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10시절, 하이텔영퀴방에서 DJUNA님을 만난 적 있으니 나름 오래된 인연이죠?
오늘은 게시판을 옮긴다는 얘기에 문득 아쉬운 마음이 들었어요.
흔적 하나 남겨야 하는 거 아닌가.. 안 그럼 그 세월이 너무.. 그런 마음이 든거죠.
그래서 오래된 눈팅이 첫 글을 이렇게 써봅니다.
지난 겨울 3개월을 미국에서 보내고 왔어요.
아직 풀어야 할 짐보따리가 4개나 남아있는 상황이라지요.
다녀왔던 곳이 샌프란시스코 남쪽이였는데
10여년전에 일관계로 갔을 때완 느낌이 사뭇 달랐어요.
회사원이 아니라 주부라는 제 위치가 많은 걸 다르게 했겠지요.
슈퍼를 가고 재활용센터를 찾아다니고 애들 학교를 보내고 도시락을 싸고 발렌티어를 하고
이런 일상적인 일들을 하고 왔네요.
그곳의 이번 겨울은 유난히 비가 잦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우산을 쓰지 않고 다니더군요.
처음엔 그게 참 이상하게 보이더니
워낙 오락가락하는 날씨를 몇 번 경험해보니
나중엔 저도 아이들도 비를 맞고 다니는게 당연해 지더군요.
누가 비를 맞고 다니든 누가 우산을 쓰고 다니든
누가 반팔을 입고 다니든 누가 겨울 외투를 입고 다니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 신경을 전혀 안써요.
좋게 말하면 개성을 인정하는 거고
다르게 말하면 나 외의 사람에게 관심을 안두는 거죠.
그곳에서 오래 생활한 한국인들은 그래서 많이 심심하다고 그러더군요.
한국사람 특유의 관심이 그리울 때가 있다고..
물론 저같이 혼자 잘 놀고 혼자 잘 돌아다니는 사람은 그런 사회분위기가 딱 좋지만요.
아줌마들의 자잘한 말소리가 없어 고요한 날들이었어요.
잠시 있는 동안이었지만 ssn(social security number)를 받을 수 있었어요.
국제면허증이 무시될 수도 있다고 해서 캘리포니아주의 운전면허도 땄구요.
어쨌든 집도 차도 렌트해 세금 걱정없이 편히 있었고
애들도 잠시지만 공립학교에 입학해서 학교경험을 하기도 했죠.
애들 아빠가 약 8개월동안 미국에 머무를 예정으로 장기출장을 간 거라서
처음 우리가 건너간 목적은 겨울방학 봄방학동안 아빠와 함께 있어야 한다. 단순히 그거였어요.
근데 애들 아빠가 사무실에서 일할 동안 하릴없이 놀거면 뭐하나 싶어 이것저것 하다보니
면허도 나오고 애들은 학교에 다니게 되고 뭐.. 그렇게 된거예요.
애들이 잠깐이라도 미국의 제도권수업에 대한 경험을 하면 좋을 것 같기도 했구요.
거기는 집으로 손님을 초대하고 하는 일이 일상이라 그런가
머무는 동안 몇 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거기서 뜻하지 않은 이야기를 듣게 된거죠.
"3월이 되면 한국으로 돌아가신다는데 왜 돌아가시려고 하세요?"
당연히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게 무슨 말인가 했더니만
"한국에서는 생돈을 들여서라도 미국에서 영어공부시켜야 한다고 난리인데
집도 차도 있겠다 애들 학교도 들어갔겠다 운전도 하면 되겠다 왜 돌아가려고 하시는지 이해가.."
아하.. 그렇구나 했어요.
전 정말 한번도 생각 안해봤던 것들이었거든요.
아줌마들 말이
한국에서 하숙 구해서 애들 혼자만 들어오기도 하고
여름이나 겨울방학때는 연수랍시고 학원같은데서 단체로 들어오기도 하고
엄마랑 애들이랑 어찌어찌해서 들어와 불법체류를 하기도 한다더군요.
온가족이 다 와있는게 아니라 당연히 아이들 영어교육을 위해서 그렇게 전투적이래요.
영어 하나 잡으려구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그게 과연 잡히는 걸까요?
그걸 위해 희생하는 것들에 대한 데미지는 전혀 없는 걸까요?
