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구절을 보면 요즘 애들이 오랫만에 블로그 적을 때 하는 소리 같지 않으세요?
'While I wish to keep all daily events in written record, due to my busy programs on land and sea with no time to rest, I have long forgotten to keep my diary (as I did forget sometimes in the past). From here I must continue writing once again.'
근데 기입 날짜는 4th moon, 1593년이고, 작성자는 이순신 장군입니다. 블로그 엔트리같다는 비교는 제 생각이 아니고 윗 구절을 옮겨온 블로그의 주인 생각이구요.
거기까지 가게된 경로를 조금 설명하자면.
예전 게시판에서 한국 사는 미국 영어 강사의 블로그가 언급된 이래로 그런 한국 사는 외국인들의 블로그에 몇 번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주로 한국 음식에 대한 왕성한 식탐과 그에 걸맞는 진지한 음식탐구를 꼼꼼하게 기록하고 올린 블로그의 음식 사진을 보면서 -회덮밥과 길거리 떡볶기와 튀김, 붕어빵 등을 - 에고 맛있겠다를...정말 그림의 떡을 보면 침 흘리기를 하고 있었는데(이것도 일종의 가학적인 즐거움?), 어느날 링크된
다른 곳에 가보았습니다.
캐나다 사람인 것 같던데, 이 사람은 그래도 한국의 정치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더라구요. 정치기사를 코멘트하거나 난중일기를 읽고 소감을 올려 놓고 있었어요. 난중일기가 영어로 번역되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걸 읽고 발췌문과 소감을 올려놓았는데...우리가 너무 잘 아는 얘기가 이 사람에게 전달되는 방식과 특유의 이해방식 때문에 좀 웃었습니다. 이순신을 거의 Samuel Pepys처럼 취급하는 것 같아서요. (키다리 아저씨에 Pepys 일기를 보면서 코멘트하는게 나오지요)
블로거의 코멘트를 조금만 번역하자면
이제까지 장군의 일기를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
* 일본인과 한국인 머리 베기(주로 날씨처럼 덤덤히 언급)
* 다른 장군과 제독들 험담과 뒷다마하기(16세기 버전 서바이버 게임처럼)
* 더 많은 일본인들을 죽이지 못한 실망감
이라든가, 이순신 장군이 군기가 빠져서 술먹고 취해서 헛소리하는 장교들에 대해 실망과 질타를 적어 놓은 날의 일기를 옮겨놓고는 'Wow. I guess the Admiral was a bit of a hard-ass about partying - but then again who could blame him considering what the Japanese were doing to Korea at that time'이라고 감상을 적어 놓았군요.
발췌된 일기 내용을 읽다보니, 이
순신하면 생각나는 관제 영웅의 따분하고 먼지 뒤집어쓴 동상같은 모습이 사라지면서, 박정희류들이 뒤집어 씌운 검은 장막 틈새로 공감이 가는 살아있는 인물의 맨 발가락 정도가 살짝 내비쳐 보이더군요.
난중일기는 아주 보편적인 얘기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면 망해가는 한 회사의 정직하고 꼬장꼬장하며 유능하기도한 중견 간부가 무능하고 부패한 윗사람들과 틈만 있으면 목을 조르려고 드는 동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부하직원들을 데리고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 애쓰면서 한탄하는 일기라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