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맞이 넋두리나 한 번

1. 얼마 전 몇 년만에 대학 선배 언니를 만나 점심 + 술을 한잔 했어요.

같은 과에 같은 동아리에, 졸업하고 나서도 한동안은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은 절친했던 선배였죠.  

그간 있었던 일들, 서로 사는 모양새등 간만에 낮술에다 옛날 일로 수다를 떨다보니 기분이 좋더군요. 

슬슬 얘깃거리가 떨어져갈 쯤에 가게에서 故 김광석 노래가 나오길래

내 인생에서 쓸떼없는 날 며칠쯤 떼어다가 김광석한테 주고 콘서트를 열게한 다음

거기나 가보고 싶다, 라는 얘길 했어요.  어릴 때부터 팬인데 직접 본적은 없거든요.

그러자 그 언니가 

"왜 그렇게 자존감 없는 소리를 하니, 네가 김광석같은 사람이 될 생각을 해야지"

하고는 씩 웃는데 순간 빈정이 확 상하더라구요.

전 현재 아이를 갖기위해 하던 일을 그만둔 상태고 이젠 집순이 아줌마 다 됐다고 

농담 반 자학 섞인 얘기를 언니한테 한 직후였으니까요. 

알딸딸하니 향수에 젖어있다가 따귀라도 한 대 맞은 기분이랄까...

근데 뭐 그러려니 했어요.  반쯤 농담인 투였고, 원래 악의는 없는데 잘난 척하는 구석이 있는 사람인데다가

실제로 그 언닌 자기가 꿈꾸던 일을 하면서 나름 인정도 받고 있거든요.

결국엔 제 자격지심일 뿐이겠죠. 킁...


혹시 듀게분들은 그런 존재 없나요?

골방에 가둬놓고 '어이, 내 피같은 인생에서 몇 주나 떼줬으니 좋은 놈으로 한 번 써봐'

라고 얘기하고픈  요절한 천재 소설가라든가...


2. 이게 참 웃기기도 하고 어디가서 말하기도 힘든 요상한 이야기인지라 듀게에라도 한번 읍소해 봅니다.


저희 남편은 저랑 함께하기 전에 오랫동안 사귀던 사람이 있었어요.

술김에 농담처럼 제가 먼저 고백했다가 저 여자친구 있어요, 부럽죠? 라고 농담처럼 차였었죠. 

잘은 몰라도 고2때부터 대학교 3학년 때까지 사귄 같은 동네 친구라니 거의 첫사랑일 거에요.

대학교가 갈리고 군대까지 장거리 연애만 5년 가까이 했다는데 결국 여자한테 딴 남자가 생겨서 헤어졌고

먼 발치에서지만 제가 직접 본적도 있죠. 남편은 남한테도 자기한테도 자존심이 센 사람이라 그 여자 이야기를 다시는 꺼낸 적이 없고요.  

근데 그 여자 이야기를 설날에 시어머니랑 아가씨한테서 들었어요.  물론 저한테 직접한 건 아니고 둘이 하는 이야기를 

제가 엿들은 셈인데 시어머니랑 아직도 연락을 하고 지낸다네요. 정확히 말하면 통화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핸드폰으로 하는 무슨 게임에

열쇠? 키? 아이템을 서로 주고 받고 폰에 최근 사진도 저장되어 있는 것까지가 확인된 팩트에요.

시어머니가 남편을 열여덟에 낳으셔서 아직 많이 젊으신 편이고 일찍이 사별하신 후

홀로 남매를 키우신지라 남자같은 데가 있는 분이세요. 인터넷에 도는 시월드 이야기가 남의 나라 이야기로 생각될 만큼 

좋은 분이기도 하고요.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헤어진지 10년 가까이 되가는 아들 여자친구와 연락을 하고 지낸다니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요? 한 때 혼담이 오갔다는 사실도 알고 있고 가족처럼 지냈다는 것도 아가씨한테 들어서

아는데 이건 좀 심하게 정상(?)에서  벗어난 이야기잖아요. 

존심상 차마 시어머니한테 여쭤보지는 못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남편한테 물었죠.

"ㅇㅇ씨는 잘 살고 있대?"

"응? 누구?

"너 옛날 애인"

 "갑자기 걔는 왜?"

"그냥 궁금해서. 갑자기 생각이 나네"

"몰라, 잘 살고 있겠지"

"연락한 적 없어?"

"이 아줌마가 상한 걸 드셨나, 뜬금없이 왜 이러셔. 전 사모님밖엔 없어요. 알잖아, 일편단심 민들레. "

"치, 민들레가 다 얼어죽었나..." 

그냥 그렇게 넘어가고 말았네요. 


이걸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것도 아니니 화를 낼 수는 없는데

뭔가 되게 질투도 나고 신경도 쓰이고, 내가 50대 중반이신 시어머니보다 쿨하지 못한 건가 자괴감도 들고...

