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바낭] '우리들' 재감상 짧은 잡담
- 2016년작이니 이제 9년 되었군요. 런닝 타임은 1시간 34분. 스포일러는 무시하고 마구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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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정말 사악한 포스터 아닙니꽈. 마치 소녀들의 아름다운 우정을 그린 힐링 무비 같잖아요. ㅋㅋㅋㅋㅋ)
- 피구 팀 가르기 장면으로 시작하죠. 마지막까지 아무에게도 선택 받지 못해서 마지못해 딸려가는 처지에다가 게임 중에는 그 중에서도 사이 안 좋은 친구들에 의해서 금 밟았다는 누명(사실 진짜 누명인지는 모르구요)을 쓰고 그냥 죽어서 라인 밖으로 나가 뻘쭘하게 서 있게 되는... 초등학교 4학년 선이가 주인공입니다.
아주 옛날엔 친하게 지냈던 보라라는 같은 반 학생에게 살짝 미련(?)이 있는 듯 하고. 보라의 제안으로 방학식 날 대신 청소를 해주는 조건으로 생일 잔치에 초대 받지만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청소하고 초대장에 적힌 주소로 달려가 보니 보라랑 아무 관계 없는 아무 집. 낙담해서 생일 선물로 준비했던 본인 제작 팔찌를 들고 육교 위를 서성이다가 방금 전에 잠시 마주쳐서 통성명했던 전학생 지아를 만나요. 하필 방학식 날, 그것도 애들 다 하교한 후에 전입 절차를 밟으러 오는 바람에 반 애들 중 선이 밖에 모르게 된 지아는 자신에게 친절을 베푸는 선이에게 호감을 느끼고. 결국 친구가 되어 참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여름 방학을 보내지만 방학이 끝나감에 따라 불길한 징조들이 줄을 잇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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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구.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스포츠였던 것입니다...)
- 벌써 열 번은 넘게 봤을 겁니다. 이렇게 많이 본 이유는 제가 워낙 좋게 본 영화여서이기도 하지만 학생들 토론 or 글쓰기 주제로 종종 써먹었기 때문이에요. ㅋㅋ 제가 맡은 녀석들이 초등학생은 아니지만 얘들도 친구들끼리 잘 지내다가 갈라지고, 싸우고, 서로 미워하고 남탓 하다가 점점 일 커지고 뭐... 이러는 패턴은 이 영화 속 아이들과 정말로 똑같기 때문에 한 번 이걸 보며 자기들 경험이나 처지를 돌이켜 보라는 취지로 보여주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다 보고 나서 이 영화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별로 없습니다. ㅋㅋㅋㅋ
아니 보는 동안에는 꽤 집중해서 잘 봐요. 그런데 늘 결말 부분에서 화를 냅니다. 아니 뭐에요 이게 끝이에요? 결말이 뭐 이래요? 주인공은 복수 안 해요? 이건 이야기가 끝난 게 아니지 않아요? 이제 쟤네 둘은 어떻게 살아요? 아니 주인공만 너무 불쌍하잖아요. 등등등.
그러니까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 영화를 보고서 선이만 순수하고 결백한 피해자이고 나머진 다 못돼 먹은 악당들이라고 생각해요. 선이는 뭐 지아 괴롭힌 것도 없고 오히려 잘 해줬는데 지아가 배신하고. 지아는 보라랑 나아쁜 애들에게 억울하게 괴롭힘 당하는 애니까 불쌍하고. 나중에 선이도 지아 비밀 폭로하긴 하지만 지아가 먼저 그랬으니 어쩔 수 없고. 그래서 선이는 불쌍하고 지아랑 보라는 나쁜 놈들인데 결말이 이게 뭐냐. 왜 나쁜 놈이 벌 안 받냐. 등등. 이래서 분노를 하게 되는 것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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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에게도 잘못이 있었든 말든, 보라에게도 나름 아픈 구석이 있든 말든 암튼 보라는 천벌을 받아야 할 나쁜 아이인 것입니다!!! ㅋㅋ)
-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이들의 이런 반응은 그만큼 이게 잘 만든 영화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도입부의 피구 편 가르기 장면에서부터 이미 아이들은 빡세게 선이에게 감정 이입을 해 버립니다. 대략 비슷한 경험들을 해 본 적이 있는 아이들이 대다수니까요.
그리고 보라의 생일 잔치 초대 사기(...) 장면에서 완전히 넘어가 버리는 거죠. 선이는 불쌍해. 선이가 피해자야.
