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어떤 분께서 올려주신 정치 성향 테스트에에서 아나키즘이라는 항목이 있어 갑자기 회상을 했는데요. 저도 아나키스트였습니다. 행동주의 아나키스트였어요. 정말로 행동주의적이었는데 예컨대 학교를 비롯 공공기관 상대로 별짓도 다해보고, 개인적으로 나름대로 양심에 맡기고 일상적인 소비 생활을 아예 안 했습니다. 굳이 할 경우에도 꼼꼼히 확인하면서 했고(농협 것을 산다든지, 노조의 힘이 센곳을 산다든지), 락토 베지테리언 생활도 겸하면서 정말 별의별 짓을 다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독불장군이었죠. 그때는 친구라고는 저를 붙들어 주는-헤아려 주는-몇명 빼고는 없었고, 다들 특이하다, 애는 착한데 왜 저러냐 그러는데, 제 관점에서는 하나같이 망령과 우민들 같이 보였습니다. 우리라는 신념이 더 강해질 때가 그때거든요. 남들이 손가락질 할 때 울컥하면서 생기는 그 감정이 정말 국경을 너머-우경화된 이따위 나라 말고 해외에 더 많을-모든 나와 같은 동지들을 생각케 만들고, 기대를 더 크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선택받은 것마냥 정말 대단하고 잘난 줄만 알았죠. 그래서 차별된 삶을 사는 줄 알았고요.
인터넷이라든지 실제로도 해외에 있는 저같은 사람도 많이 알게 됐고 그랬어요. 정말 별의별 사람을 많이 만났는데, 각자 하나하나 성향이 다 다르더라고요. 다들 한 아나키 한다지만 저같이 평화 좋아하는 초월주의적인 아나키스트도 있었고, 개중에는 블랙 블럭을 수차례 경험한 전장의 아니키스트도 있었죠.
그런데 아나키즘이라고 해서 입이 잘 합해질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치와 똑같은 맥락인데, 여기서도 같은 상황이 전개됩니다. 공통적인 생각은 분명 가지고 있지만 깊숙이 들어가서 디테일하게 같이 이야기해 보면 모두 자기가 다 잘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도 마찬가지이고 멋이나 재미로 하는 사람이 참 많았죠. 블랙 블럭 안 하면 그게 아나키스트냐 우쭐대는 사람이 있었고, 두뇌가 뭉친 조합의 힘을 이용치 않는 과격시위가 아나키즘이냐고 따지는 나름 똑똑한 사람도 있고 그랬습니다. 저도 똑똑한 척하는 패거리안에 하나였고요. 그쪽 무리가 전부 사회주의쪽과 궁합이 맞는 쪽이었어요(참고로 저는 엠마 골드먼을 정말 좋아합니다, 지금도 좋아하고요)
번역해서 무정부주의라고는 하는데 실제로 권력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나키즘인데요. 이거 정말 산 너머 산이죠.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이야기는 참으로 옛날 옛적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당시 블랙 블럭은 같은 형제가 하는 것이니 받아 들여지기는 했으나 체제에 대한 저항을 통해 권력을 부정한다라는 데서 블랙 블럭은 존재하는데, 블랙 블럭을 행함으로 인해 권력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쭉 했었거든요. 요새 들어 유튜브에 가 보니 요근래도 블랙 블럭하는 곳이 많더라고요. 오랜만에 예전에 활동하던 포럼에 가 보니 그 수는 줄어들었지만 몇명이 아직 남아있는 건지 아니면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온 건지 몰라도 자본 소리만 꺼내도 돌맹이 날아올 듯한 분위기는 여전한 것 같습니다.
아나키FAQ 번역 작업도 하고 그랬는데, 요즘 한국 아나키스트 포럼은 아직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나키FAQ에서 아직도 생각나는 대목이 있는데 그게 1장에 나오던 내용인가 그렇지 싶습니다. 길게 가지 않고 중세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민주주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실현되어 있듯이 아나키즘도 역시 언젠가는 보편적인 우리의 것이 될 거라는 내용, 정말 지금 생각하면 성서의 구절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에 울컥한 적이 몇번 있는데 생각나기로 자본론을 읽었을 때가 그랬고, 철학과 사상 서적 및 제가 정말 존경해마지 않던 영향을 끼쳐준 사람들 글을 읽었을 때가 그랬고, 마리오 사비오와 체 게바라 등의 스피치를 들었을 때, 그리고 아나키FAQ를 읽었을 때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옛날 노래 듣다 보니 오늘따라 더더욱 옛날 생각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