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읽은 책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제임스 우드
저자는 영국 사람인데 수십 년 전 미국에 자리잡게 되어 눌러 살고 있는 문학비평가입니다. (더럼이라고 탄광으로 먹고 살던 북서지역 출신이지만 자신의 동네는 교회와 대학 사람으로 형성된 곳이라 분위기가 좀 달랐던 모양입니다. 미국 살이를 하면서 다 커서 지냈던 런던 보다 어릴 때 고향인 탄광 지역과 그 속의 작은 동네를 떠올리는 내용이 마지막 장에 담겨 있네요.)
네 편의 에세이로 되어 있는 책은 분량상 얇고 부담없어 보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며 다시 확인하고 싶은 부분이나 인상적인 부분들이 나타나면 짧게 메모하거나 페이지를 적어 두는데, 이 책은, 가끔 어떤 책이 그렇듯이 어느 페이지를 적기 힘들었고 전체적으로 내 것으로 삼고 싶었습니다.
배우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그 직업의 좋은 점이 여러 사람의 인생을 살아 볼 수 있다는 것이 있어요. 그런데 배우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배우가 겉보기에 가장 두드러져 보이고 가장 빠른 해석자, 공유자 중 한 명인 것은 분명하지만요.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우리 일반인도 똑같습니다. 예전에 어릴 때 저는 가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가 이상했습니다. 특히 극히 사적인 장면들, 혼자 있을 때 혹은 섹스할 때를 비추는 영상을 극장에서 다른 사람과 보면서 우리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남의 섹스 장면을 수백 명이 함께 앉아 구경하다니 너무 이상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지금도 이상해요. 완전히 건너간 감정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씁니다.
'허구는 모든 허구적인 삶을 두 배로 더한다. 즉 우리가 다른 누군가 안에서 자유를 목격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친구를 갖게 된다는 뜻이고 타자의 신뢰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우리는 공유하는 동시에 캐묻는다. (중략) 소설을 읽는다는 건 때로는 지나친 사생활 침해처럼 느껴지는데, 허구의 인물이 지키지 못한 사생활을 훔쳐보고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중략) 우리(독자와 허구의 인물)는 서로를 완성하여 목소리도 내고 새로운 앙상블을 만들라는 요구를 받는 것만 같다. 그들의 지켜지지 못한 사생활은 우리의 지켜진 사생활이 된다.'
이 책은 소설로 이야기하지만 영화를 보며 가졌던, 왜냐하면 영화는 극장에서 여럿이 보니까 두드러지게 느끼게 되었던 그 의문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주었어요. 그러니까 영화가 그리는 그 모든 자유로운 모습, 인간으로서 가능한 것은 다 시도해 보는 개인들의 모습은 보는 이와 '새로운 앙상블'을 만들 수 있는냐가 핵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 눈물이...나이들어서 그런 것도 맞습니다. 그래도 비평서를 읽으며 이러는 건 흔치 않은 경험이에요. 저자는 비평문을 문학의 한 분야로 생각합니다. 신형철 평론가가 이 책을 적극 추천하고 앞 부분에 해제까지 길게 쓴 이유를 알겠습니다. 리뷰나 논문과 구별되는 비평에서의 저자의 고유성을 지향한다는 점이 두 사람 글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네요.
제임스 우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감탄해 마지않는 비평은 대부분 특출나게 분석적인 글이 아니라 진정한 열정으로 이루어진 재서술이다. (중략) 좋은 비평가는 비평이란 어떤 면에서는 자신이 읽고 있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임을 인식하고 있다.'
비평이 '읽고 있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라고 할 때, 비평가는 소설가의 수준에 버금가야 한다, 최소한 누구보다 깊이 읽은 후라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그럴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야기에 대한 나름의 진실된 이야기를 담고 나면, 이후에는 독자의 판단이 따를 것이고 비평가의 그런 글들도 살아남거나 가벼운 에세이로 무시되거나 하며 걸러질 것이니까요.
