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 주절... + 이번 선거에 대한 생각
편지 잘 쓰시나요? 전 못 써요. 연애 편지라는 건 특히나 못 쓰겠습니다. 아마도 어린 날에 워낙 기교와 감정을 과장한 편지들을 많이 써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결국, 나이 든 후에 편지를 쓰면 이게 뭐야,라는 소리나 듣게 되는 거죠.
일찍이 어머니께 두 통의 편지를 쓴 것은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그때도 뭐, 이게... 뭐니, 욕 먹었지만.
2.
몇 년 전이던가 친척네 집에서 백숙 만찬이 열렸는데, 그날은 제가 몇 년 만에 가족 모임에 참석한 날이었죠. 시간이 흘러 닭뼈가 하얗게 쌓이자, 재롱 잔치 할 나이들도 아닌데 무슨 생각들인지 쥬니어들이 한 마디씩 하는 시간이 열렸고, 어쩌다 그 쥬니어 중에 제일 나이 많은 제가 마지막으로 '숟가락'을 들어야 했습니다. 다른 동생들은 다들 말 잘 하더군요. 수많은 제삿날 밤마다 내 주변에 동그렇게 앉아서 내가 급조한 구라들을 들으며 즐거워하던 꼬꼬마들이었는데요. 다들 저보다 키가 훤칠하고 잘 생기고, 예쁘고,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고, 이젠 말까지 잘 하다니, 이런 싸가지들을 봤나...
근데 저는, 숟가락을 드니, 말문이 막히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라고요. 울먹울먹, 고마워요,로 끝냈는데, 집으로 오는 길 어머니가 말씀하시더군요. 그게... 뭐니? 실망스럽게시리.
3.
위 두 얘기가 떠오른 것은 방금 어떤 산문집을 읽었기 때문이죠. 카프카의 편지라던가, 어머니라던가 하는 소재가 들어있는.
4.
이번 선거에 대한 생각.
전 서울시장에 관한 한 투표의 목적으로, 광장 수복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야 김규항이 말한 직접민주주의, 쉽게 말하면 촛불을 켜거나 짱돌을 던지는 것이 가능해지죠. 지금은 그것조차 쉽지 않은 상태라는 건 다들 인정하실 겁니다. 전 광장이 자유롭게 열릴 가능성이 있다면 이명박이라도 다시 뽑자고 주장할 겁니다.
만약 국회의원을 뽑는 자리에서 한명숙과 노회찬이 붙었다면 누구를 뽑을지 저로서는 판단하기가 더 수월했을 겁니다. 판단의 척도로 정당과 정책 공약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에 상당한 힘이 실렸을 것이며, 상식인들 가운데에서 이 정도의 분열이 일어나지는 않았으리라 봐요. 근데 서울시장, 특히나 지금 이 정권에서는, 그 당연한 말을 하기가 머뭇거려집니다. 워워-, 지금 한명숙을 뽑아야 한다고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여론 조사를 개개인이 잘 판단해서 한명숙에 의한 광장 수복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면, 패러다임을 새로 짜 봐야 할 때는 아닐까 물어보고 싶은 겁니다. 노회찬 쪽에 힘을 실어주는 게 우선이라고 말이죠. 오싸가지가 이기더라도, 진보신당의 득표율은 '사표'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진보의 힘을 증명하는 배터리 게이지가 되는 것이라고 믿자는 거죠. 그저 상징적인 거지만, 대단히 상징적이니까요! 하지만 역시나 전 고리타분하게 광장 수복 가능성 쪽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지요. 그러니 위 얘기는 광장 수복을 우선 가치로 뒀을 때의 얘기일 따름입니다.
