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어쩔수가없다.
- [어쩔수가없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명절에 부모님 집에 가게 되면, 영화를 한 편 보는게 관례처럼 되어가는 중이었습니다. 제 취향의 영화도 있고 부모님 취향의 영화도 있고, 아니면 명절이니까 보는 것도 있고. 코로나 이후로 좀 뜸했는데, 재작년부터는 어머니가 꼭 한 편 보러 가자는 식인듯 합니다. [범죄도시] (시리즈 중 뭐였는지는 기억 안 납니다만)와 [거미집] (당연히 제 취향이였고 저만 재미있게 봤네요) 이 뚜렷하게 기억에 남고, 다른 영화들은 흐리멍덩하네요. 시골 동네의 아주 작은 영화관이고 나름 사람들도 가득가득 보는 편이어서 현장감이 넘칩니다.
올해는 부모님 집의 아이들도 함께 보러 가게 되었는데, 영화를 보기 직전까지도 무슨 영화를 볼 지는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중학생과 고등학생 해서 3명인데, 부모님을 거처 이야기를 많이 듣긴 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마주치지 않는 편입니다. 아이들끼리 '코미디 영화에요-' 이러길래 당연히도 [보스]인줄로만 알고 있었어요. 저는 애인과 [어쩔수가없다]를 보고 싶었기 떄문에, 집에서는 보고 싶질 않았거든요.
하지만 막상 표를 끊고보니 [어쩔수가없다]였고, 기묘한 파티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잘은 기억 안 나지만 아이들 중 한 명은 기묘한 박찬욱식 개그 부분에서 빵 터져서 여러번 깔깔 웃더군요. 저는 영화에 집중해서 그 타이트한 리듬감에 빠져 재미있게 봤고, 부모님은 대체적으로 침묵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기묘한 시간이 지나가고, 온 가족이 15분 쯤 걸리는 집으로 돌아갈 때였습니다.
아이들은, 영화가 정말 이상했다, 코미디라고 광고했는데 완전 속았다, 이건 코미디는 아닌 것 같다 라고 웅성거렸습니다. 어머니도 영 좀 이상한 것 같다, 라고 맞장구 치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분노하시면서 '이... 이.... 이런 영화가 한국에서 잘 된다는게 한국이 망하고 있다는 징후다! 대놓고 나쁜 영화를 찍는 감독들보다 이렇게 교묘하게 선동하는 감독들이 질이 안 좋고 제일 나쁜 놈들이라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이 찍은 영화가 철학 있네 어쩌내 하며 어디 가서 좋은 평가를 받는게 세상이 망조가 들었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돌려가면서 의식을 주입해서 살아가면서 저지르는 것들에 어쩔수가없다..., 라고 생각하도록 분위기를 계속 끌고 가는 것이다.' 라고 하셔서 잠깐 놀랐습니다. (사실 많이 놀라진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보수적이시니. 하지만 영화를 대충 보고 그런갑다 하지 않고 이렇게까지 화내실 줄은...) 그랬더니 어머니도 필을 받으셨는지, '너무 생명경시도 강하고... 이 영화는 머릿속에서 완전 잊어버리렴, 그냥 아예 봤다는 기억 자체를 하지 마라. 아예 없던 일이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후 아이들과 함께 '마지막 결말이 거기서 그렇게 끝날 줄은 몰랐다. 마지막에 이병헌이 잡혀들어갈 지 알았는데, 아무런 권선징악도 되지 않는 영화였다.'라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아이들도 '맞아, 맞아요. 마지막 회사 들어가고 난 후에 뭔가 더 있을지 알았는데 거기서 끝나서 놀랐어요. 벌 받을 줄 알았는데' 같은 이야기로.
저는 당시에는 박찬욱이 좀 억울할 것 같아서 (그리고 그걸 그렇게 보지 않았던 나도 억울해서) 이렇게 서두를 꺼냈던 것 같아요. '그... 영화 자체가 꼭 이병헌을 지지하는 것이라곤 보기 힘들 것 같아요. 일단 그가 쓴 총을 가지고 있던 선대를 생각해보셔요. 돼지들을 기르다가 전부 생매장 시킨 후 결국 안 좋은 결말에 이르렀잖아요. 근데 그 선대가 이병헌에게 했던 말이 너가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란 말을 남겼는데 영화 자체가 남을 죽이고 살아가는걸 긍정적으로 다뤘다면 그 선대의 결말을 그렇게 설정했겠어요? 그렇지 않았겠죠.' 비슷한 식으로.
