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본 영화들. 투모로우, 살인기계, 스파이더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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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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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투모로우.

뭐라고 말해야할지... 재미는 있었습니다. 스케일이 기대처럼 크지는 않았지만, 캐릭터도 그런대로 살아있었고, 무엇보다 여기저기 유머가 숨어있어서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인도에서 미국으로 배경이 넘어왔을 때 인도인 택시기사, 이미 알고 봐도 재미있던 니체 개그와 세법개그,  날씨 채널에서 연설하는 부통령.


그렇지만 영 편하게 볼 수가 없는 영화였습니다. 중반에 별 이유없이 주인공의 동료 중 한 명이 희생하면서부터(버티컬 리미트와 그 이전, 이후 비슷한 영화들을 고대로 답습한 장면) "그러면 그렇지" 싶었죠. 도서관에서 인물이 그렇게 줄어들었던 것도 좀 웃기는 전개였고, 그 뒤에 추가된 조역들에 대해 충분한 설명도 부족한 것이 전형적인 "후반에 갑자기 중요한 캐릭터랍시고 몇사람이 얼쩡대는데, 정작 이 사람이 누구인지 소개 한 번 안해주는 헐리우드의 고질병"같기도 했구... 그 진부함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마지막 그 연설의 내용은... 이 영화 하나가 사람에 따라 "미국을 조롱하는 내용"으로 읽히기도 하고 "역시나 미국 만세"로 읽히기도 하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아무리 미국이 망가지고 박살나고 우르르 멕시코로 피난갔다고는 하지만, 결국 생존자가 나오고 (하필이면) 뉴욕을 중심으로 단결하자는 연설이 나오는데는 9.11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9.11은 아무리 미국이 고까운 사람이라고해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수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된 비극이고, 그 비극을 계기로 단결하자는 모습은 사실 따지고보면 도덕 교과서에 실어줄만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그치만 그 이후 미국이 다른 국가에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이걸 순수하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볼래야 볼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죠.  

네, 미국은 망했습니다. 북반구는 초토화되었죠. 하지만 멕시코로 우르르 몰려간 얘네들이 얌전하게 반성하고 살 거라는 생각은 절대 들지 않더군요. 솔직히 투모로우의 속편이 있다면 그 내용은 멕시코 점령기가 될 거라는 데 100원 겁니다. 그리고 미국을 제외한 다른 북반구 국가들은 어떻게 된 거죠? 특히나 우리나라는요? 결국 미국에서 만들어진 미국이야기일 뿐입니다. 뭐 미국 영화니 미국 이야기만 다루는 거야 좋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만들었으면서 마치 전 세계를 다 아우르는 영화인척 사기성 마케팅이라도 하지 말란 말이야! 허긴 안나오느니만 못했던 일본이랑 영국보다는 아예 언급도 안된 다른 나라들이 나은 걸지도. -_-;


어쨌든 잘 보고나서 찝찝한 영화였습니다. 어쩌면 부시 행정부가 그대로 있는 이상, 한동안 모든 헐리우드 영화를 이렇게 찝찝한 기분으로 보게될지도. 사람이 참 비겁하죠. 80년대 90년대만 해도 (제가 어린 탓도 있었겠지만) 이런 문제에 그리 신경쓰지 않았는데. 요즘들어 피부로 느끼는 일이 많아진다고 무슨 좌파 지식인이라도 되는 양 헐리우드 영화에 대해 궁시렁대다니.


p.s. 참, 제이크 길렌할이 아버지와 싸우고 택시를 내리는 장면을 보니, 스파이더맨1편이 생각나더군요. 그러고보면 스파이더맨의 클론 스토리가 영화로 나와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클론인 벤 라일리는 제이크 길렌할이 연기해도 재미있을텐데요.


p.p.s. 디지털 영사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필름과 비교할 수는 없겠더라구요. 일단 영화 자체가 디지털 특수효과나 디지털 색보정이 잔뜩 들어간 헐리우드 영화이고, 비교하기 위해서는 필름 버전을 또 봐야할텐데 그럴 의욕도 시간도 없고. 기껏 제가 알 수 있는 정도라면 "어쨌든 디지털 영사도 볼만하더라"는 것인데 이 정도에 극장에서 상업적으로 상영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결론이구요. 다른 커뮤니티를 가보면 필름과 똑같다는 의견도 있고, 여전히 필름보다 못하다는 의견도 있더군요. 하지만 두가지는 확실합니다. 상영한지 오래되어도 필름 지글거릴 걱정이 없다는 것. 그리고 자막 하나는 정말 선명하더라는 것.





2. 살인기계

재미있고, 막나가는 듯 하면서도 결국 안전하고, 꽤 귀여운 영화였습니다. 마지막 성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장면에서 그 할아버지의 분장 너무 귀엽더군요. 완벽한 권선징악의 결말이었다면 실망했을텐데, 결국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식의 결말이라서 더 뿌듯(?)했습니다. 허긴 영화의 내용 자체가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좋은 놈인지 알게 뭐냐는 것이었으니... 네? 내용이 그게 아니었다구요? 뭐 제가 알게 뭡니까. ^^:

로베르트 로셀리니 회고전은 어쩌면 이거 하나 달랑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방비도시는 보고 싶은데, 과연 볼 수 있을지는...




