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사람이 하는 일들도 시스템이라는 상자 안에서 이리튀고 저리튀고 하면서 시스템을 움직여 나가는 것 아닐까요.
시스템에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반성만이 시스템을 바꿀 수 있어요. 반성과 문제제기는 그것을 내놓은 각자 나름대로의 방향성이 있겠죠.
옛날 역사를 볼까요. 시민혁명이 일어나고 자본이 대두되면서 사람들은 세상이 더 좋게 변화할거라고 여겼어요. 그리고 실제로 초반에는 많은 논의들을 통해 전에는 소외되왔던 가치들이 존중받기 시작했죠. 하지만 그 변화는 결국 그 혁명을 이끈 자본가들, 그당시의 상공업인들을 위한 변화였어요. 그 시스템은 결국 자본에 소외받은 자들도 보호해주는 시스템은 아니였죠.
진보주의자들은 오늘날의 시스템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에요. 옛날 역사를 볼까요. 예전 왕정 시대에는 자본가들이 진보주의자였겠죠. 그들은 그 시스템의 문제를 집요하게 공격해서 결국은 변화를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변화는 거기까지였어요. 이제는 그들이 옛 왕정의 왕노릇을 하려들고 있죠. 그리고 오늘날의 진보주의자들은 이것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아직 제대로된 방향은 모릅니다. 현재 세상은 자본의 세상이지만, 미래는 어찌 될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예전에 왕정시대에 태어날때 정해지는 계급들로인해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고 윗 계급에대한 아래 계급의 착취가 썩어가면서 사람들은 생각하고 반성하고 문제제기를 하였고, 결국은 변화되었죠.
시민혁명이 일어나고 자본이 대두되면서 사람들은 세상이 더 좋게 변화할거라고 여겼어요. 그리고 실제로 초반에는 많은 논의들을 통해 전에는 소외되왔던 가치들이 존중받기 시작했죠. 하지만 그 변화는 결국 그 혁명을 이끈 자본가들, 그당시의 상공업인들을 위한 변화였어요. 그 시스템은 결국 자본에 소외받은 자들을 보호해주는 시스템은 아니였죠.
오늘날의 진보주의자들은 현 시대에 소외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노무현도 이 틀에서 보자면 진보주의자였죠. 하지만 그는 결국 실패했어요.
노무현전대통령에게 더 나은 시스템이 있었다면 그가 과연 현실에 좌절하고 절망했을까요. 결국 그도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무던히 노렸했잖아요. 노무현대통령의 목표는 절대 악하지 않았죠. 그는 신자유주의의 큰 틀 속에서 세상을 바꿔 나가는 것이 자신의 방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ㅎ자미나 신자유주의와의 타협은 현실적으로 지극히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죠. 그는 도덕성과 공정성 인성의 회복을 통해서 신자유주의도 사회의 위부터 아래까지 모두를 끌어당길 수 있다고 믿었어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죠. 자본만이 사회의 최우선 가치라는, 자본을 더욱 얻을수만 있다면 (그것이 합법이든 불법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공격하고, 모함하는 세력이 노무현대통령을 무너뜨렸어요.
저는 그 뒤로 신자유주의에 대해 끊임없이 경계의 목소리를 내는 집단을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적당한 타협은 어줍잖은 정도의 사람을 변화시키거나(김문수처럼) 사람을 무너뜨립니다.(노무현처럼) 유시민은 아마 사람이 변하진 않을거에요. 하지만 전 무너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경기도지사를 하면서 무던히 상처받고 찟길거에요. 자본에 의지해서 생산된 힘으로 소외된 계층을 돌본다는 생각은 실패했어요. 결국은 노무현전대통령처럼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 무엇이 될 지 아직 제 어줍잖은 머리로는 딱히 답을 낼 수가 없습니다. 예전 왕정시대를 바꾼 자본의 힘처럼 강력한 힘이 있어야 하겠죠. 하지만 자본을 일순위 가치로 놓았을때 소외된 계층들을 돌볼 수 없다고는 생각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면서요. 자본의 가치를 옹호하는 것보다 그것을 앞에 놓고 생각해야지 변화가 일어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