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보고 왔습니다, 김영진 평론가, 꿈꾸는 다락방의 이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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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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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를 봤습니다.

(스포가 있을지도..)

할머니는 아주 예쁜 의상을 입고 다니시더군요. 그녀의 삶의 조건은 질척하고 꿀꿀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예쁜 옷에 예쁜 웃음을 띠고 다닙니다. 그 겉모습과 태도 덕에 그녀 삶이 가진 꾸질 꾸질함이 표피 상으로나마 차단됩니다. 그녀가 시골 할머니들이 입는 옷을 입고 멍한 태도로 돌아다녔으면 전혀 다른 느낌의 영화가 되었겠죠.

예쁜 그녀는 시를 배우기로 결심합니다. 시를 통해 삶의 기품을 한 단계 더 올리려는 듯이요. 하지만, '느낄 수 있는 사람이면 다 시를 쓸 수 있다'는대도, 그녀는 도무지 시상을 잡지 못합니다. 그 와중에 그녀는 충격적인 진실을 접합니다. 아주 일상적이고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지켜보기 서글픈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로요. 충격의 순간, 그녀는 시상을 찾아 도피합니다. 질척대는 현실 앞에서, 그래도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고 생각하는 시의 세계로 눈을 돌리는거죠. 하지만, 가혹한 현실은 그녀를 죄의식과 고뇌와 추레함 속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결국 그녀는 시를 쓰려는, 현실 속으로 끌려들어가지 않으려는 안타까운 도피를 계속 시도하면서도, 한발 한발 진실 속으로 들어가 현실을 보기 시작합니다.

별다른 드라마가 없는 영화이지만, 영화 속에서 그녀가 현실의 추레함, 고통, 그 진실과 마주하는 장면들에서 느껴지는 생생함은 강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시를 추구할 때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 답답함과, 괴상한 어색함이 흐릅니다. 시 강좌 시간에 '자기 삶 속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에 대한 발표 시간은 늘어지고 어딘지 답답합니다. 이 장면에서 3분이 영화관을 박차고 나가실 정도였습니다. 시 낭송회 역시 형사 나리의 등장을 뺀다면, 늘어졌습니다. 둘 다 영화 속 장면이라기 보다, 그저 그런 강연회나 낭송회에 참석한 느낌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해주더군요. 아주 현실적으로 연출된 장면들인데, 이상하게 '진짜 같지' 않았습니다. 밀양에서 전도연이 기댔던 선량한 교회 교인들이 선하고 착한 이야기들을 하며 모임을 할 때 느낀 그 느낌과 흡사했습니다. 그 교인들도, <시> 속의 시 애호가들도, 분명히 진심으로 행동하는, 지극히 현실에 있을법한 사람들인데요.

그녀가 그렇게 고대하던 시를 쓸 수 있기 시작한 것은,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 서서히 잠겨가며 그것을 마주보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그 속에 완전히 파묻혀, 삶의 아름다움의 추구도 포기한 채, 자신과 자신의 상황을, 그 끔찍한 현실을 온전히 마주 보게 됩니다. 웅크리고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면서요. 형사가 묻지요. '시를 못 써서 울어요?'

그 마주 바라봄 후, 그녀는 책임지기? 혹은 그녀 나름의 현실 수용?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나서야 그녀는 시를 쓸 수 있게 됩니다. 삶의 아름다움들을 이야기하던 시 강좌의 모든 수강생 중, 그녀만이 홀로 시를 써 냅니다. 삶의 추레함 속에 푹 잠겨 고통의 현실을 마주 바라본 그녀만이요.

그리고 그렇게 쓰인 시는 그녀만의 것이 아니더군요. 시를 낭송하는 사람도 그녀만이 아닙니다. 그녀의 목소리로, 시인의 목소리로, 그리고 어린 소녀의 목소리로 시가 낭독되는 동안, 영화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없는 빈 공간들만 비춥니다. 그 속에서 등장하는 의미있는 사람은 이제는 가고 없는 어린 그녀뿐이지요. 마지막 장면은 감독님의 노골적인 의도가 느껴져서 좀 불편하긴 했지만, 어쩌면 그게 목적이었는 지도요.



답답해하며 봤습니다. 시계도 몇 번 봤어요. 자리를 박차고 나가신 분들의 심정도 이해가 갑니다.