아무튼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어
저도 한번 생각해보기로 했어요.
애들 아빠가 5월에 미국에서의 일이 끝나니
맘만 먹으면 6월말까지 애들 이번 학년은 마치고 돌아갈 수 있겠더군요.
그래볼까? 솔깃한 맘이 들긴 했어요.
애들이 미국학교에 워낙 적응을 잘 했거든요.
영어는 쥐뿔만큼도 못하면서 친구들에게 한국말 가르치고 오던 애들이라 있으려면 또 못 있을것도 없겠다 했어요.
근데 아줌마들 말이 또
비자가 3년짜린데 신랑만 한국 보내고 애들 데리고 머물다가 초등과정 마치고 가라네요.
아하.. 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다시 생각을 해봤죠.
앞으로 2년 반을 더 있으면 영어는 잡을 수 있겠다 싶더군요.
게다가 애들이 다니는 공립학교라는 곳이 일주일에 한번 나오는 숙제만 하면
공부할 거리가 있나. 학원 보낼 필요가 있나.
기분 같아선 맨날 애들을 놀리는 것만 같은 거예요.
우리 애들이야 영어가 딸리니 따로 수업하는 게 조금 있기는 했지만
그건 해주니 고마운 거였구요.
학교에 오고가는 문서를 해석하거나
저의 영어실력을 너무 믿는 선생님과 대화하는 게 골치아플 때가 있었지만
애들에게 이거하라 저거하라 여기 갔다왔니 저기 갔다왔니 잔소리해야하는 거에 비하면
그정돈 저에게 스트레스도 아닌 거예요.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니
더 있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더라구요.
그래서 애들 아빠에게 의논을 해봤죠.
그런데 애들 아빠 딱 이러더군요.
"그래.. 뭐 나쁘지 않네. 애들을 위해서 내가 희생 한번 해 볼까?"
정말로 그런 맘이냐고 했더니 그렇다네요. 그래서 다 접자 그랬어요.
원래대로 애들 한국의 새학기가 시작되면 미국 생활 정리하고 애들하고 먼저 들어간다고 말이죠.
뭐라고 할까. 이런 과정들이 애들 아빠에게 당장에 희생으로 여겨진다는 게 너무 싫더라구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 그 소는 정말 중요하지 않다는 걸까?
뭐가 대인지 뭐가 소인지 정확히 판단했다고 자신하나? 싶어서 말이죠.
기러기 아빠를 너무 맘 아파하는 제 입장에서는 어쩌면 생각을 해봤다는 것조차 욕심이다 싶더군요.
그래서 다음에 기회가 있어 미국에서의 일이 애들 아빠 경력에도 도움이 되고
가족이 함께 미국에서 생활할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그렇게 하자 그랬어요.
가방 8개 싸서 가뿐하게 돌아왔죠.
애들은 다시 여기 학교에서 새학기를 시작하고 있어요.
애들이 어제 그러더군요.
미국에서 있었던 게 마치 꿈을 꾼 것 같다고
아빠가 보고 싶지만 여기 친구들 다시 만나서 너무 좋다고
귀국하기 전에 애들 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이민 온 엄마는 말하더군요.
제가 너무 생각이 없고 여유롭다고
요즘 초등학생 엄마들 누가 그렇게 여유롭냐구요.
근데 모르겠어요.
공부야 할 놈만 하면 되는 거고
영어도 할 놈만 하면 되는 거고
모든 사람이 공부든 영어든 잘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어서요.
애들 스스로 필요하다 싶으면 언젠간 공부도 영어도 찾아하게 되겠지 그렇게 믿고 싶네요.
제가 애들에게 항상 얘기하는 건
내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 지를 항상 생각하고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걸 하는데 문제가 생기면 엄마에게 얘기하는 거죠. 그러면 같이 길을 찾아볼 수 있다고..
어찌보면 좀 책임회피성 발언이기도 한데..(쪼매난 애들이 뭘 알겠나 싶기도 하거든요.)
억지로는 뭐든 하고 싶지 않고 시키고 싶지도 않네요.
공부든 영어든 어차피 평생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들인데
단거리 달리기를 시키고 싶은 생각도 없고
지치게 하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전혀 없어요.
그리고 어제 게시판에서 고대 대자보를 읽었죠.
