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을 막론하고, 봄은 그냥 고양이로소이다

  몇달 전부터 수고양이 한 마리를 들여 같이 삽니다. 키워보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고양이는 정말 진리입니다. 저와 사는 이 놈도 정말 요물이에요, 천 개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소리를 가졌어요. 아참, 혹시 고양이가 우는 종류의 소리 말고 '끼르릉' 또는 '끄후루룩' 같은 소리는 무슨 뜻일까요. 제 고양이가 사람 하나 몫을 하는 것처럼 말과 울음을 내기에 우리 고양이에 한해선 웬만해선 다 통역이 되는데 이 소린 정말 뭔지 모르겠어요. 막 놀다가 그다지 높지 않은 곳을 뛰어 올라올 때 (방바닥에서 침대로) 또는 열중하던 놀이를 멈추고 다른 걸 시도할 때 내는 소리인데, 마치, '이제 그만 하고 자자' 또는 '뭐 딴 거 뭐 없나?' 같은 평상심의 기분 좋을 때 내는 소리인 것 같아 걱정하진 않지만요.

 

  어떤 분께서 동물의 혈통과 종자에 대해 쓰신 글이 있어서, 큰 관련은 없지만 제가 우리 고양이를 볼 때 들었던 생각이 떠올라 써봅니다. 제가 처음 사진을 봤을 때 심장이 쿵 하는 느낌을 받게할 만큼 아련한 미모를 자랑하는, 이 아이는 코숏 잿빛고등어입니다. 한 마디로 길고양이(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잡고양이)라는 거지요. 그런데 이게 어떤 잣대로든 썩 공정한 것인지는 모르겠고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는 철저한 제 기준이지만, 사실 저는 이 조건이 굉장히 중요했어요. 고양이와 살아야 한다면 비싼 돈을 주고 사서 모시듯 살아야 하는 혈통있는 고양이는 일단 제외. 저는 아직 동물의 권리까지 인권의 개념으로 끌어올려 보기엔 이제 막 반려를 시작한 사람이라 어쩔 수 없이 인간 중심입니다. 이것 또한 편협한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고양이가 사람과 비슷한 수준으로 동등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만 앞서서는 안 되며, 또한 고양이가 나를 돋보이게 만드는 수단이어서도 안 된다고. 이 부분에 대해선 반려동물 오래 키워보신 분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아주 오래 전 제가 어리고 뭣 모를 때는 제 직장 스트레스와 여러가지 생활적인 불만 때문에 '고양이라도 한 마리 키우면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중개업자를 만난 적도 있었죠. 물론 순혈에 아주 희귀종은 아닌, 샴고양이 종류였던 것 같고요. 이 새끼고양이가 어떤 경로로 이 중개업자에게 와서 이 낯선 커피숍에서 나를 만나게 되었나 하는 기본적인 의문 같은 것도 없었을 만큼 저는 무지했고 반려동물이 아닌 애완동물로서의 고양이만 생각했어요. 그리고보면 십수 년 전 얘기인데도 그때도 접선 장소가 일산이었네요. 고양시는 정말 고양이의 도시인가요.

 

  그 때 업자에 의해 이동장에서 꺼내져 제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새끼 샴은 여타의 고양이처럼 낯을 가리고 저를 할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눈이 하트하트가 되었으나 한 번 안아보지도 못하고 서툴게 두어 번 쓰다듬었고요. 고양이를 데리고 왔던 업자가 제시한 액수는, 이른바 진짜 순혈종자라는 보증서를 갖고 오는 귀하신 몸들이 얼마인지는 몰라도 그에 비할 바는 아니었겠지만 아직 삼십대가 되지 않았던 직장 몇 년차 제가 감당하기엔 적은 액수는 아니었어요. 물론 저는 그냥 고양이가 이쁘고 내가 외로우니까 한 마리 들이고 싶다는 위험하고 순진한 생각 뿐이었고 그것을 눈치챈 듯한 그 중개업자가 제시한 금액이 싼 것인지 비싼 것인지에 대한 비교근거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헛탕치게 만든 업자에게 괜히 미안해져서는, 막판에는 업자가 마신 커피값까지 제가 내는 것으로 하고, 그 고양이를 사지 않게 되었습니다. 뭐랄까... 일단은 잘 기를 수 있는지에 대한 책임감도 자신 없었고 아무리 동물이라지만 돈을 주고 구입을 한다는 것이 마뜩찮아서였어요. 물론 일반 동물 병원에서 합법적으로 거래되는 것까지 비난하고 싶은 건 아니고 '브리더' 라는 명칭의 전문분양업자들이 따로 있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게 되었지만요. 그렇다고 유기견이나 유기묘 같은 동물의 권리와 보호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전혀 아니었지만, 그냥 뭔가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

 

  그렇게 세월이 많이 흐르고 어찌어찌 제가 직접한 것은 아니지만 냥줍된 아이를 데려와 같이 살게 되면서 제가 느끼는 행복감이나 고양이가 주는 충만함은 이루 말할수 없어서 오히려 제가 이 아이에게 고마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조그만 녀석 때문에 어제까지 세 번을 크게 울었습니다. 이 녀석이 사고를 쳐서 그런 게 아니예요.

