평화롭던 일요일 낮에, 15분만 더 기다렸으면 어머니가 오셨을 그 한낮에 나는 굳이 누나를 혼자 남겨두고 외출을 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으로 아직도 가끔 가슴 한 구석이 쿡쿡쿡쿡 아파옵니다. 후배건 여자친구건 간에 아마 정모씨 또한 가끔 그런 생각에 시달릴까 사실 걱정입니다. 내가 그 때 어머니를 불러내지만 않았더래도. 하는 생각 말입니다.
저에게 누나의 생일과 기일이 함께 들어있는 1월이 너무나 먹먹하고, 49재가 끝났을 무렵의 3월 말엽 봄볕이 너무나 잔혹하리만치 따뜻하고 눈부셔서 엄마와 함께 울었던 그 감정들이 아직도 오늘처럼 새록새록한 것처럼. 남겨진 사람들이 짊어져야 할 고통의 무게는 얼마나 헤아리기 어려운지, 앞으로 3월 말엽의 따뜻한 봄볕이 유족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 아무리 기도를 하고 후회를 해도 쉽사리 씻겨지지 않는 마음의 짐은 어떨지, 생각하면 그저 아득하고 먹먹합니다.
누나의 죽음 이후, 나약하고 성질 더러운 저는 여러 차례 삶의 고비를 만날 때마다 잠시나마 죽고 싶단 생각을 했었습니다. 중증 우울증에 애정결핍, 과대망상, 피해망상에까지 시달리던 시절 정말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죽고 싶거나 누군가를 죽이고 싶었더랬지요. 그러나 그런 순간 극단적인 선택에서 절 막아준 건 그 깨달음 때문이었습니다. 자살은 자살자 본인에게는 자신이 죽는 동시에 자신이 속한 모든 우주를 깔끔하게 종결시켜주는 최고의 솔루션일지는 몰라도,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살아갈 앞으로의 모든 시간을 수라지옥으로 만드는 길이라는 뼈저린 깨달음 말이지요.
내일 고인이 3일 간의 작별인사를 마치고 안식을 찾으러 간다고 하지요.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과 유족들의 평안을 간절히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