위에 인용을 보시고 이 책에 관심이 가신다면 추천드립니다. 이론들을 가져와서 분석하지 않고 인용하는 소설도 그리 많지 않아서 더 접근성이 좋았던 것 같아요.

[기차의 꿈] 데니스 존슨
넷플릭스의 영화 원작 소설입니다. 책은 절판이었는데 출판사가 바뀌고 개정판이 갓 나왔습니다.
다 읽은 소감은 영화가 참 각색을 잘 했고 소설 이상으로 소설의 분위기를 잘 살린 것 같다는 것입니다. 책도 좋고 영화도 좋은 경우입니다.
다만 영화에서 아내가 좀 이상적으로 곱게 나왔는데 책에는 현실적인 무게를 살짝 얹습니다. 또한 죄의식 부분을 더 확실하게 하는 면이 있어서 주인공의 삶이 흘러가는 것에 대한 현실적인 윤곽이 조금 더 진해진달까 그래요. 그런데 환상적이고 신비한 측면도 강하게 표현되네요.
보통 책부터 보고 영화를 보는데 이번엔 반대였고 그러자 책을 읽으며 떠올리는 주인공은 조엘 에저턴의 모습을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입니다. 이런 이유로 또 다른 어떤 영화를 보기 위해 원작 소설을 샀습니다. 소설부터 읽고 영화를 보려고요. 영화의 주인공이 누군지는 알고 있어서 또 방해가 될지 모르지만요. 두 작품 다 감상하고 후기를 꼭 쓰겠다고 마음먹고 있는데... 작품이 좋길 바랍니다.

책소개 감사합니다. 네플릭스 영화는 찜만 해놓고 아직 못 보았는데
평들이 너무 좋군요. 개인적으로는 비평서가 더 관심이 가긴 합니다. 책이나
영화를 통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살고 거기서 뭔가를 얻는 경험 관련해서 제가 좋아하는 인용은 양덕창 영화 '하나
그리고 둘'에서 남자친구의 대사였던 것 같습니다. "My
uncle says we live three times as long since man invented movies." 저는
서울 사는 한국 사람인데 그 영화를 보면서 타이페이 사는 대만 가족들과 공감하고 이들의 인생이 내 인생인 것 같은 드문 경험을 했거든요. 영화 속에서는 또한 세대 간에 이런 연결이 있어서 아버지의 인생이 아들/딸에게
반영되고요. 이런 흥미로운 책을 사서 쌓아놓기라도 할까 생각은 드는데 여태 쌓아놓기만 책들에 깔릴까 두려워 더
보태기가 무섭네요;;;
위의 글에 있는 책과 영화는 다 추천드릴 만합니다. 넷플릭스 구독 중이시면 함 보셔요.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 '해탄적일천' 을 보면 이 감독님의 영화들은 대하드라마 느낌이 났습니다. 보통 영화보다 많이 길기도 하지만 상영 시간의 길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세월이 느껴지는 거 같아요. 사회 반영, 세대의 흐름이 담겨 있어서인지... '하나 그리고 둘'이 특별하셨나 봅니다. 저는 오래 전에 나쁜 화질로 대충 봐서 다시 보겠다고 생각만 하고 미루었네요. 뭔가 나의 이야기다라는 마주치는 경험을 하려면 부지런히 보고 읽고 해야 되는데 제 경우는 게으름이 문제입니다.
듀나 님 글도 재미있네요. 관음(만)으로 설명하자면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믿음이 깎여나가는 것도 있습니다. 수상쩍은 생각이 들어요. 아마도 영화가 출발하며 사람들을 흥분시킨 제일 큰 이유는 관음일 수 있겠지만 이제 예술로 자리잡았고 그 이상을 포함한 설명을 다들 갖고 있는 거 같아요.