음.. 대자보 쓴 학생의 마음이야
그 학생이 아닌 이상 짐작도 할 수 없는 것이고
사실 그런 것까지 크게 관심이 가지도 않구요.
그저 대자보의 글귀들을 보며 이런 화두를 꺼내주어 고맙다는 생각은 했네요.
작금의 현실이 어쩔 수 없이 그런가 보다 그러기도 했어요.
공부. 학력. 스펙. 취업. 지금의 사회인식.
MB가 대통령 될 수 있었던 방향이 어쩌면 그거겠죠.
과정이야 어찌됐건 결과가 좋으면 다 좋다?
참 여유가 없어요.
모두가 시간에 쫓기고
성공에 쫓기고
실패할까봐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두려워하고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시간이 자꾸 줄어들어요.
열심히 하는데 왜 안되지? 좌절하면서도
어쩌면 내가 내 능력이상의 것을 욕심내는 건 아닌가? 하지는 않아요.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잘할 순 없듯이
내가 다른 사람보다 잘하는 그 한가지는 틀림없이 있을 거라고 믿는데
사람들이 그걸 들여다볼 생각은 잘 안하죠.
그걸 인정할 생각도 잘 안하고 가끔은 그냥 잘하는 건 하찮다고도 생각해요.
자꾸 하기 힘든 거에, 남들이 보기에 그럴 듯한 거에 도전할 생각만 해요.
그래서 행복을 느낀다면야 뭐..
하지만 내가 사는 데 있어 정말로 중요한 게 뭔가 잊어버리진 말았음 해요.
이런말 하는 저는 알고 있냐구요?
알긴 아는데 자꾸 깜빡깜빡 하죠.
눈먼 욕심에 모르는 척 하기도 하고
그래도 그런게 있다라는 생각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한번씩 머리를 쳐주기는 하는 것 같아요.
오랜만에 글을 너무 길게 썼다.
오타를 확인해보고 싶은데
다시 읽어볼 여력이 없어요.
어쩌나..
커피 한잔 마시고 와서 다시 읽어봐야 겠네요.
이사가는 게시판이라서
이렇게 글 던지고 가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네요.
아.. 이런 거 좋아요.
한번씩 분위기 전환하고
망설이는 자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상황이요.
그럼 다시 글을 쓰는 건 옮겨가는 게시판이 다시 옮겨갈 때쯤...?
p.s. 하나
미국 amc에서 imax로 avatar를 봤어요. 흐흐흐 이건 명백히 자랑이에요.
대사가 다 들리진 않았지만 지난 카메룬의 그 단순하고 유치한 대사를 생각해보면
굳이 다 들을 필요도 없지 않았나 싶어요. 암튼 자막을 안봐도 되니 멀미가 좀 덜하더군요.
영화는 나쁘지 않았어요. 카메룬 영화가 다 그렇죠. 뭐..
앨리스도 imax로 보고 오고 싶었는데
돌아올 때까지 개봉을 안하더군요.
듀게의 분위기 보니 그렇게까지 볼 영화는 아니었던가 해요.
나중에 cgv에서나 그냥 봐야 겠어요. 아직 작은 기대는 하고 있을 거예요.
사실 전 카메룬보다 팀버튼이 휠씬 더더더 좋거든요.
p.s. 둘
듀게의 정보덕에 샌프란시스코의 city lights book store에 다녀왔어요.
크지 않아 좋았고
지하가 있어 더 좋았어요.
애들 책 3권을 사왔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미국은 책값이 너무 비싸요.
아.. 근데 borders라는 체인서점에서 산 크고 두꺼운 화보집은 너무 좋더군요.
$19.99밖에 안했어요.
p.s. 셋
스텐포드 대학을 갔었는데 Memorial Church안에 들어가 볼 기회가 있었어요.
신자도 뭐도 아닌 제가 보기에도 너무 멋진 성당이었어요.
첨에 갔을 땐 그저 밖만 휙 돌고 말았는데
안들어가봤으면 몰랐겠지만 기회가 되면 그 멋진 내부를 꼭 보시라 말씀드리고 싶어요.
p.s. 마지막
미국에 있는 동안 연아 덕을 좀 봤네요.
축하의 인사도 여기저기서 듣고 가게에선 가격 할인도 받구요.
연아팬은 아니지만 프리경기를 끝낸 순간 눈물이 왈칵 나더군요.
인간의 의지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해줘서 고마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