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잡담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을 보고 쓰는 것이긴 하지만 장르적 특성을 포함한 영화 전반에 대한 글은 아니에요. 

그런 글은 잘 모르기 때문에 쓸 수가 없어요. 

스포일러가 좀 포함되어 있어요. 


이 영화가 저는 넘 좋았어서 짧은 잡담을 하고 싶네요. 

재미를 뛰어넘어서 이렇게 좋은 감정을 갖게 된 것은 모 인물의 죽음 장면 때문입니다. 본 이후에 자꾸 떠오르던 이 장면이 없었으면 그냥 보는 동안 즐겼고, 1, 2편과 마찬가지로 나와줘서 좋았던 영화에서 그쳤을지도요. 

죽어가는 이 인물이 몇 개의 이름을 나열할 때, 주드 신부가 '...앤 그레이스'라고 하는 장면 말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성사 장면도요. 화면을 넘어서 보는 이에게까지 위안이 전달되는 느낌이었어요. 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순간에 저 성사는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톨릭을 떠난 이에게 이런 생각을 하게 했다는 것은 감독의 영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장면의 두 인물 연기가 훌륭하고, 특히 성사 기도문을 읊조리는 조쉬 오코너의 대사 처리도 완벽한 느낌입니다. 정성들여 만든 장면입니다.  

어떤 영화를 보고 감동 비슷한 감정을 갖게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인데, 그 중 한 가지 이유는 뚜렷하게 알 것 같습니다. 잘 알고 있으나 잊고 있었던 것을 되살리면 감동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영화라는 매체는 그런 힘이 강한 것 같아요. 이야기의 힘은 소설도 마찬가지로 갖고 있지만 영화는 배우라는 강력한 도구와 시청각의 도움을 받으니까요. 작정하면 그런 '잘 알고 있으나 잊고 있었던 것을 되살리는' 힘은 영화가 참 큰 것 같아요. 

이 시리즈를 보고 이런 감상을 가진 것은 예상 밖입니다.

예전에도 쓴 적이 있는데 멜빌의 영화 '레옹 모랭 신부'도 무척 좋아합니다. 그런 것을 보면 가톨릭에 긍정적인 영화나 좋은 사제가 나오는 영화에 제가 무척 약한 것 같기도 해서 다른 분들보다 과한 점수를 주나 봅니다. 

12월이 딱 반을 지나고 있네요.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가 다가오지 않는 말이라, 이 영화를 본 사람끼리 다르게 말해 보자면 '세속에는 블랑 탐정, 교회에는 주드 신부'가 가득한 세상이라면 참 좋겠네요.




    • 전 왜 그 주드 신부가 전화로 건축회사에 장비 빌린게 누군지 물어보던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마음 급해 죽겠는데 자꾸 딴 소리하는 상대방한테 살짝 짜증 난 듯 하다가 어머니 이야기 하면서 기도해 달라고 울먹이는 목소리에 문 닫고 나간 후 기도해주던 그 장면이 참 좋았습니다.

      목소리가 긴가민가 익숙해서 찾아보니 썸바디 썸웨어의 브리짓 에버렛이어서 더 좋았어요.
      • 이 통화 후에 블랑에게 더 이상 같이 다니지 않겠다고 자기 일은 범인 찾기가 아니라고 하잖아요. 해질 때까지 통화하는 이 장면 자체도 좋지만 둘이 따로 다니게 만드는 중요한 장면이었어요. 

    • 완전 100% 공감입니다. 말씀하신 그 조쉬 오코너의 대사 처리에 글렌 클로즈의 완벽한 테크닉의 감정표현의 조화가 대단했고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밑에 배티님 댓글에도 언급했지만 처음엔 그냥 개그성으로 넣은줄 알았던 루이즈와 주드의 통화장면 대사도 너무 좋죠.

      • 좋았죠. '파더 유아 리얼리 굿 엣 디스' 가 마지막 대사. 이 장면 둘 다 정말 잘 했어요.. 근래 보기 드문 명연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둘이 통화하는 동안 해가 져 있고. ㅎ  

    • 아래 쏘맥님 글을 읽고 연달아 읽는 바람에 자꾸 라이언 머피만 떠올라서 고생하다 결국 검색을 해 버렸습니다. 라이언 존슨. 이렇게 뇌의 기능이... ㅠㅜ




      암튼 라이언 존슨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게, 그냥 아는 게 많고 덕후력 출중한 수준을 넘어서 종종 이렇게 사람들 심금을 울리는 장면까지 만들어낼 줄 안다는 겁니다. 지적 유희 쪽으로만 특화된 능력자들은 요즘 적지 않게 보이는데, 이렇게 양쪽 다 해내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저도 말씀하신 그 장면 참 인상 깊게 봤고, 그게 이 시리즈 내에서 이번 편이 갖는 의미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미스테리 쪽의 아쉬움을 충분히 날려줄 수 있었죠.

      • 이번에야 감독님 찾아 보았는데 귀여운 동그란 얼굴의 소유자시네요. 다음 영화들 기대도 커집니다. 계속 조화로운 능력이 업그레이드 되고 이 시리즈도 쭉 이어지길요.


        그 말 많던 '라스트 제다이'도 이참에 보려고요.   

        • 개인적으로 이 감독님 영화들 중에 가장 재밌게 본 건 데뷔작 '브릭'이었는데 볼 수 있는 곳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왓챠에 있는 드라마 '포커페이스'도 재밌는데 사실 두 편 다 미스테리, 추리물이지만 '웨이크 업 데드맨' 처럼 감동적인 쪽은 아니에요. 그래도 재미는 확실히 있다는 거! ㅋㅋ

          • '포커페이스'는 전에 게시판에 소개될 때 재미있게 봤어요. 그런데 누가 만들었는지는 이제 알았습니다.


            '브릭' 찾아 보니 애플tv에 있네요. 꼭 기억했다가 다음에 이용할 때 봐야겠습니다! 


            '루퍼'는 왓챠에 있는데 잘 이해할지 자신이 없어요. 근데 재밌는 영화는 설정이 복잡해 다 이해 못해도 재밌더라고요.ㅎ 조만간 시도해 보는 걸로..

            • '루퍼'는 중반부 이후에 친절하게 다 설명해주는 편이라 괜찮으실 것 같습니다. 뭐 놀란의 영화들에 비교하면 그냥 감독이 직접 떠먹여주는 수준이라고 할까요? ㅋㅋㅋ

    •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전직 카톨릭 신자로 카톨릭 신앙이 주요한 내용이 되는 영화들을 좋아하는데, 최근 그런 훌륭한 성직자들이 나오는 영화가 영화들이 뭐가 있었나 생각해 보니, <두 교황>이나 <콘클라베>의 주인공들은 좀 너무 고위 성직자들이었군요;;;; 물론 사제인 것도 맞지만;;;;;;

      • 어릴 때 정서적으로 이입한 문화라 평생 가는 거 같습니다.


        '두 교황'과 '콘클라베'도 재밌게 봤지만 이 영화는 평신부가 주인공이고 캐릭터도 상당히 잘 만들어서 더 호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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