저도 검색하다 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글을 생성하는구나라는 걸 확인하는데,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것과는 상관 없는 문제 같습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내 문제인 거 같습니다. 그리고 위에도 책에 나오는 걸 옮겼지만 '허구는 허구적인 삶을 두 배로 더한다'라고 하니까요. 단순한 예지만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글을 게시판에 쓰면 뭔가 서로 격려하는 느낌이 드는 것도 그와 비슷한 거 같아요.
내가 글을 쓰는 건 내 문제. 이 문장을 여러 번 읽게 되네요.
오래전에 댓글이나 글을 쓰고 나서 버튼 내용이 번역이 안 되어 있을 때, publish라 써진걸 보며, 이렇게까지 거창한걸까? 싶었는데 요새는 그게 어느 정도는 맞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모두 공동 집필을 하고 있고, 주석을 공동편집하고 있다는 생각. 글쓰기도 피겨 스케이팅과 비슷하게 그냥 쓰는게 가장 단단한 지책이겠지만, 왜케 잡생각이 많이 드는지요. ㅋㅋ 제 글은 남의 문제도 매 번 엮어 생각해서 좀 부끄러워졌네요.
쓰면서도 설명이 부족한 문장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전문 작가라서 댓가를 받는 경우를 제외하고 저를 중심으로 생각해 봤어요.(댓가를 받아도 마찬가지라고 여기지만) 글을 쓰는 목적이 소통, 북받치는 감정의 토로, 머릿속을 정리하는 것, 그저 기록을 남기는 의도이거나, 이런 것이 어느정도 섞여 있거나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소통이 그 중 중요한 것 같고 기반으로 깔려 있는 것 아닌가 해요. 일기조차도 일단 글이므로 이런 성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와 소통하는지는 생각할 문제이긴 한데 일기 조차도 언어를 사용하므로 외로운 인간의 세상을 향한 소통 도구입니다. 그래서 공공의 의미를 찾기 전에 뭔가 원초적인 의미로 '내가 글을 쓰는 건 내 문제'라고 한 거였어요. 제 경우에 다른 소통의 도구가 없어서 말이 되든 안 되든 문장을 만들어 보는 거 같아요.
'기차의 꿈' 원작은 영화 관련 정보들 찾아보면서 좀 줏어들었는데 그 중국인 일꾼 관련해서 주인공이 확실하게 책임이 있는 식으로 묘사가 된다고 하더라구요. 아내도 그렇고 캐릭터가 각색하는 과정에서 살짝 바뀌었나 봐요.
중국인 일꾼도 그렇고 영화 초반 어릴 때 구두에 물을 담아 쓰러진 사람에게 주는 장면도 영화에서는 별 설명없이 그냥 지나가는데 좀 중요한 장면이었어요.
아내는 캐릭터가 바뀔 정도는 아니고 그냥 조금 말로 설명을 보탭니다. 처음 만났을 때 실제 나이보다 훨씬 많아 보이고 손이 쉰 살 남자의 손보다 거칠었다고 해요.
그리고 있던 이가 없고 없던 이가 있고 그런 건 있어요.
더럼, 더램이 은근 영화 속에 자주 나오더라구요. 아마 '빌리 엘리엇'도 그 동네였던 것 같고 '겟 카터'의 뉴캐슬도 더럼 바로 옆 동네라 몇몇 장면은 더럼에서 찍었다고... 뭐 작가님은 분위기 다른 동네에서 자라셨다니 큰 관계는 없겠지만요. ㅋㅋ
인용해주신 '비평'에 대한 언급이 좋네요. 영화든 소설이든 그 작품을 낱낱이 분석해주는 것도 좋지만 그 작품을 소재로 재미난 글, 감동적인 글을 적어 주는 것도 좋더라구요. 이런 비평도 있고 저런 비평도 있고 그런 것인데 본인 기준으로 '이건 비평이 아니야!' 라고 이것저것 후려 치는 반응들을 보면 좀 그렇습니다. 듀나님 리뷰도 그런 식으로 종종 욕을 먹는 편인데 역시 이해가 안 가고...
