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잡담] 롭 라이너를 추모하며 본 '대통령의 연인'

최근 너무나도 안타까운 부고를 접하고 오랜만에 롭 라이너 8~90년대 리즈시절 필모 정주행을 할까 하다가 그의 다른 유명 연출작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이 작품을 여태 안봤다는 게 생각나서 표현이 좀 그렇지만 이 참에 드디어 감상했습니다.
- 몇년 전 아내를 떠나보내고 딸을 키우고 있는 미국 대통령 앤드류 셰퍼드(마이클 더글라스)는 현 지지율이 60%를 넘을 정도로 국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데 선거 때부터 공약으로 밀었던 급진적인 환경보호, 범죄방지 관련 새 법안을 발의하려고 하지만 곧 재선을 앞두고 있기에 원래 계획보다 좀 낮은 수위의 법안으로 타협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이에 환경보호 협회에서는 대통령에게 원래 약속했던 수준의 법안을 끌어내기 위해 국내 최고의 로비스트 시드니(아네트 베닝)를 새로 영입하여 백악관에 투입하게 됩니다.
빠삭한 지식과 날카로운 말빨로 첫 미팅 자리를 휘어잡던 시드니는 흥분하여 자기도 모르게 현재 셰퍼드 대통령의 어중간한 정치적 스탠스에 대한 비판까지 하게 되는데 하필 이 때 시간이 남아서 회의실에 들어오던 셰퍼드가 다 듣고 맙니다. 잠깐 자기랑 둘이 면담 좀 하자고 휴게실로 불러내고 첫인상을 조졌다 생각한 시드니는 울상을 지으며 따라가는데...

옆구리가 허전한 홀아비 싱글남이 이렇게 아리따운 여성분을 왜 따로 불러냈겠습니까? ㅋㅋ
- 결국 그렇게 백악관을 배경으로 둘이 썸타다가 연애하는 로맨스물입니다. 그런데 두 주인공간의 작중 비중이나 각자 분야에서의 활약상에 대한 균형을 아주 잘 잡아놔서 미합중국 대통령이라는 거의 세계최고급의 유명인과 나름 상당히 좋은 직업을 가졌지만 그냥 일반인에 불과한 둘의 로맨스가 그냥 하루아침에 여주가 신데렐라가 됐다는 식으로 흘러가진 않아서 좋더군요.
애매하게 썸타는 과정이 생각보다 짧고 셰퍼드가 거의 첫만남 이후 곧바로 작업에 들어가고 시드니도 당황하는듯 하면서도 아주 과감하게 화답(?)하면서 진도가 팍팍 나가는데 실제 이렇게 될 경우 스캔들로 시끄러워질 것이고 영화속에서도 그런 부분들을 적잖이 다루는데 너무 조심성이 없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정말 마이클 더글라스와 아네트 베닝의 외모와 저런 멋진 성격을 지닌 두 사람이 만난다면 저렇게 진행될 것도 같아서 설득력은 넘치고도 충분했어요. 연기력이야 언급할 필요도 없이 탄탄한 분들이신데 진짜 존재만으로 영화를 완성시킨다 싶은 올드스쿨한 무비스타들의 매력을 오랜만에 실감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롬콤과 정치물이라는 두 장르요소를 억지스럽지 않게 아주 자연스럽게 섞어낸 각본이 확 튀지는 않으면서도 상당하다고 느꼈는데 오프닝 크레딧을 보니 무려 젊은 시절 아론 소킨이 썼더군요. '어 퓨 굿 맨' 이후 라이너 감독과 다시 만났던 거였어요. 아무래도 로맨스에 방점을 찍는 작품이니 만큼 정치적으로 그렇게 너무 깊게 들어가진 않지만 그렇다고 대충 배경설정으로만 쓰지도 않고 매일 하루종일 회의하고 타협해가며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와 참모들의 모습이 정말 저럴 것 같다 싶게 느껴질 정도의 적당한 사실감이 있었습니다.
아론 소킨이 이 영화 각본을 쓰면서 구상했으나 완성본에 들어가지 못했던 여러 재료들을 모아서 만든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웨스트 윙'이라고 하더군요.

