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에는 맨 앞에서 봤는데,
이번엔 무대 전체를 조망해보고 싶어서 일부러 뒷자리를 선택했습니다.
그랬더니 왜 무대에 객석을 설치했는지 알겠더군요.
특히 알런이 말의 눈을 찌르고, 그 모습을 무대 위 관객들이 뚫어져라 응시하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올 때,
피터 셰퍼가 왜 희곡에서 그렇게 하도록 지시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2. 류덕환의 알런을 처음 봤을 때는 카리스마에 압도되었는데,
다시 보니까 사랑스러운 부분도 보여서 더 좋았습니다.
왜 질이 그렇게 알런을 계속 꼬시는지 알 것 같아요 ㅎㅎㅎ
3. 저번 글에서 정태우의 알런에 실망했다고 했는데,
컨디션이 안 좋았던 연기 한 번만 보고 비교하는 건 좀 불공정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울 공연은 이번주로 끝나고, 그 전에 정태우의 감기가 다 나을지 걱정이네요.
4. 정태우의 알런이 말의 묘사를 하면서 갈비뼈가 상아로 되어 있고 아주 비싼 거라는 대사를 한 적이 있는데,
전 그게 알런과 맞지 않는 대사라고 생각했어요.
알런은 중절모나 승마바지 같은 걸 혐오하고 순수한 정신적 고양감을 더 중시하는 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집에 와서 다시 희곡을 보니 원래 있는 대사더군요.
확실히 해석의 여지가 많고 어려운 희곡이에요.
원래 희곡보다 대사를 많이 추려낸 건 보다 간결하고 해석이 쉽게 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5. 송승환과 정태우의 조합은 정신과의사와 환자 사이로 보였는데,
조재현과 류덕환의 조합은 마치 버디무비의 콤비 같아요.
처음엔 티격태격하다가 점점 유대감을 느끼죠.
특히 저는 고백약을 먹는 장면을 좋아해요. 보고 있자면 저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만큼 결말에서 다이사트의 고뇌와 번민에 더 안쓰러움을 느끼게 되요.
6. 객석에서 이순재 씨를 봤습니다. 노배우의 감상이 궁금하군요.
7. 카메라로 연극 전부를 촬영하던데, 방송용은 아닌 것 같았고 자료용일까요?
한정된 시야밖에 담을 수 없는 영상으로는 연극의 참맛을 즐기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그 영상 저도 소장하고 싶어요...
다시 공연할 계획이 없다면, DVD 발매라도 안 될까요 ㅠㅠ
8. 저는 이제 3번 보고 2번 더 볼 수 있는데,
어떤 분은 스무 번도 넘게 봤대요.
정말 부럽습니다!
저도 22번 정도 더 봤으면 좋겠어요.
에쿠우스 상설공연 추진을 기원합니다 ㅠㅠ
9. 원래 연극은 대사가 연기를 할 적마다 조금씩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이번에는 결말 부분에서 다이사트의 대사가 평소랑 좀 많이 달랐는데
조재현 씨의 말에 따르면 오늘따라 어떤 분이 내려오셔서 그런 것 같답니다 ㅋㅋㅋ
평소와 버젼과 좀 다른 특별한 공연을 봐서 횡재한 것 같네요 ㅋㅋㅋㅋ
10. 연극이 끝나고 연출가 조재현 씨와의 대담시간이 있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아주 유쾌하고 알차고 좋았습니다.
노출이 많은데 상업성을 염두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조재현 씨가 예전 말들은 말이 말이 아니었다, 조랑말, 병든말이었다고 해서 빵 터졌습니다 ㅋㅋㅋ
말의 탈을 씌우지 않은 버젼은 세계적으로도 이번이 처음일 거라고 하는데,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전세계적으로 공연된 연극이지만 이번 버젼의 말들이 가장 '섹시'하고 멋지고 원작자의 의도에도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말들의 높은 키가 인상적이어서 혹시 깔창을 깔진 않았냐...는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시간관계상 모든 질문을 받을 순 없었습니다 ^^;;
11. 원래 공연을 처음 보기 시작했을 때는 팜플렛을 열심히 모았었는데
어느 순간 별로 쓸모없는 일이란 생각이 들어서 구입하기를 멈췄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특별한 연극의 팜플렛을 구입하지 않는다는 건 말도 안 되죠.
팜플렛엔 그동안 무대에 올려졌던 에쿠우스 공연 자료들이 나와 있었는데
확실히 말의 탈을 쓰고 있지 않은 버젼은 하나도 없더군요.
말 역할 배우들의 몸도 말이라기보다는 소에 가까웠습니다 ㅋㅋㅋ
해외에서 공연됐던 버젼의 스틸컷을 봐도 다들 말탈을 쓰고 있었어요.
그리고 한 가지 특이했던 게, 다이사트 역할을 여배우가 한 적도 있더군요.
꽤 흥미로웠습니다.
12. 이제 이 굉장한 연극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 남았습니다.
이 감상, 이 울림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