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델과 엠마 사이에서(스포의 가능성)



화제가 되었던 영화를 보기 전까지, 사실 전 크게 기대를 안했어요. 

영화평이나 줄거리를 보니 대강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짐작이 가더라고요.

아무 것도 모르던 아이가 겪을 날 것의 가혹한 연애... 그런 거 스크린으로 까지 보기는 싫었어요.  

왜냐면 해봤으니까. 그게 얼마나 찌질하고 힘든지 아니까.   

비참한 씬을 커다란 화면으로 목격하게 될 불편함. 그걸 피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영화가 내리기 전, 뭔가 아쉬운 마음에 영화관을 찾았어요. 이슈가 한참 지난 터라 사람은 거의 없었고

두번째 자리에 앉아 (듀나님 표현을 빌자면)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생간 같은 걸 꾹 참고 봤어요.

비위가 좀 약한 탓에 몇 장면에서는 스크린에서 정말 비린내가 풍기는 것 같은 느낌에 괴로웠고요.


다들 말씀하신 것 처럼 전시회장을 빠져나와 갈지자로 거리를 걷는 아델의 뒷 모습이 아렸어요.

하지만 그녀의 3부는 행복할 것이고, 어쨌든 본인이 뭘 원하는 지 정확히 알고 그걸 얻기 위해 노력할거에요.

물론 힘들겠지만 적어도 진짜의 삶을 살겠죠. 


겁쟁이 엠마는 아마 죽을 때까지 그렇게 쿨하게 살거에요. 

옛날 애인과 현재 애인을 함께 캔버스에 그릴 수 있는 그 시크함으로. 

위선적으로 보이지만, 그 위선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인거죠. 

샴페인과 굴을 들이키며 아델을 잠깐 떠올리곤, 아 그녀는 참으로 슬프고 아름다웠지... 

(그리고 리즈랑 잠든다.)


영화를 보고나서 이상하게 몰려오는 허기에 

평소에는 전혀 가지 않는 피자헛에 들어가 토마토스파게티를 시켜놓고 폭풍흡입 했는데, 허함은 가시지 않더군요. 


어쨌든

과거를 돌이켜보면 저는 엠마와 아델 사이를 왔다갔다 한 것 같습니다.

연애의 시작에서는 항상 시크한 척 구는 엠마였고, 끝까지 쿨 시크하기에는 지나치게 감성적이라 어느새 푹 빠져버린 나는

아델이 되어버렸죠. 그런데 연애란 항상 아델이 되면 지는 게임이잖아요.

그래서 마지막 씬은 핸드백이 열린 채, 머리는 산발인 채, 미친 여자처럼 울면서 걷는 장면이 되는 거죠. 

죽겠다고 엉엉 우는 바람에 그걸 가지고 놀려먹는 친구도 하나있긴 해요. 


청춘도 아닌 주제에 추태는 이제 그만이라고, 그래서 마지막 연애가 끝난 작년 이맘때 쯤 부터는 평생 연애는 하지 않겠노라 마음 먹었는데

진절머리나게 겪어 놓고도 마음은 누군가를 보면 다시 설레다니...

머릿 속으로 엠마와 아델 사이를 끊임없이 시뮬레이션 해보곤 합니다. 

결국 아닐거라고, 또다시 아델이 될 순 없다는 다짐으로 끝나지만.  

나는 완벽한 엠마도, 완벽한 아델도 될 수 없는 사람이니까

(그냥 울라프가 되자고;)  



 

   

 



 

   





    • 사랑에 대한 무수한 정의가 있지만, [무언가를 아끼고 위하는, 동시에 그 아끼고 위함을 받고 싶은 마음]이라면, 이것은 근본적으로 모순이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말하자면  사랑을 '더 받는 것'이 승리라면, 역설적으로 그는' 사랑을 더 주지 못했으니' 패자가 되는 것이죠. 따라서 사랑이란 개념엔 완벽하게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아니, 승자와 패자가 필요없는 게 사랑이 아닐까해요. 매우 이상적으로 보면 사랑에 승리와 패배, 이득과 손실이 개입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닐테니까요. 그래서 거기엔 오직 사랑이란 행위를 지속시키는 에너지와 운동들만 존재하는 것 같아요. 다만,




      사랑이 아닌, 그러니까 사랑으로 포장된, 혹은 사랑으로 오해되는, 어쩌면 사랑이 되지 못한, 애초에 사랑과는 관련없는 행위들에 있어선 언제나 승자와 패자가 갈리고 말겠지요. 또 그것이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이상이 아닌) 현실들이고요.




      아, 그리고 저도 이 영화 잘 봤습니다. 사실 바로 오늘 봤어요. 하하.

      • 허진호 감독이 이 영화에 대해 GV한 기사를 봤는데, <봄날은 간다>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셨대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는 대사를 말하는 거겠죠.


        저는 아마도 들뜬 열정으로 시작해서 사랑이 아닌 그 무엇으로 끝나는 연애 만을 해온 것 같아요. 생각할수록 아델이 부럽기도 해요. 자기 방어가 필요없는 강인함이, 저도 한 때는 그랬던 것 같은데...     


        네, 인생의 이상적인 한때가 다시 올 것인가에 대해 잠시 상상해봤는데, 이내 슬퍼지고 마네요. 너무 오래 살았거나 잘못 살았거나. 둘 중에 하난가봐요.  

        • 네, 영화 속에 바로 그 속성을 말한 대사가 있었죠. 샤르트르의 '실존은 본질에 우선한다'가 '오르가즘이 본질에 우선한다'로 변형되어 나타나는 그 지점. 현실이 이상에 우선하는 그 지점. 그래서 어쩌면 본질과 상관없이 실존적으론 전혀 '잘 못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차피 우리는 항상 실존속에 놓여 있으니까요. . 다만 그로인해 언제나 실존하는 비극들 속에 놓여있지만.




          그러니 우리는 적든 많든 본질적으론 잘 못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죠. 하지만 항상 움직이고 있죠. 영화 마지막 아델의 무거운 발걸음 만큼이나,  혹은 <봄날은 간다>에서 흘러가는 바람소리들처럼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 첫번째 문단 동감합니다. 우리는 그 모순된 마음을 알지도 못한채 누군가를 원망하기도 혹은 누군가에게 매달리기도 하지요.


        그런데 저는, 애시당초 사랑이 그렇게 대단하고 완전하고 순수한 그 무엇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랑으로 포장되거나 오해되고, 되지 못한 것들도 자신들이 사랑이라 너도나도 외치고 있지요.


        '그래, 그렇다면 너 좋을대로, 그것또한 사랑이라 부르렴' 라는 생각이 요즘 들어요.


        실제로 우리는 부모와 자식간에, 연인간에 순수하게 이기적이고 어긋난 사랑을 흔히 볼 수 있지요.


        단지, 누가 어느 한쪽이 더 사랑때문에 아프고 고통스럽다면 그 사람이 그 만큼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초월(?)해야 할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사랑에 대한 찬양은 넘쳐나지만, 우리는 그 만큼 서로를 배려하고 고민하고 아껴주는 것 같지도 않구요.


        아무튼 그 난관은 온전히 스스로의 몫이며 잘 헤쳐나가지 못하면 사랑의 비극, 패자가 되는 것 아닐까요.


         

    • 아, 정말 이 영화 꼭 봐야겠어요.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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