하루가 지났는데도 계속 그 생각만 나네요. 에휴.


이상 뜬금없고 생뚱맞은 설날맞이 넋두리였습니다. 다들 남은 연휴 잘 보내시길.




    • 1. 나이들 수록 내 인생이 더 소중해져서 2. 민들레가 다 얼어죽기는 죽었습니다만

    • 시어머니의 입장에서 변명을 해보자면


      그 여자분을 내 아들의 연인이다 이렇게 느끼시기보다 예전부터 알던 아들 친구라고 보시는게 아닐까요. 


      친구 엄마들이 가끔씩 저를 궁금해 하시듯. 남편분이 일편단심 민들레인데 그깟 카톡게임초대따위..


      민들레 얼어죽었다고 슬퍼하지 마세요. 저 오늘 모기 봤어요. 제방에서요. 진짜로요. 진짜 진짜로. 그러니까 민들레도 아마 곧 필겁니다. 

      • 좋은 말씀 감사드려요. 저도 그렇게 생각안 해본 건 아닌데 그래도 그렇지... 라는 생각이 자꾸만 드네요. 

    • 만화가들 중에 완결 내라고 하고 싶은 사람이 몇 있지만 그 사람들 다 살렸다간 완결나기 전에 제가 죽을 거라 어쩔 수 없네요.

      • 살아있어도 완결을 안 내는 만화가는 어찌해야 하나요
      • 요절한 만화가가 많은가 보네요 ㅋ 전 만화가는 없는데 애니메이터는 있어요. 콘 사토시. 망상대리인이나 동경대부 같은 작품들 좋아했거든요. 차기작 하던중에 병으로 돌아가셔서 더 그렇구요. 

    • 1번 얘기는 상대방이 좋은 의미로 한 말로 보여요.
      •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좋은 선배고 도움이 되라고 해주신 말씀인데 그저 제 자격지심일 뿐이죠.  

    • 1. 그런 생각은 안해봤는데 참 재밌는 발상인거같네요. 저도 상대방의도는 좋은 의미였을거 같아요.

      • 일을 하다 그만두고 나니 엉뚱한 생각만 자꾸 느는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 누구 같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것도 상당히 쓸데없는 짓일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ㅎ

      저는 예술은 '보아주고' '들어주는'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글쓴분이 직접 그런걸 만들어야겠다고 하는 사람보다 훨씬 매력적입니다.


      시어머니 일은 조금 속상하실수 있지만 시간을 두고보면 별거아닌 일일수 있을것 같습니다. 사실 의아하긴 하지만 직접 시어머니께 터놓고 물을수 없는 이상 별 방도가 없을것 같기도 해요.
      • 감사해요. 저도 알고보면 꽤나 매력적인 사람이랍니다;


        시어머니는 무리고 아가씨랑 술한잔 하면서 기습적으로 물어볼 계획은 세우고 있어요 



    • 제 주변에 2번이랑 거의 똑같은 경우가 있어요. 갓 스무살 대학때 오래 사귀다 헤어져 각자 결혼하고도 여자쪽이랑 남자어머니랑 친분관계가 유지되는. 홀어머니인 것도 같고요..

      사실 언뜻보면 참 이상해보이는데 막상 당사자들 본인은 전혀 별 생각 없더라구요.

      헤어진 연인관계와 어머니와의 친분관계는 별개의 관계로 유지되더란..

      어머니입장에서는 몇년을 친하게 지낸 아들의 친구이자 아들의 첫 여자친구로 정을 줬던 딸같은 존재로 여기시더라구요. 그래서 어머니랑 여자쪽은 종종 안부인사하고 지내는데 오히려 자녀들 당사자들끼리는 별 왕래도 없고요. 일종의 인간관계(?) 라고 생각해 볼수도 있겠더라구요.

      옆사람으로서는 물론 신경쓰이시겠지만요.. ^^;
    • 2. 일단 조금 안도하시라고 말씀을 드려보자면, 모바일 게임에서 키 아이템을 주고 받는건 아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부분입니다.


      모바일게임들이 친구 몇명 초대, 혹은 몇명에게 아이템 주기- 같은 이벤트 같은걸로 좋은 보상을 주기 때문에, 그만큼의 친구에게 스팸과 같은 초대 메시지를 보내야 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요. 제 주변에서는 스팸오는 번호를 저장했다가 키 아이템 발송처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받는 사람이 원하지 않는 경우 그리 기분 좋은 메시지는 아니게 되거든요.


      아마도 그분이 게임에 너그럽거나, 남편분이 별 의미 없이 편하게 생각하는 것일 확률이 더 높아 보여요.


      최근 사진의 경우 카톡 이미지때문에 자동 갱신된것 혹은 카카오 스토리같은 연락처 시스템을 차단하지 않은 것을 부모님이 연락한다고 잘못 생각한 것일 수도 있고요. 일편단심 민들레라는데~~ 너무 신경쓰지 않으셔도 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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