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반에 써보는 저도 구깃구깃한 이야기



커뮤니티 활동을 하며 알게 된 동갑내기 동성 친구가 있어요. 

다정하면서 의연한 모습에 끌렸고 챙겨주며 어언 6년인데.. 

만난 적 없고 얼굴도 모르며 전화와 덧글, 게시글로 서로 안부를 전해요. 

뭔가 좋은 것이 생기면 그 친구가 좋아하겠다..하면서 택배도 꽤나 오갔고요. 

가끔 힘들 때는 각각 잠수를 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웹상에서 만난 친구 중에선 제일 친한 사람이죠. 


그 친구는 조실부모하고 남은 가족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일이 평생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예요. 

착하지만 능력이 좋다고는 볼 수 없는 남편 하나 믿고.. 시댁은 흔히 말하는 막장 시월드. 

제게 외로웠던 시절 얘길 많이 했고 남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저에게 풀고자 했어요. 


저는 어느 쪽이냐면.. 그 친구보다는 훨씬 덜해도 만만치 않은 트라우마가 있지만 

친구랑 불행 배틀을 뜰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얘기해봐야 달라질 것도 없고 하니 

그럭저럭 별 도움 안 되는 조언 그리고 현재의 근황 정도 이야기하며 살았지요. 

그 친구가 나 이번에 이런 일 당했어 하면 그 비슷한 저의 에피소드 - 그저 토닥토닥을 위한 ? 

단편적인 정보만 줬던 거겠죠... 



제가 힘든 것은... 저는 불행한 사람에게 심하게 감정이입을 해요. 

듣고 나면 마치 내 일처럼 힘들어요. 불행한 내용의 영화도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차라리 몸일이 편하지 감정노동은 정말 못하겠다 싶을 정도여서 

감정을 허락하는 사람이 몇 안 되는데요 

내편, 에게는 한없이 따뜻한 베푸는 사람이고 내편이 아닌 사람에게는 냉차다는 말을 듣죠. 

친구의 불행한 이야기를 제 것처럼 느끼기 시작했어요. 


어느 순간부터 친구의 이야기가 계속 도돌이표를 그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화가 나기 시작했어요. 5년 전부터 하던 이야기를 끊임 없이 그대로의 감정으로 목청을 돋우며 욕하는 포인트까지 똑같은.. 

저는 그동안 제가 무슨 카운슬러는 아닐지라도 이런저런 마음 다스림이라든가 위로라든가 조언이라든가 

나름은 애써왔는데 이 친구는 변함이 없는 거예요. 

(제가 누굴 지적할 주제는 아니지만) 환경을 진저리내면서도 힘들어하면서도 최악의 상태까지 가도록

변하고자 하는 의지라든가 아무런 액션 없이 그저 푸념만 하고 있었어요. 


관성처럼 몇 번 받아주다가 어느 날 저도 너무 화가 나서 

이런 상황 방치하는 니 남편이 쓰레기라고 말했어요. 

뱉어놓고 화들짝 놀랐지만 친구가 화제를 돌려서 사과할 타이밍을 놓쳤어요. 


그리고 한달 정도 잠잠하더니 전화해서는 얘기 도중 흥분하며 

니가 나한테 했던 이런 얘기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콕 집어서 

난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라고 하네요. 

수많은 단편적인 에피들 중에서 

그냥 들으면 제가 충분히 배지부른 인간으로 느껴지는 그런 이야기들. 


조언을 구하는 입장에서 너무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것 같아 하나 푼다면 

저는 자식에게 인생의 화풀이를 하는 부모 밑에서 빨래방망이로 맞으며 자랐는데 

그래서 일찍 독립했지만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도움을 드려야 하는 부모라는 존재에 좀 시니컬해요. 

그런데 부모를 여읜 그 아이 입장에서는 이런 저조차 질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해요... 


물론 그 아이도 저의 저런 사정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만 

그런 전후좌우 몰라도, 제가 부모에게 섭섭한 말을 했다 해도 

그걸 콕 집어 넌 참 이상한 애야, 나였다면... 이라고 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밉보려고 하니까 그렇게 보였던 게 아닌가 싶어 무척 실망했어요. 


