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없음] 대홍수.
누워서 생각하는데 퍼뜩, 뭔가 잘못 썼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상황의 핵심은 영화를 보는 과정과 영화를 보고난 후가 아니라, 영화를 보기 전인데.
일단 제가 넥플릭스로 [대홍수] 이전에 영화를 언제 봤나 살펴봤습니다. 매달 매달 꼬박꼬박 돈을 내고 있지만, 넷플릭스로 영화? 까마득하게 기억도 안 납니다. 보니까 6개월 전에 [폴: 600미터]를 봤군요. 바로 그 전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아주 가끔 요금이 아까워서 목록을 살펴보긴 하지만, 그 중에 영화를 굳이 클릭해서, 심지어 그걸 또 끝까지 내리본다? 이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재난물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그리고 그건 사실이긴 하지만...) 이게 뭐 마케팅이 잘 되서 그런 걸까요?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이 전에는 이 영화가 한참 지나가고 나서, GPT, 세계 사람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각 국가별로 비교해서 혹평과 호평을 정리해줘, 적어도 열 개 이상의 국가로 지역 불균등 없이 고루 배치해서, 하고 보고서나 한 번 읽으면 되겠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겁니다. 실제 해야 하는 일은, [대홍수]를 보고는 싶은데 아직 안 본 사람들을 납치해서, 지금 보고 싶은 [대홍수]의 내용이 과연 뭘 것 같나고, 무얼 원하고 있냐고 물어봐야 되는 거였습니다.
기억 나실지 모르겠는데 올 한 해는 세계적으로 수해 피해가 상당한 해였습니다. 여름에 한국에 닥친 수해는 차지하고, 이번 달 초에도 동남아에 거대한 홍수가 닥쳤습니다. 제가 알기론 세 개의 사이클론이 동시에 형성되어 말라카 해협을 중심으로 대여섯 개 나라에 큰 피해를 줬습니다. 사상자 수가, 보통 수해 피해에서 나오는 수가 아니라서 저는 다시 한 번 찾아보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국제 뉴스에 관심 없는 분들도, 적어도 올 한 해 마치 재난 영화 같은 해외의 수해 피해 장면은 한 번 정도는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재난물이란 뭘까요? 모순되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것? 재난의 스팩타클도 보면서, 2시간만에 어떤 결맺음이라는 안심도 함께 느끼는 것? 아마 모든 재난 영화가, 러닝타임 안에 영화가 끝나긴 하지만 주인공을 찍는 카메라 너머의 거대한 인명/재산 피해는 모른척 눈 감는 아이러니를 담게 됩니다. 대부분 지구의 현 상태에 대해서 부정과 타협을 지나 일정량 수용에 다가가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가 영화에 요구하는건 일정량의 위로 아닌가 싶습니다. 전 아직 [해운대]를 안 봤는데, 혹시 그걸 틀어보면 그런게 들어 있을까요? 시간이 흐를수록 현실 세계의 재난이 촘촘하게 얽혀들어오면서, 한국인들의 재난물에 대한 개연성 요구도 훨씬 비좁아지고, 그걸 가끔 겨우 통과하는 [부산행] 같은 것이 성공했던게 아닐까요. 그에 비해 [반도]는 받을 수 없는 거고?
전 영화를 봐버려서, 보기 직전까지 뭘 원했는지 새까맣게 잊고 말았습니다. 단편적인 기억으로는, 물이 차오르는 아파트 계단 장면이 영화 보기 전에 인상깊게 남았었는데 그 때 과연 무슨 영화를 기대했던 걸까요? 그리고 세계인들은 현 시점에 무슨 영화를 상상하며 기대하고 있는 걸까요? 모두들 한 마음으로 무슨 이야기에 대한 갈증이 있는 걸까요.
아하. 이 영화의 전세계적 흥행을 그런 쪽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겠네요. 어차피 외국 반응을 살펴 봐도 그리 호평은 아닌 쪽이고 스타 파워가 강한 것도 아닌데 희한하게 대박이네... 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재난물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옛날엔 관객들이 거의 좀 순수한 흥미이자 재미 포인트로 접근했던 것 같아요. 특히 헐리웃 특수 효과의 발전이 실시간으로 체감되던 시절엔 화산도 터뜨리고 운석, 혜성도 떨어뜨리고 해일, 지진도 일으키면서 참 다양한 오락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랬죠. 근데 그거야 환경에 대한 공포가 와닿기 전 이야기이고... 이젠 이런 장면들을 순수한 재미로만 받아들이기엔 이미 일상에서 체감하는 부분이 워낙 살벌하니까요. 결국 재난물은 뭔가 진지 심각한 메시지를 담지 않으면 안 되는 무언가가 되어 버린 느낌이에요. 안타깝다는 기분이 드네요... ㅠㅜ
영화라는게 역시 얼마나 안온하고 안전한 상태에서 즐길 수 있는 여가인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올해 중반까지는 아예 영화를 보러갈 생각이 아예 안 들더라구요. 코로나 이전에 [감기]를 재미있게 보았는데, 이후에는 다시 봐도 그렇게 볼 수 있을까 싶더군요. 무더기로 사람을 묻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거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편하게 보아왔던 가봐요. [문 폴]을 웃으면서 보긴 했지만, 차라리 이런 우주 재난들은 닥칠 일이 없으니까 그나마 마음이 편한 것인지. 앞으로 재난 영화들은 어디로 갈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