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zen’ 테라피 + 캐나다 ‘극장 구경’ 이야기(스포有)
제가 있는 캐나다는 영화비가 상당히 비싸기 때문에 (한국처럼 카드 할인같은거 없고요) 그동안 문화생활은 거의 못하고 있었는데 듀게에서 우연히 ‘레리꼬’ 클립을 본 후에 큰 맘 먹고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변호인’이 북미에서 개봉한다는 소식을 알려주신 리버시티님 글이 원동력이 되기도 했고요. (아, 8시간을 달려 저렇게 열심히 영화를 보시는 분도 계시니 나도 열심히 영화를 보아야겠다! 하는? 힘이 생겼달까요)
하여간 4살 딸아이가 100분짜리 영화를 지루해 하지 않고 볼 수 있을지 테스트하기 위해서 레리꼬의 ‘25개 국어 버전’을 보여주면서 “한국말이 언제 나오는지 봐봐” 했더니 흠뻑 빠져들어서 보더라구요. (개인적으로 전 조금 울었습니다.. 한국어가 나오는 것 자체가 감동인데 그 장면 대사도 좋더라고요) 그러더니 한국말 부분을 놓쳤다면서 (엄마가 옆에서 노래까지 불러줬는데!)또 보여달래요. 이젠 유튜브 옆에 뜬 다른 동영상들도 보여달라고 하고.. 그래서 예고편과 몇몇 클립들을 보고 났더니 스토리가 좀 감에 잡히는지 영화를 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영어 버전으로 하는 영화를 찾아서 예매해 놓고(이 동네는 대부분 불어 버전으로 상영하고 있어서요) 스크립트를 다운받아 출력해서 갖고 갔습니다. 아이가 당연히 영어로 나오는 영화의 10%도 이해를 못 할테니 제가 좀 미리 읽어보고 설명을 해주려고요. 영화 중간에 계속 저한테 질문하면 주변에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
하여간 아이는 일단 ‘영화 보는 것 = 팝콘을 먹는 것’이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들어가 있어서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팝콘을 졸라댔고.. 예매한 티켓을 출력하자마자 스낵코너로 갔습니다. 콤보세트가 15불.. 이미 영화비로 22불을 썼는데.. 정말 손이 떨렸습니다. (한국에서도 비숫하겠죠? 극장에서 팝콘 사먹은 적이 없어서..) 물론 저는 한국 엄마답게 집에서 물과 주스, 간식꺼리(배고플까봐 주먹밥까지;) 등을 바리바리 싸갖고 갔는데 팝콘은 싸갈 수 없었어요.. 직원에게 콤보 안 사고 팝콘만 사도 돼요?(메뉴판에 콤보밖에 없었습니다) 라고 쑥스럽게 물었더니 다행히 허락해 주어서 6불에 팝콘을 샀습니다..
극장은 상영관이 무려 22개.. 그런데 토요일 오후라는 시간대가 무색하게 정말 텅 비어 있었어요.. ‘frozen'이 상영되는 16관을 찾아 지하로 갔다가 스탭을 만나서 물어봤는데 “오우, 16관은 3층이예요. 여기 엘리베이터를 타세요. 타시고 3층 내리셔서 왼쪽으로 조금만 가시면 돼요~ 아이는 저기 뒤에서 엄마 찾네요 호호. 영화 재밌게 보세요. 좋은 하루 되세요”라면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고, 안쪽의 3층 버튼도 눌러주고, 제가 아이 찾아서 엘리베이터에 올 때까지 ‘열림’버튼까지 누르고 기다려주는 퍼펙트 친절 서비스를 해주셔서 또 조금 감동했네요.. 이 사람들은 대체 왜 이렇게 친절할까요.. “16관은 3층이에요” 한 마디를 기대한 거였는데..