그렇다고 저 먼 과거의 일까지 끄집어내어  이만저만한 일이 있어서 

거기서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그애에게 이해시키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애와 저 사이에 이심전심은 그저 저만의 착각이었나봅니다. 


습자지 같은 인간관계인데 이렇게 한 사람을 또 잃네요..... 





    • 여러모로 구정물같은 새벽입니다.

    • 암울한 부모조차 조실부모한 그 친구에겐 부러움의 대상이라는 사실이 참 안타깝습니다.


      친구를 잃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조금 감정을 덜 이입하면서 들어주는 것은 어떨까요. 친구의 하소연은 해결책을 찾는다기 보단 그냥 하소연하고 이야기 털어놓고 욕할 누군가가 필요했을 것 같아서요. 하지만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다면 어쩔 수 없지요.
      • 내 마음 같지 않은 이런 일들이 왕왕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사적인 얘기로부터 거리를 두어왔는데 


        저도 그 친구도 선을 넘은 것은 사실이지요. 미묘하게 슬픈 기분입니다. 들어주기만 하는 사람으로 돌아가기에는 제 감정이 좀 다친 것 같습니다.





    • 연인 사이도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듯이 친구라고 다를까요. 짝을 만나는 일처럼 마음맞는 친구를 사귀기도 나이들수록 어렵기도 하지만요. 최근 사정이 어려워진 친구가 있어요. 몇번 발벗고 도와주었는데 정작 본인은 게으르기 짝이 없고 자기 방식을 바꾸지 않아 답답~ 하지만 착하기짝이 없어서 어려운 사정을 보면 또 안쓰럽고. 결국 자꾸 화가 나고 스트레스 받아서 친구와 적당히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해야겠다 작심한 어제 저녁이었네요. 통하는만큼, 감당할 수 있는만큼 만나고 사는거죠. 영원한 연인만큼 영원한 친구도 없더라고요.
      • 나는 너를 늘 다독여주었는데 너는 날 이해할 생각이 없었구나 싶으니 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차라리 착하기만 한 아이였다면 으이구 니가 그렇지 나없으면 어찌 살래 할 수 없지 하는 언니 코프라도 했을 텐데 


        이제 본전 생각 하는 걸 보니 관계회복은 힘들 것 같습니다.



    • 뭔지알아요 그래도 친구니깐 다시 붙을수도있어요!
      • 이제 서로간 사과를 한다해도 벌어진 간극을 어쩌지 못할 것 같아요 ㅎㅎ 


        제 친구관계는 남들은 다 몰라줘도 너만은 이해한다 이런 게 바탕이 되었던지라... 

    • 거리를 두시는게 답.. 일생 살면서 남 이야기에 심하게 이입해 괴로운 경험은 상대를 너무 좋아해서 성향상 맞지 않는데 꾸역꾸역 참다가 상대 이야기가 괴롭게 흔드는 경우, 적당히 좋아했지만 너무 잦은 연락에 핵심은 말하지 않고 괴로움에 대한 모호한 토로를 무한 반복한 경우... 또 있으려나요. 암튼 한번도 안 싸웠다면 한번쯤 싸우고 거리를 두는게 답이구나, 저는 생각했어요. 그리고 내가 전혀 모르겠는 불행은 감히 아는 척 하기도 어렵고, 내가 잘 아는 불행은 안다는 느낌만큼이나 상대에게 이입을 방해하는 이물감이 있기도 하다는 걸 가끔은 느껴요. 그런데 저도 누군가에게는 발전없는 암담한 이야길 꽤 많이 하는 타입일텐데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모두가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지 진심 위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싶어요.
      • 고맙습니다. 말씀처럼 꾸역꾸역 듣다가 아 이 소리 한번 더 들으면 내가 암 걸리겠다 하고 정말 지치는 순간들이 있었거든요. 


        그애가 저로부터 공격 당했다고 느끼고 이상한 방식으로 복수한 것은 결국 제가 더 이상의 인내심을 발휘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커뮤니티 말고는 접점이 없는 터라 서로 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어영부영 끊어지기도 쉬운 관계여요. 세월이 아쉽지만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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