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 샘 해리스 저/박상준 역 | 동녘사이언스 | 원서 : Letter to a Christian Nation 에서 부분 인용한 글입니다.
과학자가 과학과 종교의 충돌에 대해 정직하게 말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필요하지만 미국과학아카데미는 양자 사이의 충돌에 대해 혼동을 일으키는 내용을 발표했다.
몇몇 종교들과 진화론 사이에 발생하는 명백한 충돌은 지식에 대한 종교적 접근과 과학적 접근 사이의 중대한 차이를 잘못 이해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종교와 과학은 세계에 대한 다른 질문들에 대해 답을 제시합니다. 우주의 목적 또는 인간 존재의 목적은 과학이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닙니다. 지식에 대한 종교적 접근과 과학적 접근은 둘 다 인간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과학은 자연 세계에 대한 지식을 추구합니다. 과학은 자연적인 원인을 통해 자연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제한됩니다. 과학은 초자연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수 없습니다. 신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과학은 중립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이 선언은 멋지긴 하지만 정직하지는 않다. 과학자들은 연구비 지원이 중단될까 봐 노심초사하기 때문에, 미국과학아카데미는 세금을 내는 대중의 원초적인 공포를 대변했다. 그러나 종교와 과학의 충돌은 피할 수 없다. 과학은 종교적 도그마의 희생 위에서 성공을 거두며, 종교적 도그마는 과학의 희생 위에서 유지된다. 종교는 단순히
'인간 존재의 목적'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과학처럼 모든 종교는 세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특정한 방식을 통해 언급한다. 즉, 다음과 같은 내용이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우주의 창조주는 기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종종 응답하기도 한다. 영혼은 임신이 되는 순간 배아세포에 들어간다. 신을 올바른 방식으로 믿지 않는다면 죽은 후에 끔찍한 고통을 겪을 것이다." 이런 주장은 엄밀한 증거를 제시해야 되기 때문에 과학적 주장과 충돌할 수 밖에 없다.
넓은 의미에서
'과학'(라틴어로는 scire이며
'알다'라는 뜻이다)은 세계에 대해 무엇이 진실인지를 알고자 하는 가장 위대한 시도다. 우리는 여기에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또는 과학과 인문학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예들 들어, 일본이 1941년 12월 7일에 진주만을 폭격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역사적 사실은 과학적으로 합리적인 세계관을 형성한다. 이 사실을 증명하는 증거가 제시된다면, 이 사건이 다른 날에 일어났다거나 이집트인들이 폭격했다고 믿는 사람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설명을 해야 한다. 과학의 핵심은 통제된 실험이나 수학적 모델링이 아니다. 과학은 지적인 정직이다. 이제 우리는 인간과 관련된 지적 담론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어떤 명제가 사실인지를 판단할 때 증거와 추론을 정직하게 인정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종교는 우리 삶에서 다른 지적인 기준이 적용된다고 생각하는 유일한 영역이다.
지옥의 변방
limbo. 지옥과 천국 사이에 있으며, 기독교를 믿을 기회를 얻지 못했던 착한 사람 또는 세례를 받지 않은 어린이, 이교도, 백치의 영혼이 사는 곳을 말한다. -옮긴이에 대해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벌어진 최근의 논의를 생각해보자. 전세계에서 모인 30명의 고위 신학자들은 세례를 받지 않고서 죽은 유아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2005년에 바티칸에 모였다. 중세 이후로 가톨릭에서는 그 유아들이 지옥의 변방에 가며, 그곳에서 토마스 아퀴나스가 언급한
'자연적인 행복'을 누리며 산다고 믿었다. 이 교리는 불운한 영혼은 지옥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고 믿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생각과 모순된다.
비록 지옥의 변방은 성경에 나오지도 않고 공식적인 교리도 아니지만, 수세기 동안 가톨릭 전통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1905년에 교황 비오 10세는 이를 완전히 공인했다.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은 지옥의 변방으로 간다. 그들은 그곳에서 신을 찬양하지도 않지만 고통을 받지도 않는다."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은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
이보다 지적으로 절망적인 논의를 생각할 수 있을까? 이러한 논의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자. 세례를 받지 않은 아이들이 죽은 후에 경험할 영원한 운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증거를 제시할 수 있을까? 교육받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 논의가 우스꽝스럽고, 끔찍하고, 비양심적인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 조직이 어린이를 성추행하는 엘리트 사제를 양성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이 계획에 인간의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과 종교의 충돌은 인식과 담론에 대한 단순한 사실로 환원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의 믿음에 대한 합당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것이나 무함마드가 날개 달린 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을 믿을 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이러한 믿음은 우주에 대한 합리적 설명의 필수적인 부분이 될 것이다. 누구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신앙'에 의존하는게 어리석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성경이나 코란 같은 책들의 기원에 대해, 예수의 부활에 대해, 대천사 가브리엘과 대화한 무함마드에 대해, 그리고 여러 종교적 도그마에 대해 얘기할 때 신앙에 의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신앙이란 모든 논리적 추론이 실패했을 때, 어떤 신자가 다른 신자에게 줄 수 있는 면책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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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가 없는데도 굳게 믿는 행위는 대부분의 영역에서 미쳤거나 어리석다는 것을 나타내지만, 신에 대한 믿음에서만큼은 여전히 큰 명예를 나타낸다. 종교는 어떤 사람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 고상하게 보이는 유일한 담론이다. 물론 기부자가 많은 종교만 고상하게 보인다. 바다에서 포세이돈을 숭배하는 사람은 누구나 바보라고 생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