 

  어느 순간인가 저도 모르게 단모종인 이 아이의 털이 길었더라면 더 폼이 났을까 또는 요즘들어 점점 더 또렷해지는 등의 점박이무늬를 보면서 요즘은 벵갈고양이가 대세라는데 이 녀석 혹시 벵갈의 피가 섞인 종자가 아닐까 라고 스스로 확신하며, 내친 김에 인터넷 검색해보니 혈통좋은 희귀한 종자들의 고양이가 그렇게 많고 그런 종이 갖고 있는 특유의 귀티와(정말 이런 표현 밖엔 쓸 수 없지만 이게 딱) 도도함, 우아함 등을 훔쳐보면서도 내게 등을 지고 동그랗게 앉아 아그작아그작 사료를 씹어먹는 아이를 보며 순간 느꼈던 복잡한 이중심리 때문입니다. 아아, 나는 이 아이를 그렇게나 사랑하면서도 이렇게나 속물이구나. 마치 건강하고 사랑스럽고 매력넘치는 시골처녀와 약혼했음에도, 성 안에 사는 얼음처럼 도도한 공주에 대한 본능적인 흠모를 버릴 수 없는 장원의 기사처럼 괴로워 하면서요. 그리고는 곧바로 너무 미안해서 엉엉 울었어요. 동거인이 이런 이중인격자인 것도 모르고 저만 옴팡 믿고 의지하며, 자다 말고 내 가슴 위로 올라와 마치 자기가 고양이로 사는 얘기를 털어놓는 듯 고르륵 거리며 제 뺨을 그루밍 하던 이 아이의 따뜻함은, 제가 그렇게 박복하게 살지도 않았음에도 웬만한 사람이 제게 준 사랑과 믿음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그렇게 두 번을 울었고 마지막으론 운 건 어젯밤이었어요. 3월부터 새로 시작한 첫수업을 마치고 운동을 마저 갔다가 갈까 하다가 지치기도 했고 고양이 걱정이 되어 그냥 집으로 갔지요. 현관문 자동키 누르는 소리만 듣고도 벌써 야옹거립니다. 왜 이제야 왔냐고, 빨리 들어오라고. 들어서자마자 제게 몸을 부비는 아이를 저는 번쩍 들어올립니다. 손을 먼저 씻어야 하지만 그보단 덥썩 안아보고 싶으니까요. 금방 버둥거리며 도망갈 테지만 약 3초 가까운 시간동안 고양이가 제 팔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습니다. 안정과 안도의 표현이지요. 저는 꼼짝없이 이 아이의 노예로 살고 있어요.

 

   그런데도 어제 울었던 것은 듀게에도 올라왔던 세 모녀의 동반 자살 관련 그림과 그들과 같이 살던 고양이마저 같이 생을 달리했다는 기사 때문에 내내 마음이 무거웠거든요.  마지막 순간까지 같이 한 것이 주인의 선택인지 고양이의 직감인 지 알 수 없지만... 그 분들이라고 제가 우리 고양이를 사랑하는 만큼 그 고양이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싶으니,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성화를 대는 녀석을 보는데 정말 눈물이 줄줄. 저 말고도 몇 마리씩 오래 기르신 분들도 계실 텐데, 써놓고 보니 뭔가 쑥스럽네요. 이제 막 시작한 연애를 자랑하는 팔불출 친구를 보는 것처럼 눈꼴이 사나울지도 모르겠지만, 분명 반려동물과도 권태기가 올 것이고 이렇게 이쁘고 건강한 시기와 달리 말썽부리고 병들고 늙고 어찌 예측할 수 없는 앞날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철렁해요. 그래도 끝까지 같이 하고 싶어요. 같이 하려고 합니다. 그러려면 제가 잘 살아야 하겠지요.           
  
  다시 혈통이나 순종이 주는 자부심 또는 변별성에 대한 만족감에 대해 얘기하자면, 저에게 고양이는 저의 친구이자 동시에 제가 보호해야 할 반려동물입니다. 제게 이 의미는 보호 차원이나 책임 면에서도 아직은 인간으로서의 제 힘이 조금은 더 우선되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기도 해요. 그러나 안밖으로 허영심 많은 저답게,  저는 고양이가 가장 고양이다울 수 있는 게 뭔지 가장 많이 고민할 것이고 동시에, 제가 인간으로서 누리는 모든 호사(?)를 공유하게 해 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에겐 혈통이니 순종이니 하는 건 의미가 없고, 그냥 야생본능을 잃지 않는 고양이와의 인간의 동거 자체로 우아할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사실 제 옆에 있으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 우아해 지는 건 제 장점이자 마력입니다...^^  두서없는 얘기는 시를 끝으로 마무리 할게요.