맞아요. 영화를 먼저 봐 버리면 나중에 원작 소설을 읽을 때 좀 난감하죠. 옛날 옛적 해리 포터 첫 영화가 나왔을 때 팬들이 그런 얘기 하던 게 기억 납니다. 내가 수 년간 상상했던 해리가 이제 생각 안 나고 다니엘 레드클리프만 떠올라서 짜증나!!! ㅋㅋㅋ
저 잉글랜드 북서동쪽이 탄광 지역이라 최근 넷플 드라마 '더 크라운'을 보니 재난 사고도 있어서 뭔가 아픈 손가락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그 와중에 저자는 부모가 지식인들이라 좋은 교육을 받은 거 같고요.
그렇죠. 정도라는 게 뭐 있나 싶어요. 좋은 글과 책과 영화가 너무 많아 탈이지요. 세상의 그 많은 다양한 글 읽을 시간도 없는데 자신이 이거저거 읽고 취사선택 좋은 글 읽으면 될 것 같네요. 위에도 썼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만 더 부지런해지길 스스로에게 요구해 봅니다.ㅎ
해리 포터 영화 초창기의 얘기겠네요. 좀 다른 얘긴데 영화 주인공이었던 배우가 나이들어서 늙어버리면 그것도 또 영화의 팬 입장에서는 난감한 감정이 생기기도 하더라고요.ㅎ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의 후기가 인상적이네요. 이미 세상에 나온 창작물, 그 자체로 세상에 대한 재해석을 또 해석하면서 재재해석 혹은 재재재해석으로까지 이어지는 비평이라는 부분에 대해 종종 회의를 느낄 때도 있었고 그 자체로 종속되어있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강조하신 열정이나 진실 부분을 보면 그 또한 의미가 있고 또 그 창작물들에 들어가려는 노력만으로도 분명히 의미가 있을 거라는 희망을 좀 갖게 됩니다. 진지한 열정이라니, 이 얼마나 달성하기 어려운 덕목인지요!
영화를 보면서 타인의 사적인 순간을 관음한다는 부분에서 오히려 극장 안의 '모두가 함께' 본다는 점에서 더 이상하게 느끼시는 걸까요. 저는 반대로 혼자서 어떤 영화를 보는 게 더 사적인 관음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우리 안으로 아예 도피할 여지가 없이 진짜 개개인이 다른 개인을 관음하는 느낌이랄까...
창작물의 재해석은 언제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더 이상의 새로운 해석의 여지가 없는 고전이라 해도, 아니 오히려 고전일 수 있는 작품의 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전문 비평가의 재해석이 이어지는 것에 대해 어떤 회의감이 드셨는지 모르겠으나 저는 그냥 일개 독자, 관객으로서 제 인생에 빗댄 재해설 재구성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중심으로 생각했어요. 전문가의 해석이 궁금해 지는 것은 그 이후이고 전문가의 비평이 나의 생각에 영향을 주고 긍정적 강화든 부정적 강화든 다시 정리되기도 하지만 그런 영향을 과정으로 생각합니다.
극히 개인적인 장면을 개인이 보는 건 비밀을 유지해 줄 게, 라는 마음을 먹는게 가능한데 공개적인 장소에서는 이상해요...ㅎ
제가 댓글을 썼던 건 전문 비평가의 해석에만 따로 회의를 느꼈던 것은 아니고, 그 모든 재해석이라는 영역에 대해서 종종 회의를 느꼈다는 것이었습니다. 해당 책에 서술된 내용인 열정적 해설을 전제로 댓글을 달았던 것인데요. 어떤 작품으로 깊이 들어가고 그 안에서 자신의 삶과 연결되는 지점을 찾아내며 그것을 글로 옮길 수 있는 열정이 경이롭다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