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이야기고 다들 아실 이야기겠습니다만, 아무리 오랜 시간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심지어 사전에 어느 정도 불길한 예감이 왔었다 한들 가족의 자살은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종류의 상처가 아닙니다. 남겨진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한 몇 개월 아무 것도 실감이 나지 않고 슬픔도 아픔도 그냥 뿌연 장막 뒤에 가려진 것처럼 막막하기만 하지요. 그러다 어느 날 그냥 불현듯 실감이 나면서 그 모든 감정들이 날을 바짝 세우고 몰려 오는 겁니다. 계기는 사소해요. 햇살이 너무 좋아서. 고인이 좋아하던 꽃이 피어 있어서. 장을 보다가 고인이 좋아하던 군것질거리가 보여서. 고인이 마지막으로 비디오를 빌려왔지만, '내일 보자' 라고 미룬 탓에 결국 고인과 함께 보지 못 했던 영화가 주말의 명화로 방영하는 걸 우연히 보게 되어서 등등.
네. 저도 벌써 12년 전의 일입니다만 아직도 그 여파에서 완전히 자유롭다 말할 순 없겠네요. 그 순간을 기점으로 인생에서 많은 것들이 변했습니다. 날카롭던 감정들은 그 날은 다 닳아 무뎌졌습니다만 거대한 돌덩이처럼 아직도 가슴 한 켠에 얹혀 있지요. 아직도 그 이후로 얼굴을 보기가 껄끄러운 사람들이 있고, 찾아가기 어려운 공간이 있습니다. 어떤 부분들은 오히려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더욱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 경우도 있어요. 남은 사람들은 그런 몹쓸 생각도 참 많이 합니다. 그 날 그 사람이 살고 차라리 내가 죽었어야 하는 건데 하는.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생각이 아니라 해도 후회와 미련은 언제나 밀려오지요. 그 날 내가 그 사람을 혼자 남겨두고 책대여점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 날 마지막으로 그 사람이 나한테 나눠 먹자고 했던 과자를 나눠 먹었더라면. 아무리 지쳤더라 하더라도 평소에 좀 더 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더라면. 그 전 날 그 사람이 빌려왔던 첨밀밀 비디오를 함께 봤더라면. 그랬더라면.
여러 가지 생각이 밀려오는 오후입니다. 떠난 사람도 남은 사람들도, 아프지 않고 평안해지길 바랄 뿐입니다. 어린 조카들과 노모가, 마뜩치 않은 옛 매형이, 그의 오랜 친구들이, 극복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겨 질식하지 않고 또 하루를 살아갈 빛과 희망을 빨리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