이후에도 선이는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고, 선이는 엄마 일도 돕고 동생도 잘 돌보고, 선이는 지아에게 잘 해주는데, 선이가 엄마랑 잘 지내는 게 잘못도 아닌데 지아 혼자 삐지고, 선이를 대놓고 따돌리고 괴롭히는 보라네 편에 붙어서 같이 선이를 따돌리고... 이런 부분들에 파파팍 꽂혀 버리다 보니 지아가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됐는지는 사소한 일이 되어 버리고 알고 보면 보라와의 관계에서 선이도 잘못한 부분이 있을지 모른다는 힌트는 그냥 무시됩니다. 간단히 말해 과몰입이랄까요. ㅋㅋㅋ
근데 이게 아이들의 잘못은 아니에요. 사실 저도 이 영화를 보면 볼 때마다 고통스러운 느낌이 드는데, 학생들에겐 이게 남의 얘기거나 흘러간 옛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현재 자기들이 살아 가고 있는 현실이란 말입니다. 옛날의 그 유명한 미드 명대사도 있잖아요. 학교는 마음의 전쟁터. 그러니 이쪽 저쪽 사정 봐 가며 생각해 볼 여유 같은 게 솟아날 구석이 없는 거죠. 걍 지아가 잘못했고 보라는 나쁜 놈입니다. 복수 안 시켜 준 감독님 나빠요. 대충 그렇게 정리가 되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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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분이 남긴 전설의 명대사, '그러면 언제 놀아?' 같은 부분에 아이들이 감동을 받을 틈도 없구요.)
- 그래서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학생들의 감상은 대부분 실패로 끝났습니다만. 그냥 제가 잘못한 걸로 생각하고 이제 이런 짓(?) 안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딱 그런 생각을 굳히게 된 순간이 있었어요. 영화 내용상 딱 중간 쯤, 선이가 자기를 멀리하는 지아랑 어떻게든 관계 회복하고 싶어서 엄마 돈을 훔쳐서 산 생일 선물을 들고 지아네 집으로 찾아갔을 때, 그리고 그 집에서 보라와 친구들이 나와서 지아에게 "너 얘 초대했어?" 라고 묻자 지아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장면이 나올 때 한 녀석이 손을 번쩍 들고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거 그만 보면 안돼요?" 그래서 왜, 재미가 없니? 라고 물었더니 그 녀석의 대답이 이랬어요. "재미가 없다기보단, 이거 너무 기 빨리고 힘들어서 못 보겠어요." 라구요.
제가 반 농담으로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늘 쓰던 표현이 '알고 보면 최고의 공포 스릴러'라는 거였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도 아이들에겐 이게 훨씬 더 진정한 호러 무비이자 멘탈 고문 영화였던 것입니다... 미안하다 얘들아. 이제 다시는 안 이럴 게.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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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
+ 대단히 훌륭한 연기를 보여줘서 앞날이 밝다 생각했던 우리의 어린이 배우들... 이었던 이제 성인 배우님들의 근황이 궁금해서 확인해 보았습니다.
주인공 선이 역을 맡은 최수인(이제 22세입니다!)은 그래도 '최소한의 선의' 같은 영화에서 주연도 맡았고 '더 글로리'에도 출연하고 그랬네요. '아이 캔 스피크' 같은 영화에서 작은 역이라도 맡아서 소화한 적도 있고 아주 잘 나가진 않지만 그럭저럭 배우 활동 이어가고 있구요. 지아 역의 설혜인은 이후 '벌새'에서 작은 역을 맡고 윤가은 감독의 '우리집'에 특별 출연했던 걸 제외하면 활동이 없어요. 6년간 아무 소식이 없으니 이제 배우는 그만두셨나 봅니다. ㅠㅜ 보라 역의 이서연은 빡세게 공부해서 이화여대 진학한 후 배우 활동도 계속 하고 있으나 아직은 대체로 작은 역할들인 듯 하구요. 마지막으로 선이 동생 윤이 역할을 맡았던 귀여운 강민준 (당시 기준) 어린이는 이후로 활동 기록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정리하자면 지아랑 윤이는 이제 더 이상 배우가 아닌 듯 하구요. 선이와 보라는 화려하진 못해도 일단 배우 생활은 이어가고 있다. 라는 정도가 되겠습니다. 아쉽지만 그래도 아직 버티고 있는 두 분이라도 앞으로 더 잘 나가는 멋진 배우님이 되시길 기원해 보아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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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아직도 '오이 김밥'이라는 음식을 먹어 보지 아니하였습니다. 사실 안 먹어 봤어도 대충 맛이 짐작은 가잖아요. 오이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굳이... 라는 느낌? ㅋㅋ
+++ 정말 순도 100% 우연으로. 이 글을 다 적고 나서야 바로 어제, 이 영화가 개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썸네일에 적힌 그대로 윤가은이 '우리집' 이후로 내놓은 세 번째 장편 영화 '세계의 주인'입니다.
또 학생들 이야기이고. 또 장혜진 배우님이 출연하시고 그랬네요. ㅋㅋ 찾아보니 평가는 아주 좋은 것 같아요.
주말에 '세계의 주인'을 예매한 저는 배티님이 '세계의 주인'을 앞두고 윤가은 다시 보기를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얼마전 모 멀티플렉스에서 '우리들'과 '우리집'을 아트하우스 재개봉하기도 했고요. 학생들의 관람 반응을 읽으면서 아이들이 귀엽다가 안된다가 합니다. 어린 시절에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경험이지만, 그때의 강렬한 감정들이 한참 지나서 돌아보니 짠한 거죠. 그 나이 대의 아이들은 그런 장밋빛 렌즈를 장착하려면 최소 십여년은 보내야 할 겁니다^^
기묘한 우연이... ㅋㅋㅋ 저 글을 적기 시작한 시각은 어제였으니 딱 개봉날 이 영화 글을 적은 거더라구요. 하하;; 제가 이렇게 영화 정보에 어둡습니다!!