하여간 영화 시간 30분 전에 극장안에 들어섰더니 미리 온 사람은 4명 뿐이고.. 덕분에 엄청 좋은 자리를 떡하니 맡았습니다. (캐나다 극장은 좌석 미지정 선착순제 더라구요) 무거운 스노부츠와 거대한 점퍼, 목도리, 장갑, 모자들도 벗어두고.. 화장실도 갔다 오고, 팝콘을 거의 절반이나 먹었을 때 겨우 시작된 끝없는 광고.. 그리고 광고에 질려갈 때쯤 드디어 시작된 예고편들..(광고, 예고편 많은 건 여기도 마찬가지네요.. 왜 13불씩이나 돈을 받아놓고 또 광고를 봐야하나요.. 애들 영화에선 좀 자제했음 좋으련만..) 그리고 마침내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끝없이 들어오는 지각쟁이 관객들.. ㅎㅎ(제가 이런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영화 시작 5분 정도 후에 제일 많이 들어온 것 같아요)
하여간 영화는, 저로서는 후반부의 몇 장면들을 빼놓고는 참으로 가슴이 뻥 뚫리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동안 받았던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 느낌도 받고, 해방감이랄까 이런 것을 느꼈어요. 그리고 제 딸아이가 이런 영화를 보면서 자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도 조금 들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보았던 영화들에서 지나치게 여성적이고 의존적이었던 캐릭터들.. 아무리 20대 이후에 공부를 통해서 여성성을 긍정하고 의식적으로 노력했어도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거든요. 그러고보니 제가 어렸을 때 접한 영화나 만화에서 롤 모델로 삼을만한 여성이 없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어요. 아주 여성스럽고 순응적인 여자 아니면 강하고 반항적인 톰보이였는데 둘 다 제 롤 모델이 아니었어요.. 그런면에서 약간 푼수끼있지만 천진하고 독립적인 안나나 굿 걸의 틀을 깨버리는 엘사 모두 “음, 내 딸이 어런 면을 배워도 받아들여도 되겠구나”싶을 정도로 상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10년 넘게 외로이 지내면서도 발랄함과 낙천성을 간직한 안나가 가진 힘이 좋아요.
계속 맴도는 노래들도 당연히 너무 멋있었고요. 개인적으로는 ‘Let it go'도 좋지만 안나의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를 들으면서 좀 속이 트이는 기분을 느꼈어요. 렛잇고는 어쨌든 엘사가 자신의 실수로 비밀을 들킨 후에 약간 사후적으로 이젠 내맘대로 살꺼야 하는건데.. 사실 얼음성에서 혼자 뭘 내맘대로 살겠다는건지 좀 이해가 안 가는 포인트가 있었다면.. 안나는 오늘 하루 허락된 자유 속에서 뭔가 미래를 위한 실마리를 찾겠다는 의지가 있어서 좋았거든요. 엘사는 자유를 갈망하면서 성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안나는 성 밖으로 나가고자하는 것.. 그래도 물론 ’Let it go'도 사랑합니다. 물론 두 사람이 남자들과 맺는 관계에서도 상당히 매력적인 포인트들이 있다고 생각되고요.
하여간 저의 이런 이러쿵저러쿵한 생각과는 별도로, 딸 아이는 무조건 ‘울라프’만 나오면 깔깔대느라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아니 저게 그렇게 웃긴가? 하는 장면에서도 완전 넘어가더라고요. 영화 중간에 엄마 엄마! 급히 찾길래 뭐뭐 하고 귀를 갖다댔더니 귀속말로 “엄마, 울라프 너무 귀여워 깔깔깔” 이러더라고요. 내참.. 그게 뭐 다급한 얘기라고! 하여간 딸램은 울라프 빠가 되었습니다. 집에 와서도 하도 울라프 영상 찾아달라고 해서 ‘울라프 베스트 모멘트’는 다 다운받아줬고.. 울라프 그림그리기까지 보여주면서 직접 그려줬더니 너무 좋아합니다..
그러나 한스 난로씬을 비롯한 후반부는 역시 이해하지 못합니다. “엄마.. 왜 한스가 불을 꺼??”라면서 너무 슬프게 물어봅니다.. 설명하기 진짜 곤란하더라구요.
하여간 4살 딸아이가 지루해 하지 않고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고, 30대인 저도 너무 만족스럽게 영화를 보았으니 디즈니는 정말 대단합니다(픽사랑 합쳤다고요? 자세한 건 모르겠습니다). 아니 만족스러운 정도가 아니라 매일 저녁 식사 후에 레리꼬 한번씩 틀어주고 따라부르면 속이 후련합니다. “그래.. 다 보내고 잊자.. 내 맘대로 자유롭게 살래~” 이거 레리꼬 테라피로 사용해도 될 것 같아요. 이미 ‘싱얼롱’이 유행인 것 같던데 다들 이미 이 노래의 매력을 알고 있는 거겠지요..
암튼 제가 본 극장은 한 150석 되는 작은 곳이었고 관객은 한 50여명 됐으려나요. (이미 캐나다에서는 작년 11월엔가 개봉했으니 끝물인 것 같습니다) 아이 동반 관객이 90%이상, 5세~8세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평소에 캐나다 아이들이 참 안 찡찡대고 묵묵히 줄 잘 서고 잘 기다리는 것에 대해 항상 경이로움을 갖고 있던 저였는데, 음.. 극장에선 역시 내내 조용하진 않더군요.. 특히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후반부는 약간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애들은 집중하지 못하고 부스럭대고, 여기저기서 마미~ 마미~ 불러대고, 콜라 마신 아이들 화장실도 한번씩 갔다 오고 하여 “음,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군” 하며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습니다. 다행히 저의 딸램은 울라프 나올 때마다 엄마를 불러댄 것 외엔 고맙게도 조용히 잘 영화를 보아 주었습니다. “엄마! 엄마! 울라프가 자기 엉덩이 조심하래!! 큭큭큭큭” (엄마도 안단다!)
