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연과 은중

'은중과 상연' 을 다 봤네요. 완전 스포일러 투성이 글입니다.

 

기질이 참 다른 상연과 은중이 어쩌다 서로의 다름에 매혹되어 평생을 이어가는 관계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이 오랜 세월을 알았지만 실제로 같은 공간에 머물렀던 시간은 헤아려 보니 그렇게 길지 않았어요. 십 대 때 4-5년 쯤, 이십 대 1년, 삼십 대는 1년이 안 되는 몇 달 정도의 시간이고, 마지막으로 마흔 두 살에 짧게 만납니다. 11세에 만나 42세까지 30년이 흐르는데 실제로 그들의 인생이 겹치는 시간은 최대로 잡아 7년 정도네요. 그것도 십 대 때를 제외하면 2년 정도입니다. 

이 두 사람의 애증의 뿌리를 더듬다가, 왜 그렇게 쉽지가 않았는지 생각하다가, 끄적여 봅니다.

 

이 드라마는 상연의 죽음으로 막을 내리고 분량이나 시선이 은중의 입장이 위주가 되므로 상연이 특이하고 기구한 인물이며 과하게 느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곰곰 생각해 보면 영재 급으로 머리가 좋다는 것을 제외하면 저는 상연이 일반적인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 일상에서 희노애락에의 반응을 보면, 그러니까 성격 면에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성격이라는 게 타고나는 게 많다고 합니다. 이 두 사람도 타고난 것이겠지요. 


은중은 엄마를 닮고 태어난 데다가 엄마를 보고 자라 그런 것 같아요. 여유롭고 속깊고 베푸는 사람입니다. 꼼수를 부리는 계산을 모르고 투명하게 세상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일곱 살인가부터 아버지가 없었지만 부모 이혼으로 헤어진 게 아니죠. 사고로 떠났으므로 마음껏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재혼도 안 하셨네요. 홀로 우유를 배달하고 나중에는 떡집을(떡집이라니 얼마나 고전적이고 푸근한 어머니의 직업인가요) 하며 은중 남매를 키웠습니다.(남자 동생은 드라마 중간에 사라지고 어디로 갔을까요. 제가 놓친 것인지...)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것 외에는 정서적으로 아주 안정되고 순탄합니다. 소위 말해서 하자없는, 세상 떳떳한 사람이지요. 나를 믿고 세상을 믿는 사랑스러운 사람입니다.


상연은 영리한 만큼이나 자존감이 강한데 어릴 때는 자신의 두뇌에 대한 자신감과 자존감을 기준으로 삼아 외부 세계에 대응해 왔어요. 그런데 머리가 좋으니 만큼 일찌감치 자신에게 없는 부분을, 그 사려 깊음과 따뜻함을 은중에게서 발견하고 '이길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상연이 자신에게 없는 것을 은중에게서 보던 순간이 최초로 절망감을 경험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은중이 상연을 보며 부러워하는 것과 상연이 은중을 보며 깨닫는 것은 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은중은 다르다는 것을 그냥 받아들이는 느낌이죠.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아요. 그런데 상연은 심각하게 느껴져요.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는 것이죠.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후에 상연에게 외부 세계가 공격해 올 때 이것을 이겨낼 만한 정서적 버팀목이 없습니다. 부모는 싸우고 오빠는 죽었는데, 자존감이 무슨 수로 남아날까요. 상연은 이 현실의 공격을 감당할 수 없어요. 무슨 수로 감당할까. 이 과정에 상연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굴절이 일어나는 과정이라고 봐야겠습니다. 상연의 부모는 이혼했고 아버지는 후에 혈육에 빌붙어 피를 빠는 종류의 사람이 됩니다. 상연의 어머니는 아들 일 이후에 스스로도 딸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게 되는데 상연은 원래 엄마가 상연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요. 상연은 그리워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이 이상 외로운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 동안 학교도 중단하고 집에 처박혀 있다가 잡은 지푸라기가 오맹달이자 상학인데, 사실 이 인물은 상연이 살려고 붙잡은, 굴절된 마음이 가닿은 하나의 빌미로 보입니다. 왜곡된 상황이 낳은 의미부여인 것이지요. 훗날 30대에도 은중을 의식하여 집착하는 것이지 사랑과는 관계가 없지요. 시간이 지나 상연과 은중이 마지막에, 40대에 만났을 때는 그의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고 지워져 있어요. 20대 30대에 상학 때문에 그 난리를 쳐놓고, 이제 둘이 마주앉거나 나란히 누워 허심탄회하게 일생을 돌아보면서는 말이죠.


