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며칠 전에 라디오시계를 주문했습니다.
그게 뭐하는 물건이냐구요?
시계라디오라고도 하는데 웬지 짜증부터 나게 만드는 시끄러운 알람 대신 라디오를 알람으로 사용하는 시계입니다.
영화에도 종종 나오죠. 아침에 알람시각이 되면 라디오가 떠들기 시작하고 주인공은 팔을 뻗어서 더듬더듬 라디오를 끄는 장면말입니다.
얼마 전에 그러한 장면을 보고는 그냥 주문해 버렸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거의 전쟁 수준인 저로서는 단순히 삑삑 거리거나 따르릉 거리는 알람으로는 부족하더군요. 두 개를 놓고 쓰는데도 거의 효과가 없었으니 말입니다.
2.
드디어 오늘 사용해 봤습니다. 민들레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이 깨려는 순간,
'이렇게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으면 이웃집에 폐가 될 거야.'
라는 생각과 함께 팔을 뻗었습니다. 그리고는 기억이 안 납니다. 라디오를 끄고 다시 잠이 든 거죠.
이런 반응은 얼마 전까지 살던, 방음이 전혀 안 되던 원룸 때문입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웃집에서 대화하는 소리까지 들린다고 할까요?
그런 곳에서 살게 되면 행동을 조심하게 되는 것이 습관이 되죠. 그 잔영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
3.
......물론 행동을 조심한다고 해도 의외의 피해를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웃해 살던 젊은 커플(정황상 부부라기 보다는 동거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만)의 경우가 그랬죠. 새벽 3시나 4시쯤 집에 돌아오는 그들은 종종 사랑을 나누고는 잠들더군요.
문제는 여자쪽의 감창이 좀 컸다는 것인데, 아마도 설마 그 새벽에 누가 안 자고 있겠느냐는 생각에 마음을 놓고 있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마감시간에 쫓기면 올빼미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던 저로서는 그 새벽에도 한참 일하고 있는 경우가 가끔 있었거든요.(이제는 정상적으로 밤에 자고 낮에 일하며 살고 있습니다. 아니 정상적으로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
처음에는 즐겁게 소리를 감상했지만 좀 지나니까 그것도 고역이었습니다. 일은 해야겠는데 주변에서 정신 산만하게 만들고 있으니 온갖 잡생각이 다 들더군요.
내가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우선순위를 바꿀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여친이 있을 때 잘해 줬어야 했는데 역시 나한테 문제가 있었던 것이 틀림없어. 등등.
4.
지금 살고 있는 곳은 거실도 혼자 쓰기에는 넓고, 방도 아담한 것이 제 마음에 딱 듭니다. 한가지 유감이라면 방음도 잘 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