그리고, 보기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객관적으로야 많은 찬사가 있지만, 저에게 특히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관객으로서 채워야 할 빈 공간이 많은 영화고, 그렇기에 영화가 전하는 무언가를 (감독님 인터뷰를 빌리면, 영화가 던지는 질문 자체를..) 찾도록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억지로 돌리게끔 독려(강요)한다는 점에서 특히요. 다음 영화 만드시면 또 보러 가겠죠.

이상하게 <밀양>이나 <시>는 저에게 종교 영화로 다가옵니다. 삶의 한계와 추레함과 고통을, 그 현실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마주 보아야 한다며, 도피하지 말라며 묵직하게 내려찍는다는 점에서요. 고통을 마주 보고 난 후 마지막에 가서는 희미한 구원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 조차 확실치 않죠.

음, 잘 봤습니다.




2.

이 영화를 어찌 받아들여야 하나 싶어 몇 편의 평론을 읽었습니다. 이걸 쓰고 나서 게시판 나들이를 하러 가겠죠.

김영진 평론가님 평론은 늘 와 닿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작품감상'의 내공에 도달하나요. 누군가는 머리 텅 비어서 '어엉?' 하며 막막해하며 본 영화를 한번 보고 어찌 그런 감상을 한큐에 써 내시는 건가요. (개봉 영화니까 두 번 세 번 보거나 하신 건 아니실 꺼잖아요.) 좋은 영화 평론가들은 그 내공을 어찌 쌓으신 건가요. 많이 보고 많이 고민하고 많이 쓰면서?

문학 비평가, 예술 비평가들은, 그런 감상 내공과 그것을 글로 풀어내는 그 내공을 어떻게 쌓으신거죠. (듀나님도-_-) 때로 작품 그 자체보다 비평이 더 흥미진진하고 마음에 들 때가 잦습니다. 꿈보다 해몽인지..혹은 좋은 해몽을 낳을 만큼 꿈이 탁월했던 것인지..

역시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야하나..



3.

이지성씨가 쓴 18시간의 법칙? (제목도 잘 기억이 안남)이라는 책을 서점에서 봤습니다. 아, 이지성씨는 꿈꾸는 다락방의 저자십니다.

18시간의 법칙이란 이지성씨가 만드신 법칙으로, 하루에 18시간씩 자기 일에 올인하면 무조건 성공한다는 법칙입니다. 8시간은 일을 하고, 10시간은 그 일만을 생각하는게 기본인데, 되도록이면 18시간 다 일하라고, 그리고 할 수 있다고 권하시더이다. 그 시간 확보를 위해 3~4시간 수면법을 권하시기도 합니다. 기타 꿈을 가지고 절대 그 꿈을 놓지 말며 실패를 성공의 어머리로 삼고 죽도록 자신의 일만을 파고들며 기타 꿈꾸는 다락방에 나오는 몇몇 이야기들도 하시고..(상상하기 글쓰기 등등..)

음, 여전하십니다. 이 책이 꿈꾸는 다락방 이전의 책인지 이후의 책인지 모르겠습니다.

책의 3/4 정도는 다른 사람들의, 역경을 밟고 일어선 성공 이야기의 모듬집인데, 그들의 삶이 실제로 그러하긴 하니 가슴 뜨거워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삶이 저자의 목적에 맞게 뒤틀려 실려 있는 경우가 종종 눈에 띄어 좀 그랬습니다. (제가 모르는 사람이면 상관 없는데 아는 사람이면..-_- 누구나 다 아는 극적인 성공케이스인 처칠의 경우도 평생 우울증을 달고 살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개과천선 후에도 책에서 암시하는 바 같이 그림자 전혀 없이 열정적이고 활기차며 밝고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그런 사람은 되지 못했지요. 물론 아주 많은 것을 이루어냈지만.)

꿈꾸는 다락방도 전해듣기로, 비슷한 이유 때문에 욕을 먹은 걸로 아는데..

그럼에도 이런 책들을 기웃거리는 저는..역시 '자극'이 고픈 겁니다 자극이. 내 열정은 대체 어디로..

열정.. 하니, <운명이다> 관련 강연회에서 유시민씨가 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 사건 후 분노와, 원망이 지나고 난 후 우울한 상태가 왔는데, 그 때는 삶에 대한 열정이 완전히 사라졌었다고. 사람도 만나기 싫고..

역시 열정을 되살리려면 우울을 깨야? 그런데 처칠이나 링컨은 그 와중에도 어마어마한 의지와 열정을 보였단 말이죠. 그것은 자기 수양의 결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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