저는 상연이 은중을 보며 느꼈을 부러움과 절망감에 더 공감을 했습니다. 은중은 상연의 외로움은 '너 스스로 너를 외롭게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기에는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던 모든 것들을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닌가 싶네요. 물론 상연은 알면서도 나쁜 선택을 하기도 했습니다. 자신도 믿지 못하고 세상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라고 믿지도 못하고 스스로를 아끼지도 않아서요. 

은중은 숙고하여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죠. 대사 중에 나오듯이 '자신을 잘 보호하는' 사람입니다. 상연은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나쁜 일들을 겪으며, 아무리 자신을 잘 보호하려 해도 보호되지 않는 험한 일을 많이 겪었습니다. '어릴 때 화장실이 두 개인 집에 살아서 지금 화장실이 없는 집에 사나봐'라고 말할 때의 상연. 그 곁에 아무도 없을 때 은중을 다시 만났고 상연은 은중을 봅니다. 바르게 살 수 있다고 믿고 실제로 주변의 사랑을 받는 일상을 꾸려가는 은중을 보면서 갖게 되는 복잡한 마음. 이 복잡한 마음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은중을 타인으로 취급하지 않으려면 이 복잡한 마음을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지 그것이 문제입니다. 상연이 더 오래 살았으면 죽음을 앞에 두고 만나지 않았어도 두 사람이 다시 친구가 되는 방법이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어려웠을 거 같습니다.  

생각을 더 정리할 부분이 있는데 외출해야 해서 급 마무리합니다.


맛있는 거 많이 드시면서 영화, 드라마 실컷 보시는 연휴 되시길!!







    • 제목은 일부러 이름 순서를 바꾸셨겠죠? ㅎㅎ 글을 읽다보니 자연스레 또 전체 내용이 복기가 되네요.




      둘이 능력 있고 인물 좋은 건 드라마 주인공 캐릭터라 당연하다치고 은중은 가난한 것 빼고는 거의 모든 것이 축복받은 환경, 상연은 반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어요. 물론 은중이 뭐 그렇게 축복받았냐 할 수도 있겠지만 살면서 주변에 민폐 끼치는 트롤러 없고 가족, 친구, 동료들 대부분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는 게 얼마나 행운인가 말이죠. 상연은 친구, 동료는 은중과 겹친다고 쳐도 가족이 거의 저주받은 수준이에요. 넷 중 셋이... 아버지는 그냥 언급할 가치도 없는 한심한 인간으로 나오구요.




      상연이 엄마에게 애정결핍을 느끼고 오빠 상학을 그렇게 좋아하고 동경하면서도 서로 코드가 좀 맞지 않아서 속앓이하는데 은중은 저 둘 모두와 잘 맞죠. 상연 역시 은중을 좋아하면서도 미워하는 감정을 동시에 가질 수 밖에 없었어요. 엄마가 학교 선생님이라 친딸한테 조금만 잘해주는 모습 보이면 가족이라는 걸 들키고 욕먹을까봐 일부러 쌀쌀맞게 구는 거라고 봤는데 딸 입장에서는 매우 섭섭했겠죠. 아들을 편애한 것도 엄마는 장남이라서라기보다 그 정체성 때문에 더 신경을 썼던 것인데 상연에게 알려줄 수도 없고 그래서 더 비극적으로 엇갈렸다고 봤어요. 은중이가 '너 스스로를 외롭게 한 것'이라는 말은 진심은 아니었겠죠. 상연이 너무 심한 배신을 저지른 다음이라 일부러 악에 받힌 말을 했던 것 같아요.




      여기에도 밑에 올라온 상연의 '나의 생애' 글에서 가장 중요한 세 사람을 언급하는데 친오빠 천상학만 있고 김상학은 없는 것만 봐도 김상학에 대한 감정은 정말 사랑이라기보다 오빠와의 인연 때문에 더 집착하게 됐던 것을 작가가 의도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네요. 쓰신대로 상연이 살려고 붙잡았다는 것도 맞구요. 






