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윌리엄!]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오, 윌리엄!]을 읽고 조금 써 봅니다.

[오, 윌리엄!]은 좋은 평가를 받은 책 같습니다. 출판사가 제공하는 건 단평 위주의 좋은 평가이고, 제가 확인할 수 없는 본격 평론에서 부정적인 평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부커상 후보작이었다는 건 분명하니까요. 이 작가 책을 네 권 읽었는데 두 번째로 읽은 [다시, 올리브]가 가장 좋았고, 이번 책도 흥미롭게 읽었지만 순위가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아래 글부터는 소설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요.


루시는 현재 64세. 윌리엄은 71세입니다. 소설은 이 나이의 2년 전 시간부터 시작되는데, 제목이 윌리엄 위주인 듯하지만, 20여년 전에 이혼한 이후로 친구로 지내고 있는 화자인 루시와 윌리엄 두 사람의 긴 시간에 걸친 이야기이며 다 읽고 나서 생각해 보면 역시 주인공은 루시라고 할 수 있어요.

이혼 후에 둘 다 재혼했으나 몇 달 전에 루시 남편은 병으로 죽고 윌리엄의 아내는 무례한 방식으로 결별을 고하고 떠나버립니다. 그래서 둘 다 정서적으로 힘들지요. 그리고 이 신변의 변화가 소설의 중요한 축인 두 사람의 여행을 가능하게 합니다. 

윌리엄은 오래 전에 돌아가신 엄마 캐서린이 자신의 아버지와 결혼 전 초혼에서 낳은 자식이 있음을 최근에 알게 됩니다. 엄마의 첫 결혼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으나 한 살 아이를 남겨두고 떠나왔다는 것과 평생 그에 대해 함구했었다는 것은 이번에 알고 충격을 받습니다. 윌리엄의 아버지는 그가 십 대일 때 죽었고 캐서린과는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외동 아들과 홀어머니의 끈끈함이 있었거든요. 캐서린은 윌리엄과 루시의 결혼 생활에도 많이 개입했고, 루시쪽 가족이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아 스스로를 투명인간처럼 느끼던 루시에게 이런저런 영향을 준 인물이었어요. 

그리하여 윌리엄은 루시에게 자신의 이부 누이가 사는 메인 주를 같이 다녀오자고 합니다. 그냥 '살펴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둘은 메인 주로 가서 윌리엄의 이부 누이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루시만 집 안에 들어가서 대면합니다), 캐서린이 첫 결혼 때 잠깐 살았던 농장집을 차로 지나가며 보고, 캐서린이 자랄 때 살던 숲 속 오두막을 찾아가 봅니다. 그러고 뉴욕으로 돌아옵니다. 


윌리엄의 엄마 캐서린은 루시와 같은 출신이었네요. 벽지 깡촌의 빈곤 가정 출신입니다. 윌리엄이 당연히 더욱 그렇지만 두 사람은 각자의 이유로 충격을 받습니다. 

캐서린은 골프 클럽 회원이었고 휴가 때면 카리브 지역 해변 리조트로 그들 가족을 데려가곤 했어요. 루시는 골프든 휴가 여행이든 한 번도 즐겁지 않았다고 씁니다. 물건 하나 이용하는 것조차 낯설고 어렵고 애들 돌봄은 홀로 해야 했고, 심지어 호텔에서는 방을 잘못 찾곤 했다는 겁니다. 캐서린은 항상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 주었지만 또한 '오, 너한테는 너무 버거운가보구나'라는 말을 이어서 하곤 했대요. 

가난하고 무심하고 거칠었던 부모의 집을 벗어나 루시가 들어가려던 다른 세계로의 인도자가 윌리엄이었고 캐서린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메인 주 방문은 이 두 사람과 긴 세월동안 이어졌던 관계의 성격이 새로워지는 계기가 됩니다. 

루시는 뉴욕으로 돌아와 생각합니다. '캐서린, 당신은 해냈군요, 용케 해냈어요. 우리 세상을 나누고 있는 그 경계를 넘어갔어요!'라고.

루시는 어릴 때 학교에서 자신의 형제들을 향해 냄새가 난다며 코를 쥐던 아이들을 기억하고 있고 이 냄새는 자신을 여전히 따라다니는 '자란 환경의 희미한 냄새'라고 생각합니다. 윌리엄과 여행 중에 메인의 시골을 지나면서 루시는 다시금 과거의 막막한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익숙함과 편안함을 가지기도 하고, 이것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자신의 일부임을 생각합니다. 이와 동시에 작가일로든 다른 볼 일이 있어서든 다른 도시에서 뉴욕으로 들어올 때마다 항상 자신을 받아들여 준 뉴욕이라는 도시에 고마움을 느꼈고 감사의 마음이 생겼었다고 하고, 백화점에서 스치는 전형적인 부유층 사람들을 보는 것이 좋고 그들에게 사랑을 느낀다고도 합니다. 이런 모든 표현들을 미루어 볼 때 루시는 자기 안의 두 세계를 인정하고 품게 된 모양입니다. 캐서린처럼 이쪽에서 저쪽으로 경계를, 출신을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은 아닌 것입니다. 메인 주는 캐서린의 고향이고 루시의 고향은 일리노이 주이지만 메인 주 여행은 결과적으로 루시의 고향 방문으로 보입니다.

세련된 캐서린, 권위 있는 사람이라 여겼던 전남편 윌리엄. 늘 갖고 있던 그들에 대한 인식 틀이 물렁물렁 유연해 진 것 같고, 전과 달리 그 가치가 떨어져 보입니다. 그래도 루시는 가치를 지키겠다고 다짐하네요.    