그러자 아버지가 더 흥분하셔서, '나는 돼지가 한 마리가 죽든 만 마리가 죽든 눈꼽만큼도 관심도 없다'고 한 후에 인간 어쩌고 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 그 때 이미, 아 딱히 무슨 영화를 해체하고 나발이고 되는 상황이 아니구나 해서 흘려 듣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잠시... [콘크리트 유토피아] 때 생각이 났습니다. 거기서도 이병헌은 불쌍한 아버지 같은 역으로 나오지요. 당시에도 애인과 설마 사람들이 이병헌에게 이입하지 않겠지? 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글쎄... 감독의 의도가 어찌되었든 많은 사람들이 아주 감정이입을 했던 걸 보면 (그 영화가 거기서 끝나지 않고 더 이어지는 것에 어리둥절한 사람들까지 있었떤걸 보면) 부모의 의견도 일리가 있는 건가 싶기도 살짝 혹 했습니다.
여튼 그래서 전 대충, '아이들을 포함한, 사람들이 이 영화를 그렇게 단순하게 보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건 사람들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다'라는 식으로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던 것 같습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부모님의 분노는 가시질 않았는데, 창 밖을 바라보면서 '박찬욱.. 자네가 정말 영화를 잘 만들었나 보네'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어쩌면 부모님은 [기생충] 때도 한 번 이유 모를 짜증이 났었는데, [어쩔수가없다]가 뭔가를 뻔히 보이게 배치헤서 덤터기를 더 쓴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명절 영화 선정이 완전히 폭망된 이후에, 밤에도 부모님과의 대화 대참사가 일어나기도 했지만, 이런저런 별 쓸모없는 생각들을 하게 되더군요. 영화를 납작하게 보지 말라고는 하지만, 분명 사람을 백숙처럼 만들어서 땅 속에 심거나, 결혼한 사이를 함께 땅 속에 묻은 후 불륜하던 상대방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 같은 것들이 인명경시가 아니라고는 하기 힘들지 않을까 같은. 요즘 15세들은 다들 어디까지 소화하는걸까 싶고요. 전보다 심의가 부드러워지긴 했나봐요.
마피아들이 대부를 유심히 봤다는 것까지 가기 이전에, 최근 읽은 [나는 이슬람 래퍼다]라는 책에서 갱을 했던 분도 자기들도 얼마나 열심히 폭력(?) 영화를 롤모델 삼아 등장인물들이 정말 멋있고 따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부분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동네 갱 친구들과 이 영화, 저 영화 돌려보며 자신들에게는 그것이 교과서(?)였다라고 토로하는데 흠. 그런데 21세기 한국에서 ... 이런 취업 스릴러 영화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모방범죄를 일으키는 (뭐 그런게 아니라 철학적인 분야의 문제긴 하겠지만)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요.
이어서 나중에, 혼자 든 생각이지만 아버지 당신이, 삶을 살면서 제 생각에는 자식들과 번듯한 집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수가없다' 식 행동을 한 적은 결단코 단 한 번도 없었으리라 믿거든요. 언제나 자신의 신념이 대부분 삶의 선택지에 우선 되었고, 가족이 빈궁한 삶을 살든 말든 그 신념을 관철하는게 먼저였으니 영화를 보면서 역설적으로는 일종의 죄의식 같은게 든게 아닐까 지레짐작 해보는 편입니다. (아이들 앞에서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반응했다고도 생각하지만은.)
나중에 애인과 아쉽게도 이미 영화를 봐버려서, 나는 한 번 더 봐도 되지만 같이 보러가지 않을려나 하니, 자기도 박찬욱 영화는 좀 기분이 나빠진다고, 호불호 많이 갈리지 않는가 하며 [원 배틀 에프터 어나더]와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를 대신 봤답니다. 결론이랄 것도 없지만, 다른 것보다도 앞으로는 코미디라고 소문나지 말았으면 하는 약간의 심경이 있었습니다 ㅋㅋ. 영화는 전반적으로 재미있었고, 아마 다시 보면 '이런 장면도 있었어?' 싶을 정도로 다루고 있는 장면들도 다양하고 좋았는데, 인생에서는 부모님과 함께 봐서 망한 영화로 제 작은 역사에는 남게 되어버렸습니다. 나중에는 억지를 써서라도 안전한 '명절 영화'를 봐야겠다는게 교훈이라면 교훈일지도.
P.S. 쓰고 나니 당시에 했던 '아이들과 같이 보기 곤란한 영화를 봐버렸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생각이 떠올랐네요. 개인적으로는 함께 영화 해체를 열심히 이야기해보는게 어떨까?지만 실무 상황은 또 다르겠죠 아무래도.
근데 말씀대로 이 영화는 애초에 주인공에게 그렇게 온정적인 이야기가 아닌데... 박찬욱 대신 억울하셨겠습니다. ㅋㅋㅋ 전 영화를 보면서 이병헌이 가족들을 위해 저런다는 생각이 안 들었거든요. 그건 듣기 좋은 대의명분이고 진심은 세대를 거쳐 세뇌된 가장의 로망... 그런 이야기 아니었나요.
