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신에 대한 반작용이에요. 신이 전지전능 하다면서 인간처럼 화내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하는 게 웃긴다는 거죠. (노해서 홍수를 일으킨다거나, 양을 바치니 기뻐한다거나, 더 근본적으로 생각이나 의지가 있다는 것 자체가 전지전능의 존재 자체를 규제하는 거니까요) 그건 지극히 인간이 자기를 닮은 모습으로 신을 그린거고, 만약 신이 있다면 미약한 인간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떤 무언가라는 거죠. 사실 이건 돌려 말한 무신론.
그리스 신화의 경우를 들어봅시다. 그리스의 주신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이들을 믿는 그리스 종교가 생겨나기 전 이들 이외의 작은(?)신들이 있습니다. (플루톤 하데스 말고)죽음의 신, 복수의 신 등등의 신들이 있죠. 그런데 이들을 죽음의 신, 복수의 신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번역상의 편의를 위해 번역자들이 붙인거고 이 신들의 이름은 '죽음', '복수'가 이들의 실제 이름입니다. 고대에는 생물은 왜 죽는가, 사람들이 왜 복수를 하는지 몰랐고 이런 것은 어떤 인간을 초월한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작용한다고 생각하고 이런 힘들을 신이라 불렀습니다. 이런 신들이 인격을 가지게 되는 것은 훨씬 뒤의 일입니다. 신들을 설명하는데에 당시에는 어떤 이론 보다는 '시'나 '이야기'가 도구로 사용되면서 신들은 인격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신전이 만들어지면서 종교가 된 것이죠.
제가 아는 한, 떠받들기 위해 신을 만든다기 보다는 이해 안가는 물질현상을 일관되게 설명하기 위해 신을 만들었고, 그러다보니 그 존재는 막강한 힘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떠받드는 건데요.
저도 궁금해지는 게 범신론은 그렇다 치고 이신론자들은 과학주의자일까요?
무인격신과 과학주의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신이라는 것에 이미 인격적 의미가 너무 깊으니, 무인격신이라는 게 좀 형용모순처럼 느껴지는데, 그냥 인격이 없는 초월적 존재/힘의 존재를 믿는 거라고 보겠습니다) 과학은 초월적 존재와 초월적인 힘을 배제하는데 그 초월적 존재와 힘이 반드시 인격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입니다. 예를 들어 점성술같은 건 인격이 없지만 초월적 힘입니다.
순간집착 /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과학이 이성으로 세상의 진리를 탐색하는 것이라면 문학을 포함한 예술은 세상을 인간의 감성으로 표현하는 것에 빗대 말한 겁니다. 즉, 무인격신은 종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적표현이라는 것이죠. 종교의 정의대로라면 무인격신은 종교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얘기지만 물론, 그리스의 종교나 게르만족의 종교도 지금은 문학일 뿐이기도 하지요.)
그렇긴 하죠. 범신론은 어짜피 종교와 자연과학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나온 이론이잖아요. 자연자체가 신이니까. 이에 무인격신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종교적이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고대인의 종교화 되기 이전의 자연법칙과 현상에 대한 관점, 현대의 자연법칙과 이에 대한 과학이론 등에 대한 문학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죠.
이신론, 범신론, 무인격신 다 비슷하고 쓰는 사람마다 정의가 달라서 대충 느낌이 이렇다 정도만 하면요, - 범신론: 신은 정의상 전재,전지, 전능이기 때문에, 세상 그 자체가 신과 분리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겁니다. 이런 종교관에서 당연히 인격신은 없죠. - 이신론: 이건 여러 전통이 있지만 단적으로 종교나 신학이 과학에 터치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신은 있되 (혹은 모르되) 자연과학에 어긋나는 교리나 기적 같은 거는 인정하지 않는 입장입니다. 인격신을 믿을 수도 무인격신을 믿을 수도 있죠. - 무인격신: 인간적인 속성을 본따 만든 인격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신이 있다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어떤 무언가일 거라는 종교관의 신입니다. 여기서 인간을 닮지 않았다는 건 거대한 문어라든가 이런 게 아니고요, 길흉화복을 결정하고 의지를 갖고 우리의 기도를 듣는 그런 대상이 아니라는 거죠. 범신론과 이신론 일부가 무인격신을 믿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