대통령의 절친이자 수석참모로 나오시는 마틴 쉰이 웨스트 윙에선 대통령으로 캐스팅 됐다는 점도 재밌죠. 마이클 J. 폭스는 캐스팅 당시 이미 파킨슨 진단을 받은 상태였는데 제작진에겐 숨겼다고 합니다. 제가 '백 투 더 퓨쳐' 시리즈 말고는 이분 출연작을 별로 보지 못해는데 여기서 상당히 열연을!
- 그래서 원래는 보려던 게 아니었다가 얼떨결에 감상한 작품치고는 상당히 흡족하게 봤습니다. 두 주연배우의 확고한 매력, 정치물+롬콤의 황금 밸런스, 쟁쟁한 조연들까지 뭐 하나 빠질 것 없는 수작이었어요. 그런데 또 감독님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묻힐 수 밖에 없는 무난함, 약간의 심심함도 있는 건 확실하구요. 웨이브에서 1200원에 대여해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작중에서 확실하게 밝히지는 않지만 그냥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셰퍼드 대통령은 민주당, 악역 포지션의 상원의원은 공화당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뭐 할리우드 영화이기도 하고 아론 소킨이 썼으니까 당연하겠죠. 하하; 참고로 그 상원의원을 연기하신 배우분도 참 반가운 얼굴이었습니다.
- 작중 셰퍼드 대통령은 실제 이런 정치인이 대선 나왔으면 나같아도 고민없이 투표했겠다 싶을 정도로 매력적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현실의 미국 대통령은...;;;
스포일러라고 할 수도 있지만 상관없을 것 같아서 언급하자면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를 예방하기 위해 강력한 친환경정책을 도모하고 엉성한 범죄방지 정책으로는 현실적으로 바뀌는 게 없다며 강력한 총기규제를 주장하는 모습이 나오는데요. 이 영화가 나오고 정확히 30년이 지난 현재 미국의 대책없는 총기관련 범죄의 시궁창 현실과 결국 오늘날 지구 환경이 어떻게 됐는가를 생각하니 당시로서는 다소 나이브해도 바람직하고 멋진 모습으로 그렇게 썼겠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그저 씁쓸하더군요.

- 한 때 할리우드에서 최고의 감독 중 하나였지만 부와 유명세를 악용하여 뭔가 불미스러운 일을 했다는 소문도 없었던 것 같고 촬영장에서 독선적으로 폭군처럼 굴기는 커녕 같이 작업했었던 배우, 스태프, 동료 영화인들에게 참 좋은 사람이고 일하기 편하다는 평판이 자자한 것 같아요. 사생활에서도 이렇다할 잡음이 없었고 아내분과 오랫동안 같이 잘 살고 계셨는데 정말 안타깝고 슬프고 비극적입니다.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릴적 영화 오프닝에 캐슬 록 엔터테인먼트 로고가 뜨면 뭔가 믿을만한 영화라는 신뢰가 있었어요. 영화에 빠지게 만든 좋은 추억들을 많이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 영화도 평균 이상의 만족감을 주었나 봅니다. 아론 소킨 각본으로 만드셨다니 그럴 거 같아요.
저는 '어 퓨 굿맨' 과 '스텐 바이 미'로 각인되어 있는 감독님입니다. 두 영화 다 재미와 의미가 잘 조화되어 정말 즐겁게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죠. 다시 한 번 명복을 빕니다.
주어진 재료로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모범적으로 해낸 수작이었어요. 너무 모범적이라서 문제(?)랄까 싶지만 어쨌든 즐겁게 봤습니다.
저는 언급하신 스탠 바이 미 하고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프린세스 브라이드'를 가장 좋아합니다.
8~90년대 업적만 보면 사실 스필버그 부럽지 않은 분이셨죠. 하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급하향세를 타서 요즘 젊고 어린 관객들 사이에서는 인지도가 ㅠㅠ
굳이 업계지인들이라서 좋게 말해주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 인간적으로 많이 사랑받던 분이셨던 것 같아요.
아 이 영화 각본이 아론 소킨이었군요. 개봉 당시에 봤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거의 다 까먹었고. 그래서 다시 봐도 좋을 것 같네요. 로브 라이너 스타일 영화들 좋아했거든요. 이제 연기는 더 이상 못 할 마이클 제이 폭스 젊은 시절 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구요.
다시 한 번 감독님의 명복을... ㅠㅜ
재치있는 대사들도 그렇고 연출자도 잘했겠지만 각본에서 기본적으로 스토리와 장르 밸런스를 잘 잡아놨다는 생각이 보면서 계속 들었어요. 이 때 이미 50 넘으셨었지만 아직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의 마이클 더글라스도 반갑더라구요. 아네트 베닝도 슬슬 중년티가 나던 시점이지만 참 눈부시게 아름다우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