그래도 그렇게 신념을 관철해가면서 가족들 다 잘 건사하시고 건강하게 세월 보내셨다니 잔인한오후님 아버지께선 훌륭한 분이신 것 같아요. 다만 박찬욱과 코드가 안 맞았을 뿐! 하하. 그래서 역시 명절엔 명절 영화를 봐야 하는 거죠. 박찬욱은 아니었던 것... ㅠㅜ
크흐흐.... 로이배티 님 이야기 듣고 나니 상황이 더 복잡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하긴 박찬욱적 시각(?)에 이입한다면 아버지는 정정당당한 상태로 크하하 웃으면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입장이어야 되었던게 아닌가 싶군요. 명절에 박찬욱 영화, 생각해보면 [아가씨]를 같이 본 것도 아닌데, 이 정도면 무난(?)했다는 생각도 들고요. [헤어질 결심]은 의뭉스러우니까 그럭저럭 별 말 없으셨을 수도? 같은 ㅋㅋㅋㅋ.
코드 이야기를 듣고 보니, 어떤 면에서는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내가 어때서, 하는 욱했던 지점이 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재미는 계속 있었는데, 그 재미를 공유하기는 커녕, 설명하기에도 너무 큰 벽이었습니다. 제가 재미졌던 부분 하나 들어보면, 자기가 죽여야할 대상에 이입해서 통닭도 시켜먹고 카페 차려볼까 아내에게 말하다가 뭔 소리냐는 소리 듣는 부분이었는데, 왜 재미있는지 설명하려면 이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가 우리랑 거의 다르지도 않는 사람들을 눌러야한다는 거 어쩌구 저쩌구부터 시작해야 한다는게 ㅋㅋ.
휴, 범죄 장면들 보면서 낄낄 웃으려면 부모님 말고 몰래 봤어야 했는데. 피할 수 없었던 파국 같네요. (그리고 부모님 입장에서 생각하다보니, 제가 봤던 어떤 맥락들을 많이 잊어버리긴 했는데, 차승원 씨 캐릭터는 진지하고 차분한 캐릭턴데 그렇게 해버려도 되는건가 싶긴 하더군요. 거기다 약간... 마지막 별장에서 사는 쏠로 친구의 경우, 가족이 없는 게 죕니까, 같은 생각을 아니할 수 없었군요 ㅋㅋ)
차승원은 이야기에서 맡은 역할 상 가장 험한 꼴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이해했습니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이후로 내내 이병헌의 죄의식을 자극해야 하는 캐릭터니까요. 혼자서만 웃음기 없이 진지하고 애잔한 캐릭터로 연출된 건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었어요.
박찬욱의 영화를 부모님과 함께 보고 위험하게도 영화에 대한 대화까지 하셨으니 끝이...ㅎㅎ 부모님 입장도 충분히 하실 수 있는 반응이라고 생각하고, 이해가 가요. 아무리 이번 영화가 순해지고 웃긴 장면 많은 코메디라고 해도 코드를 타는 영화임이 분명하니까요. 이런 영화가!! 그렇게 많은 상영관에서 오래 상영되고 지지와 칭송을 받는 것에 반작용으로서 반응이 더 격렬할 수도 있고요. 평소 영화감상을 좋아한다는 분들 중에도 박 감독의 영화는 쫌...이러는 분들이 많잖아요.
글이 어쩐지 독특하게 느껴졌는데 본문의 '아이들' 이라는 표현과 정체가 미묘해서인 거 같아요. 재미있었습니다.
웃겼던 것이, 아이들과 부모님 전부 박찬욱이란 사람을 식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겁니다. 저는 아이들이 선택했길래, 이 영화를 보러가자고 선택한 (생각보다 기대도 하고 강경하게 민) 아이는 적어도 약간의 시네필적 배경이 있을거라 지레짐작했거든요. 아무도 이름도 모르고 이런 이상한(?) 영화를 찍어왔다는 사실도 모르더군요. 코드... 라고 축약된 그 무엇은, 영화 메이트가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곱씹게 되네요. 영화 관람이라는게, 보는 것 자체도 중요하겠지만 보고 나서 뒷풀이(?) 자리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몽창 하는게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 [헤어진 결심]도 애인이 사정이 안 되서 같이 못 봤는데, 운명의 장난인가 싶습니다.
아이들은, 구구절절 설명할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내버려 뒀습니다. 박찬욱적 코드로 이 글도 다들 읽고 잠깐 낄낄거리며 넘기길 바랐는데, 댓글이 안 달리니 혹시 심각하게 읽으시고 계신건 아닌거지 싶었는데,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