그렇죠. 그렇다는 걸 이제사 깨달았습니다. 아니 이렇게 빤히 힌트를 주고 설명을 해주는 영화인데 왜 이해를 못하니?? 라는 생각이었는데. 그저 제 생각이 짧아서 애들 멘탈을 고려 못 했던 거였어요. 미안했다 그동안 나 때문에 이 영화를 본 아이들아!!! ㅠㅜ
저 오늘 '세계의 주인' 예매해놨는데 저도 윗 댓글처럼 배티님도 보기 전에 윤가은 복습을 하시는 줄? ㅋㅋㅋ
아 이걸 학생들에게 보여주곤 하셨군요. 마지막에 선이가 복수를 해야한다라 ㅋㅋㅋ 하긴 그렇게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고 오히려 당연할 수도 있겠죠. 어쨌든 각자 이 작품의 메시지나 교훈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는 있지만 이미 어른이 된 입장에서 첫감상을 했을 때부터도 감정적으로 힘든 영화인 건 확실합니다. 지아가 선이와 엄마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나서 삐딱하게 굴 때 선이의 당황한 표정을 보는 순간 제 심장이 다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던 기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해요. 아마 이미 아시겠지만 감독님 다음 작품인 '우리집'에서 여기 출연진이 카메오로 나왔는데 지아, 보라가 선이가 만들어준 우정팔찌를 차고있었죠. 그냥 해피엔딩으로 받아들이는걸로! ㅎㅎ
그 '최소한의 선의'를 저는 올해 초에 봤는데 최수인 배우 참 잘 컸더군요. 벌써 20대라니 세월이 벌써! 무려 임신한 여고생 캐릭터를 맡았는데 실제 이런 일이 생겼을 경우 여학교에서 어떤식으로 대처하는지에 대한 부분을 굉장히 디테일하게 다룬 작품이었어요. 최수인은 물론 장윤주의 연기도 매우 훌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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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혜인은 '벌새'에서 "언니 그건 지난 학기잖아요."라는 불후의 명대사를 남기고 이후 은퇴(?)를 하신 모양이군요. 어린 나이에 벌써 심상찮은 존재감과 연기력을 보여줬던 걸 생각하면 제의가 없진 않았을테고 본인의 선택이었을 것 같긴한데 그래도 언젠가 복귀해줬으면 합니다.
이렇게 된 김에 그냥 정말로 복습인 척 할 걸 그랬죠. ㅋㅋㅋㅋㅋ
실제로 학교에서 아이들이 겪는 친구간 갈등 중 대부분이 정말 이 영화 속에서 묘사한 거랑 정확하게 똑같거든요. 서로 선의를 갖고 맺어졌다가 서로 눈치 채지 못할 사연들로 맘 상하고, 멀어지고, 나중엔 서로 입장에서 '이유 없이 갑작스럽게' 파국을 맞고. 그러고나서는 서로 죽어라 미워하고... 그래서 이렇게 남의 얘기로 잘 정리된 걸 접하면 뭔가 느끼는 게 있지 않을까? 해서 틀어주곤 했는데 결국엔 트라우마만 자극하고 있었네요. 음(...)
전 듀나님의 '최소한의 선의'를 찜을 해두고도 거기 최수인이 나왔다는 걸 모르고 있었어요. 으하하;; 속죄하는 마음으로 우선 이 영화라도 봐야겠습니다.
아. 맞다 그냥 막연히 '역할은 작았지'라고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대사를 날린 게 설혜인이었군요. 적어주신 대사를 보는 순간 팟! 하고 떠올랐어요. 개인적으로 '벌새'의 메인 스토리보다 이 에피소드를 더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었는데도 까맣게 잊어 버렸을 뿐이고... orz 암튼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잘 지내고 있기를 빕니다. 영화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더욱 좋겠구요.
글 감사합니다. 이 영화 전에 윤가은의 단편영화가 있어요. 저는 '영상자료원'에서 보았어요.
엄청난 '오디세이'여요! 예고편이어요.
마을을 누비는 보리의 하루! 연기 천재 김수안_콩나물 예고편
듀나님의 리뷰여요.
단편 영화까지도 극장에서만 보시는! 멋지십니다. 하하.
'콩나물'은 옛날에 리뷰만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다시 읽으니 기억이 확 살아 나면서 왜 이게 벌써 12년 전인가 싶고... (쿨럭;)
어디선가 대학 간 딸래미가 나와 함께 이 영화를 보고 오열하더라... 이런 후기를 읽었던 기억이 나기도 하구요. 이렇게까지 험한 사례는 아니어도 대략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그것도 아닐지라도 여기 나오는 아이들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만한 경험들은 대부분 거쳐 왔겠죠. 그래서 계속 명작 얘길 듣는 것 같구요.
사람들 반응을 보면 이번 신작은 극장 가서 봐야 하나... 라는 생각은 드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고 보나마나 광속으로 극장에서 내려오겠죠. 난감합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