  

잘 읽히는 소설이었지만 다 읽고 나자 좋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소설 속에 나오는 표현인데 전체적인 인상이 너무 '자기 몰두적'이지 않나 했어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의 혈연인데, 백인 중산층입니다. 그 바깥의 부수적 인물, 종업원이나 호텔 직원 등은 대체로 불친절합니다. 그리고 아무 접촉없이 보기만 했던 두 인물 - 공항에서 스쳐가며 보는 노숙하는 사람과 캐서린 고향 오두막 근처 길에 서 있던 어떤 인물은 화자에게 불쾌감이나 공포감을 주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너무 내부와 위협적인 외부로 나뉘어진 느낌이 있습니다. 

또한 이 사람들의 나이를 생각하며 읽다보면 좀 그래요. 나잇값을 생각하게 됩니다. 루시는 작가이고 윌리엄은 생물학 교수였습니다. 그 나이가 되어도 사소하게 감정 상하고 상대방의 바지가 짧다는 이유로 우울감도 느끼고...뭐 그렇게 표현되어 있거든요. 우리가 그렇긴 하지만, 사실이긴 하지만 굳이? 하여튼 이 소설에 그런 세부가 강합니다. 

그리고 표현상의 거북함도 한몫합니다. 루시는 스스로도 인정하는데, 겁이 많습니다. 사실상 어린 시절 환경은 매우 나빴으나 대학 때 만난 윌리엄과 바로 결혼해서 본격 직장 생활은 하지 않았고 작가가 된 후 성공하고 경제적 여건도 어렵지 않았어요. 그래서일까요. '겁이 났다, 겁을 먹었다, 겁에 질려' 같은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공포에 대한 기준점이 너무 낮은 것 아닌가 하게 됩니다. 또 '나는 그렇게 느꼈다, 거의 그렇게 느꼈다, 그게 내가 받은 느낌이었다' 같은 표현도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이런 것은 서술에 리듬감을 주는 역할도 하겠지만 저는 좀 거북했어요. 아마도 화자가 스스로에게 느끼는 연민이 전면에 표현되어 있어서 독자인 저의 감정을 앞서고, 때로 과한 감정 표현으로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은 저자가 알면서 의도한 것이겠지만, 한정된 시야나 인물의 솔직함을 표현하기 위한 의도 같은 것이겠지만, 저와 잘 맞지 않는 것 같았어요.


처음 읽고 나서 이 느낌이 맞는가 해서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다시 읽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작가의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처음 읽었을 때보다 표현의 거북함은 익숙해지고, 의미는 조금 잘 보인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두 인물의 이야기임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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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간에 '메인의 시골'이란 표현을 보고 웃어 버렸습니다. 메인의 시골에서 자랐으면 그 시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 제겐 당연해 보이니까요. 다름 아닌 스티븐 킹 소설들의 배경 지역이 바로... ㅋㅋㅋ 뭐 실제로는 심심한 게 가장 큰 죄인 평화로운 지역이라고 하지만 인종 구성상 백인들이 압도적 다수라는 걸 보면 본문에 적어 주신 불편함이 살짝 이해가 되는 듯 하기도 하구요. 똑같은 결은 아니지만 제가 언제부턴가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겉보기엔 안락해 보이는 백인 중산층 지식인의 내적 고통' 이야기를 발견할 때마다 삐딱해지는 습성이 생겨서 말입니다. 하하;

      • 이 메인 주가 무척 궁금해 집니다. 이보다 앞서 나온 올리브가 주인공인 작품은 메인 주가 본격 배경인데요, 거기는 바다가 가까운 동네라 그런지 아름답게 표현됩니다. 최소한 경관은 멋지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이번 소설에 나오는 여행지는 내륙쪽인가봐요. 인물들에게 지옥을 연상시키는 황폐한 마을도 나오고 버려진 집들도 많고 그랬어요. 그야말로 스티븐 킹 소설의 배경이죠.ㅎㅎ 메인 주가 인구 구성을 보면 노인이 가장 많고 백인도 가장 많이 산다고 하네요.




        지적하신 부분이 저도 그랬습니다. 소설이 '백인 중산층 지식인'으로서의 고통에 함몰되어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어요. 예전에는 소설을 읽으면서 크게 의식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는 그런 면이 의식되고 불편함도 느끼고요. 이 소설이 매우 최근 작품이라 그런 생각이 더 든 것 같아요. 영화, 드라마에서 그간 꾸준히 실제로 존재하는 다양한 인종을 주요 역할로 등장시킨 점, 다양한 고통을 보게 한 점이 어느정도 저를 교육시킨 결과 갖게 된 시각이라는 생각도 해 보았어요. 

        • 요즘 서양 영화나 드라마들이 현실성을 어느 정도 접어두더라도 다인종 캐스팅을 고집하는 게 종종 요상하고 어색해 보이기도 하지만, 또 분명히 바람직한 효과를 남기는 부분이 있다... 는 생각을 최근에 했었거든요. 이런 얘길 하면 화내는 사람들이 많아서 조심스럽습니다만. ㅋㅋ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이 트렌드(?)를 납득하기로 했습니다. 하하.

          • 과거에 흑인 역할을 백인이 칠하고 연기했던 일까지 있었음을 기억한다면 지금의 경향은 그것을 되돌리기 위한 과정이라 더 눈에 띌지는 몰라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동양인인데 백인에 이입해서 생각하는 것도 우습죠. 달라진 것을 보는 것이 어색한 건 있겠지만 창작이란 시간이 가면서 변화하고 온갖 창작의 가능성에 열려 있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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