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뒤 사람이 필요한 공간은 참 작구나
남들 보기에 분명 그 사람들 속에 나는 '이상한 새' 모양이었을 것이다. 스웨덴에 사는 유태인 율리(헨릭의 할아버지)의 장롁식에 동양인 한명.
모두 올가의 집에 모여 장례식 장소를 향했다. 유태인 묘지는 우리가 사는 린쇠핑에는 없어서, 노르세핑 (차타고 한 30분)으로 가야했다. 집에 온 나한테 보자마자 너 그렇게 입고 있으니 추울텐데 라고 올가과 마르크 뿐 아니라 처음보는 아저씨 아줌마들까지 모자를 주겠다 장갑을 주겠다 정신이 없다. 나도 모르게 소리내 웃으면서 헨릭보고, 나 추위 안탄다고 말해줘 라고 했는 데 긴장한 헨릭은 아무 소리가 없다. 사실 나는 교회안에서 장례식을 치를 거라고 생각하고 옷을 입고 왔는 데, 유태인의 장례식은 묘지에서 즉 야외에서 이루어 졌다. 더군다가 그제께 까지만 해도 따듯했는 데 어찌나 바람이 불던지 다리가 후덜덜 떠리는 건 경험했다.
묘지 파킹장에 도착하자 먼저 도착한 헨릭의 사촌 일렌느가 차 문을 두드리며 마치 우리가 알고 있던 사이인양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차 밖에 나오자, 내가 엘렌느야라고 말하는 데 그 어투에는 이미 내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코트를 벗고 스웨터 하나를 더 입으면서 '그렇게 입어서는 추울 텐데, 이따가 추우면 말해요 나랑 이 스웨테 번갈아 입어요' 라고 말하더니 검은 돌 두 개를 주면서, '원래는 하얀돌을 준비했어야 했는 데 내가 가지고 있던 건 검은 돌 뿐이에요, 이따가 무덤옆에 놓으세요' 라고 알려줬다. '우리 할아버지는 옷 잘입고 멋있게 보이는 거 중요시 여겼어, 내가 그냥 찾아가면 어찌 이런 모습을 나한테 올 수 있냐 라고 반 장난 화내셨지. 나 예뻐?'라고 스웨덴인 남편을 향해 물어보더니 나를 보며 순간 '우리 중에 제일 옷 예쁘게 입고 왔네, 할아버지가 자기 손녀인 줄 알겠다'라며 깔깔 웃었다. 순간 헨릭 집안 여자들은 어쩌면 이렇게 집안 남자들과 다르게 쉽게 타인에게 문을 여는 가 하는 생각을 하며 저만치 떨어져서 혼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그를 바라본다.
'우리 할아버지는 무신론자 였는 데 평생에 한번은 기도를 하셨데, 2차 전쟁중이었는 데 순간, 하나님 죽지 않게 해주십시요 그리고 상처를 입게 해 주십시요. 그리고 그 기도가 들어져서 다리에 부상을 입으셨데. 그래서 병원으로 옮겨져서 석달간 치료를 받으셨지 덕분에 그 부대사람들은 다 참가한 ,,, 전투(듣고 잊어 버렸음, 러시아 인들은 거의 전멸한 전투)에서 빠질 수 있었데'
온 집안이 무신론자여도 장례식은 유태 종교에 따라, 신에게 감사하고, 기도하고. 한 장례식이 스웨덴어, 러시아어, 히브리어가 섞여서 완성된다.
일레느가 러시아로 할아버지를 생각하고 지은 시를 읽자 사람들고 잠시 웃고 운다. 남들 다 우는 데 혼자있을 때만 울 수 있는 헨릭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다. 슬픔때문일까? 추위 떄문일까?
할아버지 관이 내려가는 순간, 살아있을 때 필요한 침대, 방, 차, 그 모든 공간에 비해 참으로 좁은 관을 보면서, 아 죽은 뒤 사람이 필요한 공간은 이렇게 작구나
식이 끝나고 나서야 다가온 그는 '우리 이모네서 점심먹을거야. 같이 갈거지?'라고 물어왔다. '기꺼이'.
막상 그 이모님네 가보니 집안의 절친인 보리스 아저씨 빼고는 나만 가족외인이고, 러시아어를 모른다. 왁자지껄 러시아어로 서로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그 시간, 헨릭과 헨릭의 동생 보리스가 중간 중간 스웨덴어로 해석해 주었지만 전혀 모르는 말을듣고 있는 데도 이상하게 이방인이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이 사랑으로 할아버지를 기억하고 있는 건 느꼈기에, 그리고 사랑으로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건 당연히 여기기에 그대로 충분했던 게 아닐까?
차와 파이가 나오는 데 보리스(헨릭동생)이 만든 레몬 파이다. 내가 헨릭이 친구가 되기전 무척이나 빡빡했던 초콜렛 케익은 만들어 준 이야기를 하자, 이미 내 케익을 먹어 본 보리스가 웃는다. '그것도 모잘라서 나한테 묻는 거야 빵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래서 초컬렛맛이 난다고 했더니 막 웃더군' 보리스도 소리내어 웃는다. 내가 파이를 먹은 뒤 ' 헨릭보다 더 잘 굽는다' 라고 말해주자 그건 단지 먹을 만 하다는 말이지 맛있다는 말은 아니라고 지적하는 보리스. 뒤늦게 우리 곁에 온 헨릭보고 내가 ' 헨릭 보리스가 구운 것을 먹을 만 할 뿐만 아니라 맛도 있어' 라고 말하자, 그는 나도 이런 치즈케익은 잘 구울수 있다고 대답했다 순가 보리스와 나는 동시에 '치즈케익이 아니라 레몬 파이야' 라고 대답하고 웃는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더 큰 공간이 필요하다.혼자가 아니니까. 다른 사람들과 웃음과 눈물과 차와 빵과 추억과 사랑을 나누어야 하니까.
러시아어가 섞인 이디쉬어를 한 번 들어보고 싶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장례식 광경, 끝난 뒤 참석한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네요.
살아있는 사람들은 더 큰 공간이 필요하다.공감합니다.
뭐 살아서는 별반 다른가요 먹는 것도 죽은자 보다 조금 더 먹을 뿐
와, 단편소설 읽는 기분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열성적으로 신을 믿을 거라는 근거없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무신론자도 있는 거군요!
좋은 글에 하나 보태고 싶은 맘에... 중간에 할아버지가 전투에서 빠지는 일화를 얘기하는 '-데' 말인데요, 남에게 들은 얘기를 전할 때는 '~대'라고 씁니다.
글의 마지막이 참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스웨덴으로 이주해온 유태계 러시안 가족인가 보네요.. 장례식 풍경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처음 만나는 분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따뜻하게 느껴져서 좋네요.. 저도 종종 여러 명이 불어로 대화하는 한 가운데 혼자 말을 못알아듣는 동양인으로 있으면서 내가 왜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까 할 때가 있는데.. 조금 공감가기도 하고요. 의식, 의례가 인간을 인간이게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말의 뜻을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