결국 심상정은 현실을 고려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유시민이 한명숙과 가장 다른 점은 가능성이 좀 더 있어보인다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전 아직 유시민이 경기도지사라는 자리에서 이명박 정권에 대항하는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서울시장에 나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요. 그럼에도 이명박의 독재를 막고, 그 자신의 다음 행보에도 도움이 될 뭔가를 보여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에 힘을 보태기로 결정한 심상정의 고민과 판단을 존중합니다. 다음 보궐 혹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누구랑 붙더라도 당신뿐입니다. 심상정, 당신을 위한 더 큰 그릇이 준비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죠. 타겟을 유시민과 그 지지자들에게 돌릴 게 아닙니다. 한나라당을 뽑아대는 경상도민들을 탓하기보다, 민주당을 뽑아대는 전라도민들을 탓하는 게 좀 더 세련된 맛이야 있지만, 좋은 방향은 아닐 겁니다. 그래도 전라도민들 덕분에 이만한 저항이라도 하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면, 유시민과 그 지지자들 덕분에 택시기사 자격증 등 예닐곱 개의 국가공인 자격증이 자랑꺼리인 김문수에게 이 정도 대응을 할 수 있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좀 무리한 생각도 해봅니다.
유시민과 그에게 표를 던지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들이 친노 보수 세력으로 자신들이 규정되는 걸 본다면, 꽤 슬플 것 같습니다. 또 유시민을 지지하는 동시에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게 그렇게 문제가 되는 일일까요. 진보신당에 한 표, 유시민한테 한 표. 그렇게 두 표를 던지는 태도가 과연 비판될 만한 일일까 생각해봅니다. 투표가 정당과 정책만 보고 한다면 왜 사람 얼굴을 포스터에 넣겠습니까. 사람을 뽑는 투표이기도 하고, 정당이 아닌 사람이 갖고 있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 때문 아닙니까. 당에 소속되지 않은 수많은 ‘상식적인‘ 일반 대중들의 많은 경우가, 그 힘이 심상정보다 유시민이 더 세다고 생각하는 것일 뿐입니다. 유시민의 표가 전부 친노 세력의 표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민주당의 표도 있을 거고, 반MB의 표도 있을 거고, 그저 유시민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표도 있을 테고 다양할 겁니다. 민주당은 친노 세력입니까? 반MB는?
친노 세력이라는 말이 저는 좀 우습고 무섭습니다. 촛불만 들면 친노 세력이라고 하던 것도 떠오르고... 사실 그 말 자체가 한나라당의 헤게모니 안에서 튀오나온 말 아닙니까?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을 한나라당식 외래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상처들이 가득한 가운데 유시민이 이기지 못하면, 유시민에게 간 표는 모든 표가 말 그대로 사표가 됩니다. 그 사표는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합니다. 올인이죠. 그렇기 때문에 심상정을 지지하셨던 분들은 아쉽더라도 유시민에게 표를 주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심상정의 힘겨운 뜻이 힘을 갖고, 심상정을 향하던 표가 사표가 되지 않게끔. 그러니 제발 김문수 뽑을 겁니다,라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하여, 심상정의 사퇴 및 유시민 지지 선언으로 노회찬의 완주가 더 아프게 빛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흠... 다시 서울 시장으로 돌아와서...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고, 저는 그 수많은 여론조사 중,
※ 한나라당(여의도 연구소) 여론조사 결과
[반드시 투표하겠다 는 사람들] 오세훈 46.5% < 한명숙 47.2% 역전
[단순지지도] 오세훈 49.5% > 한명숙 41.5% 8.1%p 차
라는 여론조사를 결과를 믿고 싶습니다. 근데 언제 것인지는 모르겠고 신뢰수준도 나와 있지 않군요. 출처 (http://cafe.naver.com/victoryhappyhan.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587)
하지만 http://bbongpd.tistory.com/990 의 글을 보면, 적극 투표층에서도 십칠 퍼센트 넘게 한명숙이 밀리고 있네요. 역시 어느 정도의 신뢰할만 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래는 여론조사의 문제에 대한 글입니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63327
즉, 알아서 판단하시길. 당연한 소릴;
5.
노무현의 힘을 진보의 힘으로 규정하면 또 역시 다툼이 생깁니다. 여고생으로부터 비롯된 촛불의 힘 역시 진보의 힘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테죠. 그래서 익숙한 다른 개념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상식 말예요. 적어도 상식에 준하는 논의를 하는 중에는 유시민이든, 한명숙이든, 심상정이든, 노회찬이든, 서로의 지지와 판단 기준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데 지나치게 감정적일 필요가 있나 생각해봅니다. 같은 상식 아래서 촛불 들던 사이인데. 이래 감정적이어서는, 국회 싸움판에 뭐라 할 자격이 있나 싶기도 합니다. 사실 저 역시 이런 말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