      진짜로 은중의 동생은 그냥 증발해버렸네요. 이럴꺼면 왜 애초에 집어넣었는지 ㅋ 저는 떡집에서 일하던 남자가 동생인가 싶었는데 외삼촌이었죠? 그러고보니 은중의 외삼촌은 엄마일도 돕고 그러는데 상연의 외삼촌은 엄마 병원비 때문에 전화하니까 외면해버렸죠. 이렇게 또 극과극이네요.

      • 네 제목을 바꿔 봤습니다. 은중은 상연이 있어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것이지 상연이가 없으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요.ㅎ 은중이 너는 다 잘 해나가니까...이렇게 말하면 또 본인은 억울해 하겠지만. ㅎ


        꼭 쓰고 싶었는데 빠트린 걸 언급하셨어요. 상연이 생을 돌아보니 이름 몇 개만이 남았다고, 세 사람의 이름을 말하는 장면. 정말 그럴 것 같아서 작가가 잘 쓰는 사람이구나 했어요. 몇 개의 이름만 남았다는 것이 마음에 쏙 들어오는 대사였습니다.


        김상학은 은중과의 관계에 도구적인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배우가 대사 치는 게 자연스러웠고 괜찮긴 했으나 뭐 그리 둘 다 좋아할 정도인가라는 마음이...



        •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에서도 두 친구 사이의 남자가 딱 그런 도구적인 역할이었죠. ㅎㅎ 그래도 이건 러닝타임이 긴 드라마라서 친오빠와의 관계라던가 이런저런 설정이 붙어서 그나마 나았어요.

    • 우앙 후기글 감사합니당

      스포일러 투성이라고 하셔서 본문은 안 읽었어요;;

      연휴 동안 숙제처럼 미뤄놨던 영화 보고 있는데 은중과 상연도 봐야겠어요.
      • 다른 영화 보시면서 이 시리즈도 끼워서 보심 어떨까 합니다. 여러 편을 이어 봤는데 좀 힘든 면도 있었어요. 


        한국 시리즈 중에선 끝까지 좋게 보았습니다. 

    • 저도 스포일러 투성이라고 하셔서 본문은 안 읽고 마지막 문장만... ㅋㅋㅋ


      연휴라고 해도 이 집 들르고 저 집 들르고 하다 보면 그 동안에 이 드라마를 다 보진 못할 것 같습니다만. 듀게에 보기 드물게 많은 분들이 보시고 글까지 올려 주시는 화제작(?)이니 꼭 보긴 하려구요. 하하. 신기하네요 이 인기의 비결이!

      • 두 인물의 여건과 다른 성향이 설득력 있게 전개되어 사실적인 드라마 중에 크게 억지없이 괜찮았어요.

        이외에도 이래저래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영리하게 담고 있었습니다.

        인기의 비결은 괜찮은 드라마가 드물다는 것?
    • 오늘은 책이 '아니라' 드라마네요. 두번 글을 읽었는데 상연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겠네요>_<


      추석 연휴 즐겁게 보내시길 바랄게요.




      아름다운 노래로 선곡해보았어요.


      I Was so Young You Were so Beautiful

      • 여자 친구 둘의 이야기랍니다.

        지금 밖이라 노래는 나중에 듣도록 하겠습니다.감사!
    • 자신이 가질 수 없고 가지지 못하는 걸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그 사람의 많은 걸 결정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음과 태도 면에서 은중 같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실상은 상연 쪽에 가까운 사람을 본 적 있어요. 거기서 오는 괴로움이 꽤 큰 듯 보였으나 저는 그 사람에게 공감할 수가 없었어요. 다만 내가 그 사람의 사고 흐름을 제대로 이해한 게 맞다면 저 사람은 참 사는 게 지옥 같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드라마를 보진 않았지만 현실은 상연처럼 머리가 좋지도 않고 은중만큼 정서적으로 단단하지도 않은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인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 네 저도 노력해도 안 되는 부분은 인정하고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하고 싶어요. 부코스키였나? 묘비명이 '애쓰지 마라' 라던게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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