3. 스파이더맨2

엑스맨2만큼은 아니었지만 1편보다는 재미있었고, 2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아니, 초반에 잠깐 지루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영화를 다 보니 까맣게 잊게 되더군요. 중반의 이블데드쇼나 브루스 캠벨의 까메오도 잊을 수가 없겠죠. (그런데 브루스 캠밸은 1편에 이어 직업이 두개인 셈? 혹은 쌍둥이? ^^;)


다들 인물과 스토리가 강조되어 훌륭한 작품이 되었다고 칭찬을 하길래 대체 얼마나 잘 만들었나 했더니... 음, 칭찬할만 하더군요. 특히 피터 파커의 수난기가 볼만합니다. 정말 사정없이 당하지만, 그렇다고 보기 불편할 정도는 아니고, 적당히 웃기면서 적당히 주인공에 감정이입할 정도. 붙잡히기만 하고 삐지기만 하는 메리 제인도 좋았는데, 각본이 좋아서 그런 건지 배우가 좋아서 그런 건지는 다시 한 번 봐야 알 것 같습니다. 메이 숙모도 좋았구, 해리 오스본은 성격이 좀 변한 것 같기도 하지만 본래 좀 명확하지 않은 캐릭터였으니까... 제임슨 사장의 비중이 늘어났는데, 나올 때마다 확실히 웃겨주더군요.

하지만 가장 맘에 드는 인물은 역시 알프레드 몰리나였습니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 피터 파커와 만나는 장면은 감동적이라고 해야할까요. 저렇게 맘에 드는 인물이 나왔는데 10분 쯤 있으면 이번 영화의 악당으로 돌아설 거라는 생각하니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옥토퍼스 박사로 변한 다음의 이죽거리는 유머도 물론 좋았지만, 기계에 영향을 받아 "완전히 맛이 갔다"는 설정보다는 피터 파커나 다른 사람들을 공격할 때 조금씩 주저하는 모습을 넣어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해리 오스본에 비교하자면, 스파이더맨의 정체를 알려면 피터 파커를 이용하라고 말하면서도 "그치만 피터를 해치진 말아!"라고 덧붙이던 그런 것 말이죠. 촉수 네마리도 귀엽더군요. 알프리드 몰리나가 한마리씩 이름을 붙여줄만 합니다. 아, 닥터 옥토퍼스 등장할 때마다 고질라가 생각나더군요.

1편에서는 피터 파커는 그냥 토비 백과이어고 스파이더맨은 그냥 cg로 그린 그림이라는 생각만 들었는데, 2편에서야 두 등장인물이 하나라는 실감이 납니다. 가면을 벗은 장면이 많은 탓도 있겠죠. 그치만 막판에는 너무 자주 벗으니 "이제 그만~"이라고 말해주고 싶은 생각도 들더라구요. 물론 그 장면들이 하나하나 따지면 다 이유를 가져다 붙일 수 있는 상황이었기는 하지만... 아니, 그렇지도 않은가?


마지막에 너무 뻔한 해피엔딩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영화를 닫는 메리 제인의 마지막 표정을 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 표정이 일종의 "반전"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을 정도니까요.
속편이 기대되더군요. 해리 오스본은 확실히 막나갈 것 같고, 몇몇 악당은 벌써 기반을 닦아놓았는데... 원작 코믹스를 많이 보지 못한 저로서는 베놈이 가장 보고 싶지만, 지금으로 봐선 베놈이나 카니지를 보기 위해선 몇년 더 기다려야 할 모양입니다. 그게 더 낫겠죠. 얘네들을 그리려면 cg값이 더 싸진 미래일 수록 더 유리할테니까.


p.s. 그런데 옆집 아가씨는 끝까지 이름이 안나왔네요?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3편이 나오면 제작자들 내키는대로 저 캐릭터를 펠리시아 하디로 써먹을 수도 있고 그웬 스테이시로 써먹을 수도 있겠다구요. 물론 그냥 이름없는 옆집 아가씨로 끝날 가능성이 더 많겠지만요.
  




4.
요즘 볼 영화가 꽤 많은데 시간은 없구... 그래도 위의 세 편을 볼 수 있었다는 게 대견할 정도입니다. 가장 기대되는 것은 "일본 뉴웨이브 릴레이 영화제"인데, '총알발레'나 '먼데이'를 아직까지 못봤거든요. '회로'도 다시 한 번 보고 싶구.

그 외에 으젠느 앗제, 달리, 8월인가는 샤갈도 온다고 하고... 참, 뤼미에르 갤러리인가 하는 데서는 까르띠에 브레송 사진전도 열리고 있더군요. 이래저래 볼 건 많은데, 시간도 시간이지만 돈이 엄청나게 드는군요. 어이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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