 

 

봄은 고양이로소이다

                                      이장희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의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 권태기따우 안 온다에 6년차 집사 한표 던지고 갑니다...-ㅅ- 맨날맨날 새록새록 예뿍예뿍해요'ㅛ' 뀰같이 사랑하소서!

      • 우리 고양이도 루이죠지 커플처럼 잘 크고 잘 놀아야 할 텐데요.

    • 이제 삼년차애요. 살 0.5kg 찌고 빠지는 것, 간식 먹는 것, 창밖 내다보는 것, 새로 사준 스크래쳐를 긁어주시는 것, 아침에 제가 일어나면 기지개 펴고 무릎 위로 올라와 그릉대는 것, 샤워할 때 욕실 앞에서 뒹굴고 있는 것 하나하나가 절 아직도 울리고 웃기고 매료시켜요.
      • 덥썩 먼저 안겨주지는 않으면서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다니는 건 다 똑같은가요? 저도 자꾸 화장실에 같이 들어오려고 해서 난감한데, 밖에서 애옹애옹 울더라구요.

    • 10년째 코숏 냥이 집사 생활하고 있습니다. 녀석을 키우기 전에는 똥 싸는 것들은 딱 질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욘석과 함께 살고부터는 개나 다른 여타의 동물들을 보는 마음가짐이 달라지더군요. 이런 저의 경험으로 미뤄봤을때 어린 시절에 고양이나 개와 함께 생활해 보는 것은 참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어른도 좋고 ^^ 오랜만에 쿠델카님 글 보니 무척 반가웠는데 냥이 애기라 더 반가워 댓글 남깁니다.
      • 오옷 반가워요. 코숏 참 이쁘고 매력있죠. 간만에 댓글 주셨는데 같은 집사 직분이라니 더 반갑네요.

    • 그 이상한 울음 소리 너무 매력적이에요 사실은 그거 듣고 싶어서 애를 괴롭히기도 한다는 ㅠ


      권태기 안오고 계속 예뻐 죽는다에 표 보탭니다 귀찮을 때는 물론 있습니다만;;

      •  스윗님의 고양이 처음 만난 얘기 써주신 글은 정말 감동이었어요. 사진은 펑하셔서 못 봤지만 대단한 연이 닿았나보다 생각했지요. 고양이가 발톱을 어깨에 깊이 눌러왔다는 대목에서 그만큼 절박하게 의지한다는 뜻일 텐데, 때로는 누군가 저를 그렇게 간절하게 원하고 기대올 때 정말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되더라고요.  

    • 짐승이고 애들이고 시큰둥해하던 인간미 떨어지는 제가, 집사생활 2년만에 37도의 염천에도 불구하고 지금 제 무릎 위에 처억 늘어져 연신 열전도를 시전하시는 이 괭이님을 굳이 애써 쫓지 않는 인간으로 변모한 걸 보면 고양이가 요물은 요물인가봅니다. ㅎㅎ

      • 매오매오양(?)은 매우매우 묘한 매력을 가진 고양이더군요. 그렇죠, 무릎냥을 하고 있으면 오줌 마려워도 화장실도 못간다는. 그 부드럽고 따뜻한 뭉치가 올려져 있는데 우리 둘 사이에 흐르는 그 고요와 안정을 깨고 싶지가 않더라구요.

    • 처음으로 고양이가 토한 것을 발견했을 때 '아이구 고양아! 괜찮아? 아팠어? 이제 괜찮아? 괜찮은 거니?' 라고 비명을 지르고, 혼날까봐 무서워서인지 구석에 숨어 주춤거리는 고양이를 토닥토닥 달래 주고, 토한 것을 치우는데 그제서야 이게 더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약간) 들었습니다. 비혼이고 자녀양육에 대한 로망 한 조각 가져 본 일이 없는데, 자식 똥오줌까지 예쁘다는 부모들이 갑자기 가슴으로 이해가 되더군요.   

      • 그러게요, 저도 생전 누구 똥 치워본 적 없고 치울 일 없어서 사실 조카들 응가도 제대로 못보던 사람인데, 처음 고양이를 들이겠다고 생각했다가 이 부분의 난관을 깨닫고 재고해 봤었어요. 그런데 첫날부터 그냥  자연스레 치우고 있어요. 솔직히 냄새는 완전히 익숙하지는 않지만, 사람처럼 술먹고 담배피고 온갖 잡다한 거 다 먹은 배설물보다는 훨씬 깨끗하다는 생각을 하면 괜찮아져요. 어른들이 그러시겠죠, 개나 고양이 키우지 말고 애를 낳아 키우라고... 같지만 또 엄청 다른 느낌이지 않을까 합니다.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2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37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48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4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89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0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25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6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3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27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1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3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4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0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3 12-30