ps. 한국에서도 겨울은 춥고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봄을 기다린다는 것을 알지만.. 매일 영하 20~30도를 오르내리는 캐나다에서 첫 겨울을 보내는 저로서는 여름을 기다리는 아렌델 왕국 사람들의 심정에 절절히 공감하게 됩니다.. 아 이곳의 겨울은 정말이지 너무도 징해요. 매일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10분간 눈길을 걸으며 북극탐험대가된 것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여기랑 북극이랑 그리 멀지도 않아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꾸역꾸역 잘 살아갑니다.. 노숙자도 많고요. 진짜, 봄이 오긴 올까요.
안 본 아이와 여러번 본 아이는 있어도 한번 본 아이는 없다는 프로즌.
올해는 유독 춥다더라구요.
아하하.. 그런 얘기가 있나요.. 저희 딸아이도 매일 저녁 프로즌 클립들 몇개는 보아야 하네요.. 이 매력은 대체 :)
네, 감사합니다. 참 소박하고, 투박하고, 마음을 나눌 (실은 그럴만한 자원과 복지가) 여유가 있고.. 그래서 전 여기가 좋아요. 네, 봄님.. 어서어서..
네.. 어린아이와는 모든 것이 힘들죠.. 식당, 쇼핑, 영화.. 그래도 아이를 통해 세상을 보는게 무척 재밌더라고요.. 전 10년 후에 이 아이와 콘서트같은 데 어여 가고 싶어요..
이 글을 읽으니 다시 한번 보고 싶어요.
앗, 여기도 조조할인같은 거 있음 저도 또 보러갈텐데요!
-
전혀 불쾌하지 않았어요.. 조언 감사해요.. 저도 어렸을 때 저희 엄마가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셨던게 참 기억이 나고 좋았어서 항상 아이를 데리고 바깥 구경을 많이 시켜주려고 했었거든요.. 고생하셨던 어머니께서 지금은 여유롭게 사신다니 너무 좋네요. 더 궁금한 것들이 있지만 나중에 쪽지 열리면 쪽지로 여쭤볼께요.. 네- 딸을 가진 여자의 삶은 헛된 것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아들가진 분들껜 죄송 ㅎ) 게다가 Quinny님 같은 따님을 두셔서 어머니께서도 행복하실꺼라고 믿어요. 전 제 딸이 그냥 건강하게만 있어줘도 너무 고맙고 행복하더라고요.. 원래 엄마들은 자식이 '엄마 사랑해요' 한 마디만 해도 고생이 눈 녹듯.... ㅎㅎ 역시 봄이 와야죠!
아하하. 캐나디언들 원래 이런거예요? 그냥 버스기다리면서 몇 마디하면서도 몇년 친구처럼 얘기해요.. 이 분들.. ㅎㅎ
프로즌 OST 여러 곡을 한동안 흥얼댔던 1인인데, 인도 극장에서 춤 추는 장면이 나오면 관객들이 일어나서 따라 추듯, 프로즌은 노래 따라부르기가 허용되는 특정 상영관 or 특정 상영 시간이 있으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글을 읽으면서 했습니다.
실제로 프로즌 sing along 버전이 있답니다ㅎㅎ 극장에서 관객이 따라부를 수 있게 노래 키를 낮추고 자막만 나오도록 만든거래요.
맞아요.. 키를 낮춰야죠.. 집에서 혼자 싱얼롱하다 목청 터지겠습니다 ㅎㅎ
아문센.. 피어리.. 당신들의 고통.. 겨우 이 정도였어? 막 이래요... ㅎ
며칠 전 쪽지를 보내었는데, 지금 듀게가 덜컹거리고 있어서 잘 가지 않았나봐요.
끊어진 카톡으로 연락하고 있었다는 것은- S를 통해 뒤늦게 알았고 ㅎㅎ
건강히 잘 지내고 있는지 소식 궁금했는데, 게시판 글로라도 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보고 싶네요. 화이팅. 봄이 곧 올거예요. 언제나 건강 조심.
(사적 연락을 공개적으로 해서 미안- 나, 누군지 알죠?
다른 듀게분들에게도 양해 말씀드립니다)
걱정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자세한 얘기는 쪽지 열리면 쪽지로 보낼께요. hybris님도 건강하세요!
훈훈해요. 엄마와 단 둘이 뭔가를 한 건 오래오래 기억나더라고요. <3
네^^ 훈훈하게 봐주시니 감사해요. 뭐든 엄마랑 둘이 한다는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뭐 여기서도 새로운 친구들이 생기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